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서의 1박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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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뒤에 찾아온 치명적인 매력
밀양에서의 1박 2일


서울에서 4시간 30분이면 닿는 이 조그만 도시는 처음에는 너무나 평범해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에는 곳곳의 치명적인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재약산 기슭에 자리를 잡은 표충사에서는 불교와 유교가 한자리에 공존하고 있었고, 오래된 다리를 보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했다. 밀양강의 물안개를 살짝 머금은 영남루에서는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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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루에서 내려다 본 밀양

 

 

바람이 출렁거리자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이제야 얼굴을 내민 꽃잎이 파르르 떤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과 들은 헐벗은 모습에서 가벼운 초록의 차림으로 바뀌어간다. 거기에 물감을 풀어놓은 듯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진달래가 봄을 알리기 위해 고개를 드는 모습이 반갑기 그지없다.


볕이 가득한 도시라는 이름을 가진 밀양(密陽)도 어느새 봄옷으로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들에는 유채가 노랗게 화사함을 뽐내고, 이에 화들짝 놀라듯 벚꽃이 앞을 다퉈 피었다. 바람은 간지러웠다. 서울에서 4시간 30분이면 닿는 이 조그만 도시는 너무나 평범해서 처음에는 매력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에는 곳곳에서 찾은 밀양의 치명적인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영남 알프스가 시작되는 곳
밀양에서의 첫 추억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논산훈련소에서 신병교육을 마친 후 자대배치를 받기 위해 탄 열차는 긴장한 신병들을 싣고 위쪽으로 더디게만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에구, 이러다가 전방(그때나 지금이나 조금이라도 편할 것 같은 후방에서 군 생활을 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인 듯)에 배치받는 것은 아닐까? 아니 뭐 걱정이 사실로 바뀌고 있네”라며 거의 반포기를 하자 한숨이 절로 일었다. 먼저 군에 가서 전방에 있던 친구들의 모습도 오버랩됐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수십여 차례(그렇게 느낀 것이겠지만) 객차와 객차가 끊어지고 이어지는 ‘철커덩!’ 하는 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앞으로 2년 넘게 보낼 곳이 이곳부터 시작인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기적처럼 열차는 다시 아래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위쪽으로 올라갈 때는 그렇게 더디었건만 이번에는 미끄러지듯 신이 났다. 기차에 오른 지 11시간쯤 되었을 무렵 열차에는 10여 명이 채 남아 있지 않았고, 호송병은 크게 인심을 쓰듯 “내려서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사제음식으로 아침을 해결한 후 다시 탑승하라”고 했다.


어찌 그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제는 희미해져서 빛이 바랜 추억의 그 장소가 바로 밀양의 삼랑진(역)이었다. 그리고 부모님과 통화를 마치고 그곳에서 먹은 한 끼의 식사가 바로 ‘돼지국밥’이었다. 사실 맛에 대한 기억은 없다. 허겁지겁 끼니를 때웠을 것이라는 생각 뿐. 그 이후 밀양을, 삼랑진을 찾을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인연의 끈을 그렇게 떠올리다보니 어느새 밀양의 소문난 맛집 ‘우시장 돼지국밥’ 앞에 차가 멈춘다. 아마도 우시장이 근처에 있어서 지은 이름인 듯한데 소시장에서 돼지국밥을 판다는 게 재미있다. 반찬은 정결하고 국밥은 깔끔하면서도 맛이 깊었다. 이곳이 밀양의 맛집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비결은 바로 가마솥에 있다. 두꺼운 가마솥에 재료를 넣고 장작불로 은은하게 고아서 우려낸 맛이 일품이라고. 얇게 저며 낸 수육도 ‘찰지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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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명물 우시장 돼지국밥과 수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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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장 돼지국밥은 가마솥에 재료를 넣고 장작불로 푹 고아낸다

 


든든하게 배를 채웠으니 이제 본격적인 여정을 위해 한걸음 더 내딛는다. 차에 오르자 밀양을 소개하는 문성남 해설사가 입담을 과시한다. 이웃 합천에서 밀양으로 시집을 와 20여 년을 넘게 살았다는 그녀는 ‘밀양’의 매력을 하나 둘 끄집어 내놓기 시작한다. 곧이어 그녀의 구성진 ‘밀양 아리랑’ 가락이 귓가를 떠돌고, 도도하게 흐르는 ‘밀양강’의 멋진 풍광에 탄성이 절로 인다.


밀양 여행의 첫 목적지인 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헐벗은 나무들이 산등성이를 빼곡하게 수놓은 곳을 지날 때쯤 각종 농원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5월 초에야 꽃을 피우는 사과나무 과수원들이다. 문 해설사는 “얼음골 사과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 등지로 수출을 하고 백화점에 납품할 정도로 맛과 당도가 뛰어나다”며 “씨가 있는 부분에 꿀이 가득한 것이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이곳에서 사과나무 과수원을 하는 농가가 1,000여 세대가 넘는다고.


케이블카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낳은 산물이다. ‘얼마나 더 편하게 자연으로 들어갈까, 그리고 자연과 호흡할까’라는 명제를 그대로 수용하듯 얼음골 케이블카는 순식간에 관광객들을 영남알프스가 한눈에 보이는 하늘정원에 내려놓는다. 국내 최장거리의 왕복식 케이블카로 선로 길이가 1.8km에 달하며 상부의 높이는 해발 1,020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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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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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로 정상에 오르면 영남알프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변 산들과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녹산대에서는 왼쪽의 천왕산과 재약산 앞의 백호바위를 중심으로 한 백운산 등을 볼 수 있다. 백호바위의 웅장한 모습에 “아~” 하는 탄성이 곳곳에서 인다. 또한 하늘사랑길은 상부승강장에서 전망대까지 280m에 걸쳐 이어지는 데크로드로, 넓고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산들을 감상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다. 하지만 이날 하늘은 잿빛을 머금은 데다 간간히 빗방울을 뿌려대고 있어 원하던 풍경을 보진 못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누각 중 하나
아쉬운 기색이 역력한 것을 알아차린 듯 밀양시의 투어 담당 김영근 계장이 케이블카의 하부 승강장에서 5분여 거리에 있는 ‘시례호박소’로 안내한다. 원래의 투어 일정에는 없는 곳이었지만 불순한 날씨로 하늘정원에서의 시간이 단축되었기에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란다.


시례호박소로 가는 길은 제법 운치가 있다. 오른쪽으로는 백운산에서 발원한 계곡을 거느렸고, 왼쪽에는 백련사라는 조그만 절집에서 독경소리가 은은하게 퍼져 멋진 앙상블을 이룬다. 김 계장은 “여름이면 이 계곡 전체가 시꺼멓게 보일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는다”며 “그만큼 물이 찬 것은 물론 경치도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자랑에 여념이 없다. 호박소는 주차장에서 5분여 거리에 있다. 백옥 같은 화강암이 수십만 년 동안 물에 씻겨 커다란 소(연못)를 이룬 곳인데, 모양이 마치 절구의 호박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성남 해설사는 “호박소에 실을 넣으면 동해바다에서 나타날 정도로 깊이와 물길을 알 수 없다”고 그럴듯하게 전설 한 자락을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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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례호박소로 가는 길에 있는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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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8경 중 하나인 시례호박소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는 가운데 도래재를 넘어 표충사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흔하디흔하던 사과나무 과수원은 자취를 감추었고 대추나무와 표고버섯 등을 재배하는 농장이 즐비하다. 밀양의 대추는 전국 생산량의 20%에 이르며 매년 10월 중순에 ‘밀양대추축제’가 열린다. 


1,108m 재약산 기슭에 자리잡은 표충사는 유생들을 교육시키고 성현들을 제사지내는 표충서원이 있어 불교와 유교가 한자리에 공존하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사찰로 꼽힌다. 신라 무열왕 원년(654)에 원효대사가 창건했고, 조선 헌종 5년(1839년)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서산과 사명, 기허대사를 모신 표충사당을 이곳에 모시면서 절 이름을 표충사로 했다고.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만일루 앞마당에 있는 보물 제467호 ‘삼층석탑’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여기서는 밀양 8경 중 하나인 ‘표충사 사계(3경)’와 사자평으로 이름을 얻고 있는 ‘재약산 억새(8경)’가 자랑이지만 사계 중 ‘이른 봄’을 만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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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약산 기슭에 자리한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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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의 사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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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의 경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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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467호로 지정된 표충사 3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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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범종루의 모습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밀양과 이웃한 곳을 이어주는 5개의 다리가 있는 강변에서 일몰이 다가오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끼는 기분이 묘하다. 불과 몇 해 전에 개통된 낙동대교와 삼랑진교, 그리고 이제는 역할을 다해 레저용으로 사용하는 구 낙동철교, 1905년 개통해 철교로 사용하다 지금은 승용차나 사람이 다닐 수 있게 한 낙동인도교(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등장하는 다리와 비슷하다) 등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일까?
해가 저문 듯 발밑에서부터 점점 먹빛이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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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새로운 다리에 역할을 넘겨준 구 낙동철교


은근하게 비치는 스카프를 두른 것처럼 밀양강의 물안개를 살짝 머금은 영남루. 이곳의 야경은 과연 밀양이 ‘엄지 척’ 하고 으뜸으로 내세울 만하다. 그러나 빛을 그대로 담은 대낮이나 어둠이 깔린 야간이나 영남루는 언제나 ‘아~’ 하는 감탄사가 나올 만큼 경관이 빼어나다. 이곳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공을 넘나들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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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의 누각 중 하나인 영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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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루의 야경을 머금은 밀양 아리랑비석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꼽히는 영남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아 있노라니 옛사람들의 정취가 온몸으로 전해져온다. 선비들은 자신들이 쓴 시를 낭송하면서 그 기운에 취하고, 빼어난 문장에 넋을 놓고, 때론 농이 섞인 문장에서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곤 했으리라. 때론 거문고를 튕기고 가야금을 타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이리저리 술잔을 돌렸을 터. 상상만으로도 시공간을 넘나드는 영남루의 매력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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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봉사로 올라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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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봉사에서 내려다 본 밀양의 전경


경내 북쪽에는 단군을 비롯한 나라를 세운 8왕조의 위패를 모셔놓은 천진궁이 있다.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나오는 구조가 특이한데, 그 이유는 입구와 출구를 따로 두었기 때문이다. 영남루 아래 죽림에 자리해 아랑의 슬픈 얘기를 간직한 아랑사, 영남루와 밀양강이 어우러져 멋진 운치를 자랑하는 무봉사를 오가며 하루를 보내다보니 밀양에서의 1박 2일이 짧기만 하다.

 

글, 사진 김태종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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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만개한 삼문동 벚꽃터널

 

 

밀양한천
밀양한천은 밀양의 대표적인 특산물인 한천(우뭇가사리 등을 고아 만든 식품)을 제조하는 회사로 이곳에서 운영하는 한천테마파크는 박물관과 각종 체험 프로그램, 레스토랑과 판매장, 한천송덕비공원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마련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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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한천의 역사와 변천과정 등의 정보와 영상, 생산에 필요한 도구 등을 볼 수 있고 레스토랑에서는 한천을 활용한 비빔밥과 돈가스, 우동 등을 내놓는다. 판매장에 들러 다양한 물건도 구입할 수 있다. 한천을 이용한 젤리나 푸딩 만들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은 평일에는 사전 예약, 주말에는 현장접수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
밀양한천 1577-6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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