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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계업계의 유행색 그린 워치의 물결 2018-06-20
최근 시계업계의 유행색 그린 워치의 물결세계업계의 보수적 성향은 색상 변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오랜만에 블루 컬러에서 벗어나 새로이 녹색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 스위스가 주도하던 시계업계는 보수적이었다. 1930년대 이후 유행과 기술 변화를 무심하게 여긴 결과, 1970년대에 들어서는 쿼츠 시계를 앞세운 일본에 주도권을 빼앗겨 10년 이상 절망적인 암흑기를 겪기도 했다. 이로 인해 큰 교훈을 얻었지만 여전히 타 업계에 비하면 보수적이며 변화에 둔감한 편이다. 물론 200여 년 전에 정립한 기계식 무브먼트라는 오래된 메커니즘을 사용하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것은 컬러에서도 잘 드러난다. 시계의 메커니즘처럼 개발 기간이 오래 소요되는 분야가 아닌, 비교적 손대기 쉬운 ‘유행색’에서도 변화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몇 년 동안이나 시계업계를 지배했던 블루 컬러에서 이제야 비로소 그린으로 바뀌려고 한다. 자연에서 찾아낸 녹색라도는 이탈리아 정원의 풍부한 유산을 홍보하는 기관인 그란디 지아르디니 이탈리아니(Grandi Giardini Italiani)와 파트너십을 맺고 트루 씬라인 네이처 컬렉션을 선보였다. 자연의 주요 요소인 흙에서 영감을 얻은 토프 브라운 모델, 물의 딥 미드나잇블루 모델, 그리고 잎사귀에서 영감을 받은 그린을 통해 아름다운 정원에서 만나게 되는 자연의 컬러를 담아냈다. 그런데 라도가 원한 자연을 담은 컬러는 세라믹으로 구현하기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특히 그린의 잎사귀 무늬는 초록색 자개를 이용했고 신비로운 패턴 덕분에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 정원에서 모티프를 얻은 라도 트루 씬라인 네이처 컬렉션그린 컬러 중 라도의 트루 씬라인 네이쳐 컬렉션 못지않게 시각적으로 강렬한 제품이 글라슈테오리지날의 식스티즈다. 1960년대 자사가 발표했던 오리지날 모델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빈티지한 모델이다. 이번 그린 다이얼의 식스티즈는 1960년대 사용했던 오리지널 기계와 기법을 이용했다. 일명 ‘데그라데(D?grad?) 효과로 마치 바깥쪽으로 패턴이 퍼져 나가는 듯한 유니크한 텍스처가 매력적이다. 이것은 독일 포츠하임에 자리한 다이얼 업체에서 만들어낸다. 매끈한 실버 플레이트에 60t의 압력을 가해 기요셰 스탬프로 패턴을 다이얼에 새기는데, 사람 손을 사용해 기계의 압력을 전달하기 때문에 각각의 제품은 패턴이 조금씩 다르다. 갈바닉 베이스 코트를 올리고 컬러 래커를 입힌 후 마지막으로 특별한 스프레이 건을 이용해 측면에 블랙 래커를 입힌다. 이때도 스프레이건의 각도에 따라 컬러가 변해, 각기 다른 초록색을 띠게 된다. 글라슈테오리지날 식스티즈는 제품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패턴을 지닌다 타겟 프로덕션의 대명사인 MB&F는 HM7 아쿠아파드의 그린 버전을 소개했다. 창립자 막시밀리언 뷔서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떠난 바닷가 여행에서 만난 해파리가 영감이 된 모델이다. 중앙의 투르비용을 중심으로 시, 분 인디케이션은 호수의 잔물결을 보는 듯 퍼져 나간다. 한편 플라잉 투르비용은 방사 형태이자 3차원 구성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다이버 워치 형태이지만 실제 방수는 50m로 제한해 그 성격을 명확히 했다. 티타늄 케이스에 그린 사파이어 크리스탈 베젤을 써 업계 유행색인 그린에 동참하고 있다. 센터 플라잉 투르비용에 그린 사파이어 크리스탈 베젤을 조화시킨 MB&F HM7 아쿠아파드 글 구교철
SECRET GARDEN IN UTOPIA , 엘리시안.. 2018-06-20
SECRET GARDEN IN UTOPIA엘리시안 강촌영국 잉글랜드 윌트셔에 있는 스투어헤드 정원이나 프랑스 베르사유 궁 정원, 그리고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인 이시카와 현 카나자와시의 켄로쿠엥 등은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에는 상대적으로 좋은 궁과 정원들이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담양 소쇄원, 보길도 부용원, 경북 영양 서석지, 그리고 창덕궁 비원 등 한국의 미를 느낄 수 있는 정원은 많이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멋지고 화려한 해외 골프장만큼이나 우리나라도 이에 밀리지 않을 골프장이 여럿 있다. 엘리시안 강촌도 그 중 하나다.자연과 하나된 엘리시안 코스엘리시안의 모든 코스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컨셉트에서 출발했다. 사람의 출입조차 거부하는 지나친 울창함이 아닌, 사람과의 소통을 위해 단아한 숲과 북한강의 절경이 함께 어우러진 코스를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컨셉을 이뤄 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한국 골프장 설계의 대가라 불리는 임골프디자인 임상하 소장이 맡았다. 신라, 뉴서울, 코리아, 화산 CC등 국내 70여 개 이상의 코스를 디자인한 그는 자연 상태를 최대한 살리면서 샷밸류를 높이는 코스를 이끌어 낸다. 엘리시안 강촌에도 자연은 거스르지 않으면서 산악지형 골프장에 생명을 불어 넣는 그의 솜씨가 제대로 반영되었다. 그의 손 끝에서 탄생한 엘리시안의 봄은 세상 모든 꽃이 피고 지는 식물원을 닮았다.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 조팝나무, 영산홍이 릴레이 하듯 꽃을 피워서 골퍼들을 반겨준다. 수령 50년 이상의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아름다운 벚꽃길을 선사하는 밸리코스(Valley Course) 3번 홀이나 수줍은 새색시의 모습을 닮은 영산홍 군락의 레이크 6, 7번 홀은 골프장에도 미슐랭 가이드가 있다면 3스타를 받아 마땅할 정도다. 이 모든 특성을 담고 있는 27번 홀에서는 자연을 벗 삼아 플레이하기 더없이 좋은 환경을 느낄 수 있다. 해저드마저 아름다운 PAR3 2번홀자연림을 최대한 살린 밸리코스는 잘 정돈된 정원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샷을 하는 동안 양 옆의 수목들은 오랫동안 돌봐왔던 나무들처럼 익숙하고, 곳곳에 있는 해저드마저 위협이 되기보다는 더욱 아름다움을 뽐내고자 그 자리에 있는 듯하다. 편안한 1번 홀을 지나고 온 2번 홀, 레귤러 티 기준으로 153m. 왼쪽에 해저드가 있고 티 그라운드와 그린의 고도차이가 엄청난 곳이다. 하지만, 저 멀리 엘리시안 콘도까지 한눈에 보이는 경치가 장관인 데다 좌우측에 핀 영산홍이 코스를 붉게 물들이고 있어서 황홀하기까지 하다.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잔잔한 바람 때문에 정확한 거리보다는 한 클럽 정도 넉넉히 잡고 스윙하고 티그라운드 좌측을 이용해서 그린의 우측을 보고 공략하는 것이 온그린에 효과적이다. 파3 2번 홀. 해저드마저 아름답다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레이크 PAR5 6번 홀노먼 맥클린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1993년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한 형제이지만 서로 다른 성향의 두 아들에게 낚시로 인생을 가르치는 이야기에서 강은 영화의 아름다운 배경이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형과 동생을 하나로 이어 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PAR5 6번 홀은 영화 속 강을 닮은 홀이다. 6번 홀을 라운드하면서 영화 속 형처럼 주어진 코스를 이해하고 자신의 능력에 맞게 클럽을 선택하여 플레이 할 수도 있고, 동생처럼 자유분방하고 파워풀하게 공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린에 올라서 멋진 퍼팅을 하고 함께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내려 올 수 있는 그런 멋진 홀임을 느낄 수 있다.파5 6번 홀아름다운 꽃밭이 있는 티 그라운드에서 보면 456m의 짱짱한 코스가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공을 티그라운드 중앙에 꽂고 나서 캐디에게 어느 곳을 봐야 하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나서 클럽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나서 스윙한다. 굿샷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뭐가 잘못된 거지? 백스윙이 너무 가파르게 올라갔나? 다운스윙에서 너무 몸에 붙어서 내려왔나? 아니야, 임팩트때 너무 클럽이 열렸어... 등 수많은 문제를 생각한다.하지만, 코스 공략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건 에이밍(Aiming)과 얼라인먼트(Alignment)가 아닐까 한다. 에이밍은 플레이어가 셋업에서 목표를 향해 방향을 설정하는 것. 이때 감각에 의존만 한다면 아무리 좋은 스윙을 가지고 있더라도 해저드에 빠지거나 엉뚱한 샷이 나올 수 있다. 얼라인먼트는 공과 목표를 잇는 선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 가상의 선에 양쪽 발끝, 골반, 양 어깨가 이어주는 선이 목표에 이어지도록 한다면 굿샷을 기대해도 좋다.파5 6번 홀에 위치한 레이크가장 모험심 넘치는 PAR4 힐코스 5번 홀엘리시안 강촌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코스로 북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뵈는 절경을 만나는 대신, 거센 바람과도 맞서 싸워야 하는 모험적인 코스다. 뱃머리를 닮은 7번 홀 티 그라운드에 서면 한눈에 북한강과 클럽하우스 콘도미니엄까지 한눈에 보인다. 어찌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갈 수 있으랴. 캐디는 이미 익숙한 듯 셔터를 눌러 준다. 가장 놀라운 홀은 평소에는 열지 않지만 백티에서는 수림이 우거진 계곡을 넘기는 모험적인 티샷이 필수인 5번 홀이 시그니처 PAR4다. 롱게임에서 항상 중요한 것은 티샷의 페어웨이 안착률이다. 거리가 많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페어웨이를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 왼쪽이 OB이기 때문에 티 그라운드 왼쪽에서 페어웨이 중간을 노리는 것이 안전하다. 너무 우측으로 밀린다면 180m 이상의 아이언 샷을 해야 되고 2단 그린이 되기 때문에 파 세이브를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파4 힐코스 5번 홀. 모험심을 발휘해야 한다본격적인 복합 리조트, 엘리시안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일본 나가노 스키장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서 제일 부러웠던 건 시설이나 설질(雪質), 음식 따위가 아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 격의 어린 학생들에게 스키를 가르치는 모습이었다. 엘리시안 강촌은 초급 2면, 중급 6면, 상급 2면 등 총 10면의 스키 슬로프와 30평 210실, 대형평수 12실을 포함한 222실은 물론 사우나, 편의점, 레스토랑, 그리고 연회룸 14실 등 완벽에 가까운 부대시설을 보유 중이다. 수준급의 편의시설에 경춘선 백양리 역에 셔틀까지 마련해 접근성까지 높였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에서도 손주에게 스키를 가르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회원제 27홀을 비롯해서 스키 슬로프를 활용한 퍼블릭 10홀, 골프연습장 32타석을 보유하고 있으니 국가대표급 선수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시설이랄 수 있겠다. 엘리시안 강촌 리조트 전체 모습아름다운 봄날의 기억, 웨딩트렌디 세터들이나 핫한 연예인들이 선호하는 소규모 하우스 웨딩, 정원이 있는 곳에서 파티형식으로 가족과 소수의 절친한 지인들만 참여해서 진행되는 스몰웨딩으로 겉치레 없이 속이 꽉 찬 특별한 결혼식을 원한다면 이곳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연회를 담당하는 이철우 지배인은 “60만평의 드넓은 정원에서 장소의 제약 없이 스몰 웨딩을 할 수 있으면서도, 날씨에 따라서 연회장이나 클럽하우스 레스토랑 등 실내 예식으로도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이야기 한다. 예년에 비해서도 2배 이상 증가했지만 그동안 완벽하게 예식을 진행해 온 자부심을 볼 수 있었다.야외웨딩. 동화 속 한 장면을 만들어준다눈과 입으로 봄을 느끼는 건강밥상강촌, 춘천의 전지역의 음식하면 계절을 막론하고 닭갈비와 막국수를 생각할텐데, 강원도 봄철 식재료를 이용한 수많은 음식들 중에서 엘리시안 강촌에서는 다채로운 봄나물을 이용한 음식이 눈에 띈다. 클럽하우스에서는 이 음식을 꼭 드셔보시길. 봄을 입안 가득 품은 게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씀바귀 뿌리, 취나물, 냉이, 참나물, 원추리 등의 나물류와 초석잠, 매실, 돼지감자 장아찌, 게다가 곰치쌈으로도 모자라 우렁이 들어간 냉이된장찌개와 주꾸미 숙회까지 한가득 담아낸다. 클럽하우스에서 즐기는 봄나물의 향연북한강과 삼악산, 검봉산 등 유명한 산세와 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주변환경과 어우러지는 엘리시안 강촌은 우수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기업연수와 각종 포럼을 완벽하게 진행할 수 있고 가족단위의 힐링 여행에 적합하고 함께 걸으면서 연인이니 가족임을 더욱 느끼게 할 수 있는 산책로는 반드시 방문할 것을 권한다. 또한, 북한강 주변의 우수한 자연경관을 잇는 주변 관광지 특히 남이섬, 쁘띠프랑스, 아침고요수목원 등과의 다양한 콜라보로서 이 지역이 관광 명소로 더욱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느낄 수 있다.엘리시안 강촌 컨트리클럽 전체를 내려다 본 모습글 최종원 사진 최종원, 엘리시안 강촌
동남아시아 리더를 꿈꾸는 베트남의 수도 , 하노이를 가.. 2018-05-23
동남아시아 리더를 꿈꾸는 베트남의 수도하노이를 가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호치민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 역동적인 도시다. 오토바이를 타고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흔적, 눈부신 경제 성장의 단면들을 돌아보았다.하노이는 역동적인 도시다. 거리를 누비는 수많은 오토바이와 건설 중인 높은 건물들은 하노이의 빠른 발전 속도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는 호치민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호치민에 비해 무게감이 있다. 남북으로 갈리었던 베트남은 1975년 북베트남에 의해 통일이 되었다. 아마도 하노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베트남을 통일했다는 우월감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이런 자신감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구경을 나서려고 하는데 청소부와 마주했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당당하게 손을 들어 멋지게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청소부가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재미있는 상황은 처음인지라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그런 나에게 빨리 찍으라고 성화를 부린다. 그래서인지 하노이 사람들에게서 느낀 첫인상은 무척이나 당돌하다는 것이었다. 하노이가 특별하게 느껴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랩 오토바이를 타고 관광에 나서다하노이도 여느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교통 체증이 심하다.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데는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베트남의 가장 대중교통 수단인 오토바이도 거리에 넘쳐난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돌기로 했다. 안전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장 빠른 이동수단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에는 우버와 그랩이 오토바이 택시 영업을 하고 있다베트남에는 우보(Uvo)와 그랩(Grab)이 오토바이 영업을 한다. 영어를 하는 운전기사를 구하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호텔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그랩 오토바이 운전자와 흥정을 했다. 물론 말이 통하지 않으니 지도에 표시된 곳을 알려주고 계산기에 금액을 찍으라는 시늉을 했다. 내가 갈 곳은 대통령 궁을 포함해서 총 일곱 군데였다. 오토바이 기사가 지도를 한참 살펴보더니 220,000이란 숫자를 찍는다. 우리 돈으로 치면 약 11,000원 정도다. 예상보다 훨씬 싼 가격이라 더 흥정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해서 가장 빠르고 실속 있는 하노이 여행이 시작되었다. 베트남인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청소부도 사진을 잘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한다도심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고층빌딩들이 많다. 경제 도시라 불리는 호치민 보다도 건물이 많아 보였다. 현대와 기아 자동차도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영업용 택시는 대부분 현대 i20과 기아 모닝이다. 지나는 길에 하노이 대우 호텔을 보았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대우 김우중 회장이 베트남의 미래를 예견하오래전에 지은 호텔이다. 대우 김우중 회장이 세운 하노이 대우 호텔 롯데빌딩 앞을 현대와 대우차가 달리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높다란 롯데 건물도 보인다. 롯데는 중국에서 사드 문제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결국 작년에 철수를 결정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시장을 포기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중국 정부의 집요한 압력 때문에 더 버틸 재간이 없었다. 반면 베트남에서는 승승장구하고 있어 중국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많은 한국기업이 사드 사태 이후에 베트남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있다. 그동안 급격한 인건비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이 낮아진 원인도 있지만, 한국 기업을 대하는 중국 정부의 반응이 예전에 비해 싸늘해졌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를 위해 각 성의 관리들이 모두 나섰지만, 요즘은 첨단산업이 아니면 아예 투자조차 받아주지 않는다.       호수에서 유래된 이름 하노이하노이의 많은 건물이 유럽식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도로 주변 건물들이 대부분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탓이다. 하노이의 습한 기후는 중국의 남부와 비슷하다. 중국 남부에서 시작되는 산악지형이 하노이까지 이어진다. 여름은 덥고 겨울에는 쌀쌀하다. 일 년 내내 더운 호치민과는 전혀 다른 날씨다. 건물들을 크지 않고 좁게 지은 것은 습도 높은 이곳 기후를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 식민지시대에 지어진 건물들. 습기가 높아서 좁게 지어진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성 요셉 성당. 프랑스는 선교사들을 핍박했다는 이유로 베트남을 침공했다 하노이 시내 어딜 가나 외국 관광객들이 무척 많다. 개방 후 외국 기업들의 투자가 늘어나고 외국인의 왕래도 많아졌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그렇지만 요즘 중국과의 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태롭기만 하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영해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이 문제로 베트남은 물론 필리핀, 인도네시아와도 격돌하고 있다.   옛 프랑스 총독부 건물 오페라 하우스. 멋진 건물이다 프랑스식의 대형 건물들은 대부분 정부 기관이나 외국 대사관으로 쓰이고 있다. 처음 찾은 곳이 프랑스 총독 건물로 대단히 웅장하고 멋지다. 한때 북베트남의 지도자였던 호치민이 집무실로 사용하던 건물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바로 앞에는 호치민의 묘지가 있다. 그는 조국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1969년 생을 마감했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뼈를 화장한 후 북부, 중부, 남부에 골고루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베트남 국민들은 그를 영원히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미라로 남겼다. 내가 방문을 했을 때는 방부제 처리를 위해 러시아로 옮긴 상태였다. 정기적으로 러시아로 보내 이런 처리를 한다고 한다. 호치민은 평생을 청렴하게 살았다. 그의 유산은 다 떨어진 구두와 양복 한 벌 뿐이었다.하노이라는 명칭은 2개의 강이 있는 도시라는 뜻이다. 호수의 도시로 불리 울 만큼 호수가 많다. 300개가 넘는 호수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시내 중심에 있는 호안끼엠 호수다.프랑스 총독 건물에도 작은 호수가 있다. 하노이는 호수의 도시다  중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 이 호수에서 발견한 검으로 중국을 물리친 후 호수에 돌려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호수 주변에는 많은 시민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언제 전쟁을 치렀던가 할 정도로 평화스럽다. 호수 남쪽에는 아름다운 프랑스식 건물들이 밀집해 있고 북쪽에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시장에서 팔리는 제품은 대부분 중국산. 메이드인 베트남 제품을 파는 매장도 보인다. 외국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들려보지만 아직 베트남에서 만든 제품은 그다지 다양하지 못하다. 그래도 견고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어 앞으로 경제 대국으로 발전할 여지가 크다. 호치민 묘소. 미이라 상태로 보존 중이다. 정기적으로 러시아로 보내 부패방지 처리를 한다 호치민의 집무실. 호치민은 평생 청렴하게 살았다 하노이에는 300개가 넘는 호수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호엔끼엠 호수 베트남에 불고 있는 한류 바람호수 옆에 큰 쇼핑몰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행사가 진행 중이다. 여기에 모인 젊은이들의 복장이 무척이나 도발적이다. 사회주의 국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세련되고 행동들도 역동적이다. 게다가 거리낌이 없다. 사진을 찍으려 하면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내과 의사라는 한 여성은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한 후 가방과 자켓을 벗어 도로 옆에 내려놓고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아마도 세계 최강 미국은 물론 중국도 이겼다는 자부심이 밑바탕에 깔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길거리에서 만난 하노이 처녀들. 사진을 멋있게 찍어 달라며 포즈를 취한다, 베트남의 신세대들은 도발적이다 메이드인베트남 제품을 파는 상점. 아직까지 상품 구성은 다양하지 못하다얼마 전에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베트남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군이 월남전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물론 이전에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도 간접적으로 전달한 적이 있다. 아마도 일본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다는 점을 의식한 것 같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반응은 의외로 시큰둥하다. 승전국인 베트남이 굳이 대한민국의 사과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계속 사과를 하겠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를 대단히 부담스러워했다. 물론 한국군이 자행했던 양민 학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베트남에서 굳이 받지 않겠다고 하는데 우리 정부가 계속 사과를 하겠다고 나서는 모양새가 좀 우습다. 베트남은 패전국이 아닌 승전국으로서 자긍심을 누리겠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다. 미국의 요청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은 1965년 비둘기 부대를 필두로 해병대와 맹호, 백마부대 등 32만 명이 투입되었다. 당시 한국군은 대단히 용맹스러웠지만 비전투원인 주민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등 반인륜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베트남에는 반한감정이 없다. 오히려 한국인들을 좋아하고 한국의 노래와 드라마에 푹 빠져있다. 특히 올 초에 중국 창조우에서 열린 AFC 23세 이하 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이끈 박항서 감독 때문에 한국에 대한 감정은 어느 때보다 좋다. 우리들이 히딩크 때문에 네덜란드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은 것과 같은 이치다. 의외로 한국에도 많은 베트남 여자들이 살고 있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 며느리가 된 베트남 여인들의 숫자가 중국보다 많다는 뉴스를 얼마 전에 들었다. 대한민국과 베트남은 유교 사상이 몸에 배어있어 어느 민족보다 쉽게 동화될 수 있다.  개방 선택 후 빠른 경제 성장전쟁기념관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무척 많다. 베트남은 우리처럼 무수히 많은 외침을 받은 나라다. 중국과 인접한 관계로 옛날부터 숱한 침략을 받았다. 기원전 111년 중국 한나라에 병합되어 서기 939년까지 천년 넘게 지배를 받았다. 기구한 역사의 시작이다. 한동안 잠잠하다가 1406년에 중국이 다시 쳐들어와서 1428년까지 베트남을 점령했다. 중국과의 대립이 뜸해진 후에는 프랑스 선교사를 박해했다는 이유로 1883년 프랑스군이 진격해 들어왔다. 결국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무척 많다. 미국과 싸워 이긴 베트남을 보고 싶은 심정은 누구나 같다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이번에는 일본이 쳐들어왔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여 독립을 이루는가 싶었지만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반도(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1946년부터 다시 전쟁에 돌입한다. 8년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1954년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북부에는 호치민의 베트남 민주 공화국이, 남쪽에는 미국이 지원하는 베트남 공화국이 세워진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북베트남을 공격하면서 다시 오랜 내전을 겪는다. 이런 처절한 투쟁의 역사를 지닌 나라이기에 베트남 사람들은 대단히 강한 투쟁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대단히 호전적이다. 전쟁 박물관. 베트남은 숱한 외세의 침략을 받았다중국은 큰소리를 치지만 베트남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1979년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했다가 바로 철수를 했다. 베트남이 중국이 지원하는 캄보디아 정부를 와해하고 친 베트남 정부를 세운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그러나 전쟁을 오래 끌면 불리하다고 판단해 군대를 철수시켰다. 무엇보다 베트남군의 저항이 격렬했기 때문이다. 미군을 굴복시킨 베트남군의 게릴라전에는 중국군도 속수무책이었다. 미국 LA 오렌지 카운티에는 베트남 촌이 형성되어 있는데, 베트남 갱들은 어느 지역 조직보다 잔인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숱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기에 거칠 것이 없다. 그래서 흑인 갱들도 베트남 갱들은 건드리지 않을 정도다. 전쟁기념관 앞에 세워진 레닌 동상. 호치민은 레닌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다전쟁 기념관 앞에는 레닌의 동상이 서있다. 호치민이 가장 염원했던 것은 레닌식의 사회주의 건설이었다. 그의 뜻을 받들어 북베트남은 1975년 베트남의 통일을 이룩하여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다. 그러나 레닌의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사회주의는 퇴보를 거듭해 국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베트남은 1986년 도이모이 정책을 기반으로 개방을 시작하여 중국식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베트남의 경제는 매년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7년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은 6.4%. 대한민국의 제일 큰 투자국이 베트남이다. 우리나라의 삼성과 LG가 베트남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특히 삼성 휴대폰 하나가 베트남 수출의 20%를 차지할 정도이니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베트남은 인구 9천5백만 명 중 절반 이상이 20대의 젊은이다. 초고령화 시대로 들어서면서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우리와 일본 처지에서 보면 부럽기만 하다.길거리에는 LG와 삼성 광고판이 즐비하다  마을을 관통하는 기찻길, 베트남의 철도는 협궤다  1천년 넘는 역사의 대학, 문묘베트남에도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대학이 있다. 공자의 학덕을 기리고자 1070년에 리타인동 황제가 세운 베트남 최초의 대학인 문묘로, 공자묘라고도 한다. 베트남도 우리와 같이 오랜 기간 유교를 국교처럼 여기고 공자를 숭상해 왔다. 베트남에는 아직도 유교 문화가 깊이 뿌리박혀 부모를 공경하고 가족들 간의 우애를 중시한다. 정작 공자의 사상이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는 푸대접을 받고 있지만 한국과 베트남에서 꽃을 피웠다. 문묘 안에는 15세기부터 2년에 한 번씩 치러졌던 과거시험의 합격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이런 역사가 있어 대학생들이 졸업사진을 찍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베트남이 동남아시아의 보잘것없는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다.하노이는 하루가 다르게 높은 빌딩이 늘어나고 있다베트남 최초의 대학인 문묘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갈증이 나 요셉 성당 앞 길거리 카페에서 음료수를 주문했다. 목욕의자에 앉아 커피를 즐기는 하노이 시민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그런데 마시고 난 유리컵을 프라스틱 통 안에 한번 집어넣었다가 꺼낸 후 다시 음료수를 부어서 내어 준다. 플라스틱 통 안의 물은 한 번도 교체하지 않고 온종일 쓰는 것 같다. 이걸 과연 마셔도 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길거리에 목욕의자를 늘어 놓으면 카페가 된다베트남에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성당이 있다. 프랑스가 베트남에 진출하면서 선교사들이 대거 들어왔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침공한 구실도 선교사들이 박해를 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연유로 프랑스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건물뿐 아니라 빵 문화도 깊게 뿌리내렸다. 베트남은 세계 최대 쌀 생산국이지만 아침 식사를 빵으로 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점심은 롯데리아에서 해결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점심때가 훌쩍 넘어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롯데리아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절로 발 길이 옮겨졌다. 안으로 들어서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손님들로 북적였다. 우리의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길거리 이발소 태국 춤을 추는 베트남 어린 아이들. 베트남 신세대들은 전쟁의 참화를 모른다오토바이가 많다 보니 재미있는 풍경도 많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을 위한 카페와 식당, 그리고 세차장이 많다. 길거리 이발사도 색다른 풍경이다. 우리네 70년대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어느 나라나 비슷하지만 베트남도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 또한 치맛바람도 대단하다. 하노이의 한 예술극장에 모인 엄마들의 복장이 한눈에 봐도 고급스럽다. 베트남 엄마들의 치맛바람도 거세다 오토바이 세차장은 베트남에서 괜찮은 사업에 속한다 베트남도 여느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 아이들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어릴 때부터 외국기업이 운영하는 유치원에 등록하고 미국 유학을 가는 것은 기본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가장 큰 문제는 관리들의 부정부패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업을 하려면 정부나 관공서의 공무원들과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 현대 자동차가 중국에서 베이징을, 삼성이 베트남에서 하노이에 자리를 잡은 것도 중앙정부의 지원을 얻고자 하는 바가 크다. 하노이에서 만난 베트남 젊은이들의 꿈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처럼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큰돈을 가장 빨리 벌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식민지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은 대부분 관공서로 쓰이고 있다 베트남 젊은이들의 꿈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베트남 젊은이들의 꿈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글 사진 양인환 
아메리칸 오리진 컨티넨탈과 부커스 2018-05-17
아메리칸 오리진컨티넨탈과 부커스전통 세력 블렌디드 위스키와 이에 맞서는 신흥 세력 싱글 몰트 위스키는 양강 구도를 형성한 지 오래. 최근 여기에 더해 새로운 조류가 생겨났다. 저 멀리 미국에서 태평양을 건너온 버번위스키다. 그중에서도 선택받은 자들만이 즐길 수 있었던 버번, 부커스를 마셨다. 부커스가 목구멍을 넘어가자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차가 있었다. 링컨 컨티넨탈이었다.라이징 스타, 링컨미국 포드의 고급차 브랜드 링컨(Lincoln). 지난달 편집부가 진행한 플래그십 기획 기사에는 끼지 못한 브랜드다. 엄연히 기함 세단 컨티넨탈(Continental)을 보유 중인데도 말이다. 아시아, 유럽 고급 세단들의 흥겨웠던 파티에 자동차 대국 미국이 함께하지 못한 건 컨티넨탈의 전륜구동 기반 사륜구동 시스템 때문이었다. 모름지기 고급차는 뒷바퀴를 굴려야 한다는 편집부의 이유 있는 고집을 꺾는 덴 실패했지만, 링컨은 요즘 시장에서 보란 듯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16년 북미 국제 모터쇼에서 화려한 부활을 알린 컨티넨탈은 국내 출시 직후 링컨 브랜드 월별 판매량 1위를 찍는 기염을 토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장의차 이미지가 강했던 링컨의 화려한 부활이다. 링컨은 컨티넨탈을 통해 1980년대까지 존. F. 케네디를 비롯한 미국 대통령의 의전차로서 그 위상이 하늘을 찔렀던 영광의 세월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낯선 위스키, 버번이렇듯 새로이 주목받고 있는 링컨이지만 아직 길 위에서 쉽게 만나긴 어렵다. 처음 버번(Bourbon)을 마셨을 때가 그랬다. 도로에서 운 좋게 링컨 차를 만난 격이랄까. 어릴 때부터 집안 장식장을 채우고 있던 발렌타인이니, 로얄살루트니 하는 블렌디드 위스키는 기자를 ‘양주’에 눈 뜨게 해준 장본인이었다. 이젠 트렌드라고 부르기도 힘들 정도로 안착한 싱글 몰트는 아예 몇 병 구비해놓고 나이트캡(잠을 청할 때 마시는 술)으로 즐기고 있다. 그런데 버번은? 술에 관심이 있더라도 깊이 있게 그리고 오래 즐겨온 게 아니라면 맛도 모르는 이가 태반일 거다. 나부터가 그랬으니까.버번위스키는 북미 지역 특산물인 옥수수와 호밀을 이용해 만든다. 보리, 쌀을 이용한 부드러운 위스키에 익숙한 우리에게 버번은 꽤 낯설 수밖에 없다. 술 많이 마시기로는 당당히 월드클래스를 자처하는 한국의 국민 술, 소주는 버번의 도수에 비하면 애교에 그친다. 43도는 기본, 45~50도에 달하는 것도 많다. 일반적인 스카치위스키에 비해 거친 맛도 버번의 특징. 그중 부커스(Booker's)는 강한 알코올과 거친 맛 뒤에 숨은 부드러움이 기억에 남는 버번이다.원숙미 품은 컨티넨탈컨티넨탈은 엄연히 링컨 브랜드의 우두머리 자리를 꿰찬 플래그십 세단이다. 현재로선 캐딜락 CT6와 함께 우리나라에 판매되는 미국 대형 세단의 대표 모델이다. 사실상 유럽산 세단이 평정한 우리나라이지만 신진 세력으로 부상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은 유럽산이 평정하다시피 한 위스키 시장에서 분투 중인 버번과 닮았다. 부커스를 들이켜면서 컨티넨탈이 떠오른 것 또한 이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배경, 어딘지 모를 낯선 인상······ 그러나 이러한 불리한 출신을 불식시키고 마는 완성도를 갖췄다는 데서 일맥상통한다. 인지도를 중시하는 첫차 구매 경향 때문에 링컨은 어느 정도 운전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오너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컨티넨탈도 마찬가지다. 비싸고 흔한 대형 세단 사이에서 특별함을 즐기고 싶은 이들의 타깃이 된다.컨티넨탈이 보여주는 실력은 다분히 플래그십스럽다. 일단 외모부터 가망 고객군을 넓히기 위해 스포티함을 버무리는 여느 대형세단들과 비교해도 기품이 있다. 클래식함이 넘치다 못해 뚝뚝 흘러내린다. 실내 역시 몇천만 원 더 비싼 세단 못잖은 디테일들로 뒤덮여있다. 인생 1막을 넘어 생애 전환기를 지나며 여유를 찾는 이라면 컨티넨탈의 내실 있는 기품에 흡족한 미소를 지을 거다.컨티넨탈의 최고출력은 393마력으로 라이벌인 CT6 3.6의 340마력을 크게 웃돈다. 비슷한 가격의 제네시스 EQ900(3.3터보 370마력)까지 포함시켜도 우월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동을 켤 때만 해도 차분히 일어나던 컨티넨탈은 페달을 깊숙이 밟자 묵직한 바디를 잊게 만들 정도로 빠르게 가속한다. 잠시 과욕을 부렸나 싶어 페달에서 살짝 발을 떼면 대형 세단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며 짐짓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간혹 거친 노면을 거르지 못하고 엉덩이까지 전달하는 건 약간 아쉽지만 이미 고득점을 한 탓에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10세대 컨티넨탈은 최상위 트림 프레지덴셜 모델이 8,940만원에 팔린다. 빠다코코낫 품은 부커스부커스는 미국 켄터키주의 짐빔(Jim Beam) 증류소에서 만든다. 짐빔 증류소의 5대 사장이었던 부커 노(Booker Noe)는 누가 증류소 집안 아들 아니랄까봐 술을 끔찍이 아낀 애주가였다. 6~8년 숙성된 짐빔 위스키 중에서도 최상급 원액을 그대로 병에 담아 소수의 지인들과 나눠 마셨는데 이것이 바로 은밀한 버번위스키, 부커스의 탄생 배경이다. 원액 그대로 담았으니 도수는 무려 60도를 웃돌아 럼, 고량주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발효통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63도 안팎이다. 부커스는 병마다 각기 다른 라벨을 붙여 숙성 연한과 도수를 표기하고 있다. 숙성통끼지 섞거나 물을 더해 도수를 맞추기 않는,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 위스키다. 맛을 보기 전에 향을 조심스레 맡는다. 날카롭게 피어오를 알코올이 분명 재채기를 부를 테니 말이다. 유리잔 바깥을 천천히 타고 오른 코는 어느덧 절벽을 넘어섰다. 이상한 일이다. 알코올의 화한 느낌은 전해지지만, 바닐라, 메이플 내음이 이를 덮어 버린다. 어릴 적 자주 먹던 과자 빠다코코낫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나던 냄새다. 술을 딴 지 오래 됐나 싶어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불과 엊그제 딴 새 술이라고.머리를 긁적이며 한 모금 마셔본다. 첫 느낌은 부드럽다고 느낄 정도로 오일리하다. 그러나 캐스크 스트렝스인지라 알코올이 혀를 재빠르게 훔치고 사라진다. 그 뒤로 버번임을 알리는 묵직한 매운맛이 입안 전체를 자극한다. 통후추 혹은 산초 같은 조미료를 혀에 바로 떨군 듯한 맛이다. 이 때문에 입천장은 잠시 얼얼해지기까지 하지만 부커스는 인고의 시간을 이겨낸 내게 달콤한 뒷맛을 선물한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버번위스키의 풍미와 다를 바 없지만, 거친 맛은 덜고 재료 본연의 캐릭터가 잘 전달되게끔 세팅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도 버번은 버번인 만큼 아무래도 위스키에 혀 좀 적셔봤다는 경력자들에게 어울린다. 젊은 고객보단 유행을 좇지 않는 원숙미를 갖춘 연령대가 어울리는 컨티넨탈처럼 말이다.지난번 오반 14년이 데일리 위스키라면, 부커스는 위클리, 혹은 먼슬리에 가까운 술이다. 불타는 금요일이나 월 마감을 끝낸 날에 입에 한잔 털어 넣기 딱 좋다. 하이볼로 유명한 일본 산토리가 짐빔 증류소를 인수한 탓에 일본에서 사는 게 부커스를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 구하려면 10만 원에 웃돈 몇 만원을 더 얹어야 가능하다.글 김민겸 기자 사진 포드세일즈서비스코리아, 에드링턴코리아
서울 남산 순환로와 페스타 다이닝 , 봄날에 간다 2018-05-17
서울 남산 순환로와 페스타 다이닝봄날에 간다답답한 서울 하늘 아래서도 청명한 날이 있듯, 서울에도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서울 남산 순환로다. 명동에서부터 소월길을 따라 국립극장까지 이어지는 길. 그 길의 끝자락에서 꽃처럼 예쁜 한식 한 상을 맛보았다.봄에 가장 좋은, 남산 순환로복작거리는 명동역 주변을 빠져나와 안중근의사기념관으로 향하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길은 곧 소월길을 따라 국립극장을 향한다, 악셀러레이터에 얹은 발끝엔 나도 몰래 힘이 들어간다. 큰 행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딱히 차 막힐 일이 없어, 바쁜 일상 속에 잠시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어 자주 찾곤 한다. 남산 순환로는 사계절 모두가 만족스러운 드라이브 코스. 봄날의 벚꽃과 여름의 짙은 녹음, 가을 단풍과 하얀 겨울눈이 내린 풍경 등 남산을 중심으로 계절의 변화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봄이면 흐드러진 벚꽃나무에서 벚꽃잎이 살포시 보닛 위로 내려와 앉는다.봄꽃을 만끽할 수 있는 남산순환로컨템퍼러리 한식 레스토랑, 페스타 다이닝풍광에 젖어 달리다 보니 어느새 다다른 국립극장. 맞은편엔 한국이 낳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인 타워호텔을 리노베이션해 지난 2010년에 문을 연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이 눈에 들어온다. 도심 속 리조트를 표방하는 이곳은 야외 수영장 ‘오아시스’로 유명한데 이름처럼 삭막한 서울 아래 단비 같은 핫플레이스 중 하나다. 창밖으로 오아시스를 바라볼 수 있는 ‘페스타 다이닝(Festa Dining)’은 고든 램지의 수제자로 유명한 스타 셰프 강레오의 노하우가 담긴 컨템퍼러리 한식 레스토랑. 2015년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의 식음 총괄 디렉터로 부임한 강레오 셰프는 ‘테이스트 오디세이’라는 미식 프로모션을 통해 최상의 식재료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 140여 개 시군을 누볐다. 그가 4만 5,000km에 달하는 여정을 통해 발견한 최상의 식재료로 개발한 40여 가지 메뉴를 페스타 다이닝에서 선보인다. 180석 규모의 페스타 다이닝은 크림색을 메인 컬러로 구성, 우아한 대리석 테이블과 웜그레이 색상 가죽의자로 럭셔리한 분위기를 낸다. 인테리어의 하이라이트는 6m 높이에 달린 샹들리에. 천장을 가득 메운 크리스탈 비즈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하다. 레스토랑 앞으로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주차가 편리하며 발레 주차도 가능하다.크림 컬러의 페스타 다이닝 인테리어꽃같이 아름다운 대접, 한상 차림같은 값이면 상대적으로 한식은 양식보다 만족하기 쉽지 않다. 익숙한 맛이기에 기대치가 더욱 높은 탓이다. 페스타 다이닝이 추구하는 컨템퍼러리 한식은 맛은 물론 보는 재미가 훌륭하다. 메뉴 하나하나에 지역 이름을 넣은 이유는 ‘좋은 요리는 좋은 식재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이 귀중한 요리를 장인이 정성스레 만든 식기에 담아내어 봄날의 꽃같이 아름다운 한상 차림을 완성한다.오찬과 찬합으로 구성된 런치는 순서대로 나오는 코스가 아닌, 한상차림이다. 아내와 함께 주문한 메뉴는 오찬 선과 찬합 진. 먼저 오찬 선은 장충동 족편과 금산 산야초 겉절이, 서산 대하 탕평채와 홍시소스, 남산 한우 등심구이로 반찬이 구성된다. 여기에 산 5-5 골동반상이 나오는데 산 5-5는 페스타 다이닝의 주소이고 골동반(骨董飯)은 비빔밥의 옛말이다. 전통적인 비빔밥의 느타리버섯, 도라지, 애호박, 취나물, 시금치 등 고명을 프랑스 음식 발로틴(다진 고기나 생선, 야채를 단단히 말아 삶은 것)처럼 동그랗게 만다. 이것을 1.5cm 두께로 썰어 찜통에 찐 뒤 밥 위에 얹으면 끝. 토마토로 맛을 낸 고추장을 소스로 제공하는데 텁텁하지 않은 감칠맛을 더한다. 익숙한 듯 낯선 비빔밥이 한우 등심구이 같은 반찬과 잘 어우러진다. 후식으로는 개성약과와 우유아이스크림이 나온다.개성약과와 우유아이스크림오찬 선 한상차림찬합 진은 커다란 반합 형태로 서빙되며 단마다 나눠진 음식이 눈을 즐겁게 한다. 득량만 귀어회와 볏집 훈연회, 치악산 큰송이 버섯 떡갈비 등을 반찬으로 해남 연잎 밥상이 차려진다.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드는 연잎밥에 송이버섯의 풍미가 가득한 떡갈비의 궁합이 마음에 든다. 후식으로 나오는 진양콩 두유 크림블레와 라즈베리 소르베에서 한식과 양식을 오가는 강레오 셰프의 진가를 엿볼 수 있다.진양콩 두유 크림블레와 라즈베리 소르베찬합 진 한상차림 페스타 다이닝 Festa Dining주소 서울 중구 장충단로 60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페스타동 1F전화 02-2250-8170운영시간 11:30~22:00(브레이크 타임 15:00~18:00)가격 (런치) 찬합 선, 4만 8000원, 찬합 진 5만 8000원, 오찬 선 5만8000원, (디너) 정찬 11만 원, 만찬 15만 원 주차 주차 가능, 발레 서비스 유료 제공홈페이지 www.banyantreeclub.com글, 사진 최종인(여행칼럼니스트)
유러피언 감성을 담은 히팅 디바이스 , 글로 2018-05-02
유러피언 감성을 담은 히팅 디바이스글로와 함께하는 상쾌한 드라이브  차에 냄새가 배지 않고 재가 떨어지지 않는 글로! 자동차 마니아와 청결한 드라이브를 원하는 소비자가 애용하는 이유다.  애스턴마틴, 롤스로이스, 벤틀리 등 세계적인 럭셔리 자동차의 고향 영국. 럭셔리카의 군더더기 없는 외관과 실용적인 실내장치도 영국인들의 성향이 반영된 결과다. 브리티쉬 아메리카 토바코(BAT)의 히팅 디바이스 ‘글로’ 역시 이 같은 특징이 살아있는 영국 출신이다. 심플하고 매끄러운 보디의 깔끔함은 벤틀리의 측면을 떠올리게 하며, ‘하나의 버튼, 하나의 디바이스’라는 제품의 특징에도 영국인이 선호하는 멋과 실용성을 담았다. 아울러 혁신적인 서라운드 시스템으로 재가 없고 냄새가 없으며 솔질 몇 번으로 청결함을 유지할 수 있어 관리도 쉽다.  담배냄새와 충전의 걱정을 덜다최근에는 자동차 마니아와 편리함을 중요시하는 사용자를 중심으로 흡연 디바이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의 다양한 장점이 드라이브를 즐기며 사용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를 태우는 가장과 자동차를 아끼는 마니아들은 우선 내장재에 밴 담배 냄새가 걱정이다. 찌든 담배 냄새는 중고차 가격을 떨어뜨리는 이유로도 작용한다. 하지만 글로라면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글로는 담배 스틱을 태우지 않고 기기 내부에서 가열하기 때문에 냄새가 적다. 따라서 흡연시 동승자를 배려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장재에 담배냄새가 배지도 않는다. 또한 담뱃재가 없는 까닭에 시트에 재나 불씨가 떨어질 염려도 없다. 차량을 깔끔하게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제품으로 꼽는 이유다. 흡연 후 작은 꽁초만 기기에서 빼면 되므로 뒤처리도 간편하다. 아울러 일체형 기기로 휴대성이 좋고 차량의 USB를 이용해 충전도 가능한 덕분에 장거리 드라이브와 캠핑에도 배터리 걱정이 없다. 한번 완충 시 한 팩을 다 태울 수 있을 정도로 배터리 용량도 넉넉하고 충전기를 따로 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 글로는 블루, 블랙, 실버, 골드, 핑크 총 5가지 색상으로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여름에 시원한 맛을 제공하는 부스트와 스위치이번 여름에 시원한 맛을 즐기고 싶다면 부스트(Boost)와 스위치(Switch) 2종을 사용해 보자. ‘부스트’는 기존 던힐 네오스틱 스무스 프레쉬의 부드러운 풍미와 시원함을 담았고 입안에서 터지는 캡슐을 통해 더욱 강력하고 진한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스위치’는 던힐 고유의 풍부한 토바코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제품으로, 필터 내 캡슐을 터뜨리는 동시에 청량한 목 넘김을 더한다.‘부스트’는 부드러운 풍미와 시원함, ‘스위치’는 던힐 고유의 풍부한 토바코의 맛 그리고 캡슐이 입안에 진한 상쾌함과 청량한 목 넘김을 더한다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18-05-02 10:02:44 카라이프 - 자동차상식에서 이동 됨]
버스 혹은 기차로 난닝에서 하노이까지 2018-04-20
버스 혹은 기차로난닝에서 하노이까지쿤밍에 간 김에 육로로 베트남 하노이에 가기로 했다. 광시성 성도인 난닝에서 핑샹까지 고속버스로 3시간 반을 달린 후 다시 택시를 20분 타야 국경에 도착할 수 있다. 베트남 국경에서 하노이까지는 무려 6시간이 걸렸다. 국제선 열차를 타고 중국으로 돌아오는 길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중국의 운남성(云南省)과 광시 좡족자치구(广西壮族自治区)는 베트남과 마주하고 있다. 이 지역의 분위기는 중국 내륙과는 전혀 다르다. 중국이라기보다 마치 동남아시아에 온 느낌이랄까. 쿤밍(昆明:곤명)에서 일을 보고 지인이 살고 있는 광시성의 성도인 난닝(南宁)에 들렀다. 그동안 난닝을 변방의 작은 도시 정도로만 생각해왔었는데 도심을 꽉 채운 높은 건물과 고층 아파트들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난닝은 광시좡족자치구의 성도이자 베트남으로  가는 관문이다. 난닝은 동남아시아로 통하는 관문으로 매년 아시안 박람회가 열린다. 중국이 지향하는 신 실크로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보니 난닝은 베트남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가 그리 멀지 않아 육로를 통해 갈 수 있으니 이 또한 매력이 아닐 수 없다. 기왕 이곳까지 왔으니 하노이를 가보기로 했다. 난닝에서 하노이로 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기차이고, 다른 하나는 버스다. 난 버스를 타고 베트남 국경과 맞닿아 있는 핑샹(凭祥)까지 간 후 걸어서 베트남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이것이 가장 재미있는 코스라고 여겨졌다.  육로를 통해 베트남 가기난닝에서 핑샹까지는 고속버스로 3시간 반이 걸린다. 길은 잘 닦여져 있었다. 험한 산길을 뚫고 끝없이 이어진 4차선 고속도로는 중국의 힘을 느끼게 한다. 중국은 세계적으로도 철도망이 가장 잘 깔린 나라다. 또한 전국을 연결하는 교통 인프라가 발달해 있다. 버스를 타니 물 한 병을 나누어준다. 난닝에서 출발한 버스가 한 번도 쉬지 않고 핑샹까지 내달린다. 계림에서 시작된 험난한 카르스트 지형은 난닝을 넘어 베트남 하롱베이까지 이어진다. 핑샹 톨게이트에 다다르자 완전 무장을 한 경찰이 올라타서 검문검색을 한다. 국경이 가까워졌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버스터미널에 내리니 베트남 글자들과 함께 환전상도 보인다.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도시인 핑샹은 작은 도시다. 핑샹은 생각보다 작은 도시였다. 국경도시인 만큼 베트남과의 교역이 활발해 규모가 상당히 클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상 밖이었다. 원래 여기에서 하루를 묵을 계획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핑샹에서 내리면 바로 베트남 국경일 줄 알았는데 택시를 타고 20여분을 더 가야 한단다. 택시를 잡아타고 베트남 국경으로 향하니 요이관(友谊关: 우의를 다지는 곳) 양쪽 길에 환전상들이 길게 늘어섰다. 요이관 안으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 방치된 채 서 있는 프랑스식 건물은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했을 때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요이관 안에 지어진 프랑스식 건물,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할 때 지어진 건물이다.중국 핑샹은 국경도시다. 상점마다 베트남 글자와 환전 표시가 눈에 띈다핑샹의 거리 풍경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요이관에서 베트남을 보는 관광을 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통일전망대와 같은 곳이다. 중국과 베트남은 험한 산악 지형으로 이어져 있다. 요이관 정상에 서니 발밑으로 베트남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이 나라의 전략적 요충지임이 한눈에 느껴진다. 실제로 1979년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할 때 이 길을 지나갔다. 중국 핑샹의 요이관,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관문이다. 베트남은 오랜 내전 끝에 1975년 통일국가를 이뤘다. 인접국 캄보디아는 킬링필드로 악명 높은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가 정권을 잡은 후 베트남과 국경 분쟁을 벌였다. 이에 베트남군은 1979년 1월 캄보디아로 진격하여 친 중국 정권인 폴 포트를 몰아냈다. 이전에 베트남은 중·소 분쟁에서 소련(현재의 러시아)을 지지해서 중국의 분노를 산 데다 캄보디아를 점령한 후 친 베트남 정권을 세워 중국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에 격분한 중국은 베트남군을 캄보디아에서 몰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베트남을 공격하기로 했다. 하지만 베트남의 북부는 험악한 산악지형인 데다가 미국과의 전투에서 풍부한 실전 경험까지 가지고 있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중공군은 막대한 피해를 보며 40km까지 전진한 후 베트남 정부에 자신들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했다고 판단하고 철군하기에 이른다. 중국에게는 상처뿐인 베트남 침공이었다. 베트남 국경 기다려도 움직이지 않는 버스중국 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하고 나니 멀리 베트남 출입국관리소가 보인다. 버스가 중국과 베트남 중간 지점에 섰다. 도로에 선이 있고 중국 글자로 322번 도로의 종착점이라는 표시가 보인다.중국과 베트남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중국 322번 도로의 종단점. 이 선을 기점으로 중국과 베트남이 갈라진다.중국과 베트남의 경계선, 왼쪽이 베트남 오른쪽이 중국이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몰려온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을 나가려면 배나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이렇게 걸어서 외국을 드나들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베트남 출입국관리소는 중국에 기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우람했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끝이었다. 중국과 베트남과의 경제력의 차이를 가는 곳마다 확인할 수 있었다.  베트남 국경의 버스 터미널중국 출입국 관리소에서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길. 이 길을 따라가면  베트남 출입국 관리소가 나온다. 드디어 베트남 출입국관리소.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약간 긴장이 된다. 입국 심사관이 내 여권을 몇 번이고 뒤척였다. 이 길을 통해서 베트남으로 향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호치민이나 하노이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비행기를 타고 간다. 출입국관리소 직원을 보면서 오래 전 파병 국군들과 총부리를 겨누었던 베트콩의 후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우리나라의 청룡과 맹호, 백마부대가 월남전에 참전해 혁혁한 전과를 올린 바 있다. 베트남을 통일한 북부 베트남은 당시 우리와는 적대적 관계였다. 아무튼 이런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 베트남 화폐는 모두 호치민의 얼굴이 인쇄되어 있다. 베트남 이민국에서 15일간 체류할 수 있는 스탬프를 찍어준다. 이제부터 베트남 땅이다. 한국과의 시차는 2시간. 출입국관리소에서 나오니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난닝에서 듣기로는 베트남 이민국에서 나오면 바로 하노이 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는데, 이민국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전기자동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금은 10위엔. 중국 돈도 사용이 가능했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니 조그만 코치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내가 생각했던 버스 터미널과는 거리가 멀었다. 갈 길이 제법 먼가보다. 하노이까지 40위엔을 달라고 했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바로 출발한다던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승객이 다 차야 출발하는 시스템이다.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는데도 자리가 채워지지 않자 승객들이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운전기사는 요지부동이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중국인들이었다. 승객들이 급하니 자동적으로 호객꾼이 되었다. 출입국 관리소 쪽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우리 버스를 타라고 권하는 호객꾼으로 변했다. 무려 한 시간 반을 기다린 끝에 출발하게 되었으니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치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베트남의 도로는 중국에 비해 훨씬 열악했다. 경제력의 차이가 실감났다. 중국 난닝에서 핑샹까지는 4차선 고속도로가 잘 다져져 있었는데 베트남 국경 도시인 랑손에서 하노이까지는 2차선 국도가 전부였다. 중국 난닝에서 핑샹까지 4차선 고속도로가 뚫려있다. 생각보다 험난했던 하노이 가는 길 버스 기사의 운전 솜씨는 무시무시할 정도다. 2차선 도로이다 보니 차가 무척 많이 밀렸다. 중간에 화물 트럭이 있으면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뒤를 따랐다. 반대편 차선에 오는 차가 없다 싶으면 쏜살같이 중앙선을 넘어서 달려 나간다. 꼬불꼬불한 산악지역이라 시야 확보가 쉽지 않은 데서 반대편 차선으로 나갈 때면 가슴이 철렁했다. 때로는 상대편에서 차가 달려와도 막판에 아슬아슬하게 차선을 변경하기를 반복했다. 마치 영화 추격전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운전기사가 스턴트맨 출신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중국보다 운전이 훨씬 거칠었다. 모든 자동차들이 비슷해서 거의 목숨을 내놓고 운전하는 것처럼 보여질 정도다. 출발하면서 시작된 경적 소리 역시 하노이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하노이 시내에는 오토바이 행렬들도 복잡하다. 랑손에서 하노이까지는 3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오후 4시경에 출발했으니 늦어도 7시 반에는 도착하리라. 베트남에 오기 전에 하노이에 도착하면 근사한 식당에서 쌀국수를 먹겠다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출발 할 때에만 해도 그게 가능하다고 믿었었다. 그런데 시간이 계속 지체됐다. 버스는 아무 곳에서나 서서 승객을 내려주고 또 태우기기를 반복했다. 그러니까 중국 국경에서부터 하노이까지 직행이 아니라 도중에 승객을 태우고 내려주는 특별한 버스였다. 국경을 운행하는 버스들은 모두 이런 식이다. 어느새 도로에 땅거미가 지고 있었고, 마을 인근에 다다르자 차가 엄청 밀렸다. 교통사고가 나 있었다. 오토바이와 승용차가 충돌한 현장은 끔찍했다.  버스 기사가 저녁을 먹겠다며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갈수록 태산이다. 식당은 중국 분위기가 물씬하다. 내 옆자리에 앉았던 폴란드 청년이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처음 오는 길인데 난들 알 수 가 없다. 베트남에선 영어도 안 통하고 중국어도 안 된다. 그런데 이 친구 말로는 자신은 차비로 30위엔을 내기로 했다며 자랑을 한다. 내가 바가지를 쓴 것이다. 폴란드 청년은 중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데, 베트남에 3개월 정도 머물면서 영어를 가르칠 예정이라고 한다. 참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했더니 용돈 벌이밖에 안 되기 때문에 돈을 모으지는 못한다고.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게 좋아서 지금까지 30여 개 나라를 돌아 다녔다는 그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아예 자전거를 가지고 베트남까지 왔다.  하노이 인근에 오니 4차선 고속도로가 나타난다. 베트남에는 고속도로가 전혀 없다고 들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베트남은 남북의 길이가 2,600km나 된다.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는 아직까지 고속도로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고속도로변에 포장마차처럼 맥주와 간단한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있다. 이곳에서 음료수나 맥주를 마시고 있다가 차가 오면 탑승을 하는 식이다. 일종의 간이 버스 정류장인 셈이다. 때로는 방향이 다른 승객들을 다른 버스에 넘겨주기도 한다. 나도 이곳에서 다른 버스에 팔려 넘겨졌다. 내가 가는 방향의 버스에 옮겨 타야 했다. 중국에서도 하던 식이다. 하노이에 도착하니 밤 10시 반. 6시간 이상을 길에서 허비한 셈이다. 그래도 무사히 도착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쌀국수는 건너뛰어야 했지만.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베트남 상인들. 중국 상품들을 나르고 있다. 허름한 역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기차하노이는 호치민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노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별도로 소개하기로 한다. 하노이에서 하룻밤을 잔 후 다음 다시 중국 난닝으로 가기 위해 기차표를 샀다. 기차 여행은 버스와는 또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차표는 하노이 역에서 샀는데 출발은 다른 역에서 한다고 한다. 약간 불안한 마음을 안고 출발 시간보다 여유 있게 가기아람 역으로 향했다.  하노이역. 국제선 열차는 하노이 북부 기아람 역에서 출발한다.중국 난닝에서 베트남 하노이를 달리는 국제선 열차.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탔는데 미터기가 정신없이 돌아간다. 한 번에 몇 바퀴씩 돌아가니 제대로 된 미터기가 아니다. 택시 요금이 720만동(약 3만5,000원)이 나왔다. 호텔 지배인이 알려 주기를 대략 250만동(약 1만2,500원) 정도 나올 거라고 했는데 3배 가까이 나왔다. 내가 택시 기사한테 250만동 이상 못 주겠다고 버티니 흥정이 들어온다. 500만동에서 400만동, 다시 350만동(약 1만7,500원)까지 깎았지만 바가지를 쓴 것이 분명하다.조그만 시골 동네에 있는 기아람 역 그런데 택시 기사가 내려준 곳이 허름한 동네다. 게다가 주변이 무척 어두웠다. 국제선 기차가 출발하는 곳이라고 하기엔 너무 허접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택시 기사를 기다리라고 하고는 역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을 해 보았다. 역무원이 국제선 열차가 출발하는 역이 맞다고 확인해 주었지만 그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주변에는 건물다운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시골 간이역 같은 곳에 국제선 열차라니……. 주변을 서성이다 보니 승객들이 하나 둘씩 몰려든다. 대부분 중국인들이다. 그제서야 안심이 된다.   9시에 개찰을 시작한다. 개찰구에서 베트남 검표원이 기차표와 함께 여권을 확인한다. 역 안에는 별도의 탑승장이 없고 불이 전혀 없어 캄캄하다. 시골 간이역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철길을 따라서 걷다가 어둠속에 서 있는 열차에 올라탔다. 기관차를 포함해서 총 5량의 열차가 대기하고 있다. 한 칸만 이용하고 나머지 열차의 문은 모두 잠겨진 상태다. 아마도 승객이 많으면 문을 열어 승객을 태우는 방식인 듯하다. 승무원들은 모두 중국인이다. 기차 역시 중국에서 온 것이다. 열차에 올라타고 나니 다시 신분증을 검사한다. 그리고 열차 운행 중의 주의사항에 대해 설명한다. 특히 베트남과 중국 국경을 통과할 때는 짐을 가지고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베트남에서 중국을 들어오기 위해 새벽에 2번이나 내려서 출국 및 입국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정각 9시 20분이 되자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출발한다. 기차는 어둠을 뚫고 산길을 달렸다. 중국과 달리 베트남의 철로변은 깜깜하다. 게다가 철로가 단선이다. 그래서 대부분 복선인 중국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열차는 모두 침대칸으로 침대가 3층으로 되어 있고 양쪽을 마주보는 배치로 한 칸에 6명이 탑승한다. 내가 탄 칸에는 나를 제외한 승객이 모두 중국인이었다.국제선 열차의 침대. 양쪽으로 3층 침대가 있다. 내 앞 칸에 자리잡은 난닝 출신의 중국인은 하노이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있다고 했다. 하노이에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요즘 중국 공장들이 대거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어서앞으로의 사업 전망이 좋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인건비가 급격히 올라 단순 임가공 제품은 이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발 빠른 중국 사업가들은 이미 오래 전에 베트남에 진출해서 사업 기반을 다져 놓은 상태다.  잠시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승무원이 “모두 일어나라”는 소리를 목청 높여 외친다. 베트남 국경에 도착한 것이다. 시간을 보니 새벽 1시 20분. 곤히 자야 할 시간에 일어나려니 무척 힘들다. 나는 간단한 백 팩 하나뿐이지만 일부 승객은 들기도 힘든 큰 가방을 2개씩이나 옮기고 있었다. 모든 짐을 들고 내렸다가 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한 후 다시 들고 올라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는 셈이다. 베트남 출입국관리소는 무척 허름했다. 건물이나 장비 모두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관리들의 눈빛만큼은 매의 눈처럼 매섭기만 했다. 특히 중국인 여행자들에게 대단히 거칠게 대했다. 중국인들이 베트남인들을 무시하는 데 맞서 베트남 사람들 역시 중국인들을 하인 취급하듯 한다. 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하고 나서 다시 기차에 올랐다. 피곤하기 짝이 없다. 올라타자마자 다시 잠이 들었다.  낭만과는 거리가 먼 험난했던 기차 여행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승무원이 다시 나를 깨운다. 통역이 필요하단다. 체코에서 온 승객이 한 명 있는데 화장실을 사용하고 싶단다. 그런데 화장실에 문제가 있어 소변만 가능한 상황이었다. 무슨 국제선 열차가 이 모양인지. 이런 상황을 설명하니 체코 아저씨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린다. 설명을 하는 나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이 중국 국경까지 참고 가는 수밖에…….  다시 잠이 들었는데 이번에도 승무원의 우렁찬 외침이 우리를 깨운다. 중국 국경에 도착한 모양이다. 다시 주섬주섬 짐을 챙겨 열차에서 내린다. 새벽 4시10분이다. 역 표지판을 보니 핑샹역이다.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향할 때 지났던 국경 도시다. 중국 출입국관리소는 베트남에 비해 깨끗하고 시설이 완벽하다. 중국인들이 베트남인들에게 큰 소리 치는 이유를 알 만하다. 핑샹에서 꽤 오랜 시간 머물렀다. 출발할 때 5량이었던 기차가 핑샹에서 20량으로 늘어났다. 국제선 열차가 이곳에서부터 국내선 열차로 바껴 난닝까지 운행하는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각 역을 지나면서 많은 승객들을 태웠다. 이곳에서는 일반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이 많다. 고속철이 편하고 빠르긴 하지만 운임이 비싸기 때문이다. 난닝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반이다. 잠자리가 불편한 침대 열차를 12시간 넘게 타고 왔으니 상당히 피곤하다. 게다가 새벽에 세 번이나 깨어야 했으니 정신이 몽롱했다. 중국과 베트남을 이어주는 낭만적인 국제 열차의 환상이 산산이 부서지는 하루였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출발한 국제선 열차는 난닝역에서 끝난다. 하노이역에서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었다. 베트남에도 미인들이 많다 글 사진 양인환     
판매, 정비 등 클래식카 모든 정보를 한 곳에, 크레비.. 2018-04-13
판매, 정비 등 클래식카에 관련된 모든 정보 한 곳에크레비 클래식카 컴퍼니  미국의 클래식카 시장은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고가의 클래식카부터 폭스바겐 비틀 같은 대중적인 모델,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모델과 미국에서만 판매되었던 핫로드 등 다양한 모델이 공존한다. 비교적 깊은 클래식카 역사와 낮은 문턱, 그리고 탄력적인 법령이 어우러졌기 때문. 클래식카 컴퍼니 크레비 역시 이 같은 환경에 힘입어 온갖 종류의 클래식카가 한데 모여 있다.   크레비 클래식카 컴퍼니 위치는 유로카 바로 건너편이다. 존 웨인 공항 근처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크레비는 판매와 유지 보수를 포함해 클래식카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취급한다. 대중적인 모델부터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모델도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오래된 모델까지 있다. 쇼룸만 둘러보면 일관성을 찾기 힘든 게 사실이지만 여러 세대, 여러 종류의 차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나름대로 특색 있다.  1920~30년대 차들은 고풍스러운 느낌이 가득하다전구가 개발되기 전 헤드램프  딱히 고급스러운 부분은 휴게 공간뿐이다. 철저하게 미국 취향으로 만들어진 이 공간은 오래된 소품으로 가득해 마치 무성영화의 한 복판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쇼룸 인테리어는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벽에는 오래된 포스터들이 붙어 있으며 깨끗한 바닥과 몇몇 설명 패널이 전부다. 하지만 이 곳에 있는 차들이 내뿜는 아우라는 별다른 인테리어 소품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전시된 자동차 자체가 가장 좋은 소품이기에 자동차에 집중할 수 있게 꾸며 놨다. 후드탑 엠블럼은 처음엔 라디에이터 마개로 시작됐다  크레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전시물들은 역시 미국차다. 가장 화려했던 시기라 불리는 1960년대 머슬카와 포니카, 호사스러움의 극치를 달리는 캐딜락 등이 그 주인공. 과감한 터치와 풍만함 가득한 과거 미국차들을 한 곳에서 만끽할 수 있다. 사실 미국도 다른 지역처럼 유럽산 클래식카의 인기가 높은 편이지만 전통적인 미국차와 핫로드에 대한 수요는 꾸준하다. V8 엔진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풍요로운 시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V8 엔진이 올라간 핫로드와 400m 드래그 경주를 위한 퍼니카는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자동차 문화 코드다  물론 유럽 클래식카도 다양하게 갖춰 놨다. 연식별로 다양한 메르세데스-벤츠 SL과 페라리, 재규어 E타입 등 미국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 좋은 모델이 모여 있다. 크레비에 있는 차들은 언제든 운행이 가능한 상태로 유지되며 일부는 오너들이 유지 보수를 맡긴 차들이다. 크레비의 간판에는 분명 클래식카 컴퍼니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쇼룸을 돌아다니다 보면 1980년대 이후 2000년대의 차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주로 다루는 차는 클래식카지만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그 밖의 차종도 소수 취급하고 있다고 한다.     비교적 최근의 고가 스포츠카도 있다. 대부분이 위탁 판매 혹은 정비를 위해 들어온 차들이다  오래된 차들, 나무 부품이 많은 이유? 자동차는 초기부터 금속을 사용해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나무를 사용한 경우가 많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물자 부족 때문이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자동차 수요는 철강 산업을 촉진시켰는데, 문제는 철강 산업이 자동차뿐 아니라 다리나 항만, 건물을 짓는 사회기반사업 등에 폭넓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나무 부품을 어느 자동차, 어느 메이커가 처음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런 차들이 등장한 시기는 대부분 급속한 산업 성장 또는 전쟁이 터졌을 때였다. 생각보다 튼튼했던 나무 부품은 부족현상이 어느 정도 해결된 후에도 계속 사용되었는데, 철판에 비해 단가가 낮고 가공이 쉬웠으며 내구성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더 좋은 소재들이 많이 개발되면서 나무 부품을 사용하는 차는 박물관이나 클래식카 관련 업체에 와야 볼 수 있다.    페라리 550 바르케타 피닌파리나 크레비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차 중 하나가 페라리 550 바르케타 피닌파리나다. 페라리의 전통이라 불리는 FR 레이아웃(페라리는 미드십을 비교적 늦게 만들기 시작했다) V12 GT 혈통인 550 마라넬로의 오픈 버전이다.   550 마라넬로는 365 GTB/4 데이토나의 직계 후속으로 1996년 등장했다. 2000년 등장한 550 바르케타 피닌파리나는 12대의 프로토타입을 포함해 총 448대가 생산되었으며, 있으나 마나 한 얇은 소프트톱이 제공된다. 페라리 측 설명에 따르면, 진정한 오픈 에어링을 즐기기 위한 차로서 소프트톱은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차 내에는 넘버링 플레이트가 있는데 이중 P01부터 P12까지가 프로토타입이다. 그러나 프로토타입과 이후 양산 버전은 넘버링 외에 일반인들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비슷하다.     풍요롭던 시절의 미국차  2000년대 초반까지도 V8 엔진과 픽업트럭, 핫로드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무려 60%를 넘었다. 이후 계속된 경기 불황에 여파로 연비가 좋고 덩치가 작은 차가 각광을 받았지만 여전히 미국인들은 덩치가 크고 V8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를 좋아한다. 미국 박물관을 다녀보면 미국차,   특히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오일쇼크 직전까지 차들에 대한 그네들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덩치도 크고 연비도 나빠 대세에서는 밀려났지만, 적어도 북미 대륙이라면 이보다 잘 어울리는 차를 찾기 어렵다. 특히 현지에서 1,000km 이상 장거리 주행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크고 넉넉한 차가 왜 필수인지 수긍할 것이다.    글  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 사진  류장헌 현지 코디네이터  권규혁, Edmund Jenks(Motor Press Guild) 
카풀앱 체험하기 2018-04-06
카풀앱 체험하기우리 함께 타요! 카풀앱은 체계적인 드라이버 검증과 사용자 인증을 거친다. 덕분에 탑승자와 드라이버 모두 일반 택시보다 더 안전하게 이용이 가능하다. 70년대 일어난 오일쇼크 당시에는 카풀이 자동차 광고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카풀을 권장하여 에너지소비를 조금이라도 줄이자는 목적에서다. 그러나 낯선 이와 함께 차를 이용한다는 점 때문에 범죄 발생의 우려와 이용자 간의 불편함이 따랐고, 이 때문에 카풀 문화가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IT 기술을 활용하면서 사용자가 점차 늘고 있다. 이미 기자 주변에도 여러 명의 지인들이 카풀앱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주변 사용자들의 호의적인 평가에 따라 직접 카풀앱 체험에 나섰다. 드라이버(운전자) 등록 과정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카풀앱은 풀러스와 럭시다. 자신의 차로 승객을 태우는 ‘드라이버’가 되기 위해선 각 회사의 드라이버 전용 앱을 핸드폰에 깔아야 한다. 모든 등록 과정은 스마트폰 앱에서 이루어진다. 안전한 카풀 이용을 위해 드라이버 검증절차는 필수. 드라이버가 되기 위한 첫 단계는 운전면허 정보입력과 면허증 사진 촬영이다. 또한 운행하는 차의 보험가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보험증서와 자동차 신분증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등록증을 추가로 요구한다. 자동차는 본인 또는 가족 명의로 된 자동차만 가능하며 가족 명의일 경우 가족관계증명서를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 승합차, 영업용 자동차는 등록할 수 없고 탑승자의 안전을 고려해 15년 이상의 오래된 자동차도 등록이 어렵다. 카풀앱 업체는 자사와 연계된 자동차 정비소에서 자동차 점검을 무료로 실시하고 통과된 차에 한해서만 드라이버 등록을 허가하고 있다. 이 역시 이용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다. 카풀은 우버(Uber)나 리프트(lyft)와 달리 유상운송행위의 성격이 약하다. 정해진 출퇴근 동선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드라이버와 탑승자 간의 상호관계도 그만큼 중요하다. 카풀앱은 이러한 성격을 고려해 드라이버와 탑승자의 프로필을 설정하고 자신에 맞는 사람들과 매칭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프로필은 집과 회사의 대략적인 위치를 띄우며 비슷한 관심사의 사람들이 뭉칠 수 있도록 맛집, 드라이브, 음악, 반려동물 등 다양한 관심사 아이콘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또한 뒷자리 선호, 비흡연, 조용한 성격(대화하고 싶지 않음) 등 운전자와 탑승자 간의 불편할 부분들을 미리 알려 비슷한 성격의 사용자가 만날 수 있게 돕는다.  카풀앱 사용방법모든 등록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기자는 퇴근을 함께 할 탑승자를 검색해 보았다. 앱에 뜨는 탑승자 목록은 현재 위치에서 가까운 탑승자일수록, 이동거리가 짧고 긴 순서에 따라 먼저 띄운다. 그리고 옆에는 이동거리와 그에 따른 요금이 표시된다. 카풀앱은 이용시간과 쿠폰에 따라 드라이버에게 추가적인 인센티브 금액을 지불하며 탑승자에게도 할인쿠폰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활용하면 같은 구간에서도 평소 1.5배 이상의 요금을 더 받을 수 있다. 탑승자를 선택하면 탑승자의 프로필 정보를 확인해 뒷좌석을 선호하는지, 조용하게 목적지를 가기 원하는지, 혹은 꺼려하는 성별이나 나이는 아닌지 확인할 수 있다. 탑승자나 드라이버가 서로 불편할 이유가 있다면 배차 취소도 가능하다. 다만 취소율이 높을수록 다음 이용이 어렵다. 취소율을 보고서 드라이버나 탑승자가 매칭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탑승자가 있는 곳까지는 T맵과 카카오 내비게이션 앱을 통해 길안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또한 탑승 전에도 드라이버와 탑승자 간의 채팅기능과 통화연결기능도 갖추고 있어 세부적인 위치확인과 시간변동 등 중요한 내용을 서로 전달할 수 있다. 기자가 만난 첫 번째 탑승자는 월간 <자동차생활> 사무실 근처의 전자회사 전장사업부에 서 일하는 30대 남자 직장인이었다. 기자의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준 그는 일주일에 평균 8회 정도 이용하는 헤비유저. 카풀앱을 이용한 지는 대략 1~2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기자는 그에게서 카풀앱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드라이버와 자동차 서류, 정비소에서 점검을 받아야만 드라이버 활동 자격이 주어진다프로필은 드라이버의 관심사를 띄워 성격이 비슷한 탑승자의 매치를 돕는다출발지와 목적지를 띄워 자신의 이동 동선에 맞는 탑승자를 선택할 수 있다드라이버 역시 탑승자의 대략적인 프로필을 확인할 수 있다탑승자가 위치한 장소까지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제공한다여정 내역에서는 운행에 따른 수입을 보여준다  탑승자 인터뷰(L 전자회사 전장사업부/30대 남자 직장인) 집은 홍은동이고 회사는 강서구거든요. 평소 택시를 이용해 출퇴근을 하면 편도 1만6,000원 정도 나오지만 카풀앱은 60% 수준이면 됩니다. 한마디로 요금이 저렴하기 때문에 이용하는 거지요. 또한 50% 할인 등 다양한 쿠폰을 사용하면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회사에 택시를 타고 출퇴근하는 동료들에게 카풀앱을 알려준 뒤로 절대로 택시를 타지 않더군요. 자동차는 주로 국산 세단과 SUV 등 다양한 모델을 타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비싼 차는 아우디 A6였구요. 그렇지만 역시 수입차는 드뭅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주로 차를 산 지 얼마 안 된 운전자들이 운전에 재미를 붙이며 카풀앱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들에게 왜 카풀을 하는지 물어보면 주로 용돈벌이와 게임기 구입 같은 비자금 마련이 가장 많았습니다. 자녀의 과자 값을 벌기 위한 소소한 목적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탑승자 입장에서 좋은 차, 나쁜 차를 가리지는 않지만, 오래된 차는 아무래도 꺼리게 됩니다. 차령이 오래되면 불안한 게 사실이니까요.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도 있었어요. 언젠가 신형 아반떼 AD를 탄 적이 있는데, 그 드라이버는 탑승자들에게 승차거부를(탑승자가 드라이버의 차의 매칭을 취소하는) 많이 당한다며 저에게 하소연을 하더군요. 그는 아마도 자신의 차가 아반떼라서 그런 거 아니겠냐며 푸념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드라이버 프로필을 살펴보니 자동차 사진을 올리지 않았더군요. 저는 사용자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깨끗하게 세차한 차 사진을 올리면 취소가 적을 거라며 조언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그의 차를 타게 되었는데 저의 말대로 차 사진을 올린 뒤로는 취소가 확 줄었다며 고마워했습니다.   글 이인주 기자 사진 이병주  
구름 위의 도시 쿤밍(昆明) 2018-03-15
구름 위의 도시 쿤밍(昆明)   리장, 샹글리라, 옥룡설산 같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품고 있는 운남성은 동남아시아와 인접해 차를 실어 나르던 차마고도가 오래전부터 발달했다. 이곳은 외모만큼이나 독특한 생활양식을 지닌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터전이기도 하다. 성도인 쿤밍은 해발 1,900m에 위치해 ‘구름 위의 도시’라고도 불리는데, 지난해 고속철도가 연결되어 상하이에서 12시간 만에 닿을 수 있다.  중국 중남부에 위치한 윈난성(云南省: 운남성)은 중국에서 가장 특별한 고장이다. 치차이(七彩:무지개)의 고장이라고 부를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자랑하는 이곳은 다양한 민족·문화·음식이 어우러져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관광지인 리장(?江), 상글리라, 옥룡설산(玉?雪山) 등 웅장한 자태를 지닌 지형이 많은데, 이 중 수억 년 전 인도와 유라시아 대륙의 충돌로 생긴 지각변동 때 태어난 해발 5,396m의 옥룡설산은 만년설을 끼고 길이 16km에 깊이가 2,000m에 이르는 거대한 협곡이 만들어져 있다. 호랑이가 건너 다녔다는 호도협(虎跳?)이다. 협곡위로 만들어진 길은 사천과 티벳을 거쳐 인도로까지 이어진다. 과거 운남의 차(茶)를 운반했던, 세계에서 가장 험한 길의 하나인 차마고도(茶?古道)다. 아름다운 풍광과 숱한 전설을 간직한 운남성에는 26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까닭에 중국보다는 태국이나 미얀마와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실제로도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그 길이만도 3,207km이른다. 동남아시아로의 통로가 가장 발달한 곳이다. 이런 입지적인 조건 때문에 탈북자들의 중국내 종착점으로 쿤밍을 이용해왔다. 이곳에서 라오스를 거쳐 태국으로 탈출을 하는 루트가 그동안 가장 안전한 것으로 여겨왔다.       쿤밍의 운남성 민족촌, 각 민족들의 생활상과 주택을 만나볼 수 있다 환경오염에 신음하는 천혜의 관광도시다양한 모습을 지닌 운남성은 인구 4,300만 명에 성도는 쿤밍(昆明:곤명)이다. 작년에 상하이에서 쿤밍까지 2,600km나 되는 거리가 고속철로 연결되어 이제는 두 도시를 왕래하는 데 고속철로 12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일반 열차로 가면 꼬박 44시간을 가야 한다. 당연히 필자는 이우에서 고속철을 타고 쿤밍으로 가기로 했다. 중국 남서부는 산악지역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쿤밍으로 가는 길은 험한 산을 수없이 넘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산을 뚫기도 하고 높은 산 위로 다리를 놓아 건설한 철길을 보니 중국의 힘이 느껴진다. 10시간 넘게 고속철로 가는 길이 조금 지루하기는 하지만 세계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인지라 색다르게 느껴졌다. 저장성과 장시성에도 산이 있지만 운남성 인근 산세는 완전히 다르다. 고도가 높은 산들이 연이어 펼쳐져 깊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은 사천성과 티벳으로 연결되면서 5,000m가 넘는 산맥과 이어진다. 쿤밍 역에서 만난 라오스 청년들. 쿤밍은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다    쿤밍은 해발 1,900m에 위치한 구름 위의 도시다. 지대가 높으면 기압은 낮아진다. 그래서 공을 차면 훨씬 많이 나간다. 미국 콜로라도에서 야구를 하면 홈런이 많이 나오는 것도 같은 원리다. 공기가 맑고 겨울에도 온화한 날씨로 인해 쿤밍은 1년 내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천혜의 관광 도시다. 그렇지만 쿤밍도 급격한 도시화 및 경제개발의 여파로 환경오염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해발 2,500m인 서산에 오르면 쿤밍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사진으로 보아왔던 쿤밍은 눈부신 파란 하늘 아래 바다처럼 푸른 덴츠(?池) 호수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하늘 위 호수인 덴츠는 녹조로 인해 진한 녹색이었다. 덴츠는 중국의 6대 담수호로 면적이 311㎢나 되어 마치 바다처럼 보인다. 산 위에 이렇게 큰 호수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비스럽다. 1980년 초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가장 깨끗한 호수였으나 급격한 공업화로 그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그동안 각종 공장에서 정화되지 않은 오염수가 유입되어 황폐화되고 있는 것. 멀리서 보면 큰 호수가 녹조로 인해 마치 넓은 초원처럼 보인다. 또한 서산에서 본 쿤밍은 스모그로 인해 선명한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천혜의 환경을 지녔다는 쿤밍마저 공업화의 폐해를 비켜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쿤밍 서산은 해발 2,500미터다. 케이블카를 타고 서산에 오르면 쿤밍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1,900미터에 형성된 쿤밍은 구름 위의 도시다  해발 1,900미터에 형성된 텐츠호수도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녹조현상으로 호수가 녹색을 띄고 있다  운남성은 인근에 귀저우성, 광시, 쓰촨성(사천), 시장(西藏:티벳)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은 대부분 소수민족들의 터전이다. 55개 소수민족 중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좡족을 비롯해서 이족, 백족, 묘족, 와족 등 다양한 소수민족이 존재한다. 북방의 위구르족(新疆:신장)과 만주족, 몽골족, 회족, 조선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곳에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내가 생활해왔던 중국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소수민족의 화려한 복장을 한 이들을 길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소수민족 학교도 많아 이들은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인구가 줄어 민족 학교가 폐교하는 동북의 조선족과는 대조적이다. 조선족들은 한국과의 수교 이래 대부분 도시로 진출해서 지역 사회가 붕괴되는 현상을 빚었다.      일대일로에서 중요한 역할 담당시내는 그리 화려하지 않지만 새롭게 건설되는 높은 건물과 고층 아파트들이 변화하고 있는 쿤밍의 오늘을 말해준다. 시진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서부 대개발을 내세우며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던 지역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데, 쿤밍 역시 그 중 하나다. 또한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진행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에서 쿤밍시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다. 중국에서 육로를 통해 동남아시아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쿤밍시 전경. 인구 430만 명의 도시다  쿤밍의 유적지는 많지 않다. 중국 역사에서 뒷전에 있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쿤밍시에도 지하철이 있다. 계획된 6개 구간 중 4개 노선이 개통되었고 두 개 노선은 아직 건설 중이다. 이에 따라 최근 들어 쿤밍의 인구도 부쩍 늘었다. 인구 증가와 함께 자동차도 급격히 증가해 출퇴근 시간에는 시내 중심부에 교통 체증이 엄청나다. 사실 시내에는 자동차보다 전기 오토바이가 훨씬 많다. 전기 오토바이들이 도로를 줄지어 달리는 모습은 일대 장관이다. 출근 시간에는 통제원들이 줄을 이용해서 신호등이 바뀔 때까지 오토바이들의 출발을 제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대중교통 수단인 시내버스는 2층 버스가 많았다. 요금은 1위엔(우리 돈으로 170원)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서산에 오르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택시 기사는 바이주(백족:白族)라고 한다. 바이주의 근거지는 따리(大理:대리)이다. 택시 기사 말로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쿤밍 말을 알아듣기 어렵다고들 한다고. 소수민족들의 특별한 억양 때문이다. 전동 오토바이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쿤밍의 지하철 1,2호선이 개통되었다    회족은 중국 서북부의 회족 자치구에 살고 있다 시간을 내서 쿤밍 인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석림(石林)을 방문하기로 했다. 시내 여행사에 알아보니 식사까지 포함해서 280위엔이라고 한다. 아침 7시에 데리러 오기로 했다. 한참 꿈속에서 헤매던 새벽 5시에 전화가 왔다. 6시까지 올 테니 내려와 기다리라는 전갈이다. 7인승 빵차가 와서 나를 태우더니 시내를 돌면서 5명을 더 태웠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침 8시다. 2시간 넘게 시내를 돌아다닌 셈이다. 내가 불평을 했더니 이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절대 모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여행비용이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120위엔, 어떤 사람은 130위엔인데 나만 280위엔이다. 내가 바가지를 쓴 것이 분명하다. 버스 터미널에는 관광을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오고 있었고 그들을 태울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마치 출정을 앞둔 군대의 진영과 같은 모습이다. 이곳에는 베트남과 라오스, 태국으로 가는 국제선 버스도 있다. 쿤밍에서 라오스 비엔티엔으로 가는 버스는 험한 산길을 38시간이나 가야 한다고. 그런데 버스 안에 화장실이 없다. 그래서 우산을 필히 준비해야 한단다. 급하면 아무 곳에서나 용변을 봐야 하는데 우산을 칸막이로 사용한다나……. 남자들은 그나마 안면몰수하고 버티겠지만 여자들은 참으로 난감할 것 같다. 특히나 험한 장시간 코스라 차멀미를 하는 승객이 있을 경우에는 모든 승객들이 고생을 한다. 나도 18시간을 가는 장거리 버스를 타본 경험이 있지만 38시간은 여행이라기보다 고난의 행군에 다름 아니다. 중국인들과 함께 한 석림 관광은 싱겁기 짝이 없었다. 하루 일정 중에서 석림 구경은 2시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쇼핑이었다. 중국 관광객 중에 한국전에 참전한 노병이 있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 ‘사드’문제를 걸고 나온다.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는 바람에 중국의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고 침을 튀겨가며 나를 힐난했다.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일행 중 한 명이 ‘왜 여기에서 사드문제를 거론하느냐’며 그를 말렸다. 다른 사람들도 오늘은 즐겁게 여행이나 하자며 거들었다. 사드 때문에 중국에서 활동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그동안 숨죽여 살아왔다. 중국인들은 북한의 핵개발은 비난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사드만 문제를 삼는다. 본질은 외면한 채 자신들의 이익만 챙긴다. 노 병사와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나라와 세계정세에 대해 설명을 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그리고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나중에 헤어질 때에는 나이와 관계없이 친구를 하자며 즐거워했다. 1950년 한국전에 참전했으니 당시 국군이었던 필자의 아버지와는 목숨을 걸고 싸웠을 터. 예전에 목숨 걸고 싸웠던 적군의 아들과 이제는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세상일이란 참 알 수 없다. 장관을 이루는 쿤밍의 석림.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중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대여 자전거, 쿤밍도 예외가 아니다 쿤밍에도 전기 오토바이가 대세다. 가는 곳마다 전기 오토바이 주차 장이 마련되어 있다   석림에서 만난 소수민족석림은 2억7,000만 년 전 지각 변동에 의해 해저에 있던 기암괴석들이 돌출하면서 생겨난 지형이다. 총 면적 350㎢에 형성된 돌무더기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장관이다. 석림은 대석림과 소석림, 내고석림, 신석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석림과 대석림만 개방되어 있다. 석림은 이족들의 터전이다. 이족들은 진한 빨간 색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색이 조합된 화려한 복장을 입고 있다. 주위 배경과 잘 어울리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이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다. 석림을 돌아보는 일정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민족촌의 안내원들이 소수민족 복장을 입고 안내를 한다.  관광객들은 화려한 이족의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다.    묘족의 주택, 한족들의 주택 구조와는 다르다. 석림 관광을 끝내고부터는 쇼핑이 계속됐다. 각종 차와 기념품이 있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식사를 하기 전 그림을 판매하는 매장에서 일장 연설을 들어야 했다. 그리곤 다시 운남 차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식사를 끝내고 30여 분 이동해 항산화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방문했다. 아시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항산화 물질을 이용해 만든 건강식품과 화장품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대부분 강사의 설명을 관심 있게 들었지만 졸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쿤밍시를 바로 앞에 두고 옥을 파는 상점으로 들어서길래 마음속으로 이것이 마지막이길 빌었다. 규모가 어마 어마하게 컸는데, 사진은 못 찍게 했다. 매장을 둘러보기 전, 진짜 옥과 가짜 옥을 구분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그런데 일행 중에 허름한 옷을 입은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 차고 있는 옥팔찌가 우리 돈으로 수천만원이나 하는 것들이다. 중국에서는 옷차림이나 얼굴만 보고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쿤밍시로 돌아오니 저녁 7시. 밤공기가 차다. 쿤밍의 겨울은 온화하다는데 실제로는 상당히 추웠다. 해발 2,000m에 가까운 고지대이니 따뜻할 리가 없다. 쿤밍에는 민족촌(民族村)이 있다. 우리의 민속촌과 비슷한 민족촌에서는 각 민족들의 주택구조와 생활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야 하나의 민족이라 언어나 생김새가 동일하지만 중국은 55개 소수민족이 있는 만큼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 중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몽고족은 현재 몽골과 중국 내몽골로 나뉘어져 있다. 태국의 소수민족인 타이족(?族)도 이곳에 산다. 이들은 태국을 표기할 때 쓰는 태(泰)자가 아닌 태(?)자를 사용한다. 대부분의 소수민족은 한족과 유사해 보이지만 일부 소수민족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특히 신장의 위구르족은 중국인이라기보다 중앙아시아나 터키인에 가까운 얼굴이다. 게다가 언어는 러시아어와 비슷하니 중국인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회족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와족(?族)은 동남아시아인들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곳에 사는 대부분의 한족들은 소수민족에 관심이 없고, 얼마나 많은 소수민족이 생활하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민족촌의 이슬람사원, 중국의 서부는 이슬람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운남성에는 29개 소수민족이 자신들만의 언어와 문화를 계승해오고 있다  마오저뚱과의 인연으로 우대정책 받아민족촌을 뒤로 하고 쿤밍의 중심지인 난핑제(南平街:남평가)를 방문했다. 200여 년 전에 지어진 전통 건축물과 현대식 건물이 복잡하게 얽혀 조화를 이룬 곳이다. 이곳에서 화려한 소수민족 복장의 여행 안내원을 만났다. 자신을 이족(?族)이라고 소개한 여인은 소수민족에 대한 자랑을 한참동안 늘어놓았다. 어제 들렀던 석림이 본거지인 소수민족이다. 오래전에는 이족(夷族)이라고 불렀는데 마오저뚱의 중화 인민공화국이 건설된 이후에는 한자 표기를 ‘?族’(이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족(夷族)은 오랑캐라는 뜻이다. 소수민족은 마오저뚱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대정책이라는 미명 아래 중국의 전면에 나설 수 있었다. 그 이전에는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다. 마오저뚱이 소수민족에 대해 우대정책을 펼 정도로 호의적으로 대한 것은 대장정 당시 소수민족으로부터 절대적인 도움을 받아 국민당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국민당에 쫓겨 장시성 뤼진에서 시작된 대장정은 출발 당시 8만 명이었던 인원이 대부분 죽고 8,000명 정도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소수민족들이 살던 산악 지역으로 숨어들어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고. 만약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대장정이 성공할 수 없었을 터이니 어쩌면 오늘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쿤밍에서 100년째 성업 중이라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곳도 인근의 귀조우나 광시성과 같이 쌀국수가 보편화되어 있다. 대체적으로 쌉쌀하고 매콤한 맛이 전에 먹었던 계림의 쌀국수와 비슷하다. 남부 소수민족들은 한족과 달리 매콤한 맛을 즐긴다. 주변 상점에는 화려한 색을 입은 소수민족들의 전통 공예품이 많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장사를 하는 사람마다 민족이 다르다. 워낙 다양한 소수민족이 있다 보니 전부 기억하기도 쉽지가 않다. 확실히 이곳은 소수민족들의 터전이다. 소수민족은 복장뿐만 아니라 각종 장신구도 화려하다  운남성에는 소수민족 학교가 많다. 소수민족 학교 학생들의 모습  중국에는 55개의 소수민족이 있으며, 운남성에는 거의 절반에 이르는 26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난핑제 인근에 오래된 성당이 하나 있다. 그런데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엄청나게 큰 성당이 하나 더 있다. 중국 정부에서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이렇듯 엄청나게 큰 성당을 지은 것이다. 그러나 중국 성당의 신부는 교황청의 지시를 받지 않고 중국 정부에서 자체적으로 임명한다. 중국과 교황청은 아직까지도 외교관계가 없다. 중국에선 선교가 금지되어 있다. 외국인이 선교를 하다가 걸리면 구금기간을 거치고 나서 바로 추방된다. 종교행사는 반드시 교회 안에서만 해야 한다. 중국인들은 종교의 자유는 허용되지만 선교가 금지된 구조적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난핑제 인근에 세워진 성당. 종교의 자유는 있지만 선교활동은 금지되어 있다  차의 고장에 들어선 스타벅스 매장들요즘 쿤밍시에는 스타벅스가 성업 중이다. 차의 고장인 운남성 성도 쿤밍에 스타벅스가 많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운남성은 앞서 설명한 대로 중국을 대표하는 차 생산지다. 특히 푸얼시(普?市)에서 생산되는 푸얼차(普?茶)는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높다. 예전에는 많은 이들이 차를 인도까지 운반하기 위해 험난한 차마고도를 넘었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에는 2,000개가 넘는 스타벅스 매장이 있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일 뿐 아니라 2021년까지 중국에 5,000개가 넘는 매장을 열 계획이라 하니, 차의 나라라는 말이 무색하기만 하다. 요즘 중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전통차 대신 커피를 즐겨 마신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다루는 것이 문화인의 척도인 것처럼 여기는 것이 중국 젊은이들의 세태다. 이들은 스타벅스를 이용하며 자신들이 선진 문명의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우월감을 느낀다. 스타벅스는 중국에서 단순히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미국 문화를 팔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향으로 요사이 운남성에서는 차밭을 갈아 업고 커피나무를 심는 곳이 많아졌다고 한다. 머지않아 중국이 커피의 나라로 변신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운남성은 차의 고장이다. 운남성 보이차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운남성은 차의 고장이다. 운남성 보이차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글 사진 양인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들다, 남원 2018-02-20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들다남원 남원은 성춘향과 이몽룡의 절절한 사랑의 무대인 광한루를 배경으로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소화되고 살을 불렸다. 더해서 지리산이 내어주는 풍요로움 또한 남원을 무대의 전면에 내세우는 든든한 역할을 했을 터. 지금 이 순간에도 남원은 남녀의 사랑과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영글어가고 있다.    전통 예술이 활짝 꽃을 피운 남원시 옻칠공예관이름난 산에는 일찍부터 가람이 들어섰으니 남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도자들이 만들어서 사용하던 목기(木器)의 제조 공법이 민가로 이전됐고, 남원은 그래서 이름을 더 얻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실상사에는 한때 3,000여 명의 수도승들이 머물렀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목기의 운명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산사는 기울어갔고 목기 대체품들이 들어서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제기(祭器)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을 뿐 실제 생활로 녹아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 옻칠 장인 박강용 선생 등 장인들의 노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2004년 문을 연 남원 옻칠공예관은 옻칠 공예의 정수를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1,980㎡의 부지 위 660㎡의 공간에 전시관과 옻칠작업장, 정제실, 건조실, 디자인실 등을 갖추고 있다. 우선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옻칠 공예의 그 화려함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스님들이 사용하는 발우와 수저세트, 다기, 반상기를 비롯해 제기 및 제사상 세트 등이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멋을 뽐낸다.  옻칠공예란 내부 아름다운 광택을 내는 반상기 세트   천연도료인 옻칠을 하면 외부의 습기를 흡수하거나 방출해 일정한 수분을 유지하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나무로 만든 생활용구나 공예품에 옻칠을 하면 표면에 견고한 막을 형성할 뿐 아니라 광택이 나고 오랫동안 사용해도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토피 개선 효과를 비롯해 방충, 항균, 원적외선 방출, 방부 및 탈취 효과까지 있어 가장 완벽한 도료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이곳에서는 초급과 중급, 그리고 전문가반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주 1~2회 운영하고 있다. 관람료는 없고 평일 09:00~18:00까지 문을 열고 월요일에는 닫는다(자세한 사항은 전화063-631-5725로 문의).  성춘향과 이몽룡의 이야기 품은 광한루원, 예촌 이야기를 엮어내고 많은 이들이 덧칠을 하며 끌어가는 데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바로 불세출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사랑’이 남원에서는 365일 단 하루도 지지 않고 활짝 꽃을 피운다. 광한루원은 바로 춘향전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그네를 타는 춘향을 지켜보며 애틋한 정을 키워가는 이몽룡. 둘이 나눈 사랑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가다 보면 애간장을 녹이는 듯한 이별, 그 후에 닥친 춘향의 고난, 과거에 급제한 몽룡이 어사가 되어 변 사또의 폭정을 단죄하는 장면, 두 사람의 아름다운 해후라는 줄거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렇기에 춘향전은 이미 1935년부터 ‘성춘향’이라는 이름의 영화로 제작되었고, 이후로도 ‘춘향전’, ‘탈선춘향전’, ‘춘향뎐’ 등으로 꾸준하게 리메이크되어 사랑을 받고 있다. 임권택을 비롯한 당대의 유명 감독들이 메가폰을 잡은 것은 물론  허장강, 박노식, 신성일, 장미희, 이덕화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했다. 김희선과 이민우가 열연한 TV 드라마는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18세기의 소녀 21세기를 살다’라는 테마로 구성된 광한루원의 춘향관은 저마다 이몽룡이 되어 춘향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오작교를 건너면 부부의 금슬이 좋아진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선조 15년(1582)에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길이 57m, 폭 2.4m에 4개의 홍예경간(무지개 모양의 다리나 기둥 사이의 공간)으로 새로 놓은 다리다. 광한루는 정유재란 때 불타 1626년 복원됐지만 오작교는 처음 그대로의 모습이다.  광한루원의 춘향관 잎을 잃은 감나무가 꽃을 피웠다월매의 집도 재현해 놓았다 남원으로 유배를 온 황희 정승이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광통루는 그 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라고 한 후 광한루로 고쳐 부르고 있다.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에 연꽃을 심고, 오작교를 놓고,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이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만들었다. 봉래섬은 백일홍, 방장섬은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은 영주각을 세웠는데 정유재란 때 모두 불타고 말았다. 현재의 광한루는 1639년 중건된 것으로 1794년에 영주각이, 1964년 방장섬에 방장정이 세워졌다. 광한루원 바로 곁에는 전통 한옥으로 지은 호텔 ‘예촌’이 있다. 최기영 대목장을 비롯한 이근복 번와장, 유종 토수 등 대한민국 최고의 한옥 명장들이 직접 시공에 참여해 전통의 멋이 그대로 흐른다. 황토, 대나무, 해초 등 오롯이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사용해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구들장과 함께 옻칠 기법으로 마무리한 이곳은 2017년 한국관광의 별 숙박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굳이 숙박을 하지 않아도 호텔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호남제일루라 쓰여진 광한루   광한루원 바로 옆에 자리잡은 한옥 호텔 예촌 고풍스러운 예촌의 객실 내부 온돌방으로 만들어진 객실 내부이도령과 춘향의 동상   천년고찰 실상사뉘엿뉘엿 저무는 해를 마주하며 찾은 실상사는 한때 3,000여 명의 승려가 수도생활을 했을 정도로 융성하던 곳이었다. 너른 들 한가운데 버티고 선 가람은 심산유곡에 자리를 잡아 신비한 기운을 더하는 산사에 비해 세속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는 뜻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을 불러 마을을 이루고, 민초들의 삶을 어르며 풍족하게 해주어 ‘극락정토’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일까?    실상사는 한 때 3천여 명의 승려가 생활했던 사찰이다 동서 삼층 석탑을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    실상사의 철불 부처상증각대사의 탑비 증각대사 사리탑실상사의 석장승 뭔 절이 동네 앞에, 너른 들판 논 가운데 멋없이 있을까? 많은 이들이 갖는 의문에 기자 역시 공감한다. 이에 대해 주지스님은 홈페이지를 통해 이렇게 밝혀 놓았다. 대략 요약하면 이렇다.“실상사는 남녘에서 가장 크고 깊은 지리산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수만 평의 논 한가운데 놓여 있다. 이 너른 들판이 여름이면 새록새록 자라는 벼로 초록바다가 되고, 실상사는 그 속에 마치 섬처럼 떠 있다. 가을날 벼가 익어 황금물결을 이룰 때면 마치 보물선이 흔들리는 듯하고, 겨울이면 벼를 베고 난 휑한 들판에 무상(無常)의 모습으로 있다. 그리고 다시 봄이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너른 들판 한가운데 마치 신기루처럼 자리한다. 마음을 열고 보면 너른 들판 가운데 멋 하나 없이 밋밋하게 있는 그런 절이 아니다. 실상사가 처음 이곳에 자리할 때는 그야말로 심산유곡이었다. 그러던 곳이 부처님의 품을 찾아든 사람들로 마을이 생기고 논밭이 만들어지다 보니 오늘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선계와 속계를 구분하는 만수천을 대하면 다리 입구의 석장승이 “어서와! 이곳은 처음이지?”라고 마중을 나오고, 다리를 건너면 다른 석장승이 실상사로 안내를 한다. 그 너머로 지리산 천왕봉이 시야에 아련하게 들어온다. 이곳은 국보와 보물의 보고여서 그 보물들을 꺼내어 보다보면 천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남원 허브관 허브관 안에는 각종 허브들이 꽃을 피운다 허브 관련 제품 생태 교육장에서 상영중인 작품  잘보면 나비의 날개로 만들었다지리산 ‘생 햄’과 ‘흑돈’을 아십니까? 열정과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 그 길을 만들어갔던 이의 고단한 일정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스페인어로 하몬(Jamon)으로 불리는 생 햄이 남원의 운봉읍 화수리에서 제대로 숙성되어가고 있다. 돼지고기를 훈현시키지 않고 소금에 절여 만드는 생 햄은 본토인 스페인에서도 귀하게 여기는 식재료다.산간지방의 깨끗한 공기와 수분이 적절하고 바람이 찬 지형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버크셔 흑돈을 원료로 지리산 고랭지 기후의 청정성과 희소성이 결합해 탄생했다고 한다.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박화춘 씨는 농업진흥청 등에서 활동한 종자개량 전문가였다. 그런 박 박사가 퇴직 후 고향인 남원에 버크셔 품종 흑돼지를 들여와 우리 풍토에 맞도록 품종을 개량한 것이다. 박 박사에 따르면 스페인의 하몽은 사육하는 방식(완전 방목, 반 방목, 축사 등)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면서 “지리산 생 햄도 각종 환경 등을 고려해 가치 산업으로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아울러 그는 철저하고 엄격한 기준을 통해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해야 하는 등 농업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리산 생 햄은 자연환경과 천일염만을 이용해 장기간(겨울에 원료를 선택해 정형과 염지를 한 후 초기 건조과정을 거쳐 봄에 건조, 여름에 저장을 해 다시 겨울에 출시한다) 숙성시킨 식품으로 신선육 상태에서 바로 제조를 하기 때문에 단백질 및 지방조성이 우수한 것이 특징이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했다는 쉐프의 요리는 잘 숙성된 생 햄이 은근하게 짭짤한 기운이 퍼지다가 이내 고소한 감칠맛이 되어 침샘을 자극한다.    그렇다면 재료가 되는 흑돈의 맛은 과연 어떨까? 사실 음식이란 개인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천양지차여서 객관성을 부여하기 어렵다. 따라서 오로지 주관적으로 판단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명문화한다는 것은 독자들의 권리를 일정부분 침해할 수 있어 꺼려진다. 그럼에도 이를 소개하는 것은 우선 독특한 조리방식 때문이다.    대한민국 1.2%만 드실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건 지리산 고원 흑돈은 허영만 화백의 ‘식객’ 등에 소개되기도 했다. 삼겹살과 목전지, 그리고 항정살 등으로 구성된 ‘흑돈 명품 한 마리’는 우선 상차림이 정갈한데다 고기의 상태가 좋아 과연 허 화백이 내세울 만했구나 싶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기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원료와 불 조절에 있다. 일단 고기의 품질을 확인했으니 그 다음은 불판에서 구워내는 순서. 여기에서도 차별화된다. 돼지고기는 기름기가 거의 빠질 만큼 바삭하게 익혀야 제맛이라는 기존의 암묵적 룰을 여지없이 깬다. 살짝만 익히는 것을 권하는데, 한 점 깨물면 쫄깃한 식감에 입안에 툭 터지는 육즙이 일품이다.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짓던 것과 비슷한 묘한 표정이 절로 지어진다. 느끼함도 거의 없어 젓가락은 연신 불판으로 향하고, 여기에 술 한 잔 곁들이니 행복 그 자체다. 그러는 사이사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아, 맛있다!”지리산 고원식당 063-625-3663     지리산 흑돼지를 맛볼수 있는 고원 흑돈 식당 버크셔를 개량했다는 흑돈은 쫄깃한 식감과 터지는 육즙이 일품이다  글, 사진 김태종(여행작가)
동남아의 용으로 승천을 꿈꾸는 베트남의 중심, 호치민 2018-01-12
 동남아의 용으로 승천을 꿈꾸는 베트남의 중심 호치민세계 최강 미군을 몰아내고, 중국과 1,000년 동안 싸워왔다고 주장하는 베트남. 중국의 대체지로 부상하면서 동남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의 수도 호치민을 찾았다. ​​​​거래처의 초청으로 방문한 베트남 호치민의 첫인상은 대단히 역동적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맞닥뜨린 것은 수많은 오토바이의 행렬. 넓은 도로를 꽉 채운 오토바이들의 질주와 굉음은 베트남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다.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중국에만 오토바이가 많다고 여겼었는데, 호치민에서 이렇게 많은 오토바이를 볼 줄이야! 오토바이는 호치민 시민들의 절대적인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거리에 울려퍼지는 배기음을 듣고 있자니 정신이 혼미해진다. 처음엔 마냥 신기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토바이의 행렬이 소음 공해를 넘어 공포로 다가올 정도.베트남은 자동차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까닭에 자동차 가격이 엄청 비싸다. 기아 경차 모닝이 베트남에서는 2,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되니, 일반 시민들에게 자동차는 그림의 떡. 이를 대신해 한결 저렴한 값에 구입할 수 있는 2륜차가 대중화되었으며, 베트남의 오토바이 등록대수는 대략 4,000만 대가 넘는다고 한다.​​거리를 꽉 메운 오토바이 행렬, 호치민은 하루종일 오토바이들의 질주로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거리에 넘쳐나는 오토바이의 행렬오토바이가 일상생활과 밀접하다 보니 이를 위한 카페와 식당이 많다. 큰 식당에 승용차 주차장은 없어도 오토바이 주차장은 필수. 고급 아파트에도 오토바이를 위한 주차장이 별도로 있고, 대형 수퍼마켓 역시 마찬가지다. 우연찮게 들른 이마트에도 주차장 대부분을 오토바이가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나 오토바이 주차를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필수적으로 헬멧을 쓰고 다닌다. 함께 탑승한 동승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워낙 많은 오토바이에 여럿이 함께 타고 다니니 위험한 광경도 흔히 볼 수 있다. 오토바이를 자가용으로 사용하는 경우 동승한 어린 아이가 떨어지지 않게 운전자와 끈으로 연결하거나, 발판에 의자를 놓아 아이가 앉아서 갈 수 있도록 하는 등 나름대로의 지혜를 발휘한 흔적도 엿보인다. 운전 솜씨도 보통이 아니다.​​호치민의 교통체증은 어딜가나 비슷하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엉켜 항상 복잡하다​예전에는 자전거가 대세였으나 이젠 오토바이에 밀려 보기가 어렵다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 영업이 합법이다. 우버와 그랩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거리에는 일본차와 함께 한국의 현대·기아차가 많이 보인다. 한국차의 경우 현대 i20과 기아 모닝이 대표적이다. 베트남 소비자들의 소득수준이 낮다 보니 중대형차보다는 소형차가 더 많이 팔린다고. 베트남의 1인당 GDP는 2,200달러(2016년 기준). 자동차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일본 기업들의 진출이 대단히 활발하다. 그동안 중국 일부 지역에서 조용히 장사를 하던 이온(AEON) 마트는 베트남 전역에 뿌리를 내리고 의욕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많은 일본 기업들이 2011년 센카쿠(다오위다오) 사태 이후 중국에서 철수했다. 반일 감정이 상존하는 중국에서 계속 영업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던 차에, 센카쿠 사태가 기폭제가 되었다. 한국 기업 역시 지난해 사드 문제로 홍역을 앓은 후 중국을 벗어나 베트남으로 옮겨오는 상황이다. 어쩌면 일본과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한국차가 무척 많다. 기아모닝과 현대 i20가 택시로 쓰인다​베트남은 한때 일본의 지배를 받았지만 반일감정이 없다. 일본업체가 건설 중인 호치민 지하철 공사장이다​베트남은 어느 나라보다 처절한 투쟁의 역사를 지녔다. B.C 111년부터 약 1,000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아 지금도 중국 문화의 잔재가 뿌리 깊이 남아 있다. 이후 1886년부터 1940년까지 50년 넘게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은 데 이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이 쳐들어왔으며, 종전 후에는 다시 프랑스와 다툼을 벌인다. 격전 끝에 1954년 독립을 쟁취하지만 이번에는 국토가 남북으로 갈렸다. 그 와중에 남베트남을 지원하는 미국과 다시 한번 처절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었다.베트남 사람들은 중국에 지배당했다고 하지 않고 ‘우리는 천 년 동안 싸워서 중국을 물리쳤다’고 말한다. 이런 말은 프랑스와의 전쟁은 물론 세계 제일의 군사력을 지닌 미국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호치민 인근에 있는 구찌 터널(Cuchi tunnel)을 둘러보면 베트남 사람들의 끈질긴 정신력과 투쟁 정신을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월남전 당시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다. B-52 폭격기를 동원한 융단 폭격은 지금 보아도 경이로울 정도. 당시 B-52가 뜨면 그 지역은 완전히 초토될 정도의 가공할 화력이어서 한 번 훑고 지나가면 한동안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그런 미국의 공격을 버텨내고 베트남을 통일한 월맹(북베트남)의 힘은 주민들과의 밀착협력이었다. 미군은 베트콩(북베트남 군)과 주민들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밀림 속에 만들어진 터널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신출귀몰 전략의 일환이었다. 갑자기 나타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고 사라지는 베트콩을 미군들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이런 게릴라 전술에는 터널이 큰 역할을 했다. 엄청난 전력의 열세를 이러한 기상천외한 전술로 이겨낸 것이다. 터널의 총 길이가 자그마치 250km에 이르고 미군 사령부 밑까지 뚫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터널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아 기어서 다녀야 한다​​투쟁의 역사가 숨쉬는 구찌 터널터널의 지하 1층은 지휘부가 있고 지하 2층은 거주시설, 지하 3층은 강으로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로 연결되는 구조다. 취사를 위해 몇 단계에 거쳐 연기를 배출할 수 있도록 하고 수술이 가능한 야전병원까지 갖추었다니 완벽한 군사 기지가 아닐 수 없다. 기가 막힌 것은 250km에 이르는 터널 전부를 호미 같은 손도구로 파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터널의 입구는 몸이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비좁았다. 터널 안 역시 몸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규모다. 덩치 큰 미군은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밀폐된 공간에 갇힌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온다. 이런 곳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높이 때문에 대단히 불편한 자세로 기어다닐 수밖에 없는데, 터널 체험 삼아 그렇게 100 미터 가까이 이동했더니 통증 때문에 3일 동안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터널은 몸 하나 겨울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몸이 들어갈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터널 입구가 작다 ​구찌 터널 주변에는 부비트랩과 바닥에 죽창이 설치된 함정 등이 보인다. 많은 미군들이 이런 단순한 무기들에 말려들어 처참하게 죽어갔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죽음보다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었다.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대한민국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대한민국 군대가 최초로 해외에 참전한 전쟁이었다.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1965년부터 비둘기 부대를 필두로 청룡(해병대)과 맹호, 백마부대가 1973년까지 투입되었다. 총 32만 명이 참가해 5,099명이 전사했고 11,23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번영과 군 장비의 현대화를 이루는 계기를 마련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당시 전투 지원부분에 참여했던 한국의 건설 및 운송 업체들은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는 일본이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의 물자 수송과 정비 등을 통해 패전의 아픔을 딛고 경제를 재건하게 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요즘 일본이 북한을 부추겨 한반도에서 전쟁을 다시 일으키려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맹위를 떨치던 맹호부대와 귀신 잡는 해병으로 유명한 청룡부대는 베트콩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한국군은 전투도 잘하지만 베트콩들에게 무척 잔인했던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렇지만 베트남에는 반한 감정도, 반미 감정도 없다. 아마도 미국과도 싸워 이겼다는 자부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지구상에서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한 나라 중에서 베트남만이 유일하게 승리를 거두었다.베트남 사람들의 한국사랑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특별하다. 한국 드라마와 K팝에 푹 빠져 있고, 한국 상품에 대한 인기가 대단히 높다. 중국에서 큰 시련을 겪고 있는 롯데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발랄하고 활기찬 베트남의 학생들, 이들은 전쟁의 참화를 모르는 신세대다베트남의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의 미인들 호치민에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았다​​​중국과 프랑스의 많은 영향 받아호치민 시의 명칭은 원래 사이공이었다. 동나이 강 삼각주에 형성된 사이공의 역사는 1698년부터 시작되었으니, 300살이 넘는다. 4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사이공은 남베트남의 수도였다. 호치민이 이끌던 북베트남은 30년이 넘는 치열한 내전 끝에 1975년 남베트남의 수도인 사이공을 점령한다. 북 베트남이 통일을 이룬 것은 국민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호치민이라는 영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호치민은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몸을 바친 인물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호 아저씨’란 애칭으로 불리기를 좋아했던 호치민은 청렴한 삶에 있어서도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그가 남긴 유산이라고는 옷 몇 벌과 낡은 구두가 전부였다. 자신이 죽으면 화장을 한 후 북부, 중부, 남부의 세 지역에 골고루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긴 호치민은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 통일을 보지 못하고 1969년 생을 마쳤다. 베트남 정부는 1976년 통일을 이룩한 후 사이공 시를 현재의 호치민 시로 바꾸어 베트남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록하기로 했다.​​​호치민은 베트남인들의 영웅이다. 사이공 시를 호치민 시로 변경한 것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호치민시 전경, 베트남의 영웅인 호치민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사이공을 호치민시로 개명했다​호치민 시민들은 만약 월맹이 아니고 베트남으로 통일을 이루었으면 지금쯤 대한민국보다 잘 사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베트남 전쟁 직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그들보다 훨씬 낮았다. 베트남이 통일 후 사회주의의 길을 걸으며 퇴보하는 동안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며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거듭났다.호치민에 오토바이가 많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카페였다. 특히 노상카페는 베트남만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다. 프랑스 식민지배의 영향 탓도 있지만 베트남인들의 커피 사랑은 유난하다. 한국으로 수입되는 커피의 원산지를 보면 베트남인 경우가 의외로 많은데, 실제 베트남의 커피 생산량은 브라질과 쌍벽을 이룬다. 그래서인지 호치민 거리에는 유럽풍의 근사한 카페들이 많다. 재미있는 것은 카페마다 오토바이 주차장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노상 카페도 저마다 개성이 넘친다. 길에다 목욕의자를 쫙 깔아 놓고 커피와 음료를 준비하면 바로 노상 카페가 된다. 길을 걷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바로 이용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편하고 좋은 카페가 어디 있겠는가.​​​​호치민은 카페문화가 발달해 있다. 베트남의 커피 생산량이 브라질을 추월했다고 한다​호치민에서 제일 크다는 벤탐시장, 20여 년 전의 중국과 비슷한 모습이다​ 베트남에도 베트남 글자가 있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이 그들의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영어에 조합해서 만들어준 것이다. 프랑스가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은 유럽식 빵 문화다. 베트남인들은 조식으로 전통적인 반꿍과 함께 프랑스식 빵을 먹는다. 반꿍은 중국 광동의 창펀과 비슷한 음식이다. 창펀은 밀가루 반죽을, 반꿍은 쌀로 만든다는 점이 다르다. 베트남은 세계 최대의 쌀 생산국가다. 넓은 농토와 메콩 강의 풍부한 수량, 그리고 온화한 기후 덕분에 3모작이 가능하다. 그래서 쌀을 이용한 식품들이 많다. 우리도 즐겨먹는 쌀과자와 쌀국수가 대표이다. 또한 열대과일의 천국이기도 하다. 남북 해안의 길이가 3,444km에 이르는 긴 지형에서 다양한 과일이 생산된다.호치민 시내를 돌다 보면 많은 유럽풍의 건축물을 만나게 된다. 이런 건물들은 대부분 100여 년 전 프랑스인들에 의해 지어졌다. 웅장한 건물들은 지금도 베트남 정부의 관공서로 쓰이고 있다. 호치민에 들르면 꼭 가봐야 한다는 유럽풍의 우체국 건물은 엄청난 크기에 놀라게 된다. 지금이야 우체국의 기능이 점차 줄어든다지만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는 베트남 전역으로 배달되는 우편물을 처리해야 했으니 이렇듯 큰 규모로 지어진 것이 짐작이 간다. 우체국 옆에 우뚝 서 있는 노트르담 성당은 대대적인 수리 중이었다. 베트남에는 가톨릭 신자가 9%나 된다. 그러나 국민 대부분은 독실한 불교신자로, 그 비율이 80%가 넘는다고 한다. 2015년 베트남을 방문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호치민의 절을 찾았었다.​​​우체국 앞에서 기념품을 파는 상인, 종이로 만든 단순한 제품들이다​​노트르담 성당은 대대적으로 보수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미국 오바바 대통령이 재임시절 방문했던 호치민의 절. 베트남은 불교 국가다​​베트남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부동산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부자들을 위한 주택도 계속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오랜 기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던 흔적인지 베트남인들은 미신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춘절과 중추절을 중요한 명절로 여기며 중추절에는 중국인들처럼 월병을 먹는다. 그렇지만 중국과의 사이는 좋지 않다. 요즘 남중국해를 완전히 장악하려는 중국의 야욕은 여러 나라와 영해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필리핀은 물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베트남까지도 중국과 영해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이런 영해 분쟁으로 요즘 베트남에서는 반중국 정서가 강하다. 2012년에는 중국회사 공장들이 폐허가 되고, 3명의 중국인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중국 공장들의 베트남 진출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인건비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을 잃고 있는 중국의 공장들이 북부 하노이 주위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인들도 미신에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무사고를 빌기위해 부적처럼 꽃을 차에 달고 다닌다높은 발전 가능성 품고 있는 베트남호치민을  방문한 것은 한국 거래처인 (주)올림피아 대표이사 김진웅 사장의 초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기념품을 제조해서 수출하는 올림피아는 이 분야 한국 기업 중 유일하게 남아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바이어들이 기념품 업계의 삼성이라고 부른다. 공장을 둘러보니 직공들이 모두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 일사분란하게 일하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중국 공장에서는 이미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사출이나 수작업을 많이 해야 하는 3D 업종에서는 나이 지긋한 노인들만이 공장을 지키고 있을 정도다. ​​​올림피아 직원들, 한국인, 베트남인, 그리고 필리핀 연합이다 ​ 베트남은 저렴한 인건비와 근면한 젊은 노동자들로 인해 경제 발전 가능성이 어느나라보다 높다 ​베트남은 젊은 노동력이 넘쳐난다. 어느 공장에 가든 젊은이들이 가득하다​베트남은 오랜 내전을 겪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안정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체 인구 중 가장 많은 연령대가 1958년생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정국이 안정되면 자연적으로 베이비 붐 세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베트남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현재 베트남의 인구는 9,500만 명. 1980년 이후에 출생한 인구가 반 이상을 차지한다. 노동력이 넘쳐 나는 이유다. 베트남의 국민성은 유교 사상이 몸에 배어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족들 간의 우애를 중요시한다.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알고 교육열도 높다. 게다가 근면까지 하다. 동남아시아의 강자가 될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셈이다. 올림피아의 현지 공장에는 한국인의 후예가 있었다. 김 사장을 현지에서 도와주고 있는 단홍의 아버지는 한국인이다. 당시 사이공의 조선소에서 일을 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삼남매를 남겨 두고 훌쩍 한국으로 떠난 후 연락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어린 시절 많은 고생을 했다. 베트남에는 수천 명의 ‘라이 따이한’(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존재한다. 자신들의 피가 섞인 베트남인들을 모두 본국으로 데리고 간 미국과 달리, 우리 정부는 그들에게 무심했다. 그래서 단홍도 한동안 난 왜 한국인 아버지를 만나 이런 고생을 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엿한 중년 사업가로 성장해서 남부럽지 않을 생활을 하고 있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몇 번이나 대한민국을 방문했지만 끝내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고. 남부에 속한 호치민과 북부의 하노이는 경쟁 관계다. 하노이가 베트남의 수도이면서 중공업이 발달한 반면 호치민은 경공업이 발달했다. 그렇지만 개방 이후 많은 외국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호치민으로 몰려오고 있다. 호치민과 하노이의 거리는 2,300km나 된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고속도로가 없다는 것이 큰 취약점이다. 베트남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고속도로부터 뚫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은 베트남 최고의 투자 국가다. 그동안 중국에서 실패한 것을 베트남에서 회복하려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일본도 비슷한 과정을 먼저 거쳤고, 타이완도 이에 가세했다. 그런 면에서 베트남은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호치민은 한창 발전 중이다. 아직도 포장이 안 된 도로가 많다호치민의 이마트, 베트남에서 성공신화를 이루어 나가고 있다​​​APEC 정상회의가 11월 10일부터 다낭에서 열렸다. APEC을 알리는 입간판들이 곳곳에 설치 되어 있다​​동남아시아 최강자 자리 멀지 않아호치민에서 가장 높은 68층의 비텍스코(BITEXCO) 빌딩에 오르니 산 하나 보이지 않는 대평원이 펼쳐진다. 베트남 북부는 산악지역, 남부는 평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호치민은 남부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호치민에서 가장 크다는 벤탐시장을 찾았으나, 생각보다 규모가 적다. 게다가 팔리는 상품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아직까지 베트남의 제조업 구조가 임가공 형태이다 보니 제품다운 제품이 없는 탓이다. 그러나 지금의 발전 속도로 보면 베트남 제품들이 중국제품을 대체하게 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1억에 가까운 인구와 근면성을 무기로 동남아시아의 최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베트남. 그 중심에 호치민이 있다. ​글·사진 양인환​​​호치민에서 제일 높은 68층의 Bitexco 빌딩. 새로운 건물들이 계속 건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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