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가 된 마니아들, '박성연, 송병두'
2021-06-21  |   22,399 읽음

프로가 된 마니아들

'박성연, 송병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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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자동차 전문가이자 레이싱 드라이버라는 공통점이 있다 


자동차 마니아 출신 전문가는 자신이 차를 타고 즐긴 경험을 바탕으로 일과 취미를 넘나들며 자동차 문화를 이끈다.

국내 타이어 업계 유일의 여성 테스트 드라이버 박성연 연구원과 하드코어 드라이빙 마니아에게 신뢰가 두터운 우리카 프라자의 오너 미캐닉 겸 레이싱 드라이버 송병두 대표두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자칭 자동차 마니아나 전문가는 주위에 흔하지만 마니아 출신 진짜 전문가는 매우 드물다. 웬만해선 전문가가 되기 힘들뿐더러 마니아를 포용하는 전문가를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자동차 문화가 질과 양 측면에서 좋은 방향으로 나가려면 이런 사람들이 훨씬 많아져야한다. 그래야 내실을 기하며 외연을 키울 수 있다. 그들이 정책수립 과정에 적극 참여할 때 바른 교통정책이, 또 제품연구개발(R&D) 분야로 진출하면 높은 소비자 안목에 부응할만한 양질의 제품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이번에 만난 두 사람이 바로 좋은 본보기다. 둘의 공통분모는 자동차 전문가이자 현역 레이싱 드라이버. 의정부 모처의 팀 워크숍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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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연은 타이어의 성능을 평가하는 일을 한다 


배운 대로 실천하는 학구파 드라이버, 박성연

82년생으로 올해 서른아홉인 한국타이어 박성연 연구원은 테스트 드라이버겸 레이싱 드라이버다. 어릴 때부터 차를 좋아한 그녀가 운전에 입문한 것은 2000년대 중반으로, 엑센트 구형(X3) 수동 모델을 사서 운전을 제대로 배우겠다며 서킷을 찾았다. 타임트라이얼 레이스, KMSA 클릭·쎄라토 스피드 페스티벌 내구 레이스, KSF 아반떼(MD) 컵을 거쳐 제네시스 쿠페(BK) 넥센 스피드레이싱 GT300 클래스를 거치며 전문 드라이버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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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연 드라이버의 제네시스 쿠페 GT300 레이싱카 


그녀는 서울대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첫 직장이었던 대검찰청 과학수사실에서 DNA 분석을 맡을 때부터 줄곧 차타는 직업을 꿈꾸었는데, 대학원 졸업 후 시간여유가 있을 때쯤 아틀라스BX 팀의 조항우 감독과 히로시 카토 엔지니어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프로 드라이버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 진지하게 프로가 되려 했다기보다는 가볍게 경험삼아 해보려던 일인데 이렇게 깊게 발을 들이게 될 줄은 몰랐다는 그녀. 팀의 일원이 돼 피부로 겪은 프로 레이싱의 세계는 상상과는 너무 다른, 살벌한 치열함 그 자체였다. 태백 서킷에서의 첫 경기, 연습이 끝나고 너무 힘들어 혼자 피트 벽에 쭈그려 앉아 울었다고 털어놓았다. 돌이켜보면 레이싱 팀의 일은 모두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게다가 드라이버, 미캐닉과 크루 모두 경기 중 벌어지는 예상 밖의 상황에 대처하느라 매사 예민한 상태이니 무리도 아니다. 그때 그녀를 다독여준 히로시 카토 엔지니어가 “처음엔 힘들지만 차차 좋아질 거다”라고 했던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슈퍼6000 스톡카 경기를 치를 때는 메인 스폰서 변경으로 갑작스레 카울을 바꿔야 했다. 2, 3일 밤새워 새로 만든 카울이 경기 직후 산산조각이 나 허탈했던 일도 떠오른다고. 그렇게 쉼 없이 터지는 여러 상황을 겪으며 그녀는 세 시즌을 매니저 겸 주니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팀에 독일인 선수가 왔을 때는 특기를 발휘해 통역을 맡기도 했다. 팀 무전통역, 엔지니어 미팅 때 함께하며 외국인 선수와 팀 미캐닉 간에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이었다. 그 즈음 팀 파트너였던 한국타이어 엔지니어들이 지원 왔을 때 함께 온 연구소 임원의 눈에 띄어 지금은 연구소 내 성능평가팀 테스트드라이버로 근무 중이다. 연구소에서 그녀는 주로 타이어의 성능을 평가한다. 요컨대 제품이 본래 개발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를 테스트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레이싱 타이어는 서킷 그립과 핸들링 특성 위주로 보면 되지만 로드(공로)용은 승차감과 정숙성, 핸들링, 제동능력과 내구성 등 웨트-드라이 조건을 포괄해 여러 가지 특성을 살펴야 하므로 훨씬 까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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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표를 찾는 고객들도 더 나은 기록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연구한다 


그녀가 밝힌 이 일의 장점은 운전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운전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보면 대체로 운전은 돈을 쓰면서 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 정했던 목표가 운전하면서 돈 벌 수 있는 일을 찾자는 것이었다. 지금 하는 일은 선수보다 수명이 길고 오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일 뿐 아니라 경력 측면에서도 가치 있는 일이라 만족합니다.”라고 말한다. 또 “배운 것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 오랫동안 다듬으며 시도해봐야 하는데, 타이어를 많이 쓰면서 이일을 통해 가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고 배운 것을 시도해보기에도 좋고, 그 외에 다양한 차를 타볼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지요.”라고 설명한다. 반면 대부분의 테스트 과정이 단조롭고 지루하다는 부분을 단점으로 꼽았다. “운전을 기계적으로 하니 장시간 집중이 힘들 때도 있고, 나와 팀원 누군가의 실수가 사고로 연결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하는 부담도 있습니다. 최대의 단점은 지루함이죠.”라며 수줍게 웃었다.

소형차부터 시작해 대한민국 양산 레이싱 클래스의 최고봉 GT300 클래스까지 착실히 단계를 밟은 그녀지만 독학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면서 적절한시기에 만났던 훌륭한 멘토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런 인연을 소중히 여겨 지금도 서킷에 가면 휴일마다 틈틈이 KARA 레이스 오피셜로 봉사하거나 세이프티 카, 메디컬카 운전자로 활약하는 그녀를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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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두 대표와 직원의 관계는 철저한 도제이면서 형제지간이다 


세팅하고 달리며 검증하는 프로, 송병두 대표

올해 나이 마흔. 작지만 다부진 체격의 송병두 대표는 의정부 우리카 프라자의 오너 미캐닉이자 현역 레이싱 드라이버다. 다른 데 눈길 주지 않고 테크니션의 길만 걸어온 그는 레이싱에 대한 생각을 세팅에 반영하고 서킷에서 직접 검증해내는 전문가다. 이 땅에 스포츠 드라이빙의 개념조차 낯설었던 시기에 하드코어 와인딩 동호회에서 활동했던 열성 마니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원메이크 레이스의 시초인 클릭·쎄라토 스피드 페스티벌(쎄라토 클래스) 타임 트라이얼에서 활약하며 드라이버로 이름을 알렸다. 처음부터 모터스포츠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경기 때 서킷에서 레이싱카의 움직임을 보면서 신기해하는 정도였다. 우연히 같이 동호회 활동을 하는 멤버가 시합에 나가서 트로피를 받아오자 나라고 못할 것 없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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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트로피가 그와 팀 멤버들의 저력을 말해준다 


송대표는 손재주 좋은 집안내력을 물려받아 어릴 때부터 기계를 구경하고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시골에서 트랙터나 농기계에 호기심을 가지다가 ‘쇳덩이’의 매력에 자연스레 매료됐다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장 군대에 갔고 전역 후 수원 바른손(현 바른손카샵)에서 6년을 근무하다 우리카 프라자를 열었다. “생각해보니 쭉 자동차 정비로 한우물만 팠습니다.”라며 웃는 그는 처음부터 맘먹은 것은 아닌데 운이 좋았고 상황도 잘 맞았다면서 겸손해했다.

전문가가 된 계기에 대해 송대표는 ‘그냥 쭉 이 일만 했기 때문’이라며 덤덤히 답한다. 본업이 정비, 튜닝인데 레이싱이 재미있어 꾸준히 병행하며 노하우를 쌓았을 뿐, 뭔가 특별한 것을 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누구나 서킷을 가면 이왕 나간 거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 한다. 드라이버는 모두 그런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같이 연구하고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세팅 노하우나 성적이 좋아진 것이라고 말한다.

아주 가끔 싫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일이 재미있어 성취감을 느낀다. 반면 일에 집중하다 보면 개인시간이 없어 아쉬울 때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고객의 차를 만지면서 경주차 세팅도 일정 안에 완료해야 하는데, 직원 포함 2명뿐. 야근은 당연히 그의 몫이다. 늦은 밤 집에 갈 때면 가끔 현타를 느낀다. 그럴 때면 틈틈이 아이스하키를 즐긴다. 팀에서 포지션은 포워드(공격수). 운전 자체가 운동이 되지 않는데다, 모터스포츠는 체력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운동 삼아 하려 애쓴다. 본업과는 아예 다른 분야라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 리프레시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요즘 너무 바빠서 거의 하지 못한다며 아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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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추억을 되살려준 송대표의 원메이크 레이스 초창기 시절 트로피 


그는 튜닝에 있어 목적과 방향이 확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위에 보면 아직도 잘못된 정보를 듣고 중구난방으로 개조하거나, 한 방에 가려고 무리하는 사례가 많아 안타깝다고. 기본 상태로 서킷을 달리면서 차와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튜닝하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각자 정한 기준에 따라 서킷 주행이 즐거운 사람은 조금씩,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기록을 빨리 내고 싶다면한 방에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취미생활이라면 같은 비용을 쓰더라도 즐겁게 타는 쪽으로 하면 되지 않겠냐며 되물었다.

송대표는 단기 영업이나 흐름을 잘 타서 샵이 급성장하는 것보다는 느려도 착실히, 하지만 뒤로 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워크숍을 꾸려가고 있다. 그는 자신을 찾는 고객들에게 ‘빨리 가면 금방 지친다. 빨리 정상을 찍으면 그만큼 빨리 내려온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라는 생각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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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카 프라자의 밤은 송대표에게 작업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에필로그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말이 있다. 인터뷰를 하고 돌아오는 길, 문득 논어 위정편의 글귀가 떠올랐다. 마치 두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자동차 마니아는 누구나 차를 순수하게 좋아한다. 그러나 소음과 안전, 도로 폭주 같은 이슈로 인해 대중에게 좋지 않은 모습으로 비춰질 때가 많아 안타깝다. 이번에 만난 두 사람도 이 문제에 공감하며 마니아가 아닌 사람들과의 인식 격차를 좁히는 것을 풀어야할 숙제로 보았다. 그 현실적인 대안으로 모터스포츠를 첫손에 꼽았다. 이를 통해 자동차가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해 즐기는 건전한 취미라는 인식이 정착됐으면 하는 바람 가져본다.


90db5a4fa33499762f81664f440fef00_1584493434_0444.jpg 심세종 칼럼니스트 사진 오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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