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엔진 박물관과 니스모 쇼룸
2019-09-25  |   5,102 읽음

닛산 엔진 박물관과 니스모 쇼룸 

닛산 마니아를 위한, 작지만 특별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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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엔진 박물관과 니스모 쇼룸은 자동차 마니아라면 한 번쯤 가봐야 할 곳이다.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고 일본의 교통비가 워낙 비싼 만큼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는 않다.  닛산이 그동안 만들어온 엔진을 테마로 꾸며진 닛산 엔진 박물관은 그들이 가진 기술력을 보여주는 곳이고, 모터스포츠와 튜닝 부분을 총괄하는 니스모의 헤드쿼터인 니스모 쇼룸에서는 그들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은 사람이고 기업이고 출신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자동차 메이커 역시 마찬가지여서 저마다의 지역색을 지니고 있다. 토요타는 나고야, 스바루는 군마, 마쓰다는 히로시마인 식인데, 도쿄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는 닛산이 터를 잡은 곳이다. 한때 가장 모범적이고 혁신적이었다는 자마 팩토리를 비롯해 닛산 공장이 있는 전체 지역을 닛산 가나가와 팩토리 혹은 닛산 요코하마 팩토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요코하마에서 닛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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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의 시작을 알린 닷선은 유럽의 오스틴을 복제하면서 시작했다 


닛산과 요코하마는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거품 경제가 한창이던 시절 스카이라인 GT-R은 일본 자동차 마니아의 드림카였고 도쿄에서 요코하마로 이어지는 수도 고속도로 완간선(湾岸線)과 아쿠아 라인 해저 터널에서 최고속 배틀은 지금도 회자된다. 최강의 주인공은 늘 닛산 모델들이었다. 물론 과거의 얘기다. 자동차 기술이 상향 평준화된 지금은 출력 경쟁도 없고 하드웨어적인 기술력 경쟁도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과거의 향수를 안고 있는 사람에게 요코하마의 닛산 엔진 박물관과 니스모 쇼룸은 특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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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이 가득한 전시 공간은 오래된 느낌이 가득하다 


닛산 엔진 박물관 

닛산 가나가와 공장에 자리 잡은 엔진 박물관은 리모델링을 거쳐 지난 4월 재개관했다. 공장 입구에 있는 오래된 건물로 전시 공간은 2개 층이 전부다.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닛산의 역사와 기술 발전사에 대해 꼼꼼하게 설명해 놨으며 ‘기술의 닛산’이라 불리던 시절의 향수가 가득하다. 이 건물은 원래 사무실로 쓰이던 건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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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초기에 제작한 엔진의 부품. 지금과 기능은 같지만 투박하다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실내에 기둥도 많고 작은방으로 나눠진 구조였는데, 지금은 깔끔하게 재단장해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입구에는 닛산이 만든 일본산 괴수 GT-R의 최신형과 전기차 리프가 전시되어 있다. 한때 하드웨어 최강을 외치던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역설적인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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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제조과정과 소재를 설명한 전시물 


1층은 그야말로 기계 덕후를 위한 공간이다. 총 28개의 엔진이 전시된 이 공간에는 닛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기들로 가득하다. 1935년 닷 선 모델 14에 탑재된 모델 7을 시작으로 르망용 그룹 C 경주차에 사용했던 VHR35Z, 슈퍼 GT에서 활약했던 VHR34B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엔진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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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렬 6기통 트윈 터보 엔진인 RB26DETT는 스카이라인 GT-R의 심장으로 유명하다 


조금 나이가 있는 세대에게는 초대 스카이라인 2000GT-R에 탑재되었던 S20 엔진이 가장 인기가 좋다. 1969년에 개발된 이 엔진은 혁신적인 DOHC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언제나 이기는 GT-R’이라는 별명을 만들어 준엔진이기도 하다. 그다음 세대에게 익숙한 엔진들도 보인다. 닛산의 3대 스포츠 엔진이라 불리는 SR20DET와 RB26DETT, VG30DETT는 80년대 말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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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스카이라인 2000GT-R(PGC10)에 사용된 S20엔진 


직렬 4기통 2,000cc를 기반으로 싱글 터보를 장착한 SR20DET는 비운의 명차 펄사 GTI-R에 얹어 랠리 석권을 노렸지만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 엔진은 오히려 5세대 실비아에(S13)에 탑재되면서 인기를 누렸다. 5세대 실비아가 등장한 1980년대 후반은 그야말로 거품 경기가 극에 달하던 시절이다. 자동차 수요도 폭발적이었고 서킷 레이스 외에 드리프트가 큰 인기를 끌면서 SR20DET 엔진은 훌륭한 기본 성능에 호환 부품이 많으며, 가격이 저렴하고 튜닝 파츠까지 풍부해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현재도 4기통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명기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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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 R380에 사용한 GR8 엔진은 1966년 재팬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프린스의 마지막 작품이다 


당연하겠지만 직렬 6기통 트윈터보 엔진인 RB26DETT도 빼놓을 수 없다.  SR20DET 엔진이 싱글 터보에 비교적 작은 배기량으로 고출력을 뽑아내는 대중적인 엔진이라면 RB26DETT는 GT-R의 전설을 만들어낸 엔진으로 유명하다. RB는 엔진 형식명이고 26은 배기량, D는 DOHC, E는 전자제어 인젝션, T는 터보를 뜻한다. T가 두 개면 트윈터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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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스포츠카 선수권부터 수퍼GT까지 닛산이 출전했던 레이스에 투입되었던 전용 엔진들


RB 엔진은 2,000cc부터 3,000cc까지 다양한 버전이 생산되었다. 직렬 6기통 특유의 고회전 영역 대가 강조된 이 엔진은 개발 당시 약 800마력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물론 당시 일본 자동차 메이커 사이의 신사협정 때문에 양산차의 최고 출력은 280마력으로 제한했지만 실제 계측기에서는 320마력 정도가 나왔다고 한다. RB 시리즈는 1985년에 등장해 2004년에 단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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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 마련된 공간은 보다 친근한 느낌을 주는 소품이 많다 


일본에서 V6 스포츠 엔진의 시작을 알린 VG30DETT 엔진은 지금의 VQ 엔진과 VR 엔진으로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스카이라인 GTR이 닛산의 하드코어 스포츠카를 대표한다면 VG30DETT 엔진을 탑재한 4세대 페어 레이디 Z(수출명 300ZX)는 GT 성향이 강한 스포츠카이다. 또한 일찍이 수출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닛산을 상징하던 엔진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 차 중에 가장 높은 출력을 냈다고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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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은 그들의 역사에서 프린스를 절대 소홀하게 다루지 않는다 


닛산은 오래전부터 유럽 레이스에 대한 욕심이 컸다. 1993년 R390 GT1이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그 이전부터 닛산은 유럽의 세계 스포츠카 챔피언십(WSPC)에 참전을 위해 그룹 C 경주차를 계획한다.  1991년 일본의 프로토카 내구 레이스도 진출했는데 이때 사용한 엔진이 VRH35Z다. V8에 트윈터보를 달아 최고 출력 800마력을 냈으며 이후 닛산 레이스 엔진 개발에 밑거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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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이 제작한 엔진의 연표 


2층은 닛산의 역사와 기술 발전을 알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미니어처와 미니카로 구성된 공간이 많으면 일본의 시대 흐름과 당시에 등장했던 닛산의 자동차를 짝지어 놓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하도록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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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26DETT 시대를 마감하고 등장한 VR38DETT는 여전히 GT-R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적으로 닛산은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지금이야 여기저기 눈치 보느라 규모가 많이 줄긴 했지만 일본 내 레이스를 비롯해 랠리, 르망 등 다양한 경기를 위한 엔진을 개발했다.  물론 일본 내 레이스를 제외하면 결과가 생각만큼 좋지는 못했지만 대배기량 V12 엔진부터 트윈터보 V8, 그룹 C 용 엔진 등 기술에 대한 도전은 꾸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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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을 대표한 스포츠 엔진 3종 세트. RB26DETT, SR20DET, VG30DETT(가까운쪽 부터) 


엔진 박물관의 마지막 부분에는 닛산이 그동안 엔진 어워드와 각종 매체에서 수상한 내역이 최신 가변 압축비 엔진과 함께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다. 소형차부터 대형 세단, 산업용 엔진까지 이들은 철저하게 하드웨어 중심의 자동차 회사를 꾸려 왔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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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출력 중심, 하드웨어 중심에서 전동화로 바뀌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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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스탬프도 닛산스럽다


니스모 쇼룸 

엔진 박물관이 있는 가나가와 공장 근처에는 GT-R의 성지라 불리는 니스모 오모리 팩토리가 있다. 전 세계 GT-R 마니아라면 한 번쯤 들른다는 이곳은 사실 쇼룸이라기보다 니스모 사무실과 워크숍의 일부라는 표현이 적당하다. 1984년 설립된 니스모(Nismo)는 닛산의 모터스포츠 분야를 담당하는 부서인데 현재는 슈퍼 GT에 집중하고 있다. 모터스포츠 분야를 담당하는 만큼 그와 관련된 튜닝 부품을 개발하고 Z 튠을 거친 컴플리트카 판매와 메인터넌스가 주된 업무다. 니스모라면 스카이라인 GT-R과 370Z가 대표적이지만 소형 차인 마이크라(마치)부터 주크, 펄사, 실비아를 비롯해 최근에는 전기 차인 리프까지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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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모 쇼룸의 특별 전시인 니스모 역대 투어링카 우승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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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리 팩토리 내 단순 쇼룸 이상의 의미를 넘어 GT-R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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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벽면에는 역대 니스모 드라이버들이 사용했던 헬멧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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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모에서는 아직도 RB 컴플리트 엔진을 전세계에 판매한다 


전시장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르망 머신인 R380 GT1이 벽에 걸려 있는 입구를 지나면 사무실 겸 기념품과 부품을 판매하는 작은 공간, 특별 전시를 운영하는 쇼룸, 유리벽으로 만들어진 워크숍이 있다. 쇼룸 맞은편에 있는 유리벽을 통해 작업 상황을 볼 수 있는데, 작업 상황보다 워크숍에 들어온 차를 구경하는 재미가 훨씬 더 쏠쏠하다. 니스모에서 제작한 Z 튠, R 튠 모델을 비롯해 생산 대수가 극히 적은 오테크 버전의 세단형 GT-R은 일반 도로에서 여간해서 보기 힘든 존재다. 벽면은 니스모의 역사와 유명 레이서 헬멧으로 가득하다. 소소한 것들을 가지고 소소하지 않게 꾸민 공간 자체가 매우 특이하다. 취재 당시에는 투어링카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1997년 JTCC에 출전했던 프리메라 카미노, 1999년 JGTC 용 스카이라인 GT-R(R34), JGTC 용 니스모 Z가 전시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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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모 쇼룸 입구에는 얼마전 재규어에서 은퇴한 이안 칼럼이 TWR 시절에 디자인을 담당했던 R390 GT1이 걸려 있다. 이 차는 1994년 르망 24시간에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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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조일 스카이라인 GT-R. 일본 수퍼 GT에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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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니스모 경주차들의 다이캐스팅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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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소품을 소소하지 않게 전시한 한쪽 벽면에는 니스모가 출전했던 레이스의 우승 트로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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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개의 미니카로 만들어진 GT-R 로고. 불패의 R이 가지는 상징성은 특별하다


글, 사진 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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