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의 보고,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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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의 보고
진도

 

햇살 가득한 날의 진도 여행은 진도개와의 만남으로 서막을 연다. 진도의 관문 역할을 하던 벽파진에는 군민의 성금을 모아 1956년 세워진 ‘이충무공 전첩비’가 세워져 이순신 장군의 충절을 기리고, 거센 조수가 만들어내는

울돌목의 아스라한 물살소리는 거대한 해전의 치열한 현장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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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내닫는 겨울의 발자국이 진도에는 채 닿지 않았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햇빛을 받아 단풍잎은 그 아름다움을 더 간직하려는 듯 가지 끝에서 빛나기도 하고, 더러는 찬란했던 생을 마치고 땅에 떨어져 바람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잎을 잃은 감나무가 홍시를 가득 달고 커다란 꽃나무처럼 서 있는 풍경이 정겹다.


햇살이 가득한 날의 여행은 진도의 이름을 더욱 더 빛나게 한 진도개와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다. 1962년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된 진도개(진도에 있는 모든 종류의 개를 뜻하는 것은 진돗개라고 한다)는 천성이 영리하고 용맹스러워 예부터 사랑을 받았다. 이들이 진도에 서식하게 된 유래는 1270년 삼별초의 항쟁이 일어났을 때 몽골에서 제주도 목장의 군용 말을 지키기 위해 들여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진돗개의 진도개
이른 아침부터 공연을 보려는 이들로 북적이는 진돗개 테마파크에서 도해(다도해의 이름을 차용했다고 함)와 민국, 다영이가 각기 다른 주제로 재주를 뽐낸다. 도해는 ‘환영합니다’라는 펼침막으로 관중들과 인사를 나눈 후 냉장고의 문을 열어 물을 꺼내고, 훈련사가 불러주는 숫자를 똑같이 짖어 영리함을 과시한다. 하지만 가끔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 등 무언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에 대해 훈련사는 “사실 난처한 상황이다. 진도개는 호기심이 많고 예민해서 반응이 빠르게 나타난다”며 “평소보다 일찍 시작한데다 사람들이 지정된 자리에 앉지 않아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고 멋쩍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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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개 테마파크의 조형물


베테랑 민국이는 복종 훈련과 총에 맞은 연기를 능청스럽게 해내고, 애국가에 맞춰 국기 게양도 척척 해낸다. 다영이는 고난도 장애물을 매끄럽게 소화한다. 이처럼 진도개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과정까지는 3~6개월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평일에는 오전 10시와 오후 3시(평일 공연장), 그리고 주말에는 오후 1시에 주말 공연장에서 공연이 있고, 1시 30분에는 진도개의 경주를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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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개 공연장에서 훈련사와 민국이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3층 건물의 홍보관 1층은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견종을 안내하는 세계지도가 펼쳐져 이해를 돕고, 국내의 진도개를 포함한 삽살개와 풍산개, 그리고 동경이의 모형으로 친근감을 준다. 2층은 진도개의 시각과 후각·청각·속력·충성심·사냥방법 등을, 3층은 역대 진도개 챔피언과 우수 진도개 선발대회 입상견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다. 보다 다양한 정보를 얻으려면www.jindo.go.kr 를 참고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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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돗개와 진도개의 차이를 알아볼 수 있는 진돗개박물관


빠르게 과거로 돌아가는 시계바늘 끝으로 추수를 끝낸 들과 초록의 숨을 틔워 파릇한 대파밭, 출하를 준비하는 배추밭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명량해협의 길목이자 오랫동안 진도의 관문 역할을 하던 벽파진에는 ‘이충무공 전첩비’가 우뚝 서 있다. 진도군민의 성금을 모아 1956년 세워진 이 비는 독특한 구조 때문에 “어, 이게 뭐지?”라며 한참을 둘러보게 된다. 우선 거북기단은 자연 그대로 바위산을 깎고 모양을 만들어 언덕과 일체감을 주었고, 물을 살짝 고이게 만들었다. 바다를 그리워하는 거북은 매일 망망대해를 헤쳐 가는 꿈을 꾸고 있을지도, 아니 휘영청 밝은 달밤에는 실컷 바다에서 노닐다가 동이 트기 전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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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파진에 세워진 이충무공 전첩비


‘벽파진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빛나고 우뚝한 공을 세우신 곳이 여기이더니라’로 시작되는 비문은 노산 이은상 선생이 짓고, 소전 손재형 선생이 글씨를 썼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한문 혼용체를 쓴 이 비문은 총 888자의 글자 형태가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도 어디쯤 하나 같은 글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한참을 뚫어지게 보다 결국 그 정성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늘가의 햇발이 바다를 쏘아 비치고
구름 가 저 멀리 섬들 푸르게 옹기종기 있구나
서쪽 바람 부는 소리 밤들어 몰아치니
성난 물결 벽파정을 뒤집듯 때리네

충무공 전첩비 아래에는 조선중기의 문장가 장유가 읊었던 벽파정이 있다. 오랜 세월 흔적 없었다가 지난해 5월에 다시 세워진 정자에 올라서면 편액의 시들이 때로는 웅혼한 기상으로, 한편으로는 안빈낙도의 허허로운 여유로움으로 마중을 나온다.

삼별초의 흔적이 있는 용장산성과 남도진성
시계 바늘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용장산성에 이른다. 몽고군에 항복한 고려정부군에 반기를 든 삼별초의 기지가 있던 곳으로, 모두 불에 타고 행궁의 터와 석축만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전할 뿐이다. 지금도 당시의 기와 등이 출토되고 있어 규모를 짐작할 수는 있지만 아직도 복원계획이 잡히지 않았다. 용장사 극락전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좌상이 당시를 회고하는 듯하고, 전시관은 삼별초와 용장산성에 관한 모형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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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가 항전을 벌였던 용장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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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산성 터가 세월의 무상함을 알린다

 

붉은 꽃망울을 터트린 동백 곁에는 일손을 멈춘 아낙들이 삼삼오오 모여 각자 싸가지고 온 밥과 찬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있다. 배추 잎사귀에 밥 한 덩이를 듬뿍 얹고 된장으로 간을 한 후 투박하고 주름진 손으로 건네준, 정 가득한 쌈을 받으니 고소하고 달콤한 향내가 입안에서 진동한다. 바람은 간지러웠고 햇살은 어머니처럼 포근했다. 동백은 겨울을 지나 4월까지 피고 지고 또 다시 피고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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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은 4월까지 피고 지고 또 필 것이다


총길이 610m의 남도진성(南桃鎭城)은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진도를 떠나 제주도로 향하기 직전까지 마지막 항전을 벌였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수군과 그 지휘관인 종4품 만호를 배치하고 현재와 같은 형태로 축성했다. 동문 앞의 노랗게 열매를 맺은 멀구슬 나무를 지나 성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의 발길에서 벗어난 풀과 나무들이 제멋대로 하늘과 땅을 향해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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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열매로 가득한 멀구슬 나무


성의 이름에 들어 있는 ‘桃’는 복숭아를 뜻하는데, 이는 성 앞산에서 보았을 때 복숭아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때 성내에서는 65호 정도가 살기도 했지만 3년 전에 마지막 집이 떠난 뒤,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아름다운 옛 돌담길도 모두 허물어져 쓸쓸하고 휑한 모습이다. 남문 앞 자연석으로 만든 1.5m의 홍교(무지개다리)는 나무를 쌓은 후 중심이 되는 돌과 주변의 돌들을 황토로 채운 후 불을 질러 굳힌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조금 더 아래 쌍홍교 너머로 남문의 성루가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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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진성은 앞쪽 산에서 보았을 때 복숭아 모양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망항은 출항하려는 배와 이제 고단한 몸을 누이기 위해 들어오는 어선들로 분주하다. 한창 꽃게가 나는 철이어서 출항을 준비하는 배는 연료를 가득 채우고 선원들이 바다에서 생활할 동안의 양식을 싣느라 생기가 넘친다. 진도군 소득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시사철 만선의 풍어가 보장되는 넉넉한 어장이다. 한 번 출항하면 돌아오기까지 대개 7~10일 정도 걸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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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망항은 진도에서 가장 큰 항구다


반면 바로 옆 팽목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의 무게로 짓누른다. 세월호 사고가 있기 전만해도 지극히 평범한 항구였지만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방파제를 캔버스삼아 배에 갇힌 이들이 무사하기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그림과 글귀들이 마냥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긴 여행 끝내고 이제는 돌아오렴” 등등. 하늘나라 우체통이 있는 방파제 끝 등대까지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마음속에 되새기게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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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팽목항

판옥선과 돛대에서 모티브를 얻은 녹진전망대
금치산 전망대에서 세방낙조 전망대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될 만큼 빼어난 곳이다. 해가 넘어가고 수평선의 바닷물이 너울지는 그곳에 하순영 시인의 세방낙조 시비가 있다.

나는 알았네
셋방리에 와서
섬과 섬이
저문 하늘을 내려받아
바다의 무릎에 눕히는 순간
천지는 홀연히 풍경이 되고
홍주빛 장엄한 침묵이 되고
어디선가 울려오는 아라리가락
일렁이며 잠가드는 섬의 그림자
때로는 꿈도 꽃이 되는가
저 불빛에 붉게 젖어
한 생애 황홀한 발자국을 찍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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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세방리의 낙조

어떻게 이보다 더 세방리의 낙조를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기다림은 유한하고 만남은 찰나였다. 섬과 섬 사이로 점점 기울어가다 마침내 바다와 깊은 입맞춤을 하면 진도의 밤이 스르르 열린다. 이처럼 새방낙조가 아름다운 것은 계절에 따라서 해가 지는 위치가 달라지고, 소품처럼 늘어선 섬들이 그 아름다움에 덧칠을 하기 때문이다.


진도타워 전망대는 진도와 해남을 연결하는 진도대교와 울돌목, 그리고 주변의 섬들을 내려다보던 녹진 전망대가 있던 자리에 3년 전 들어섰다. 7층의 전망대는 진도군의 7개 읍면을 상징하는데 조선시대의 판옥선을 모티브로 돛대를 올렸고, 주변에는 명랑대첩 당시 13척의 배를 조형물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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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타워 전망대는 판옥선과 돛대를 모티브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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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와 내륙을 잇는 진도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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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를 안내해준 이평기 씨


2층에는 진도역사관과 옛날사진관, 명랑대첩 승전관 등 전시 시설들이 마련돼 있고, 3층부터 6층까지는 관광객을 위한 편이시설들이다. 꼭대기 층인 전망대는 날씨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는데, 진도대교의 멋진 모습과 다도해의 경관, 그리고 다리 너머 해남의 산과 들까지도 조망할 수 있다. 거센 조수가 만들어내는 울돌목의 아스라한 물살소리는 이곳에서 치러진 거대한 해전의 치열한 현장을 떠올리게 한다.


운림산방, 조도, 관매도 등등이 발길을 잡는 진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진도아리랑의 구성진 가락이 귓가에 울리는 가운데 못내 두고 온 님처럼 아쉬움에 아쉬움에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음이 그저 먹먹할 뿐이다.  ​

 

글, 사진 김태종(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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