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난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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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대 역사가 숨 쉬고 있는 곳
난징(南京)

​장쑤성의 성도이자 경제와 교육의 중심지인 난징은 과거 삼국시대 오나라와 명나라의 수도였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지금은 인구 800만 명의 무척이나 아름다운 도시이지만 난징조약과 난징대학살 등 중국 근대 역사에서 그 어느 곳보다 많은 질곡과 치욕, 그리고 슬픔을 품은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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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은 인구 800만 명의 큰 도시이다

 

 

중국의 북쪽에 베이징(北京: 북경)이 있다면 남쪽에는 난징(南京: 남경)이 있다. 베이징은 북쪽의 수도이고 난징은 남쪽의 수도라는 뜻이다. 난징은 삼국시대 오나라의 손권이 수도로 삼았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난징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일제에 의해 자행된 난징대학살이다. 근대 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각광받았던 지역이자 가장 치욕적이고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난징은 장쑤성(江蘇省: 강소성)의 성도로 경제, 교육의 중심지이다. 인구는 약 800만 명으로 중국에서도 큰 도시에 속하며, 상하이에서 자동차로 약 3시간 거리에 있다. 난징은 중국에서 제일 긴 강인 장강(양쯔강)의 하류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자리한 장강대교는 장강에 놓인 세 번째 다리이자 길이가 6,800m에 달하는 장강에서 가장 긴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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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에는 공자가 세운 서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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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서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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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서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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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안의 공자상

 


난징은 여름이 무척 더운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3대 더운 지방으로 우한(무한)과 충칭(중경), 그리고 난징을 꼽는다. 한여름에는 최고 기온이 섭씨 40도가 넘고 습도까지 높아 찜통 같은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필자는 지금까지 난징을 세 번 방문했는데, 15년 전에는 기차, 5년 전에는 승용차, 그리고 이번에는 고속철을 이용했다. 이우에서 기차로 10시간이나 걸렸으나 고속철이 개통되면서 4시간이면 닿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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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 지하철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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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상하이간 고속도로는 왕복 8차선으로, 자동차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오나라에 이은 명나라의 수도
삼국시대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난징은 주원장(朱元璋)시대에 다시 중국의 중심으로 탈바꿈한다.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의 수도가 바로 이곳 난징이었던 것. 주원장이 태어날 무렵은 원나라가 쇠퇴기에 접어들어 상당히 혼란스러운 때였다. 황족들 간에 황제 계승을 둘러싼 다툼으로 나라는 큰 혼돈에 휩싸였고, 백성들은 관리들의 부패로 인한 고통과 더불어 기근과 질병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주원장은 배고픔과 질병으로 어린 나이에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고 탁발승을 하며 걸인이나 다름없던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홍건적에 가담하게 된다. 도적질이라도 할 수 있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몽고족이 중심이었던 원나라는 상대적으로 남방 사람들을 업신여겼다. 주원장은 이를 기회로 남방의 세력을 하나씩 결집시켜 절대권력 같았던 원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세운다. 1367년의 일이다. 걸인에서 시작해 일국의 황제 자리에 앉은 주원장의 일대기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드라마다.


1398년 70세 때 주원장이 죽고 적손인 주윤문(朱允文: 주윈원)이 왕위를 잇는다. 주원장은 자신의 직계들로 하여금 각 지역을 분할하여 관장하게 하였다. 그중 넷째 아들인 주체(朱棣: 주디)는 베이징을 근거지로 한 북방지역을 맡고 있었다. 새로 황제에 등극한 어린 주윤문은 삼촌인 주체의 존재가 항상 두려웠다. 이 때문에 독살을 시도하기도 했고 자객을 보내 그를 살해하려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이를 알아챈 주체가 군사를 이끌고 난징을 함락시킨 후 새로운 황제에 등극한다. 그가 명나라를 가장 번영시킨 영락제다. 조선 초기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좌에 오른 세조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영락제는 황제에 오른 뒤 자신을 반대했던 세력을 무참하게 살육한다. 이에 난징에 머무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영락제는 자신이 권력의 기반으로 삼았던 베이징으로 천도한다. 이후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로서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난징을 방문하면서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이 명나라 당시의 궁궐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상당히 웅장한 궁이 존재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 흔적이 모두 없어졌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중국이 근대화되면서 고대의 역사적인 현장들이 많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난징에는 명나라 당시 세워졌던 성벽은 아직 존재한다. 난징시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성벽은 34km에 이른다. 도심에 세워진 성벽으로는 세계에서 제일 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이보다 긴 만리장성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북방의 오랑캐를 방어하기 위한 전국적인 성벽이고 도시를 방어하는 성벽으로서는 난징의 것이 제일 완벽하고 길다. 성벽 위에는 길이 나 있어 구 난징 시가지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이곳 전시실에는 각 나라의 성벽을 비교해 놓은 자료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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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에는 명나라의 궁터만 남아 있고 실제 궁궐은 없다. 사진은 그나마 남아 있는 궁궐의 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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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도 공해가 심한 편이다. 미세먼지로 인해 평소 시야 확보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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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의 길이는 34km로 도심에 형성된 성벽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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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위에 당시의 무기를 재현해놓았다

 

 

난징조약과 중화민국의 거점
명나라의 수도가 베이징으로 옮겨간 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난징은 청나라 말부터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한다. 영국과 벌인 아편전쟁 때문이다. 중국이 맺은 가장 치욕적이고 불합리한 조약이라 할 수 있는 난징조약을 체결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청나라의 건륭제는 “중국은 물자가 풍부해 외국과 무역을 할 필요가 없다”고 거드름을 피웠으나 실상 그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당시 중국은 영국에 많은 비단과 차를 팔았으나 중국에 팔 물건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영국은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아편을 팔았다. 쇠퇴의 길을 걷고 있던 청나라는 아편대금으로 지출되는 은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나 국가 재정이 거덜 날 정도였다. 이를 보다 못한 청나라 조정에서 임칙서를 내세워 아편 거래를 엄격하게 막았다. 이에 반발한 영국이 중국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제대로 된 공격조차 한번 못해보고 일방적으로 패한 중국은 결국 영국에게 홍콩을 할양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겠다는 협정을 체결했다. 이것이 1842년 난징에서 이루어진 ‘난징조약’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억지이지만 당시 힘이 없었던 중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치욕스런 사건이다.


청나라가 쇠락하면서 난징은 우리에게 손중산(孫中山)으로 잘 알려진 쑨원(孫文: 손문)이 건국한 중화민국의 수도가 되었다. 광동성 중산 출신으로 광동성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그는 호를 중산으로 쓸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정이 애틋했다. 손중산은 부패하고 무능한 청나라에 항거하여 민중들에 의해 일어난 신해혁명을 기점으로 삼민주의를 기본으로 한 중화민국을 건국하고 난징을 중화민국의 수도로 정했다. 소비에트공화국의 지원 아래 설립되었던 광저우의 군사학교도 난징으로 옮겨와 정부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위대한 중국을 꿈꾸었던, 중국 혁명의 아버지라 불리었던 손중산의 꿈은 살아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다. 중국을 위해 불철주야 전국을 순방하며 세를 규합하던 1925년 베이징에서 59살의 나이로 생애를 마감했다. “중국을 구하라”라는 말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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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손중산의 묘를 올라가려면 숨이 턱밑까지 찬다

 

 

민족, 민권, 민생의 삼민주의를 주창했던 손중산의 묘는 난징 중산능에 있다. 필자가 위대한 영웅을 참배하기 위해 중산능을 찾은 날은 평일인데도 수많은 참배객들로 가득했다. 그가 얼마나 중국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손중산의 묘까지 올라가는 길은 멀고도 가팔랐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가까스로 참고 마침내 정상에 올랐는데 아쉽게도 그의 묘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그의 흉상이 있는 건물에서 그를 참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원래 손중산의 법통을 이어받은 것은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 장개석)였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공산당)은 손중산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손중산의 처 쑹칭링(宋慶齡: 송경령)은 손중산의 정신을 이어받아 하나의 중국이 되길 바랐고 후에 공산당을 위해 열정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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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중산의 실제 묘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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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민주의를 제창하며 중화민국을 세운 손중산. 중국 혁명의 아버지로 불린다

 

 

손중산과 장제스는 동서지간이다. 광동의 갑부 송가수에게는 딸이 셋 있었다. 첫째인 쑹아이링(宋蔼龄:송애령)은 공자의 후손이라는 은행가와 결혼했다. 미국 힐러리 클린턴이 졸업한 웨슬리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해 한때 손중산의 비서를 맡았었다. 중국에서 첫째라고 할 정도로 많은 재산을 모은 그녀를 중국인들은 ‘돈을 사랑한 여인’이라고 부른다. 둘째 딸인 쑹칭링은 언니의 뒤를 이어 손중산의 비서로 들어가 결국 그의 아내가 된다. 손중산의 애국심에 반한 그녀에게 27살이라는 나이 차이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손중산이 사망한 후 그녀는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힘을 합쳐 하나의 중국을 만들어줄 것을 기대했으나 장제스가 이를 거절하는 바람에 국민당과 거리를 두고 공산당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그녀를 ‘중국을 사랑한 여인’이라고 부른다. 셋째인 쑹메이링(宋美齡: 송미령)은 장제스와 결혼했다. 그녀는 사치가 심하고 호화스런 생활을 즐겼는데, 중산릉 바로 밑에 있는 호화스런 쑹메이링 궁은 그녀의 이러한 생활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8,000평에 이르는 이 저택은 호화롭기가 이를 데 없어 유명 관광지로 개방을 하고 있다. 그녀는 장제스의 비서와 조언자 역할을 하며 대외관계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다. 그러나 그녀를 비롯한 주위의 인물들이 미국의 지원물자를 빼돌리고 부정축재를 하면서 국민당이 몰락하게 계기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권력을 사랑한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일제가 자행한 대참사, 난징대학살
난징에는 국민당의 정부가 있었던 총통부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1912년 중화민국 임시총통으로 취임하여 집무를 했던 방과 행정기관, 도서관 그리고 정원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당시 행사에 동원되었던 군악대와 기마부대의 숙소가 인상적이다. 국민당 총통으로 중국을 통치하던 장제스의 집무실에는 쑨원의 사진이 걸려 있다. 장제스는 손중산의 법통을 자신만이 유일하게 이어받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공산당과 대립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온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손중산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그의 바람과는 달리 전력 면에서 절대적인 우세를 지녔던 국민당은 공산당에 패해 타이완으로 도망을 가는 신세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민심이 천심이라는 국민들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멀리 대만에서 온 관광객들도 많았다. 국민당의 근거지인 이곳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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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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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으로 재현해놓은 국민당 총통 장제스 부부와 부총통 이종인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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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총통과 부총통 취임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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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에는 일본군의 중국 침략사를 기록해 놓았다

 


근래에 난징이 우리의 뇌리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은 난징대학살이라는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금도 난징대학살은 중국에서 지어낸 허구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항상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다. 19세기 말부터 아시아를 제패하려는 야심을 품은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편입하고 중국 진출을 꾀하였다. 1895년 청일전쟁으로 기선을 잡은 일본은 1931년 만주를 점령한다. 호시탐탐 중국 내륙을 노리던 일본은 1937년 노구교사건을 트집 잡아 중일전쟁을 시작한다. 노구교사건이란 베이징 인근에 주둔하던 일본군이 병사 한 명이 실종되었다는 핑계로 중국군을 공격하면서 중국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사건이다.


베이징과 상하이를 점령한 일본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있던 난징을 공략했다. 난징에 진입한 일본군은 군복을 벗은 중국군인들이 민간인에 섞여 있다는 구실로 남자들을 끌어내어 처형했다. 그들의 살해방법은 잔인하기보다는 악랄했다. 일본군인들이 중국 남자들을 총살시키는 것은 대단히 인간적인 방법이었다. 민간인들을 총검술로 죽이거나 칼로 목을 베고 생매장을 시키는 등 극도의 잔학상을 보였다. 나중에는 노인과 여성, 아이들까지 닥치는 대로 죽였다. 중국에 따르면 그 숫자가 30만 명에 달한다고. 나아가 일부 일본군 장교들은 서로 칼로 얼마나 많은 중국인들을 벨 수 있는지 경쟁을 할 정도로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일본은 아직도 난징대학살을 부인하고 있지만 역사는 지울 수 없는 기록이다. 당시의 여러 가지 정황과 증언, 기록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난징대학살 기념관(중국에서는 난징대도살 기념관이라고 부른다)은 당시 일본의 잔학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어찌 보면 중국으로서는 치욕의 역사이지만 이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중국 젊은이들에게 이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좋은 교훈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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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난징대학살의 희생자가 30만 명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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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난징대학살의 희생자가 30만 명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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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의 호구(호적)가 보관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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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인들의 잔학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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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잔혹하게 살해되었던 중국인들의 유골. 발견된 장소를 그대로 보존해놓았다
 


올해 전지현이 주연으로 등장한 ‘암살’이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보았다. 일제에 대항해서 싸우는 독립군에 관한 영화였다. 요즘은 별로 없지만 필자가 어릴 적에는 일본군과 싸우는 독립군에 관한 영화가 많았었다. 독립기념관이 있기는 하지만 일제의 식민지 시절은 우리에게 많이 잊혀진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도 일본과 보이지 않는 전쟁을 진행 중이다. TV를 켜면 아직도 일본과 전쟁을 하는 드라마를 매일 볼 수 있다. 일본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크기에 그런지 짐작이 간다. 일본기업들이 중국에 많이 들어와 있지만 중국과 외교적 마찰이 있을 경우에는 불매운동을 하고 일본 제품을 불태우기도 한다. 이런 때에는 중국에 상주하는 일본인들은 외출을 자제한다. 중국에서 일본차가 많이 팔리기는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현대자동차도 따라잡지 못한다. 다른 나라 시장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만약 중국에서 반일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일본차의 판매량은 몇 배나 증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 정부는 아직도 중국 침략에 대해 반성하거나 사죄할 생각이 없다. 일제의 침략을 받았거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반일감정이 남아 있는 나라는 현재 한국과 중국밖에 없다.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보면서 일본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는 앞으로도 결코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글, 사진 양인환 (중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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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대학살 기념관. 중국에서는 난징대도살 기념관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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桂林山水甲天下천하제일이라는 계림의 산수​배를 타고 리지앙(Lijiang, 漓江:이강)을 내려오면서바라보는 구이린(Guilin, 桂林: 계림)의 풍경은 필자가 이제껏 보아왔던 것과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