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2017-08-02  |   41,615 읽음



역사와 문화의 숨결과 함께 하는
경 주

짙은 안개를 뚫고 종소리가 은은하게 산사에 울려 퍼지는데 그 기운이 마치 파도가 너울대는 것 같다. 석굴암으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는 낭떠러지가 이어지고 안개비가 옷깃을 적신다. 석굴암은 문화사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지만 실제 ‘아, 이게 바로 석굴암이구나!’라는 놀라움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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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진공의 시간을 통해 더 많이 채울 수 있게 상념의 찌꺼기를 하나하나 지워나간다. 순간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자 영혼은 육체를 벗어난 듯 훨훨 날아오른다. 가야할 곳이 없고 머무를 곳이 없다보니 바람처럼 자유롭다. 그러다가 신화와 전설의 무대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의 하늘 아래에 서면 그 수많았던 사연들이 엊그제의 꿈처럼 마중을 나온다.


발을 붙이고 사는 곳과의 거리가 가깝든 아니면 천리 밖이든 경주는 허물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처럼 추억이 공유되는 곳이다. 박혁거세와 김알지, 선덕여왕, 김유신과 김춘추(훗날의 태종무열왕), 아사달과 아사녀, 불국사 등등에 얽힌 이야기들을 하나씩 불러내노라면 마치 내가 천년 세월의 주인공이 된 듯 같다.


그들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성냄과 즐거움에 빠져들었을 즈음 “다음 도착할 군위·영천 휴게소에서 15분 동안 쉬어가겠다”라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그러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눈꺼풀의 저항을 끝내 이겨낸다. 서울시청 앞에서 출발한 버스는 경부고속도로에 올라 당진-영덕 고속도로(청주-상주 구간)로 갈아탄 다음 다시 얼마 전 개통한 상주-영천 고속도로를 내달린다. 이 때문에 서울에서 경주까지 기존 노선을 이용할 때보다 30여 분 단축됐다고 한다.


영천-군위 휴게소는 지금까지 평범하게 보아왔던 휴게소의 통념을 뛰어넘는다. 근대화 시대를 상징하는 듯 ‘군위 영천 제1공장’이라는 이름표를 걸었고, 실내는 70년대 이전 시대를 테마로 꾸몄다. 휴게소 관리실에 “예전에 실제 사용했던 기계와 물건을 재활용한 것”이냐고 물어보니 휴게소의 차별성을 위해 향수를 공유할 수 있도록 새롭게 디자인한 것이란다.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휴게소의 인테리어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니, 경주 일정보다 한발 앞서 우리를 추억으로 안내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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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자극하는 군위-영천 휴게소의 실내


세계문화유산 불국사와 석굴암
정오 무렵 일행(여행 작가와 여행블로거로 구성된 팀)을 태운 버스가 경주의 한 식당에서 멈춘다. 떡갈비와 우렁 쌈장으로 구성된 메뉴는 정갈했지만 정작 손 갈 곳이 없다는 손님들의 혹평을 들었다. 곧이어 회색 하늘이 어지러워지자 바람도 따라 출렁거리며 가볍게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이제 본격적인 장마 영향권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한 편의 시를 읊게 한다.

대롱대롱 매달린 붓끝의 먹물이
하얀 종이를 제멋대로 오가며 춤을 추는 것처럼
이리저리 옮겨가며 비를 뿌려댄다
산 능선은 칠흑보다 더 검었고
뿌리를 단단히 박은 벼 위를 한가롭게 날던 백로는
날개 짓 한 번으로 제 집으로 돌아간다
고개를 떨궜다 튕기듯 풀잎이 일어나며 여름을 연주한다.

 
국내를 대표하는 관광지 경주는 학창시절에는 수학여행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추억여행으로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그렇기에 이 도시와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끝없이 회자되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첫걸음을 떼는 세계문화유산 불국사는 학생들과 연인, 그리고 가족들이 경내를 오가며 청운교와 백운교, 다보탑과 석가탑에 얽힌 사연을 담느라 여념이 없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 때의 재상 김대성이 751년 창건하기 시작해 774년에 그가 죽자 나라에서 이를 맡아 완공했다고 전해진다. 당시는 신라의 국력과 문화가 절정에 달했던 때로, 불국사는 이 시기의 대표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방화로 일부를 제외한 2,000여 칸의 건물이 불탔지만 1604년부터  중건에 들어가 1700년대에 비로소 가람의 형태를 다시 갖추었다. 그리고 1973년에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시작해 대웅전, 극락전, 자하문, 안양문 등을 중수하고 범영루, 무설전, 비로전, 관음전 등을 옛터에 복원했다. 회랑과 나머지 문들은 아예 없어진 것들을 재건하고, 석축과 계단은 큰 폭으로 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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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천왕문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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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전으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


사천왕문을 지나자 자하문과 범영루, 그리고 안양문의 고풍스럽고 멋스러운 자태에 저절로 탄성이 일어난다. 핸드폰과 카메라의 셔터가 터지고, 삼삼오오 무리들이 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곧추세운다. 경내는 석단으로 그 아래와 위의 세계를 구분하는데, 위는 부처님의 나라인 불국이고 밑은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한 현세를 뜻한다. 석단은 각각 대웅전과 극락전을 향하는 국보 제23호 청운·백운교와 국보 제22호 연화·칠보교 두 쌍의 다리를 통해 각각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의 불국세계로 이끈다. 청운·백운교의 33계단은 33천(天)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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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칠보교를 통해 오르는 안양문


범영루를 뒤로하고 대웅전을 마주하자 왼쪽에는 석가탑, 오른쪽으로 다보탑을 거느렸다.  석가탑은 잘 알려진 것처럼 석공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슬픈 전설을 품고 있어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이 탑을 ‘무영탑’이라고도 하는데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해지지만 현진건에 의해 소설화된 ‘무영탑’의 전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석가여래가 설법을 할 때 다보여래의 진신사리가 든 탑이 땅에서 솟아나 설법을 찬탄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보여래를 형상화한 다보탑은 사람들의 시선을 마냥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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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석가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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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다보탑과 석가탑의 사연을 담느라 여념이 없다​


고개를 들자 처마 끝에 안개가 걸리듯 내려앉으며 흐르고, 토함산의 정상이 보일 듯 말 듯 수줍은 미소를 보낸다. 비로전과 극락전을 둘러본 후 경내에 마련된 카페에서 차 한 잔으로 1,300여 년 전의 울림을 음미한다. 그렇게 호사를 누린 후 꼬불꼬불한 산길을 여유 있게 달린 버스가 토함산 석굴암 주차장에 일행을 내려놓는다. 짙은 안개를 뚫고 종소리가 은은하게 산사에 울려 퍼지는데, 그 기운이 마치 파도가 너울대는 것 같다. 석굴암으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는 낭떠러지가 이어지고 안개비가 옷깃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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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를 두른 토함산이 이따금씩 정상을 보여준다


석굴암은 문화사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지만 실제 ‘아, 이게 바로 석굴암이구나!’라는 놀라움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해설사의 말처럼 복원이 허술하게 이뤄져 손상이 된 데다, 내부를 관람할 수 없는 것도 감흥을 반감시키는 요인이다. 게다가 복원과정에서 나온 석재들은 아직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찬란했던 불교유산의 꽃이 제대로 피어나는 것은 언제쯤일까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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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가는 길에 드리운 짙은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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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전경

왕의 길을 걷는 축제 ‘천년 야행’
뉘엿뉘엿 해가 기울자 992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는 ‘경주, 천년야행’이라는 축제를 준비한다. 매년 7월 초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개최하는 이 행사는 신라의 군악대인 고취대의 퍼레이드에 이어 참가자들이 ‘처용가’를 낭송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빛을 망토처럼 서서히 두른 첨성대는 그윽한 달빛 아래서 낮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사람들은 밤길을 밝혀줄 등을 들고 ‘왕의 길’을 걷는다. 신라 왕경의 아름다운 야경은 물론 유적에 담긴 신라 역사와 야설 등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첨성대를 떠나 동궁과 월지(안압지), 동부사적지, 계림과 교촌마을 등으로 이어진다. 떠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면 사람들은 별에게 ‘소망등’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별무리가 떠다니는 것처럼 소망등의 물결이 첨성대와 조화를 이뤄 황홀경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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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을 두르고 천년야행을 준비하는 첨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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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궁과 월지는 옛 안압지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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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들 곁으로 다가가는 소망등


이튿날, 오다가는 멈추고 그러다 다시 다가서는 비를 벗 삼아 교촌마을을 거닐고, 각종 소품과 음료를 파는 상점의 테이블에서 한 숨을 돌리니 전날의 피로가 얼음 풀어지는 듯하다. 교촌마을에서는 향교와 교동법주, 최씨고택 등으로 발길과 시선을 잡아끈다. 특히 이곳의 별미인 교리김밥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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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씨고택


경주 여행의 필수 코스인 대릉원은 미추왕릉과 천마총, 그리고 황남대총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발굴을 마친 황남대총은 5만9,000여 점의 유물이 나왔지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천마총만 유일하게 공개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나온 천마도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대릉원 근처의 쪽샘유적발굴관은 이들의 발굴 과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분황사를 둘러보고 황룡사 터를 거닐면 세월의 덧없음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황룡사는 2만5,000여 평의 대지 위에 세워진 절로 황룡사 9층 목탑, 금동장륙상을 포함한 대사찰이었지만 고려 고종 25년인 1238년 몽골의 침입으로 불에 타 없어졌다. 지금은 그 너른 터에 주춧돌과 함께 학계의 고증을 거쳐 황룡사 9층 목탑을 재현한 역사문화관이 자리하고 있어 당시의 모습을 상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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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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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룡사의 흔적은 주춧돌로만 기억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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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룡사 9층 목탑을 재현했다

 

남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삼릉’(안내판에는 신라 제8대 아달라왕과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은 울창한 송림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학계에서는 무덤의 주인에 대한 이견이 있지만 이에 대한 고증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송림을 지키는 것은 무덤인가? 무덤을 지키는 것이 송림인가?’라던 한 소설가의 질문의 답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무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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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송림 사이에 자리잡은 삼릉


1박 2일의 빡빡한 경주여행은 시간을 넘어 문화의 향기를 어느 정도 음미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 속살을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하면 열흘 아니 그 이상으로도 부족할 것 같아서다. 그만큼 경주는 발길이 머물고 시선이 닿는 곳마다 역사와 문화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주를 뒤로 하고 떠나는 발길이 무겁고 아쉬운 이유다.     

글 사진 김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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