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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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아물어가지만 그날의 기억만은 더욱 더 또렷한
연평도

해가 뉘엿뉘엿 지는 연평도는 ‘하이라이트’를 준비한다. 바로 구리동해수욕장이다. 북한의 옹진반도를 마주하고 있는 이 해수욕장은 억겁의 시간이 만들어냈을 ‘몽돌’과 자동차가 달려도 빠지지 않을 너무도 고운 백사장의 조화가 일품이다. 여기에, “오늘의 당신을 응원 했습니다”라며 기운을 북돋워주는 석양이 어찌도 아름답고 고맙던지. 넋은 이미 반쯤 나갔고, 시간은 멈췄다. 파도도 소리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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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슬프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견뎌내고 있어요.”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경.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의 대연평도는 북한군의 포격으로 한순간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했다. 포탄이 떨어지는 곳은 군 시설과 민간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북한군의 포격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대연평도의 모습은 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중계되고, 삶의 현장이 쑥대밭이 돼 아연실색하던 연평도 주민들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새롭다. 북한의 만행은 국민들의 적개심을 불러일으켰고 다시 한번 안보의 중요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여당의 모 국회의원이 보온병을 포탄이라고 하는 해프닝에서는 미연에 이를 막지 못한 정부와 여당에 대해서도 무능함의 극치라며 날선 비판이 날아들기도 했다.

이제는 희미해진, 7년 전의 비극적 사건
이날 한국전쟁의 휴전 협정 이후 북한이 우리 영토를 직접 타격해 민간인이 사망한 최초의 사건으로 해병대원 2명이 전사했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민간인도 2명이 사망했고 3명이 중경상을 당하는 인명 피해와 각종 시설 및 가옥이 파괴됐다. 당시 국제사회는 북한을 강력하게 규탄했지만 북한은 정당한 군사적 대응이었다고 맞서 양측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기도 했다.


흐르는 세월은 서릿발처럼 각인됐던 그날의 잔상들을 조금씩 씻어냈다. 그리하여 “아득히 먼 저편에서 일어났던 사고였나?”라고 할 만큼 희미해진 2017년 5월의 어느 날, 연평도를 찾을 기회가 찾아왔다. 사실 섬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특별한 목적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쉽지 않은 일. 섬이라는 단어가 갖는 여운에 연평도라는 의미를 부여하니 1박2일의 여정을 기다리는 설렘이 조금씩 크기를 더해갔다.


연평도를 찾으려면 인천광역시의 ‘인천연안여객터미널(흔히 연안부두라고 부른다)’을 이용해야 한다. 이곳에서 대연평도(소연평도 경유)까지 운항하는 배는 ‘플라잉카페리호’로 무게가 573톤, 속도는 33노트에 이른다. 2시간이면 목적지에 닿으며, 요금은 왕복 기준으로 평일은 10만9,100원, 주말은 11만9,800원이다. 인천 시민은 50% 정도 할인혜택이 주어지며, 섬 주민들은 이보다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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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동반자였던 플라잉스카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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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스카이호의 내부. 대연평도까지 가는데 2시간이 걸린다


인천항여객터미널을 찾으려면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지하철 1호선 동인천역에서 오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인천항시설관리센터 홈페이지(http://www.icferry.or.kr)를 참조하면 된다. 매일 1회 출항하지만 늘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날그날 차이가 있으니 반드시 확인을 하는 것이 좋다. 아울러 출항 시간 10분 전까지 개찰구를 통과하지 않으면 승선을 거부당할 수도 있으니 여유를 두고 항구에 도착하도록 하자.


지정된 자리에 앉자 자대로 복귀를 하는 듯한 군인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시계는 과거로 흘러 군대라는 공간에서 멈춘다. 고단했던 훈련병 시절, 자대 배치를 받던 당시의 풍경, 전입신고, 내무생활, 훈련 등등이 주마등처럼 펼쳐지고 어느새 병장 계급장을 달고 전역신고를 하는 장면에서는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기까지 한다. ‘아~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지. 아득한 시간의 건너편에는…….’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충민사
배는 어느새 인천대교를 빠져나와 망망한 서해바다에 몸을 맡겼다. 바다는 가까운 듯 멀었고, 물결은 잔잔하게 찰랑거렸다. 이따금 어선과 상선이 스치듯 지나가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섬들을 밀어내면서 나아간다. 얼마쯤의 시간이 흘렀을까.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돌아보니 선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사이로 소연평도가 눈에 들어온다.


오가는 이들이 발길이 멈추자 배는 다시 대연평도로 항로를 틀었다. 그리고 10여 분 후 도착한 선착장의 풍경은 연안항여객터미널을 떠나면서 생각했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복과 전투화가 군인들을 대변하고 있었고, 짧게 잘라서 속살이 확연하게 드러난 두피와 ‘다. 나. 까’로 끝내는 말투 등이 묘한 이질감으로 다가오면서 느슨해졌던 내 안의 세포들을 살짝 긴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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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평도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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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평도 여객터미널. 출항시간은 그날그날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행은 시작을 알린다. 연평도는 숙박 및 편의시설이 충분하게 갖춰지지 않은 곳이어서 민박과 펜션에서 묵어야 한다. 정해진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늦은 점심으로 끼니를 해결하자 특유의 노근함이 밀려온다. 그냥 이대로 눈을 붙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1박2일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려면 서둘러야 한다는 해설사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뗀다. 그날의 흔적을 최대한 지우려고 했던 것일까? 도로는 말끔했고 곳곳에서 허름한 상태의 집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일부의 건물들도 신축을 한 듯 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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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탕이 푸짐하다


연평도에서 첫걸음을 내디딘 곳은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충민사’로 조선 중기의 명장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사당이다. 임경업 장군이 식수와 부식을 구하기 위해 가시나무를 무수히 꺾어다가 지금의 당섬(堂島) 남쪽 ‘안목’에 꽂아놓고 간조 때 이름 모를 물고기를 무수히 포획했던 것이 조기잡이의 시초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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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민사는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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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잡이 배를 그려놓은 벽화

안보교육장에서 느끼는 그 날의 참상
발길은 한걸음 더 나가 다시 그날(2010년 11월 23일)로 향한다. 포격을 맞아 폐허가 된 건물들의 사진이 담벼락에 걸렸는데 탄식이 절로 인다. 연평도 성당에도 3발이 넘는 포탄이 떨어졌는데 다행히도 이곳은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다. 성당의 주임신부는 “성모의 도움으로 신도들과 성당이 무사할 수 있었다”며 그날 이후 마리아상을 ‘기적의 성모상’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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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발의 포탄이 떨어지고도 성당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래서 기적의 성모상이라고 부른다


안보교육장은 그날의 참화를 더욱 더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포격을 맞은 세 채의 집을 당시 그대로 보존한 곁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전시실을 구성해 안보와 관련한 각종 자료와 그날의 참상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1, 2차 연평해전 당시의 북방한계선(NLL) 침범과 해전상황을 기록·전시·상영해 북한의 만행을 알리는 동시에 안보를 더욱 다잡는 계기를 제공한다. 포격을 맞아 새로 지은 집들은 옥상 난간을 철근으로 둘러 한눈에도 포격피해 주택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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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참상을 보여주는 안보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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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을 맞아 전소되었던 집을 새로 지었다


연평도에 있는 3곳의 대피소 중 가장 큰 곳이 제1대피소다. 포격을 맞은 이듬해인 2011년 7월경 세워진 이곳은 533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내부에는 응급의료 시설을 갖추고 일정기간 머물 수 있는 생활용품들이 채워져 있다. 대피소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과 함께 비행기의 격납고처럼 펼쳐진 내부공간을 마주하면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하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시설들이 사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어휴~’라는 한숨이 끝내 터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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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피소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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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호 내부에는 응급시설과 생활용품이 갖추어져 있다


조기 파시(조기를 경매하는 시장)가 시작되었다는 안목항으로 가는 길은 지루했다. 바다가 물러가 모습을 드러낸 갯벌과 해변은 그렇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고, 햇살은 따가웠다. 30여 분을 걸어서 닿은 그곳에서는 낚시를 즐기는 이들과 파도소리를 안주삼아 흥에 겨운 취객들이 섬처럼 꽈리를 틀고서 미동조차 없었다. 이곳에서는 보말을 잡는 체험도 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권하고 싶지 않다. 여행객들의 한때의 작은 즐거움이 이곳 어민들의 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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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말을 잡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자연휴양지로 각광받을 그 날을 기다리며
해가 뉘엿뉘엿 지는 연평도는 ‘하이라이트’를 준비한다. 바로 구리동해수욕장이다. 북한의 옹진반도를 마주하고 있는 이 해수욕장은 억겁의 시간이 만들어냈을 ‘몽돌’과 자동차가 달려도 빠지지 않을 너무도 고운 백사장의 조화가 일품이다. 여기에 ‘오늘의 당신을 응원했습니다’라며 기운을 북돋워주는 석양이 어찌도 아름답고 고맙던지. 넋은 이미 반쯤 나갔고, 시간은 멈췄다. 파도도 소리를 죽였다. “이제 나가셔야 합니다. 문을 닫겠습니다!”라는 초병의 씩씩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바탕 꿈을 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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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의 빼어난 절경


이튿날, 희미한 안개(미세먼지일 수도 있음)를 뒤로 하고 망향전망대에 오르자 북한의 포대가 설치돼 있고 최근 김정은이 시찰했다는 장제도가 손에 잡힌다. 망원경 너머로 북한의 어선들이 고기를 잡는 모습도 들어온다. 이어 여정은 조기 파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해 놓은 조기역사관과 연평해전에서 피격을 당한 참수리호와 같은 기종의 배를 전시하고 있는 연평도 함상공원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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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전망대에서는 북한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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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상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참수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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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전시장에 늘어선 전차와 장갑차

 


연평도에서의 1박2일은 전쟁과 평화, 그리고 안보 등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 이곳 연평도는 안보관광지가 아닌, 천혜의 자연휴양지로 각광받을 만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사진 김태종(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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