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4WD의 초석을 마련하다 신진지프에서 쌍용자동차까지 파란만장했던 30여 년
2005-10-17  |   32,475 읽음
1955 시발, 최초의 국산차
코란도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시발은 최초의 국산차이고 박스형 SUV의 원조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55년 10월, 해방 10주년을 기념해 경복궁에서 열린 산업박람회를 통해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가 선보인 최초의 국산차다.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는 서울 가회동 부잣집 3형제 최무성·혜성·순성이 1954년 세웠다. 이들은 1946년부터 미군 트럭을 재조립하던 기술을 바탕으로 고유모델을 만들어 국내 자동차공업의 시발점을 마련했다. 폐차된 미군 지프나 트럭 부품을 가져다 조립하고, 차체는 드럼통을 망치로 펴서 만들었다. 하지만 엔진만큼은 숱한 실패 끝에 직접 제작해 얹었다. 2도어 보디에 직렬 4기통 휘발유 엔진과 전진 3단, 후진 1단 트랜스미션을 얹고, 2개의 앞좌석과 벤치형태의 뒷좌석을 달았다.
이 차는 1956년 2월부터 58년 5월까지 522대가 만들어져 택시 등 영업용으로 주로 쓰였다. 5·16 쿠데타로 권좌에 오른 박정희가 1962년 닛산 블루버드 400대를 들여와 ‘새나라’ 택시로 푸는 바람에 시발 제작사는 2년 뒤 문을 닫고 말았다.

1974신진지프, 국내 4WD 역사의 태동
국산 4WD의 본격적인 태동은 1970년대에 이루어진다. 1974년 4월 미국 AMC(America Motor Company) 그룹의 지프 디비전과 신진자동차가 반씩 투자해 세운 신진지프가 주역이다. 신진지프는 1974년 9월 부산 주례공장에서 국내 최초의 4WD ‘신진지프’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다. 지프 CJ-7을 국내에서 조립하는 방식이었다. 직렬 6기통 3.8X 100마력 휘발유 엔진을 얹은 신진지프는 하드톱과 밴, 픽업 등으로 선보여 관공서 및 산업현장, 민간시장에서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3.8X 엔진의 신진지프의 인기는 1973년 시작된 석유파동으로 인해 오래가지 못했다.
좀더 경제적인 엔진이 필요했다. 78년 8월, 신진지프는 직렬 4기통 2.8X 85마력 디젤 엔진(4B A1) 개발에 성공한다. 승용 겸 화물차로 분류된 SR-7·SR-9 훼미리를 비롯해 4인승 하드톱·소프트톱 수퍼스타, 6인승 패트롤·밴 등이 4B A1 디젤 엔진을 얹고 나왔다. 당시 ‘수퍼스타’라고 하면 디젤 엔진을 얹은 지프로 통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4WD SUV=디젤’이라는 국내 시장의 등식도 수퍼스타에서 시작된 것이다.
신진지프는 78년, 1천 대의 지프를 아프리카 리비아에 수출한다. 냉전체제에서 ‘공산권 국가와 거래하는 나라와는 손잡지 않겠다’는 방침을 갖고 있던 AMC는 일방적인 계약파기를 선언한다. ‘지프’(Jeep) 상호도 5년 뒤인 83년까지만 쓸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신진지프는 1979년 3월 신진자동차(주)로 이름을 고치고 독자 메이커로 전환한다.

1983 거화 코란도의 탄생
신진자동차는 1981년 다시 (주)거화(巨和)라는 이름으로 거듭난다. 거화는 AMC의 직렬 6기통 3.8X 휘발유 엔진과 신진지프 시절 만든 4B A1 디젤 엔진을 얹은 9가지 모델을 앞세워 크게 성장한다. 83년에는 훼미리를 고급스럽게 꾸민 훼미리 디럭스를 선보였다. 이때부터 ‘Jeep’ 로고 대신 ‘KORANDO’라는 이름표가 붙는다. AMC와의 계약기간이 끝나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 코란도는 ‘한국인은 할 수 있다’(Korean Can Do)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Korean Do It’, ‘Korean Land Over’, ‘Korean Land Dominator’ 등의 뜻도 담겨 있다. 한국형 네바퀴굴림차 또는 한국 지형에 가장 잘 맞는 4WD라는 의미다.

1985 국산 4WD의 대명사로 자리 잡아
거화는 85년 3월, 새롭게 다듬은 코란도 여섯 모델을 선보인다. 이때까지 나온 코란도 가운데 가장 고급스런 모델이었다. 주력은 여섯 명이 탈 수 있는 3도어 하드톱과 4인승 소프트톱. 이밖에 3인승 3도어 밴과 관공서 납품용으로 만든 5인승 2도어, 9인승 3도어 그리고 앰뷸런스 등이다.
당시 거화는 투박한 지프형이 아닌 승용차 타입을 특히 강조했다. 광고문구에도 승용차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4WD’임을 내세웠다. 선택장비로 파워 스티어링도 마련했다. 필요에 따라 뒷바퀴굴림으로 탈 수 있도록 앞바퀴에 원(WARN)사의 허브록 장치를 달고, 빠른 시동을 위해 순간자동점화장치도 마련했다.
가장 큰 변화는 엔진이었다. 일본 이스즈제 직렬 4기통 1천949cc 105마력 휘발유 엔진(G200Z)과 직렬 4기통 2천238cc 디젤(C223) 두 가지를 얹었다. 판매의 대부분을 차지한 디젤 모델은 최고출력 73마력/4천300rpm, 최대토크 14.2kg·m/2천400rpm, 압축비 21.0, 시속 60km 정속주행 연비 11.81km/X를 자랑했다. 최고시속은 110km.
이스즈 디젤 엔진은 신진지프 시절 개발한 4B A1보다 가벼워 차무게를 100kg이나 줄였다. 이 때문에 스티어링 휠의 감각도 한층 부드러워졌다. 또 ㅁ자형 2.5mm 특수강 프레임을 바탕으로 루프와 보닛 1.2mm, 사이드 패널·도어·대시보드 및 플로어 패널은 1.6mm 강판을 써서 강성을 높였다. 당시 승용차의 강판은 0.8mm 안팎이어서 안전성이 큰 이슈로 떠오른 시기였다. 베이지, 파랑, 진초록, 연한 갈색, 회색 등 갖가지 컬러를 쓴 것도 새차의 특징이었다. 이를 계기로 코란도의 인기가 수직 상승하면서 4WD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된다.

1980 년대 중·후반 동아 거쳐 쌍용의 품으로
코란도의 활약으로 잘 나가던 거화는 경영진의 싸움이 원인이 되어 1984년 흑자 도산이라는 이상한 최후를 맞는다. 정부는 1981년 2월 28일 발표한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에서 혜택을 받지 못한 동아자동차로 하여금 거화를 인수할 수 있게 했다. 1955년부터 미국 트럭 엔진 등을 이용해 버스를 만들던 하동환자동차제작소가 동아자동차의 전신이다.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는 현대·대우(당시 새한)가 승용차를, 기아가 소형 트럭, 동아는 특장차만 생산하도록 한 것이 주요 골자다. 86년 7월 1일 거화를 인수한 동아자동차는 86년 5월, 코란도 20대를 일본에 수출해 국산차의 첫 일본 진출이라는 새 기록을 만들었다. 그러나 거화를 인수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자금압박에 시달리던 동아는 86년 9월 30일 쌍용그룹에 회사를 넘기고 말았다. 88년 3월 쌍용은 회사이름을 쌍용자동차공업(주)으로 바꾸고 코란도 생산설비를 3배로 늘린다. 쌍용 브랜드의 89년형부터 수동 5단 트랜스미션이 달리기 시작했다. 1988년 12월에는 X카 프로젝트로 개발된 왜건형 4WD 코란도 훼미리가 선보였다.

1991 푸조 2.5X 디젤 엔진 얹은 ‘코란도 RV’ 데뷔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4WD 시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1989년 6월 30일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가 풀리면서 4WD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기다렸다는 듯이 아시아와 현대정공 그리고 기아가 잇따라 4WD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10여 년간 군용차를 만들던 아시아가 89년 10월 민수용 록스타를 선보였고, 현대정공은 91년 10월 갤로퍼를 데뷔시켰다. 이어 기아도 93년 7월 스포티지를 내놓았다. 위기감을 느낀 쌍용은 91년 7월 2.5X 푸조 디젤 엔진을 들여와 코란도 RV와 휘발유 엔진의 코란도 훼미리(RX 2.6i)를 더했다. 이때부터 코란도는 푸조 2.5X 엔진의 RV와 2.2X 엔진의 RS로 구분된다. 2.2X 엔진은 이스즈 설계를 바탕으로 대우가 만들었다.
푸조제 직렬 4기통 2천498cc 디젤(XD3P)을 얹고 나온 코란도 RV는 최고출력 79마력/4천500rpm, 최대토크 15.8kg·m/2천rpm의 성능을 냈다. 최고시속은 138km, 연비는 RS보다 높은 17.9km/X(5인승)였다. 시판된 모델은 승차인원에 따라 RV4, RV5, RV6로 나뉘었다. 당시 코란도 가운데 유일하게 휘발유 엔진을 얹은 훼미리 RX 2.6i는 선택장비로 자동 4단 트랜스미션을 갖추었다. 이후 쌍용은 92년 9월 코란도와 코란도 훼미리 고급형인 하이디럭스 버전 7가지를 선보였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안개등을 바꾸고, 앞 범퍼에 대형 프로텍터를 달아 강인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또 인조가죽 시트·소프트톱과 가죽 스티어링 휠 등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게 꾸며 상품성을 높였다.

1993 마지막 마이너 체인지
93년 1월에 선보인 마이너 체인지 모델은 한껏 멋을 부리고 인테리어도 크게 바뀌었다. 이때 스테인리스 라디에이터 그릴과 코뿔소 장식을 보닛에 붙였다. 알루미늄 휠과 슬라이딩 방식의 2열 윈도, 스페어 타이어 잠금장치, 트레일러 견인고리 같은 편의장비도 더했다. 스티어링 휠을 오른쪽으로 2cm 정도 옮겨 운전석 왼쪽 공간을 넓히고, 둥근 계기판을 써서 부드러운 느낌을 살렸다. 특히 국내 4WD로는 처음으로 93년형 훼미리에 쓴 LSD를 달아 오프로드 성능을 높였다.
당시 코란도는 승차정원, 엔진, 선택장비에 따라 18개 모델로 나뉘었다. 승차정원은 4, 5, 6, 9인승이었다. RV는 2.5X 푸조 엔진, RS는 2.2X 대우(이스즈) 엔진을 얹었다. 9인승과 숏보디 밴, 앰뷸런스는 주문 제작했다. 그러나 코란도의 인기는 93년 8월 벤츠제 디젤 엔진을 얹고 나온 무쏘에 가려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1996 뉴 코란도 데뷔
데뷔 20여 년 만에 풀모델 체인지가 이뤄졌다. 1996년 7월, 프로젝트명 KJ로 개발된 뉴 코란도가 코란도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9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베일을 벗을 때부터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관심을 끌었다. 코란도 훼미리와 무쏘에 이어 쌍용의 세 번째 고유모델이었다. 엔진은 벤츠제 직렬 4기통 2.3X 79마력과 직렬 5기통 2.9X 95마력 디젤을 얹었다.
97년 밴이 더해졌고, 98년 9월 마이너 체인지를 거치면서 무쏘에 쓰이던 직렬 4기통 2.3X(101마력)와 직렬 5기통 2.9X(120마력) 디젤 터보 인터쿨러, 직렬 4기통 2.3X(147마력) 및 직렬 6기통 3.2X(220마력) 휘발유 엔진을 얹었다. 한 달 뒤에는 소프트톱이 더해졌고, 99년 4월 뒷바퀴만 굴리는 CT 밴이 선보였다. 2005년형부터는 직렬 5기통 2.9X 120마력 디젤만 얹히게 된다.
뉴 코란도는 컨셉트카 분위기의 멋진 디자인으로 데뷔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갤로퍼와 스포티지·레토나 등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베스트셀러로 군림했다. 뉴 코란도는 10월 액티언(Actyon)에 자리를 내주고 단종된다.
글|장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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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0월 선보인 최초의 국산차 시발이승만 전 대통령이 시발을 살펴보고 있다신진지프 수퍼스타는 독자개발한 디젤 엔진을 얹어 인기가 좋았다신진지프 하드톱소프트톱83년부터 86년 7월까지 사용한 코란도 로고디자인을 새롭게 다듬은 소프트톱 85년형 3도어 9인승승용차형 스티어링 휠과 중앙집중식 계기판’이 당시 홍보문구였다보디는 승용차보다 두 배나 두꺼운 강판을 썼다당시 코란도는 수작업으로 만들어졌다스즈제 직렬 4기통 디젤 엔진 88년부터 코란도는 쌍용 브랜드로 팔렸다. 당시 쌍용 영업소의 모습 88년 12월 선보인 코란도 훼미리코란도와 같은 인테리어를 썼다 코란도 훼미리는 국내 4WD 왜건 시장을 개척했다 91년 7월 들여온 푸조 2.5X 디젤 엔진 푸조 엔진을 얹은 코란도 RV 소프트톱92년 9월, 고급형 하이디럭스가 선보였다하이디럭스 소프트톱. 새로운 모양의 톱이 쓰였다 93년 마이너체인지된 하드톱(왼쪽)과 소프트톱 93년 마이너체인지된 하드톱(왼쪽)과 소프트톱주문 제작된 9인승. 93년형부터 슬라이딩 윈도를 달았다훼미리도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였다96년 쌍용의 세 번째 고유모델로 
선보인 뉴 코란도.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관심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