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A 인터컨티넨탈 드리프팅 컵
2017-11-09  |   17,567 읽음


국제규격의 드리프트 경기
FIA 인터컨티넨탈 드리프팅 컵


그동안 드리프트는 쇼 이벤트 성격이 짙어 정규 모터스포츠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 세계 모터스포츠를 주관하는 기구인 FIA가 전세계 드리프트 경기를 하나로 통합하는 FIA 인터컨티넨탈 드리프팅 컵을 출범시키면서 하나의 모터스포츠로서 당당히 자리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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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프트의 종주국은 단연 일본이다. ‘이니셜 D’의 선풍적인 인기는 1990년대 말 일본에서 정규 드리프트 시리즈가 출범하는 데 일조했다. 현재 드리프트 경기는 미국과 유럽,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열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립 주행 방식 모터스포츠의 틀을 깨는 드리프트는 물리력에 대응하는 자동차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모터스포츠라기보단 쇼 이벤트 성격이 강했던 것이 사실. 일본은 몇 년 전부터 드리프트의 세계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자체적인 호몰로게이션을 만들고 일반도로 주행이 가능한 차가 출전하는 리그를 만드는 등 드리프트를 정규 모터스포츠 카테고리에 넣으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그 선봉에는 ‘이니셜 D’의 실제 주인공이자 드리프트 킹, 세계 최초의 드리프트 대회 D1 그랑프리의 창시자 츠치야 케이치(土屋圭市)가 있었다. 그의 노력이 없었다면 드리프트가 지금과 같은 정규 모터스포츠로 발돋움하지 못했을 것이다.


각 국가별 모터스포츠 단체가 아닌 FIA가 드리프트 대회를 공식적으로 주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던 FIA 주관 드리프트 대회가 확정된 것은 지난 6월. 이번 경기는 대표적인 드리프트 경기인 일본 D1 그랑프리의 특별경기가 열리는 도쿄 오다비아 특설 경기장에서 지난 9월 30일부터 이틀간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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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을 경기장으로 꾸민 도쿄 오다이바 특설 경기장은 최초로 도심 드리프트 경기가 열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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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A 회장인 장 토드는 “익사이팅하고 화끈한 드리프트에 매료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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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프트 킹이라 불리며 드리프트 세계화에 앞장 선 츠치야 케이치의 개회사로 첫 국제 규격 드리프트 대회가 열렸다


FIA 인터컨티넨탈 드리프팅 컵에는 14개국 28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한국에서 참가한 선수는 김동욱(TEAM Vittesse × DRF), 세바스티앙 메실리(XCARGOT DRIFT TEAM), 김인성(RC automotive team) 등 세 명. 지난 8월 15일 인제 스피디움에서 열린 한국 대표 선발전에서 일본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이 중 김동욱과 김인성은 한국 대표 시드를 받았으며, 한국에서 드리프트 선수로 활동 중인 세바스티앙 메실리는 국적지인 프랑스 대표로 첫 세계무대를 밟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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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드리프트 무대에서 태극기가 등장한 것은 2012년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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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국 28명의 선수가 참가한 FIA 인터컨티넨탈 드리프팅 컵에 2명의 한국 선수가 출전했다


그 동안 몇몇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일본 대회에 출전한 적은 있지만 대한자동차경주협회의 공인 선발전을 통해 국제 드리프트 대회에 출전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쉽게도 토너먼트 배틀로 진행되는 베스트16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넓은 세계무대에서 좋은 경험을 쌓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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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충분한 가능성 보여
경기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진행되었다. 레그1과 레그2로 나눠어 일본을 비롯해 한국, 태국, 이란, 이탈리아, 러시아, 말레이시아 등 14개국 선수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한국 팀은 김동욱이 금요일 연습주행에서 펜스를 들이받는 사고를 당해 레그1 출전이 불투명했지만 토요일과 일요일에 펼쳐진 예선(단독 주행)에 참가했다.


FIA 인터컨티넨탈 드리프팅 컵의 채점은 DOSS 시스템(각도, 속력 등을 계측하는 장비)과 3명의 부심이 담당하며 총 5개의 섹션에 배정된 배점이 모두 다르다. 또한 스포츠맨십 위반이나 반칙은 마이너스 점수가 반영되는 방식이다. 16강으로 치러지는 배틀 토너먼트는 단독 주행 점수에 따라 시드가 배정되고, 두 대의 경주차가 동시에 주행한다. 채점 기준은 단독 주행과 같으며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추월은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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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이스 배틀로 치러지는 16강부터는 선수들의 전투력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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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에 열린 레그1 단독 주행에서는 일본의 카와바타 마사토가 1등을 차지한 데 이어 배틀 토너먼트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반면 김동욱은 디퍼렌셜 이상으로 레그1 예선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김인성과 세바스티앙은 베스트 16 진출에 실패했다. 김동욱은 오다이바 특설 코스를 달려본 후 “노면이 불규칙하고 노폭이 좁다. 연습시간도 부족하고 진입 속도가 비교적 낮아 원하는 움직임을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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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한국의 김동욱 선수는 시종일관 열정적이었다

 

10월 1일, 일요일에 펼쳐진 레그2는 한국 대표 2명과 세바스티앙 등 한국에서 건너온 모든 선수가 참여했다. 98점 이상을 획득해야 출전이 가능한 배틀 토너먼트를 두고 각국 선수들이 고군분투했지만 국제무대의 벽은 높았다. 밤새 경주차를 고쳐 출전한 김동욱은 예선은 마쳤지만 스핀으로 인해 고득점에 실패했고 김인성과 세바스티앙 역시 완주에 만족해야 했다.

 
배틀 토너먼트는 초반부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가 펼쳐졌다. 레그1 우승자인 카와바타 마사토를 비롯해 사이토 다이고, 후지노 유키히데(이상 일본), 아카디 차리그라체프, 게오르기 치프찬(이상 러시아), 다이차폰(태국), 찰스 응(홍콩) 등 각 나라 대표가 골고루 시드를 배정받았다. 배틀 토너먼트의 백미는 4강. 일본 선수들로 구성된 4강 한 경기와 러시아 선수들로 구성된 4강 두 경기는 FIA 인터컨티넨탈 드리프팅 컵의 백미였다. 지금까지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일본 선수들의 표정에조차 긴장감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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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에서 온 선수들은 해당 국가의 드리프트 스타일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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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드리프터 사이에서는 현대 제네시스 쿠페가 인기라고 한다

결승에서는 아카디와 카와바타가 맞붙었다. 공격을 주고받으며 진행된 치열한 접전 끝에 아카디가 우승컵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고 카와바타는 2연승 도전에 실패했다. 요코이(일본)와 일본에서 ‘고차’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게오르기 치프찬의 3·4위전은 연장전까지 치른 끝에 사고 투혼을 발휘한 ‘고차’가 값진 3위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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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2 결승은 러시아의 아카디와 일본의 카와바타 마사토가 맞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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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기 ‘고차’(노란색 실비아)는 힘겨운 사투 끝에 레그2에서 일본의 요코이를 누르고 3위에 올랐다

 

아쉬움이 많았던 한국 대표팀
FIA가 주관하는 최초의 드리프트 대회인 FIA 인터컨티넨탈 드리프팅 컵은 올해를 시작으로 2019년까지 일본에서 매년 1회 열린다. 첫 경기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은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경주차 운송과 레이스 운영, 국제 규정에 적응할 좋은 기회였다. XCARGOT DRIFT TEAM의 코디네이터이자 한국 선수단 단장을 맡은 이영대 씨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가능성을 충분히 시험한 무대였다”고 밝혔다. 한국 선수들의 일본 무대 진출에 산파 역할을 해온 TEAM Vittesse × DRF의 제성민 팀장도 “김동욱을 포함해 지금까지 한국 선수들이 일본에서 경기할 수 있도록 도왔지만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늘 아쉬웠다. 국제 룰에 대한 적응도가 아직은 부족하다”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부족한 점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대회를 출전을 위해 지난 8월 15일 인제 스피디움에 치러진 한국 대표 선발전에는 총 50여 명의 선수가 참여했다. 그러나 10년 남짓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드리프트 시장은 이권다툼으로 얼룩진 지 오래다. 탈탈 털어야 150여 명 남짓한 드리프트 선수들(일반, 동호인 제외)은 이해관계에 따라 3개의 경기로 나뉘어져 있고 판정시비나 스포츠맨십이 결여된 모습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미디어의 관심이 멀어진 건 당연지사. 모터스포츠 카테고리로 인정받기도 어려워 보였다.


국내 드리프트 시장이 표류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에는 그동안 드리프트 경기에 대한 대한자동차경주협회의 무관심, 선수들의 인식 부족 등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는데, 이번 FIA 인터컨티넨탈 드리프팅 컵 한국 선발전에서도 이 같은 고질병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부랴부랴 준비는 했지만 전문 인력이 부족했고, 선발된 선수들의 경기 준비 과정에서도 크고 작은 불협화음이 생겼다. 대한자동차경주협회는 이번 FIA 인터컨티넨탈 드리프팅 컵을 준비하면서 D 라이선스(드리프트 라이선스)와 심판원 양성을 위한 교육 과정을 소개했지만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반면 한국보다 드리프트 보급이 늦었던 유럽,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드리프트가 모터스포츠로서나 엔터테인먼트로서 자리잡는 데 성공했다. 특히 러시아는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배틀 토너먼트에 진출하면서 드리프트 종주국인 일본의 아성을 위협했다. 대만과 홍콩, 태국 역시 몇 년 전에 비해 선수들의 기량이 월등히 높아졌다는 평가다. 이번 FIA 인터컨티넨탈 드리프칭 컵 참가를 계기로 국내 드리프트계의 체질개선과 꾸준한 발전을 기원한다.

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 사진 이종구, FIA 인터컨티넨탈 드리프팅 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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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2 우승자 아카디, 2위 카와바타 마사토, 3위 게오르기 ‘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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