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의 용으로 승천을 꿈꾸는 베트남의 중심, 호치민
2018-01-12  |   33,158 읽음

 

동남아의 용으로 승천을 꿈꾸는 베트남의 중심
호치민

세계 최강 미군을 몰아내고, 중국과 1,000년 동안 싸워왔다고 주장하는 베트남. 중국의 대체지로 부상하면서 동남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의 수도 호치민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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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처의 초청으로 방문한 베트남 호치민의 첫인상은 대단히 역동적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맞닥뜨린 것은 수많은 오토바이의 행렬. 넓은 도로를 꽉 채운 오토바이들의 질주와 굉음은 베트남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다.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중국에만 오토바이가 많다고 여겼었는데, 호치민에서 이렇게 많은 오토바이를 볼 줄이야! 오토바이는 호치민 시민들의 절대적인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거리에 울려퍼지는 배기음을 듣고 있자니 정신이 혼미해진다. 처음엔 마냥 신기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토바이의 행렬이 소음 공해를 넘어 공포로 다가올 정도.


베트남은 자동차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까닭에 자동차 가격이 엄청 비싸다. 기아 경차 모닝이 베트남에서는 2,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되니, 일반 시민들에게 자동차는 그림의 떡. 이를 대신해 한결 저렴한 값에 구입할 수 있는 2륜차가 대중화되었으며, 베트남의 오토바이 등록대수는 대략 4,000만 대가 넘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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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꽉 메운 오토바이 행렬, 호치민은 하루종일 오토바이들의 질주로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거리에 넘쳐나는 오토바이의 행렬
오토바이가 일상생활과 밀접하다 보니 이를 위한 카페와 식당이 많다. 큰 식당에 승용차 주차장은 없어도 오토바이 주차장은 필수. 고급 아파트에도 오토바이를 위한 주차장이 별도로 있고, 대형 수퍼마켓 역시 마찬가지다. 우연찮게 들른 이마트에도 주차장 대부분을 오토바이가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나 오토바이 주차를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필수적으로 헬멧을 쓰고 다닌다. 함께 탑승한 동승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워낙 많은 오토바이에 여럿이 함께 타고 다니니 위험한 광경도 흔히 볼 수 있다. 오토바이를 자가용으로 사용하는 경우 동승한 어린 아이가 떨어지지 않게 운전자와 끈으로 연결하거나, 발판에 의자를 놓아 아이가 앉아서 갈 수 있도록 하는 등 나름대로의 지혜를 발휘한 흔적도 엿보인다. 운전 솜씨도 보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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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의 교통체증은 어딜가나 비슷하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엉켜 항상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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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자전거가 대세였으나 이젠 오토바이에 밀려 보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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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 영업이 합법이다. 우버와 그랩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거리에는 일본차와 함께 한국의 현대·기아차가 많이 보인다. 한국차의 경우 현대 i20과 기아 모닝이 대표적이다. 베트남 소비자들의 소득수준이 낮다 보니 중대형차보다는 소형차가 더 많이 팔린다고. 베트남의 1인당 GDP는 2,200달러(2016년 기준). 자동차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일본 기업들의 진출이 대단히 활발하다. 그동안 중국 일부 지역에서 조용히 장사를 하던 이온(AEON) 마트는 베트남 전역에 뿌리를 내리고 의욕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많은 일본 기업들이 2011년 센카쿠(다오위다오) 사태 이후 중국에서 철수했다. 반일 감정이 상존하는 중국에서 계속 영업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던 차에, 센카쿠 사태가 기폭제가 되었다. 한국 기업 역시 지난해 사드 문제로 홍역을 앓은 후 중국을 벗어나 베트남으로 옮겨오는 상황이다. 어쩌면 일본과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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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차가 무척 많다. 기아모닝과 현대 i20가 택시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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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한때 일본의 지배를 받았지만 반일감정이 없다. 일본업체가 건설 중인 호치민 지하철 공사장이다


베트남은 어느 나라보다 처절한 투쟁의 역사를 지녔다. B.C 111년부터 약 1,000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아 지금도 중국 문화의 잔재가 뿌리 깊이 남아 있다. 이후 1886년부터 1940년까지 50년 넘게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은 데 이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이 쳐들어왔으며, 종전 후에는 다시 프랑스와 다툼을 벌인다. 격전 끝에 1954년 독립을 쟁취하지만 이번에는 국토가 남북으로 갈렸다. 그 와중에 남베트남을 지원하는 미국과 다시 한번 처절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중국에 지배당했다고 하지 않고 ‘우리는 천 년 동안 싸워서 중국을 물리쳤다’고 말한다. 이런 말은 프랑스와의 전쟁은 물론 세계 제일의 군사력을 지닌 미국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호치민 인근에 있는 구찌 터널(Cuchi tunnel)을 둘러보면 베트남 사람들의 끈질긴 정신력과 투쟁 정신을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월남전 당시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다. B-52 폭격기를 동원한 융단 폭격은 지금 보아도 경이로울 정도. 당시 B-52가 뜨면 그 지역은 완전히 초토될 정도의 가공할 화력이어서 한 번 훑고 지나가면 한동안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그런 미국의 공격을 버텨내고 베트남을 통일한 월맹(북베트남)의 힘은 주민들과의 밀착협력이었다. 미군은 베트콩(북베트남 군)과 주민들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밀림 속에 만들어진 터널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신출귀몰 전략의 일환이었다. 갑자기 나타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고 사라지는 베트콩을 미군들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이런 게릴라 전술에는 터널이 큰 역할을 했다. 엄청난 전력의 열세를 이러한 기상천외한 전술로 이겨낸 것이다. 터널의 총 길이가 자그마치 250km에 이르고 미군 사령부 밑까지 뚫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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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널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아 기어서 다녀야 한다

투쟁의 역사가 숨쉬는 구찌 터널
터널의 지하 1층은 지휘부가 있고 지하 2층은 거주시설, 지하 3층은 강으로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로 연결되는 구조다. 취사를 위해 몇 단계에 거쳐 연기를 배출할 수 있도록 하고 수술이 가능한 야전병원까지 갖추었다니 완벽한 군사 기지가 아닐 수 없다. 기가 막힌 것은 250km에 이르는 터널 전부를 호미 같은 손도구로 파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터널의 입구는 몸이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비좁았다. 터널 안 역시 몸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규모다. 덩치 큰 미군은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밀폐된 공간에 갇힌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온다. 이런 곳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높이 때문에 대단히 불편한 자세로 기어다닐 수밖에 없는데, 터널 체험 삼아 그렇게 100 미터 가까이 이동했더니 통증 때문에 3일 동안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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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은 몸 하나 겨울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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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들어갈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터널 입구가 작다


구찌 터널 주변에는 부비트랩과 바닥에 죽창이 설치된 함정 등이 보인다. 많은 미군들이 이런 단순한 무기들에 말려들어 처참하게 죽어갔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죽음보다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었다.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대한민국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대한민국 군대가 최초로 해외에 참전한 전쟁이었다.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1965년부터 비둘기 부대를 필두로 청룡(해병대)과 맹호, 백마부대가 1973년까지 투입되었다. 총 32만 명이 참가해 5,099명이 전사했고 11,23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번영과 군 장비의 현대화를 이루는 계기를 마련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당시 전투 지원부분에 참여했던 한국의 건설 및 운송 업체들은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는 일본이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의 물자 수송과 정비 등을 통해 패전의 아픔을 딛고 경제를 재건하게 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요즘 일본이 북한을 부추겨 한반도에서 전쟁을 다시 일으키려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맹위를 떨치던 맹호부대와 귀신 잡는 해병으로 유명한 청룡부대는 베트콩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한국군은 전투도 잘하지만 베트콩들에게 무척 잔인했던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렇지만 베트남에는 반한 감정도, 반미 감정도 없다. 아마도 미국과도 싸워 이겼다는 자부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지구상에서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한 나라 중에서 베트남만이 유일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사랑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특별하다. 한국 드라마와 K팝에 푹 빠져 있고, 한국 상품에 대한 인기가 대단히 높다. 중국에서 큰 시련을 겪고 있는 롯데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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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하고 활기찬 베트남의 학생들, 이들은 전쟁의 참화를 모르는 신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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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의 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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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에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았다

중국과 프랑스의 많은 영향 받아
호치민 시의 명칭은 원래 사이공이었다. 동나이 강 삼각주에 형성된 사이공의 역사는 1698년부터 시작되었으니, 300살이 넘는다. 4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사이공은 남베트남의 수도였다. 호치민이 이끌던 북베트남은 30년이 넘는 치열한 내전 끝에 1975년 남베트남의 수도인 사이공을 점령한다. 북 베트남이 통일을 이룬 것은 국민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호치민이라는 영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호치민은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몸을 바친 인물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호 아저씨’란 애칭으로 불리기를 좋아했던 호치민은 청렴한 삶에 있어서도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그가 남긴 유산이라고는 옷 몇 벌과 낡은 구두가 전부였다. 자신이 죽으면 화장을 한 후 북부, 중부, 남부의 세 지역에 골고루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긴 호치민은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 통일을 보지 못하고 1969년 생을 마쳤다. 베트남 정부는 1976년 통일을 이룩한 후 사이공 시를 현재의 호치민 시로 바꾸어 베트남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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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은 베트남인들의 영웅이다. 사이공 시를 호치민 시로 변경한 것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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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시 전경, 베트남의 영웅인 호치민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사이공을 호치민시로 개명했다


호치민 시민들은 만약 월맹이 아니고 베트남으로 통일을 이루었으면 지금쯤 대한민국보다 잘 사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베트남 전쟁 직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그들보다 훨씬 낮았다. 베트남이 통일 후 사회주의의 길을 걸으며 퇴보하는 동안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며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거듭났다.


호치민에 오토바이가 많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카페였다. 특히 노상카페는 베트남만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다. 프랑스 식민지배의 영향 탓도 있지만 베트남인들의 커피 사랑은 유난하다. 한국으로 수입되는 커피의 원산지를 보면 베트남인 경우가 의외로 많은데, 실제 베트남의 커피 생산량은 브라질과 쌍벽을 이룬다. 그래서인지 호치민 거리에는 유럽풍의 근사한 카페들이 많다. 재미있는 것은 카페마다 오토바이 주차장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노상 카페도 저마다 개성이 넘친다. 길에다 목욕의자를 쫙 깔아 놓고 커피와 음료를 준비하면 바로 노상 카페가 된다. 길을 걷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바로 이용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편하고 좋은 카페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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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은 카페문화가 발달해 있다. 베트남의 커피 생산량이 브라질을 추월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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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에서 제일 크다는 벤탐시장, 20여 년 전의 중국과 비슷한 모습이다

 

베트남에도 베트남 글자가 있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이 그들의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영어에 조합해서 만들어준 것이다. 프랑스가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은 유럽식 빵 문화다. 베트남인들은 조식으로 전통적인 반꿍과 함께 프랑스식 빵을 먹는다. 반꿍은 중국 광동의 창펀과 비슷한 음식이다. 창펀은 밀가루 반죽을, 반꿍은 쌀로 만든다는 점이 다르다. 베트남은 세계 최대의 쌀 생산국가다. 넓은 농토와 메콩 강의 풍부한 수량, 그리고 온화한 기후 덕분에 3모작이 가능하다. 그래서 쌀을 이용한 식품들이 많다. 우리도 즐겨먹는 쌀과자와 쌀국수가 대표이다. 또한 열대과일의 천국이기도 하다. 남북 해안의 길이가 3,444km에 이르는 긴 지형에서 다양한 과일이 생산된다.


호치민 시내를 돌다 보면 많은 유럽풍의 건축물을 만나게 된다. 이런 건물들은 대부분 100여 년 전 프랑스인들에 의해 지어졌다. 웅장한 건물들은 지금도 베트남 정부의 관공서로 쓰이고 있다. 호치민에 들르면 꼭 가봐야 한다는 유럽풍의 우체국 건물은 엄청난 크기에 놀라게 된다. 지금이야 우체국의 기능이 점차 줄어든다지만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는 베트남 전역으로 배달되는 우편물을 처리해야 했으니 이렇듯 큰 규모로 지어진 것이 짐작이 간다. 우체국 옆에 우뚝 서 있는 노트르담 성당은 대대적인 수리 중이었다. 베트남에는 가톨릭 신자가 9%나 된다. 그러나 국민 대부분은 독실한 불교신자로, 그 비율이 80%가 넘는다고 한다. 2015년 베트남을 방문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호치민의 절을 찾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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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앞에서 기념품을 파는 상인, 종이로 만든 단순한 제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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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성당은 대대적으로 보수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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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바바 대통령이 재임시절 방문했던 호치민의 절. 베트남은 불교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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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부동산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부자들을 위한 주택도 계속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오랜 기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던 흔적인지 베트남인들은 미신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춘절과 중추절을 중요한 명절로 여기며 중추절에는 중국인들처럼 월병을 먹는다. 그렇지만 중국과의 사이는 좋지 않다. 요즘 남중국해를 완전히 장악하려는 중국의 야욕은 여러 나라와 영해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필리핀은 물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베트남까지도 중국과 영해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이런 영해 분쟁으로 요즘 베트남에서는 반중국 정서가 강하다. 2012년에는 중국회사 공장들이 폐허가 되고, 3명의 중국인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중국 공장들의 베트남 진출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인건비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을 잃고 있는 중국의 공장들이 북부 하노이 주위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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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인들도 미신에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무사고를 빌기위해 부적처럼 꽃을 차에 달고 다닌다



높은 발전 가능성 품고 있는 베트남
호치민을  방문한 것은 한국 거래처인 (주)올림피아 대표이사 김진웅 사장의 초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기념품을 제조해서 수출하는 올림피아는 이 분야 한국 기업 중 유일하게 남아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바이어들이 기념품 업계의 삼성이라고 부른다. 공장을 둘러보니 직공들이 모두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 일사분란하게 일하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중국 공장에서는 이미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사출이나 수작업을 많이 해야 하는 3D 업종에서는 나이 지긋한 노인들만이 공장을 지키고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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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 직원들, 한국인, 베트남인, 그리고 필리핀 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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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은 저렴한 인건비와 근면한 젊은 노동자들로 인해 경제 발전 가능성이 어느나라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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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젊은 노동력이 넘쳐난다. 어느 공장에 가든 젊은이들이 가득하다


베트남은 오랜 내전을 겪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안정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체 인구 중 가장 많은 연령대가 1958년생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정국이 안정되면 자연적으로 베이비 붐 세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베트남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현재 베트남의 인구는 9,500만 명. 1980년 이후에 출생한 인구가 반 이상을 차지한다. 노동력이 넘쳐 나는 이유다. 베트남의 국민성은 유교 사상이 몸에 배어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족들 간의 우애를 중요시한다.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알고 교육열도 높다. 게다가 근면까지 하다. 동남아시아의 강자가 될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셈이다.

 

올림피아의 현지 공장에는 한국인의 후예가 있었다. 김 사장을 현지에서 도와주고 있는 단홍의 아버지는 한국인이다. 당시 사이공의 조선소에서 일을 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삼남매를 남겨 두고 훌쩍 한국으로 떠난 후 연락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어린 시절 많은 고생을 했다. 베트남에는 수천 명의 ‘라이 따이한’(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존재한다. 자신들의 피가 섞인 베트남인들을 모두 본국으로 데리고 간 미국과 달리, 우리 정부는 그들에게 무심했다. 그래서 단홍도 한동안 난 왜 한국인 아버지를 만나 이런 고생을 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엿한 중년 사업가로 성장해서 남부럽지 않을 생활을 하고 있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몇 번이나 대한민국을 방문했지만 끝내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고.


남부에 속한 호치민과 북부의 하노이는 경쟁 관계다. 하노이가 베트남의 수도이면서 중공업이 발달한 반면 호치민은 경공업이 발달했다. 그렇지만 개방 이후 많은 외국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호치민으로 몰려오고 있다. 호치민과 하노이의 거리는 2,300km나 된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고속도로가 없다는 것이 큰 취약점이다. 베트남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고속도로부터 뚫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은 베트남 최고의 투자 국가다. 그동안 중국에서 실패한 것을 베트남에서 회복하려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일본도 비슷한 과정을 먼저 거쳤고, 타이완도 이에 가세했다. 그런 면에서 베트남은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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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은 한창 발전 중이다. 아직도 포장이 안 된 도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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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의 이마트, 베트남에서 성공신화를 이루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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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정상회의가 11월 10일부터 다낭에서 열렸다. APEC을 알리는 입간판들이 곳곳에 설치 되어 있다

동남아시아 최강자 자리 멀지 않아
호치민에서 가장 높은 68층의 비텍스코(BITEXCO) 빌딩에 오르니 산 하나 보이지 않는 대평원이 펼쳐진다. 베트남 북부는 산악지역, 남부는 평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호치민은 남부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호치민에서 가장 크다는 벤탐시장을 찾았으나, 생각보다 규모가 적다. 게다가 팔리는 상품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아직까지 베트남의 제조업 구조가 임가공 형태이다 보니 제품다운 제품이 없는 탓이다. 그러나 지금의 발전 속도로 보면 베트남 제품들이 중국제품을 대체하게 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1억에 가까운 인구와 근면성을 무기로 동남아시아의 최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베트남. 그 중심에 호치민이 있다.

글·사진 양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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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에서 제일 높은 68층의 Bitexco 빌딩. 새로운 건물들이 계속 건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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