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태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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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웅장함과 후덕함을 품은
태백산(太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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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짐을 챙겨 곧바로 나설 수도 없었다. 어둠은 절정이었고, 그렇게 시간은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몇 번의 뒤척임 끝에 주섬주섬 옷을 여미고 문을 나선다. 짜릿한 전율이 온 몸에 흐른다. 이건 설렘이다. 미지의 세계가 부르는 신호와 교감하면서 옷매무새를 다시 한 번 고치고, 등산화 의 끈을 조이면서 팽팽해지고 있는 이 긴장감은 분명 싫지 않은 떨림 그 자체다.

어둠은 동이 트기 직전에 가장 짙다는 말이 태백산자락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기상 정보를 통해 미리 파악한 태백산의 해 뜨는 시각은 오전 642. 6시가 안 된 당골 매표소는 칠흑이다. 이 곳은 태백산 정상인 장군봉(1,567m)을 오르는 여러 루트 중 하나로 태백시내와 가까워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다. 넓지 않은 주차장은 휑하니 비어 있어서 더 을씨년스러웠고, 밤바람 소리는 말을 달리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해돋이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어둠을 밝힐 장비를 갖추지 않은 것이 쉽게 발길을 내딛지 못하게 한다.

 ‘밝다는 것과 어둡다는 것의 경계는 찰나였다. 먹물보다도 더 짙었던 어둠은 어느 순간 시나브로 산자락을 타고 내달리기에 바빴다. 대신 그 자리에는 어김없이 빛의 전령들이 개선장군처럼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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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등산로

 내딛는 발걸음에 으스러지는 낙엽들

 첫 발을 내딛는 순간, 1,577m의 정상을 쉽게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질풍노도와 같은 기세로 달려온 바람이 싸늘한 미소로 유혹 의 손길을 내민다. ‘굳이 어려운 길을 가겠다는 건 뭐야. 여기서 그만 발길을 돌리는 것은 어때?’라며. 유혹과 도전 사이, 힘겨운 선택의 기로에 서 결국 내가 택한 것은 도전. 이내 마음을 다잡고 매표소를 통과했다. 당골 광장을 지나 매년 개천절이면 단군께 제를 올린다는 단군 성전을 오른쪽으로 비껴서 돌아드니 태백산이 마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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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전

숲으로 들어서자 산은 자취를 감췄다. 대신 수북하게 쌓인 나뭇잎들이 부드러 운 천을 깔아놓은 듯 푹신하고 부드럽다. 내딛는 발자국에 으스러지는 낙엽들이 연신 비명을 질러대지만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보겠냐는 듯 발걸음은 더 신이 난다. 산새들도 잠을 자는 시각. 숲은 말을 잃었다. 바람도 잦아들어 아기의 숨소리처럼 부드럽고,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만이 이따금씩 정적을 깨뜨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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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돌돌 흐르는 계곡물이 잠시 발을 멈추게 한다

 강원도 태백시와 영월군, 그리고 경상북도 봉화군에 걸쳐 있는 높이 1,567m의 태백산은 태백산맥의 주봉이다. 산은 높으나 가파르지 않아 오르기가 수월하며 부드러운 웅장함과 후덕함을 갖추고 있다. 당골 매표소에서 장군봉까지는 4.4km. 마치 평지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매표소에서 2km를 채 못가서 1차 난코스가 나타난다. 당골 3교에서 반재에 이르는 500m의 계단이 바로 그것. 가파른 계단이 거친 숨을 토하게 하지만 활엽수와 침엽수의 경계를 넘나드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반재에서 망경사까지 1.7km도 완만한 능선이다. 망경사에서는 한국 명수 100선 중 으뜸이라는 용정에서 목을 축인 후 2차 난코스인 장군봉의 천제단으로 길을 잡는다. 단종 비각의 길 안내를 받으며 500m 가까이 오르면 드디어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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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명수 100선 중 으뜸이라는 용정

꼭대기에 이르니 어느새 새벽이 걷히고 환한 아침이다. 켜를 킨 듯 겹겹이 누운 산들이 발아래에서 조용하게 안개와 구름을 두르고, 따사로운 햇살이 온 몸을 어루만진다. 바람마저 숨을 죽인 가운데 단풍이 든 산들은 화려한 불기둥을 뿜어대며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2시간의 등정이 주는 호사치고는 너무나 감격스런 풍경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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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단종의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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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으로 오르는 길에 만나는 망경사​

가을에 겨울을 만나는 짜릿한 경험

그러나 찰나의 순간, 산 아래서 일기 시작한 바람은 능선을 타고 거슬러 올라 거칠게 내달린다. 안개와 구름은 일순간 어지러웠다. 풀이 눕고 다 자라지도 못한, 아니 더 이상 자랄 수 없어서 서글픈 나무들이 얼음 꽃을 피워대며 가냘프게, 때로는 거칠게 울음 을 토해낸다. 볼은 불에 덴 듯 얼얼하고, 귓가는 침 을 맞은 것처럼 따가웠다. 가을에 겨울을 만나는 그 순간 살아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이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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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른 사람들은 연신 천제단으로 향한다. 천신의 영험함이 자신에게도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일 까. 속세에서 바리바리 싸온 제수 음식들을 제단에 올린 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산의 정기를 받는 모습이 비장하다. 천제단은 중요민속자료 제 228호로 천왕단’(天王壇)이라고도 하는데, 매년 10 3일 개천절에 제의를 행하며 이를 천제 또는 천 왕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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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배단이 천제단 곁에 있다

 태백산은 신라 삼산오악(三山五岳) 중북악(北岳)으로, 신라인들은 북악을 진산으로 여겨 나라에서 제사한 기록이 삼국사기제사조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려사에도 무녀가 참여하여 제의를 행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돌을 쌓아 만든 천제단은 높이 2.4m, 둘레 27.5m, 좌우너비 7.36m, 전후너비 8.26m나 되는 타원형의 거대한 석단이다.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와 같은 루트나 태백산의 제2봉인 문수봉(1517m)을 지나 당골 광장, 유일사와 백단사를 거치는 코스가 있다. 당골 매표소로 길을 잡으면 석탄박물관을 만나는 보너스를 준다.

 

* 글, 사진 김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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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축제
매년 1월에 ‘해맞이 축제’와 ‘태백산 눈 축제’가 열리고, 6월에는 ‘철쭉제’가 등산객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7~8월에는 ‘쿨 시네마’가 개최되어 영화 마니아들을 유혹하고, 10월에는 ‘개천제’가 열린다. 등산을 계획하고 있다면 축제에 맞춰 일정을 잡으면 일석이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http://festival.taebaek.go.kr

 

태백석탄박물관
여정을 길게 잡지 않았다면 당골 매표소를 지나면 만날 수 있는 태백석탄박물관에 들러보는 것도 좋다. 이 박물관에서는 석탄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청소년의 교육에도 좋다. 별도로 입장료를 내지 않고 태백산도립공원 입장권으로 둘러 볼수 있다. 이 밖에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황지연못도 가까이에 있다.
http://coalmuseu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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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석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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