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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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5천년의 역사가 숨 쉬는 곳
시안(西安)


중국 산시성의 성도인 시안(서안)은 실크로드의 시작점이자 주나라부터 당나라까지 13개의 왕조를 거친 역사적인 도시다. 1974년 발견된 진시황의 병마용은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지금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예전의 유물들이 잘 보존되어 양귀비가 목욕한 화칭궁이나 당태종이 지은 대명궁의 터도 남아 있다. 개방 이후 상대적으로 경제개발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으나 지금은 서부 대개발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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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용 1갱도를내려다본 모습. 세계 8대 불가사의 중하나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인 1974년, 시안(西安: 서안)의 외곽에서 농사를 짓던 양즈파(杨志发:양지발)는 우물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다가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도자기 재질로 만들어진 사람 모양의 파편과 무기로 쓰였을 듯한 쇳조각들이었다. 2천년 동안 묻혀 있던 진시황의 지하 세계가 처음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순간이었다. 바로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병마용(兵馬涌: 빙마용)이다. 오늘날 시안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병마용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의 업적을 사후 세계에까지 전하려는 중국인들의 혼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위대한 예술작품이다.

 

시안은 주나라부터 한나라를 거쳐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13개의 왕조를 거친 역사적인 도시다. 진시황(B.C. 259~210년)이 춘추전국시대의 험난한 여정을 거쳐 중국에 최초로 통일된 국가를 세운 것은 기원전 221년의 일이다. 진나라는 불과 15년이라는 짧은 역사에 불과하지만(기원전 221~206년) 거대한 중국을 통치하는 체계를 확립한 최초의 국가라는 점에서 중국인들에게 의미가 깊다.

진시황은 처음으로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였으며 문자와 화폐, 도량형을 통일했다. 또한 봉건제를 폐지하고 황제가 각 지역에 지방관리를 파견하는 군현제를 실시했다. 그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실시해 황제로서의 권위를 확고히 구축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100만 명이 넘는 인원을 동원하여 기존에 있던 성들을 연결하고 개축해 만리장성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의 원성을 산 데다 호사스런 아방궁을 만들면서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학자들을 묻어 죽이고 책들을 모두 불살랐던, 저 유명한 갱유분서(坑儒焚書)가 일어나게 된다. 영원불멸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기 위해 많은 인원을 동원했던 진시황. 하지만 그는 50살이 되던 해 원정길에 나섰다가 짧은 생을 마감한다. 진시황이 죽은 후 진나라는 후계자 문제와 환관의 계략으로 3대를 잇지 못하고 15년 만에 멸망하니,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는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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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큰 병마용1갱도의 입구 모습

진시황과 양귀비의 발자취
시안 외곽에 자리하고 있는 병마용은 전체 규모가 2만5,000평방미터에 달한다. 1974년부터 현재까지 4개의 갱을 발굴하였으며 아직도 새로운 병마용을 찾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4개의 갱 중에서 처음 발견된 1호갱은 길이 210m, 폭 60m, 높이가 4.5~6.6m로 규모가 가장 크다. 1호갱에는 약 6천 병사들의 도용(陶俑, 흙으로 만든 허수아비)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병사들의 신장은 175~196cm로 실제 키보다 조금 크게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맨 앞에는 겉옷만 입은 보병들이 도열해 있고 그 뒤로 갑옷을 입은 장수와 말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마치 “돌격 앞으로”라는 명령을 기다리는 용맹스런 군인들의 대열 같다. 2호갱과 3호갱은 1호갱에 비해 규모가 작고, 아직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4호갱은 지금도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원래 병사들은 채색이 되어 있었으나 발굴 과정에서 햇빛을 받자마자 색이 변했다고 한다. 화려한 색으로 단장한 제각기 다른 얼굴의 8,000여 병마용을 보노라면 이를 제작하느라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갔을지 감탄이 절로 난다. 한쪽에서는 부서진 병사들과 말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기술자들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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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진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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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천여 병사들의 얼굴이 모두 다르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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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작업과 함께 부서진 병마용을 복원하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시안에는 병마용 외에 중국 제일의 미인인 양귀비(楊貴妃, 719~756)가 목욕을 한 것으로 유명한 화칭궁(華靑宮: 화청궁)이 있다. 흔히 일컬어지는 중국의 4대 미인(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중에서도 제일로 꼽히는 양귀비는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백옥처럼 하얀 피부에 통통한 얼굴을 지닌 가장 중국적인 여인이다.

원래의 이름은 양옥환이다. 걸출한 미모에다 춤과 노래 솜씨가 뛰어나 17살에 당 현종의 아들인 수왕이모의 부인이 되었지만 당 현종이 왕귀비의 미모와 춤 솜씨에 반하여 그녀를 품게 된다. 그러니까 며느리를 부인으로 맞이한 것이다. 당 현종은 원래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던 훌륭한 지도자였으나 양귀비와 사랑에 빠진 이후 정사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탐관오리들이 판을 치고 백성들의 생활은 파탄에 빠져들었다. 특히 양귀비의 형제들이 조정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양귀비는 매일 온천욕을 하고 새로운 화장법으로 단장을 해서 당현종을 자신의 침실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이런 꿈같은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양귀비의 오빠인 양국충과 안록산 간의 갈등으로 ‘안사의 난’이 일어나자 쓰촨성(四川省: 사천성)으로 피신한 당 현종은 사랑과 목숨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피난길에 마차를 끌던 병사들이 이런 원인을 제공한 양귀비를 처벌하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겠다고 반항했기 때문이다. 반란군이 뒤쫓아 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몰리자 당 현종은 결국 양귀비를 버리게 된다. 이에 양귀비는 비단 끈으로 목을 매달아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지만 자결이 아니라 환관에 의해 사살되었다는 설도 있다. 화칭궁에는 양귀비가 당 현종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매일 온천욕을 했다는 목욕탕이 여러 군데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지금도 온천수가 나온다고 한다. 궁의 규모를 살펴보면 당시 당나라가 얼마나 번창한 국가였는지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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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가 목욕한 곳으로 유명한 화칭궁. 수려한 경관과 온천 덕에 예로부터 고관들의 휴식처로 인기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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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제일의 미인이라 일컫는 양귀비. 기구한 운명을 살다간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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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가 목욕을 했다는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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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온천수가 땅에서 솟아 나오고 있다

중국 근대사의 중요한 무대
화칭궁에는 중국의 근대 역사를 바꾸어 놓은 또 하나의 중대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른바 시안사변(西安事變: 서안사변)이라 불리는 장제스 납치사건이다. 1936년 12월, 중화민국의 최고 지도자 장제스가 화칭궁에 머물고 있었다. 시안 인근의 옌안(延安: 연안)에 주둔하고 있는 마오쩌둥(毛澤東: 모택동)의 공산당과 대치하고 있는 장쉐량(張學良: 장학량)을 독려하기 위해 이곳에 온 터였다.

장쉐량은 동북의 마적 두목 출신인 장쭤린(張作霖: 장작림)의 아들이다. 만주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불태우던 일본이 장쭤린이 탄 열차를 폭파시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자 장쉐량은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누구보다 강했다.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와 공산당의 마오쩌둥은 1927년부터 1949년까지 내전을 치렀다. 당시 공산당은 국민당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군사력이 열세였다. 국민당에 쫓긴 공산당은 대장정이라는 미명 아래 많은 병사들을 잃고 시안 인근의 연안에 자리잡은 뒤 겨우 명목만 유지하고 있었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신세였다. 사실 말이 좋아 대장정이지 국민당을 피해 도망만 다닌 것이 전부였다.

처음 장시성(江西省: 강서성)을 출발할 때 8만 명에 이르던 인민해방군이 대장정 말기에 8,000명으로 줄었으니 공산당은 거의 소멸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국민당은 연안의 공산당만 휘어잡으면 중국을 차지하게 되는 절호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장쉐량은 공산당을 없애는 것보다 중국 땅에서 일본을 몰아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여겼다. 그는 장제스에게 공산당과 힘을 합해 일본군과 싸우자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장제스는 단호하게 “그렇게 못한다”고 대답했다. 바로 코앞에 있는 공산당은 이제 궤멸 직전의 상황. 바로 진격하면 중국은 자신들의 차지가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공산당보다는 일본을 물리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제안을 거절당하자 장쉐량은 양후청(楊虎城)과 함께 장제스를 납치, 구금한다. 이것이 시안사변이다. 장쉐량에 의해 구금된 장제스는 어쩔 수 없이 마오저뚱과 함께 일본에 대항한다는 국공합작(國共合作)을 수용한다. 만약 그때 장쉐량이 장제스를 구금하는 사건이 없었다면 중국의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을까?


장쉐량은 장제스로부터 국공합작의 승낙을 얻은 후 비행기를 태워 그를 난징으로 보냈다. 그리고 스스로 난징의 군사법정에 출두해 재판을 받았다. 국가원수를 납치한 하극상에 대한 처벌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사형은 면했으나 55년간 구금과 연금 등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당시 장쉐량은 장제스를 죽일 수도 있었다. 또 장제스에 버금가는 막대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스스로 군사재판을 받지 않더라도 누구도 시비를 걸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런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스로 험난한 고행의 길을 걸었으니 모략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중국의 역사에서 최고의 신사로 대접받아야 하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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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칭궁 안에 있는 국민당 장제스의 집무실

서부 대개발로 급속하게 발전 중
시안 시내는 온통 공사 중이다. 서부 대개발이라는 정책 아래 시안 일대에 개발의 광풍이 거세게 불고 있는 것. 중국 지도를 펴놓고 보면 시안은 중국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중국 서쪽에는 위쪽으로 신장이, 남쪽으로는 시장(티벳)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의 면적은 중국 전체의 약 1/4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크지만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땅이 아니다. 또한 오랜 기간 영토문제로 분쟁을 겪었다. 중국이 지금과 같은 영토를 확정한 것은 1950년 이후다.


신장과 티벳을 빼면 시안은 중국의 서부에 속한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시안을 포함한 이 지역을 통상적으로 서부라고 부른다. 그동안 시안이 속한 서부지역은 개방 이후 급속히 발전한 중국 경제개발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산시성(陝西省, 섬서성)의 성도인 시안 인근에는 웨이난(渭南: 위남)이란 도시가 있는데, 현재 중국의 국가 주석인 시진핑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이 때문인지 시진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서부개발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동안 시안에는 군수공장 외에는 다른 산업이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가 시안에 2014년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 것도 시진핑 주석의 영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시안의 인구는 약 800만 명으로, 서부 대개발 이후 급격히 늘어났고 지금도 늘고 있는 상황이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고, 현재 공사 중인 아파트와 상업용 건물도 곳곳에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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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구시가지의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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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 대개발로 도시의 랜드마크가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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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의 택시는 BYD가 장악하고 있다

 

 

시안시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성곽 안쪽에서도 공사가 한창이다. 정방형의 성곽은 14km에 이르는데, 당나라 시절 쌓았던 성을 명나라 때 보수 및 증축했다고 전해진다. 성곽에 올라보니 시안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 난 성벽 밖으로는 물이 흐르는 수로가 형성되어 있다. 외부의 적이 쳐들어오려면 물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방어에 대단히 유리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성들도 이런 식으로 성 밖에 수로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성곽에는 동서남북으로 4개의 문이 나 있는데 문을 연결하는 통로는 대단히 넓다. 워낙 길고 넓어서 이곳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자전거나 전동차를 타고 다녀야 할 정도다. 성은 웬만한 공격에는 전혀 동요될 것 같지 않게 견고하게 지어졌다. 당시의 중국은 북쪽의 오랑캐들의 침략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그래서 만리장성도 쌓았고 수도 안의 성들도 튼튼하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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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중심부에 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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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성의 남문인 영녕문. 가장 큰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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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주변에는 수로가 있어 공격하기 힘든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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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이 높고 견고해 외적이 침입하기 힘들다. 제국이 무너진 것은 외적의 침입이 아니라 민심의 이반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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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위쪽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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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은 상당히 넓어서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할 정도다

 


시안은 역사적인 도시답게 예전의 유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지금은 궁터만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당태종이 지었다는 따밍궁(大明宮: 대명궁)도 당나라의 권위를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예전에 궁궐이 있었다는 함원전에 오르니 정문인 단풍문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곳에 있는 조각상에는 낙타와 함께 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종종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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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시대에 건설된 대명궁. 베이징의 자금성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규모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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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궁에는 함원전의 터가 남아 있다. 함원전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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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궁의 남문인 단풍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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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궁에는 시안이 실크로드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많은 사적들이 있다

 

비상 시작한 실크로드의 시작점
시안은 중국과 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시작점이다. 실크로드는 6,000km가 넘는다. 실크로드가 열린 것은 한무제(漢武帝, 재위기간 B.C. 141~87년) 때다. 중국은 당시 비단과 칠기, 화약과 제지 등을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까지 수출했다. 특히 종이는 유럽의 인쇄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실크로드가 가장 활발한 시기는 당나라 때다. 실크로드를 통해 서방으로부터 기린과 사자 등 희귀한 동물들과 문물이 중국으로 전해졌다. 또한 시안은 중국의 사상과 이슬람의 문화가 융합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 서부지역은 이슬람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 사상이 깊게 뿌리내려 있다. 이들은 이슬람 복장을 하고 코란을 읽으며 돼지고기 대신 양고기를 먹는다. 또한 밥 대신 빵이나 국수를 즐겨 먹는다. 이곳의 토양은 모래가 많이 섞여 있어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 않기 때문에 쌀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래서 바람이 심하게 불면 잔모래가 날려 도시 전체가 스모그에 덮인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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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문화가 그대로 살아있는 회민제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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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민제에서는 이슬람 복장을 한 중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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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먹지 않으면 시안에 오지 않은 것과 같다는 양러우파오모. 양고기가 든 국수에 빵을 잘라 넣어서 같이 먹는다

 


시안에서 이슬람 문화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곳은 회민루다.
이곳 사람들은 이슬람식으로 생활을 하고 이슬람 음식을 먹는다. 때문에 이곳의 번화가인 회민제거리에는 양고기와 이슬람식 국수를 파는 곳이 많다. 특히 양러우파오모(羊肉泡馍)를 먹지 않으면 시안에 오지 않은 것과 같다는 시안 특별식이 있다. 양러우파오모는 양고기가 든 국수에다 빵을 잘게 조각내어 같이 섞어 먹는 음식이다. 특별히 맛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사람들이 즐겨 먹는 고유의 음식이다. 재미있는 것은 시안 사람들은 우리처럼 생마늘을 먹는다는 점. 시안 사람들은 빵이나 국수를 먹으면서 생마늘을 같이 씹어 먹는다. 또 먹는 양이 남방 사람들과 비교해서 대단히 많다. 남방에서 온 사람들은 이곳의 그릇을 보고 2명이 먹어도 남을 양이라고 혀를 찬다.


시안은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였던 진나라의 수도였을 뿐 아니라 5천년 중국 역사의 중심축 역할을 해온 역사적인 곳이다. 아울러 동서양의 문화가 교류했던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서 중국 서부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해안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중국의 개방정책으로 현대사에서는 소외된 면이 있으나 서부 대개발 정책 이후 다시금 중국의 중심으로 거듭나고 있다.

*글, 사진 양인환 (중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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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민제의 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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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겨울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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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겨울바다영종•용유•무의도​​겨울바다를 찾아 나선 영종도. 간조 때라 바다는 저 멀리 물러섰고, 한여름 그렇게 북적였을 해변은 철이 지나 찬바람만휑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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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TRAVEL 태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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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웅장함과 후덕함을 품은태백산(太白山)더 이상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짐을 챙겨 곧바로 나설 수도 없었다. 어둠은 절정이었고, 그렇게 시간은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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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송월동 동화마을이 시작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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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월동 동화마을이 시작되는 곳​​​​지하철 1호선 종점인 인천역에서 이정표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10분 정도 걷다 보면 송월동 동화마을이 나온다.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는 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