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남자의 뜨거운 열정, 카트 24시간 내구 레이스 도전기
2018-10-18  |   32,352 읽음

여섯 남자의 뜨거운 열정

카트 24시간 내구 레이스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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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한 가지 일을 지속해서 하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극한의 스트레스와 중압감이 가득한 24시간 레이스는 보는 사람이나 참가하는 사람이나 대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그래서 세계적인 24시간 내구 레이스는 참가 자체만으로 그 의미가 크다. 카트 24시간 내구 레이스 도전은 국내 최초다.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 레이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카트 24시간 내구 레이스에 국내 최초로 도전한 여섯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일본 아이치현에서 열리는 카트 24시간 내구 레이스 광고를 본 것은 7월 10일 무렵. ‘이거 재미있겠는데’라는 생각인 여섯 남자가 모인 것은 그로부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국내 명문 카트 팀 크레이지 레이싱 권순일 감독을 필두로 김연동, 이진혁(YD 레이싱), 이종승(크레이지 레이싱), 문준호(린스몰), 황욱익(라라클래식)으로 엔트리를 등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24시간 카트 타는 게 별거 있겠어?’였던 생각은 경기 규정과 세부사항을 조율하면서 ‘이거 점점 일이 커지는데?’로 바뀌기 시작했다. 다행인 점은 필자를 비롯한 대부분 팀원이 국내 카트 경기에 출전 경험이 있다는 점이 있으며 타는 것이라면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 사내들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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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8월 14일과 15일 이틀간 아이치현 코타 서킷 yrp 키리야마에서 열리는 르망Ⅴ 24시간 던롭 게임즈 내구 레이스로(이하 카트 내구 레이스), 오후에 출발해 다음 날 오후 2시에 마치는 일정이었다. 드라이버 교체는 최소 46회, 의무 주유는 8번 허용되며 주유와 함께 카트까지 교체하는 것이 기본 골자다. 제공되는 카트는 야마하, 혼다, 스바루 엔진을 사용하는 레저 카트로 모두에게 비교적 익숙한 엔진이다. 대부분 카트 레이스 경험이 풍부하고 포디엄 경험도 있었던지라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그러나 현실을 마주했을 때 녹록지 않은 광경에 적잖이 당황했다. 호기롭게 세카이 디자인과 채움과비움 한의원, 라라클래식의 지원까지 받아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 그 자체였다. 이벤트 형식 내구레이스라고 생각했지만 일본 전역에서 모인 팀의 경기 준비는 프로팀에 버금갔다. 일본팀들은 발전기와 냉풍기를 비롯해 피트 내에 주방과 휴게 공간까지 설치했을 정도다. 경기준비도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드라이버 외에 팀 스텝들이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뛰고 있었으며 무선 통신 장비와 각종 계측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호기롭게 출발한 6명의 선수가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몸뚱이와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텐트, 간이 아이스박스 2개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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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기는 일본 내 최대 카트 내구 레이스다. 일본 전역에서 총 37개 팀이 출전했고, 참가 드라이버만 해도 무려 416명에 달한다. 한국에서 생각한 것과는 규모나 준비 과정, 참가 선수와 팀의 면면이 전혀 달랐다. 환경만 다른 게 아니었다. 애초에 1.1km로 생각하고 준비했던 코스 길이는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두 배가 넘는 2.23km였고 중저속 구간이 거의 없는 고속 서킷이었다. 한국팀의 그리드는 37개 팀 중 28번째. 엔트리는 크레이지 YD 레이싱이었다. 

다행히 경기 시작 전 코스를 둘러 볼 수 있었다. 코스 너비는 생각보다 넓었고 레저 카트라고 해도 국내 카트보다 훨씬 빨랐다. 오전 11시에 시작된 드라이버 브리핑에서 소개된 내용 역시 우리가 생각했던 경기 방식과 전혀 달랐다. 물론 24시간 동안 가장 먼 거리를 주파한 팀이 우승하는 방식은 알고 있었지만, 드라이버 교체와 주유 등 세부적인 사항은 현장 브리핑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한 명의 드라이버가 한 번에 주행할 수 있는 최대 주행 시간은 59분. 주행 후에는 1시간 이상 쉬어야 했고 지정된 장소에서 진행되는 급유는 5분의 의무 피트인 시간이 있지만 이것도 한국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주유가 완료된 후 5분이기 때문에 주유 장소가 밀려 있으면 기록에 손해를 보는 구조다. 드라이버 교체는 등록 드라이버에게 지급되는 바코드 카드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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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팀의 텃세 

권순일의 출발로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초반에 계획한 드라이버 교체 시간은 약 30분에서 40분 정도로 한 사람이 소화해 내는 시간은 주행 시간과 드라이버 교체, 주유를 포함해 대략 4시간 정도였다. 전체 팀 중 유일하게 6명이 참가한 크레이지 YD 레이싱 팀은 다른 팀들보다 훨씬 분주했다. 이번 경기는 한 팀이 최소 6명 최대 15명의 드라이버로 구성해야 하는 데 가장 적은 인원으로 참가한 것이다. 오후 2시, 28 그리드에서 출발해 서서히 순위를 올려 초반 22위를 달리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필자는 두 번째로 코스에 들어갔다. 타이어도 달궈지고 한낮의 더위에도 지쳤지만, 무엇보다 일본팀의 강력한 텃세가 순위를 끌어 올리는데 방해가 됐다. 일본팀들의 푸싱(뒤차가 앞차를 미는 충돌)은 굉장히 심했다. 여기에 직선 주로에서는 카뷰레터 케이블을 임의 조작하거나 오피셜이 없는 코너 구간에서 잦은 추돌 때문에 경기 흐름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첫 번째 주행에서 스핀만 무려 두 번. 두 번 모두 코너 진입 중 뒤쪽에서 충돌이 그 원인이었다. 모든 선수가 한 번씩 돌아가면서 주행을 마칠 때까지 제대로 경기 흐름조차 잡지 못했다. 계속된 텃세와 일본팀들의 지저분한 경기 운영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상황이 반복됐다. 첫 주유를 하면서 순위는 최하위까지 떨어졌고 우여곡절 끝에 해 질 무렵에는 32위까지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1랩 전체 베스트 기록은 54초 정도였다. 1위부터 15위까지 기록이 1초 이내로 촘촘했고 크레이지 YD 레이싱은 베스트 기록 57초, 평균 기록은 58와 59초를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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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본격적인 나이트 레이스에 돌입했다. 낮보다 기온은 떨어졌지만 아직 노면에는 지열이 남아 있었다. 그나마 습한 기운이 사라져 경기 집중력은 높아졌다. 나이트 레이스는 그림자와의 싸움이었다. 코스를 환히 비추는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속도가 가장 느린 내리막 좌턴과 헤어핀 구간의 조명은 오히려 드라이버 시야를 방해했다. 직접적인 빛의 방해가 아닌 그림자의 방해였다. 앞뒤로 설치된 조명은 코너에 진입하면 4방향의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데 이 그림자가 내 그림자인지 아니면 뒤쪽에서 다가오는 누군가의 그림자인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속도를 줄이면 뒤쪽 선수와 가까워지고 속도를 높이면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경기는 답보 상태에 빠졌고 팀은 드라이버 교체 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애초에는 빡빡하게 한 사람당 7번이나 8번의 주행을 하려고 계속했지만 좀 더 자주 드라이버를 교체해 기록을 유지하는 쪽으로 나이트 레이스 전략을 결정했다. 나이트 레이스에서 일본팀들의 텃세는 더욱 거세졌다. 황기 구간에서 추월하거나 고의로 푸싱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크레이지 YD 레이싱 역시 크고 작은 추돌로 스핀에 시달렸고 이는 드라이버의 피로가 축적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자정을 넘기면서 두 명의 선수가 체력 저하를 호소했다. 결국 나머지 선수들이 두 선수의 주행 시간을 채우기 시작했고, 다시 드라이버 교체 주기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고 적기 발령 3번 

새벽 무렵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히려 팀에게 비는 반가운 존재였다. 조명도 제대로 없는 간이 피트에서 팀 감독인 권순일은 30위권 진입 계획을 세웠다. 경험이 가장 많은 김연동과 권순일 투톱의 주행 시간을 늘려 최대한 기록을 줄인다는 전략이었다. 비는 좀처럼 그칠 생각을 안 했다. 권순일이 들어가 앞쪽과 차이를 줄이는 사이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고, 급기야는 첫 번째 적기가 발령되면서 레이스가 중단되었다. 지친 팀에게는 그야말로 귀중한 휴식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한 시간 후 레이스가 재개되었지만 얼마 후 다시 비가 내리면서 경기가 중단되기를 두 번째. 오전 8시가 되어서야 정상적인 경기 진행이 가능해졌다. 

경기 시간이 3시간 줄면서 주최 측은 비상 회의를 소집하고 남은 경기 운영에 대해 팀들과 논의 했다. 오전 8시 이후 비가 내려도 경기는 멈추지 않고 진행하되 드라이버 교체 숫자를 줄이고 주행 후 휴식 시간도 1시간에서 30분으로 줄이는 것에 모든 팀이 합의했다. 오전 8시부터 재개된 레이스부터 이 규정이 적용된다. 경기를 준비하면서 가장 고비가 될 오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남은 드라이버 교체 횟수를 조정하고 그에 따른 선수 배치도 다시 했다. 무엇보다 주유로 인한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카트 한 대로 3시간 30분을 주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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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경기의 사령탑은 김연동이 맡았다. 이진혁과 이종승, 권순일의 주행 시간이 줄고 필자와 김연동, 김준호 세 명이 경기를 마무리해야 했다. 다행히 오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날씨도 생각보다 덥지 않아 경기를 진행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으며 새로운 스케줄에 따라 예정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오전 11시부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센 폭우가 내렸지만 경기는 중단되지 않았다. 대신 세이프티카(SC)가 상당히 오랜 시간 코스에 머물렀다. 마지막 주유를 위해 피트에 들어왔을 때 오피셜은 우리 팀에게 한 가지 사항을 전달했다. ‘당신 팀의 의무 주유 횟수가 한 번 더 남았습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규정에 명시된 의무 주유 8번을 최대 8번으로 해석한 실수였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주유를 담당했던 필자는 피트를 빠져나와 바로 다음 랩에 다시 주유를 위해 들어왔지만 이미 모든 주유는 끝나고 주유 인력이 철수한 후였다. 시계를 보니 정확히 30초 차이였다.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마지막 주자인 문준호가 투입되었다. 새벽 시간과 오전 시간에 가장 많은 주행 시간을 소화한 문준호의 체력은 그야말로 에너자이저. 오후 2시에 체커기가 올라가고 크레이지 YD 레이싱 팀은 29위로 경기를 마쳤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주유를 하지 못해 페널티를 받아 최종 결과는 30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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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최종 기록지를 받고 보고 여섯 남자는 깜짝 놀랐다. 24시간 동안 크레이지 YD 레이싱 팀이 주파한 랩은 총 1,005랩으로 거리로 따지면 2,240km가 넘는다. 개인당 평균 170랩을 소화했으며 주행 거리만 해도 380km 정도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완주’다. 애초 목표는 출발 그리드였던 28위가 목표였지만 철두철미하게 준비한 일본팀들을 사이에서 완주했다는 점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안타깝게도 포디엄 등극은 한참 멀어졌지만 최소 인원 참가상을 받아 일본팀들의 부러움을 샀다. 참고로 이번 경기에 참여한 팀당 평균 드라이버 숫자는 12명. 크레이지 YD 레이싱은 그 절반 인원으로 완주에 성공한 것이다. 경기 후 만난 한 일본팀의 관계자는 “한국팀은 우리에게 굉장한 위협이었다. 순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단 6명이 모든 것을 준비한 일본팀과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6개의 몸뚱이와 한약, 근성만으로 도전했던 24시간 카트 내구 레이스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황욱익(자동차칼럼니스트) 

사진 크레이지 YD 레이싱팀, 이스페란사(https://esperanca.xyz/), 라라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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