휘발유 부족이 나은 촌극 - 광복 직후까지 운행된 목탄가스 자동차들
2009-10-15  |   27,848 읽음

목탄버스의 애환
“얘들아, 느림보 버스가 온다. 우리 숨었다가 고개 올라가거든 뒤에 매달려 골려 주자.”
“그래, 내가 화통뚜껑 열 테니까 너희들은 조수가 내려오나 망 봐.”
꼬마들의 걸음보다 느리게 고개를 올라가는 목탄버스 꽁무니에 고개 밑 마을 아이들이 매달려 올라가며 버스 뒤에 달린 숯불 보일러 밑의 뚜껑을 열자 가스가 몽땅 새버린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선다.

“조수, 버스가 꼼짝을 안하는 걸 보니 또 뒤에 애들이 매달려 화통뚜껑 열어 놓은 것 아니야? 얼른 내려가 봐. 누구든 붙들리기만 하면 치도곤을 안기라고.”
“에잇, 이놈들. 또 가스뚜껑 열어 놓았구나. 이리들 나오지 못해?”

언제 달아났는지 장난친 꼬마들은 벌써 산 밑으로 달아나 큰 소리로 조수를 골려준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조수가 삿대질을 하며 쫓아가지만 날쌘 꼬마들은 산속으로 숨어 버린다. 2차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군용차에 쓰기 위해 이 땅에서 휘발유를 몽땅 착취해 가자 그 대용으로 등장한 목탄가스 자동차들은 광복을 맞은 직후까지 운행됐다. 당시의 목탄버스는 꽁무니에 달린 숯불 화통에 숯 두 포를 넣고 풀무질을 해 가스가 발생하면 그 힘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숯을 싣고 다닐 자리가 없어 시골버스 정류소에는 매일 오전 또는 오후에 한 번씩 숯 포대를 싣고 다니며 배급해주는 숯 배달 버스가 나타나기도 했다.

정류소에 도착한 버스는 손님이 내리고 탈 동안 조수가 꽁무니 화통에 숯을 가득 채우고 풀무질을 해 불을 벌겋게 피워놓아야 다음 정류소를 향해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과 곡식자루 장보따리들을 가득 싣고 가다가 높은 고개라도 만나면 거북이 흉내를 내야 했는데, 이런 때 개구쟁이들을 만났다 하면 그들의 노리갯감이 되기 일쑤였다.
 
배갈 택시의 수난
고개주변 마을의 꼬마들이 버스만 오면 뒤따라 올라가며 장난을 치고, 심지어는 화통의 가스밸브까지 열어 놓아 가스가 몽땅 빠지는 바람에 힘겹게 올라가던 버스가 서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부터 조수와 개구쟁이들 사이에 쫓고 쫓기는 일대 추격전이 벌어진다.

택시는 어떤가? 1942년에 접어들면서 택시도 비상긴급동원용이나 응급환자 수송용 외에는 운행이 전면 금지되었다. 나아가 막바지에는 일본군이 전시동원차량으로 지정하여 택시마저 징발해가 거의 전멸상태였다. 서울의 경우 전쟁이 나기 전 900여 대의 택시와 일반 승용차가 운행정지나 징발을 당해 50여 대밖에 굴러다니지 못했다. 그것도 폐차 직전의 고물택시가 대부분이었다.

“마누라, 억세게 독한 배갈 좀 많이 뽑으라우.”
“아니, 맨날 먹는 술이 모자라서 그 독한 때국놈들 배갈까지 들이키려는 거요?”
“그게 아니라 택시는 굴려야 하는데 휘발유를 안 주니 숯불 화통을 달아야 할 판이야. 그걸 달면 매일 숯깜둥이가 되어야 하는데, 그짓을 어떻게 하네! 그래서 배갈을 택시 기름으로 쓰겠다는 게야, 이 할망구야.”
함경도 지방의 어느 택시 운전수는 목탄화통이 귀찮아 독한 배갈을 몰래 만들어 휘발유 대신 사용하려다가 불이 나서 차를 몽땅 태워 먹기도 했다.

해방의 명물이 된 초록포장 역마차
“딸랑딸랑, 미아리행 역마차요. 어서 타요. 전차보다 빨라요. 미아리까지 30전이오.”
“허허, 서울 장안에 버스가 없으니까 일제시대 때 다니던 역마차가 다시 나타나는구나.”
“할 수 있소? 사람은 많은데 전쟁통에 버스와 전차는 거의 다 망가지고 자동차라고는 씨알 하나 안 남았는데 역마차라도 다시 나온 게 다행이라 생각하고 타려면 잽싸게 타슈.”

“일본 놈들 때문에 발이 묶였던 역마차도 해방이 됐구나.”
1945년 8월 15일 당시 인구가 95만 명이었던 서울의 인구는 해외로 망명 갔던 동포들이 대거 귀환하면서 이해 말 120만 명을 넘어서 교통난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택시는 몇 대 있었지만 하늘의 별따기처럼 잡기가 힘들었고, 전차마저 해방의 기쁨 때문에 100여 대 중 반이나 부서져 나갔으니, 지금은 자동차가 너무 많아 교통지옥이지만 그때는 탈 것이 너무 없어 교통지옥이었다. 당시 택시의 기본요금은 2km에 50원, 1km 초과할 때마다 20원씩 더 받았다. 이런 시민의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1945년 10월 지붕에 군용천막으로 만든 초록포장을 둘러친 상자형 역마차가 등장해 시민의 불편을 덜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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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만 만나면 개구쟁이들의 노리갯감이 되기 일쑤였던 목탄버스목탄화통을 실은 택시. 꾀쟁이 택시기사는 이것도 귀찮아 배갈을 넣기도 했다대중교통이 부족했던 당시 큰 역할을 했던 초록포장 역마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