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보석과도 같은, 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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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보석과도 같은
고창

 

고창갯벌은 2010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어 국제 협약에 따라 보호를 받는 보석 같은 곳이다. 계단식 논농사를 지었던 운곡습지는 경작을 멈춘 후 저층산지의 원형으로 복원되고 있고, 천연기념물과 법정 보호종을 비롯해 549종의 동식물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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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행작가협회에서 진행하는 고창 팸 투어 당일. 정확하게 새벽 다섯 시에 울린 알람에 따라 기계적으로 일어나 순조로운 출발을 자신했다. 하지만 얼마 전 손에 넣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가 일으킨 혼란의 대가는 컸다. 제법 집에서 멀어졌을 즈음 두고 온 것을 알았고, 이를 다시 손에 쥐었을 때는 출발시간에 가까스로 닿을 만큼 촉박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걸음은 빨라져 어느새 턱밑까지 숨이 차올랐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출발장소까지 실어다줄 전동열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아 ‘지각’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잠시 후 실낱 같은 희망이 보였다. 마침 급행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서 어쩌면 제시간에 닿을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제법 평온해지자 이제야 검은 새벽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는 자동차 브레이크등으로 불이 붙은 것 같았고, 강물에 비쳐서 너울대는 모습이 장관이다. 검은 커튼 자락이 서서히 올리어지듯 어둠이 물러나자 경부고속도로는 각자의 사연을 싣고 떠나는 차들로 빼곡하다. 이제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라만차의 기사처럼 어둠을 향해 과감하게 속도를 높였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걸까?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 예요”라는 노랫말이 가인 송창식의 목소리로 애잔하게 귓전을 맴돈다. 아마도 꽤나 가까워진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서울 광화문을 떠난 버스는 3시간을 넘게 달려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사IC를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초겨울의 날씨를 한껏 들이키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찾았던 선운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선다. 단풍이 절정을 지났다고는 해도 햇빛을 받아 빨갛고 노랗게 늙어 가고, 구경을 나온 이들은 시간과 빛이 만들어내는 그 단아한 아름다움에 취한다. 걸음은 더딜 수밖에. 그리고 은행나무가 내어주는 여유를 받아들인 상점들이 손님을 맞을 채비를 서두르는 것을 느긋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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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의 단풍은 절정이 지났음에도 아름다웠다


사실 선운사만큼 잘 알려진 곳도 드물다. 봄철의 동백에 이어 가을 선운사의 꽃무릇도 영광의 불갑사와 함평의 용천사 일대가 3대 군락으로 이름을 올린 지 오래다. 이 때문에서 선운사는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 등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사하촌은 꾸준하게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경내까지는 지척이지만 걸음은 더뎌진다. 빛과 교감해 수시로 색을 바꾸는 단풍의 아름다움을 허투루 지나치는 건 고욕이다. 도솔천의 검은 물에 비치는 단풍 또한 일품이다. 물이 검게 보이는 것은 참나무와 동백나무 잎이 썩어서 우러난 탄닌 성분이 함유됐기 때문이다.


천왕문을 지나 맞는 대웅전 안뜰은 배롱나무가 꽃과 잎을 잃어버린 스산한 모습으로 다가선다. 백일 동안 꽃이 핀다고 해서 ‘백일홍’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꽃말이 ‘부귀’라니 저렇게 다 비워야 채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눈이 한 번 더 간다. 대웅전 뒤편의 동백숲은 진한 초록으로 빼곡한데 꽃 봉우리가 터트릴 채비를 하고 있다.


선운사의 동백은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라는 시를 통해 유명하다. 입구에도 시비가 세워져 있다. 이 시를 쓴 배경은 주막집 주모와의 관계 등 여러 얘기들이 돌고 있지만 디지털고창문화대전은 ‘미당이 선운사 동구에 있던 막걸리집을 옛날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찾았지만 그 흔적을 알 수 없어 아쉬움을 토로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고 건조하게 적고 있을 뿐이다. 미당이 이렇게 선운사의 동백을 노래하자 시인 김용택과 최영미도 각각 ‘선운사 동백꽃’과 ‘선운사’를 통해 사랑 때문에 울지 말자고 다짐을 하면서도 울고, 사랑을 못 잊어 하는 내용으로 거들고 있다.

선운사 동구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여 남았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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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사 경내의 감나무

람사르 고창갯벌은 보석과도 같은 곳이다. 부안면·심원면 일원의 이 갯벌은 2007년 고창갯벌 습지보호 지역으로 지정된 후 2010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따라서 습지보호를 위해 제정된 국제 협약인 ‘람사르 협약’에 따라 보호를 받는다.


지난해 람사르 갯벌센터가 들어서고 올해부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방문하는 이들과 고창주민들의 해양보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다양하면서도 체계적인 교육과 관찰활동을 통해 자연과 소통하는 곳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프로그램은 무료지만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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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람사르 갯벌센터

1층 전시실은 갯벌의 상태, 서식 생물과 갯벌의 정화작용 등을 전시하고 있고, 갯벌에서 취득한 다양한 형태의 생물로 교구를 마련해 이해를 높인다. 2층에서는 월별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움직이는 갯벌’, ‘바지락이 꿈틀꿈틀’, ‘바다쓰레기를 부탁해’ 등등 갯벌교육이 이뤄진다. 마을 주민들이 교육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데 피드백을 통해 수준을 업그레이드한다는 것. ‘갯벌인형극’과 ‘갯벌댄스’ 등을 보고 참여하면 흥이 저절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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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벌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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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인형극이나 갯벌댄스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인형극을 진행한 갯벌상태 안내인 최선하 씨는 센터가 문을 열 때 지원해 교육을 받은 후 활동하게 됐다면서 “아이들에게 읽어주던 동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주니 다를 재미있어 한다”고 기뻐했다. 이어 그는 “프로그램에 참가한 아이들이 갯벌의 소중함을 표현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만돌갯벌체험학습장은 트랙터를 활용해 갯벌의 끝까지 들어갈 수 있다. 지주식 김 양식장과 썰물이 빠져나가는 길목에 설치해두는 정치망 그물에서는 각종 어류들을 만날 수 있다. 조개류를 캐서 가져가거나 만돌 마을 비닐하우스에서 바로 맛볼 수도 있다. 김 양식장은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일손을 바쁘게 움직이면 최상의 품질을 얻는다고 한다. 어느덧 석양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이 마음을 곱게 어루만지며, 황혼이 내려앉자 시간의 흐름이 걸음을 늦춘 듯 고요함으로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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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벌에 들어가 지주식 김양식장, 정치망 그물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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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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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 체험용 트렉터

 

한적한 시골마을의 ‘선운도원’에서는 고추장을 만들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놨다. 여행작가로 활동하던 김수남 씨가 귀촌해서 운영하는 곳으로 조청과 고추가루, 메주가루, 소금물로 간단하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참가한 이들은 “고추장을 직접 만드는 것이 힘들 것이라는 막연함이 있었는데 쉽고 재밌었다”며 “집으로 돌아가 혼자서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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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장어가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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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어렵지 않았던 고추장 만들기 체험


이튿날 찾은 고창국화축제장은 기대보다는 실망이 컸다. 알찬 구성과 화려함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전남 영암의 국화축제를 벤치마킹이라도 해야 할 듯 보여주는 것도 없고 감흥을 불러일으킬 만한 주제도 없다. 하지만 꽃은 피었으니 그 향기에 벌들이 찾아들어 얼마 가지 않아 실망은 곧 감탄으로 바뀐다. 사람의 손길을 최대한 절제한 국화밭은 자연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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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국화축제는 기대에 못미쳤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면 세계문화유산 고인돌 유적지와 닿아 있고 길은 운곡람사르습지로 이어진다. 안내를 맡은 운곡습지생태관광협의회 김동식 회장은 고창의 유래와 역사는 물론 고인돌에 대해 쉽고 자세하게 설명을 곁들인다. 김 회장에 따르면 고인돌은 고창읍과 아산면에 분포되어 있는데 4자리 숫자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즉 2로 시작하면 고창읍에 있고 그 다음 숫자는 구역을, 그리고 뒤의 두 숫자는 개수를 의미한다는 것. 그러다보니 고인돌이 단순한 돌덩어리가 아닌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가선다. 그리고 우리의 DNA에 먼지처럼 그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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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문화유산 고인돌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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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박물관의 선사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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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 최대 고인돌. 무게가 300톤이나 된다

 

산등성이로 올라서면 2011년 람사르 운곡습지의 초입이다. 람사르 협약은 희귀하고 독특한 습지 유형을 보이고 있거나 생물다양성이 풍부해 보존가치가 높은, 국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지정하고 있다. 계단식 논농사를 지었던 이곳은 경작을 멈춘 후 저층산지의 원형으로 복원되고 있어 활용가치가 높다고 한다. 수달과 삵, 말동가리, 붉은배새매, 황조롱이 등 천연기념물과 법정 보호종을 비롯해 549종의 동식물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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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 습지 탐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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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문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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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수사의 단풍


탐방로는 습지보호를 위해 딱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만 만들었다. 초겨울 낙엽들의 군무를 만끽하다 어느 순간 쏟아지기 시작되니 비가 내리는 착각이 들 정도다. 하루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시간이라는 소프트한 포장지에 쌓여 의식의 서랍 속 향주머니와 함께 고이 담겨 있는 듯 낙엽 밟는 소리다. 풍경도 입체적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꽤 선명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결국은 대단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한낱 추억으로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원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네 인생이 그러한 것처럼…….
돌아서는 길, 고창읍성, 무장읍성 등 고창에 남겨 둔 보물들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고창 여행의 TIP
고창읍성 팜팜스테이션 ‘들하담’
고창은 하루 이틀에 결코 속살을 내어주지 않는다. 산과 바다와 농촌, 여기에 다양한 눈부심으로 다가오는 문화유산까지. 그렇다면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팜팜스테이션은 여행객들의 이런 고민을 말끔하게 씻어준다. 고창군의 농촌관광 우수 사업농가 브랜드 ‘팜팜’이 운영하는 방문자센터다.
농촌관광의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데다 자전거 대여나 짐 보관 서비스는 물론 팜팜 농가들의 믿을 수 있는 로컬푸드를 만날 수도 있다. 팜팜스테이션 들하담(들과 하늘을 담고 있다)은 고창 유일의 게스트 하우스다.
문의 063-563-8808

 

글, 사진 김태종(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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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돌마을의 아름다운 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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