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저승, 폐차장 탐험
2018-10-16  |   32,693 읽음

자동차, 이렇게 떠난다

자동차의 저승, 폐차장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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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수만 대의 새 차가 땅을 밟는다. 또 그만큼의 헌 차가 우리 곁을 떠난다. 한평생 뜨겁게 달렸으나 이제 모든 임무를 다한 자동차가 잠드는 그곳, 폐차장이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련하다. 생애 첫차로 함께한 아반떼(J2)를 폐차장으로 떠나보낼 때의 모습이 흑백사진처럼 뇌리에 남아있다. 글러브박스에 “고마웠다, 잘 가라”는 메모를 넣고는 울먹거렸던 기억까지도. 그때 그 ‘아방이(당시 별명)’는 어떻게 됐을까? 소중했던 ‘내 차’의 말로를 쫓아보는 심정으로 폐차장을 찾았다.


EF 쏘나타와 함께

경기도 한 폐차장, 검은색 승용차가 입구에 들어섰다. 소음기가 뚫려 우렁차게 등장한 EF 쏘나타. 2001년식으로 지난 17년간 한 가족의 발 역할을 당당히 끝마친 가족용 자동차다. 이곳저곳 헤지고 망가진 모습에 그간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겼다. 이렇게 차가 들어오면 우선 수출 보낼지, 또는 해체할지를 정하는데, EF 쏘나타는 아쉽게도 여기서 삶을 마치기로 결정 났다. 보통 쏘나타처럼 큰 차보다는 작은 차가 개발도상국에서 인기가 더 좋다고. 폐차장 입장에서도 수출을 선호하지만, EF 쏘나타는 멀쩡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임에도 찾는 곳이 많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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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간 도로 위를 누빈 EF 쏘나타가 임무를 마치고  


해체가 결정 나자 곧바로 지게차가 ‘신부 안기’ 자세로 번쩍 들어 해체 건물(이하 해체동)로 옮긴다. 좁은 폐차장에선 차가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 지게차가 더 효율적이기 때문. 뒤쪽 휠아치 주변에서 녹이 툭툭 떨어지는 걸 보니 이제 쉴 때가 되긴 했다. 해체동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에어컨 냉매 회수다. 분해 중 냉매가 공중에 흩뿌려지는 걸 막기 위함으로 전용 장비를 이용해 뽑아낸다. 예전엔 공기 중에 그대로 날려버려 오존층 파괴 등 환경오염을 일으키던 시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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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안기 자세로 이동 중인 쏘나타. 대부분 폐차장에서는 주로 지게차를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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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냉매 회수부터다. 분해 중 공중에 흩뿌려지면 오존층을 파괴하니까


이어 쏘나타는 정비용 리프트 위에 올려졌다. 본격적인 해체 시작이다. 엔진 오일, 변속기 오일, 브레이크 오일, 냉각수, 그리고 연료탱크 속 기름까지 모든 액체류를 뽑고(신기하게도 휘발유까지 모두 검은색이었다), 엔진과 변속기, 서스펜션, 그리고 온갖 내장재까지 순식간에 분해된다. 우리가 정비소에서 익히 보아온 장면이 떠오르겠지만, 실제론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폐차는 다시 붙일 일 없기 때문에 손길이 과감하기 그지없다. 임팩트 렌치로 ‘툭툭’ 풀어내 바닥에 ‘땡그랑’ 던져버리고, 안 풀리는 건 싹둑 썰어낸다. 사정없이 해체당하는 쏘나타가 불쌍할 지경. 아방이를 보낼 때 폐차장에 안 따라가길 잘했단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게 약 2시간이면 리프트 위엔 앙상한 차체만이 남는다. 

따로따로 분리된 부품들은 이제 각자의 길을 걷는다. 엔진과 변속기, 서스펜션, 휠, 타이어, 내장재, 각종 단품류가 종류별로 나뉜다. 이들은 상태가 좋으면 해외로 나가거나 재생업체, 또는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되며, 고철 등 재활용 소재로 최후를 맞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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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용 리프트 위에서 본격적인 해체가 시작된다. 소요시간은 1.5시간~2시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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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기술자가 사정없이 부품들을 떼어낸다


분해가 끝나면 폐차장의 랜드마크, 일명 ‘누를’ 차례다. 지게차로 쏘나타 차체를 압축기에 넣은 후 가동. ‘쉬이이잉’ 유압 실린더 소리와 함께 느릿느릿 압축기가 내려온다. 그런데 별안간 지게차가 쏘나타를 연신 ‘쿡쿡’ 찌른다. 종잇장처럼 일그러지는 쏘나타를 보며 ‘공장장님 화나셨나’는 생각이 들 무렵, 담당자가 “압축기에 눌리기 전에 저렇게 밀어줘야 B필러(운전석 옆 가운데 기둥)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안쪽으로 곱게 접힙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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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가 끝난 차체는 다시 지게차를 타고 압축기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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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기가 내려오는 중. B필러가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콕콕 찔러주는 중이다


거대한 압축기 아래에서 쏘나타 차체는 속수무책이었다. ‘빠각빠각’하고 미쳐 떼어내지 않은 부품과 철판이 연신 비명을 질러댄다. 몇몇 부품은 끊어지면서 밖으로 굴러 나오기도 한다. 취재진과 담당자는 모두 할 말을 잃은 채 묵묵히 지켜봤다. ‘누군가에게 새 차로서 벅찬 감동을 안겼을, 그리고 동반자로 동고동락했을 자동차의 삶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숙연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담당자가 입을 열었다. “참 안타깝죠.” 이런 모습을 수천 번을 보아왔을 폐차장 담당자도 이 마지막 과정은 여전히 씁쓸하단다. 500t 압축기에 완전히 눌린 쏘나타 차체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납작해졌다. 단지 그릴과 엠블럼만이 이 차가 쏘나타였다는 걸 말해줄 뿐. 이로써 폐차 과정은 모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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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눌릴 때의 모습 ‘빠각빠각’ 소리가 들릴 뿐 압축기 속도는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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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눌렸다. 눌린 차체의 무게는 대략 650kg 정도다


새로운 시작

폐차는 마지막이지만 또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약 자동차의 89%가 재활용되어 새 삶을 얻는다. 우리와 함께 폐차장을 누빈 EF 쏘나타도 고철로서 다시 새 제품이 되어 돌아올 거다. 폐차장 각 부품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조목조목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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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와 함께 고철로 처리될 폐품. 싹둑 잘린 사다리꼴 프레임이 눈에 띈다


우선 차체. 납작하게 눌린 차체는 이미 고철 이상의 가치는 없다. 납작하게 눌린 차체는 거대한 문서 파쇄기 같은 철재 파쇄기를 통해 잘게 쪼개진 후 재활용된다. 갤로퍼와 무쏘, 모하비 같은 차의 사다리꼴 프레임 철제 골격이나 서스펜션 기구, 동력 축 등도 대부분 이처럼 고철로 분류된다.

자동차의 심장, 파워트레인은 그래도 가치가 높다. 해외로 수출되는 빈도가 높고 재생부품으로 나가는 경우도 많다. 주로 디젤 엔진이 수출되며, 승용 엔진 중엔 소형 엔진이 수요가 많다. 3기통 경차 엔진의 경우 때에 따라 40만원을 호가한다고. 그러나 인기 없고 상태도 안 좋은 엔진은 차처럼 분해돼 재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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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차에서 나온 엔진. 재생돼 다시 힘차게 박동할 날을 기다린다


소재만으로도 값어치 높은 부품도 있다. 백금이 들어간 삼원 촉매 장치는 비싸면 30만원을 넘어서며, 예전 LPG 차에 연료파이프로 들어간 동관(요즘은 강화된 고무관을 주로 사용한다)과 배선 속 구리는 kg당 가격이 상당히 높은 편. 폐배터리는 속에 든 납을 활용하며, 알로이 휠도 스틸 휠보다 가치가 높다. 배터리와 알로이 휠이 없는 폐차는 폐차 값이 깎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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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차장에서 보물로 불리는 삼원 촉매 장치. 속에 백금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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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로 가치가 높은 알로이 휠과 폐자재로 처리될 타이어 


부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건 온갖 단품류다. 보통 손쉽게 교체할 수 있는 부품이 인기가 높다.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사이드미러, 문짝 또는 보닛 같은 것들. 특히 요즘 램프류에 LED가 유행하면서 신품 값이 엄청나게 치솟았지만, 폐차장 부품은 그 속이 어떻든 값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큰 지출을 아낄 수 있다. 게다가 램프류는 폐차 부품임에도 비교적 깔끔한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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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램프와 테일램프는 폐차장에서 매우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이득만 남는 건 아니다. 냉각수와 에어컨 냉매는 관련 업체에 비용을 내 처리하며, 타이어도 중고나 재생으로 판매되지 않으면 폐기물로 전락한다. 폐오일은 값어치를 쳐주긴 하지만, 냉각수 처리 비용이 더 많아 결국 액체류는 손해라고. 폐차에서 나온 휘발유와 경유도 유통이 안 되기 때문에 폐오일 이상의 값어치는 없다. 단지 폐차장 안에서 써먹을 뿐이다.

폐차장, 바닥은 기름에 절었고 차들은 처참했다. 당연한 게 아닌가. 밖에서 가치를 다한 자동차들이 생을 마감하는 곳이니. 잠깐 들렀던 취재진에게도 어느새 기름 냄새가 뱄을 정도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지저분한 이곳이 있기에 우리네 환경이 깨끗이 보존되고 말끔한 새 차를 계속 누릴 수 있다. 자동차 자원 순환의 시작점이랄까. 폐차장에 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이유다.


폐차장 말말말~

폐차장에서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들. 단, 폐차장 사정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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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오래된 차보다 사고 난 최신 차가 가치 있다

오래된 차는 부품 수요도 적고 전체적인 부품 노후화가 심해 쓸 수 있는 게 적지만, 사고 차는 부서진 부분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 양질의 부품을 얻을 수 있어 가치가 높다.


폐차장에서 가장 비싼 장비는?

폐차장마다 다르지만 보통은 압축기다. 주문 생산되는 방식으로 제작되며, 취재에 협조한 폐차장의 경우 250t급 실린더 두 개가 달려 500t 무게로 누르는 압축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값은 대략 1억원대라고.


큰 차가 더 튼튼하다

폐차장 실무자들이 직접 눌러보고 들려준 이야기. 독일제 대형 세단은 지게차로 B필러를 사정없이 찔러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튼튼하다. 국산차 중에서도 에쿠스급은 독일차 버금갈 만큼 단단하다.


앞과 뒤를 따로 붙인 자동차, 수출은 흔한 일 

우리나라에선 불법이지만, 수입 나라에 따라 문제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앞과 뒤가 각각 부서진 차를 붙여쓰기도 하며, 일부러 멀쩡한 차 앞뒤를 잘라 현지에서 붙이기도 한다. 일부러 절단하는 이유는 차가 아닌 고철로 분류되면 관세를 덜 물기 때문이다.


폐차하면 돈 준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차를 폐차하면 폐차장에서는 그 차로 수익을 내기 때문에 고철값을 고객에게 지급한다. 폐차는 쓰레기가 아닌 자원이다.


폐차장은 전기차를 기다린다

전기차 시대가 다가오면 폐차장은 값비싼 전기 배터리 재순환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현재 어떻게 분해해야 효과적일지 한창 연구 중이라고.


피가 말라붙은 폐차도 종종 있다

사고 차가 들어오는 곳도 당연히 폐차장 아니겠나. 찝찝하긴 하지만 꾹 참고 해체할 수밖에 없다. 



폐차장 진귀한 자동차들

예상보다 얼마 없었지만 있긴 있었다. ‘희귀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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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익 파크 애비뉴 - 존재조차 잊혔던 파크 애비뉴를 만났다. 1990년 출시된 5.2m 길이 초대형 세단으로 당시 뷰익 중 가장 큰 차였다. 이 차가 우리나라 폐차장에 있는 이유는 대우자동차가 유럽형을 가져와 팔았기 때문. 당시 값 4,100~4,500만원으로 대략 그랜저 두 배 값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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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벤츠 CL클래스(C140) - 이 귀한 차가 폐차장에? 오늘날 S클래스 쿠페의 조상이자 최초의 CL클래스다. 우리나라에 정식 수입된 적 없는 매우 희귀한 모델로 5m를 넘는 거대한 덩치에 최대 12기통 7.3L 초대형 엔진을 얹었다. 페차장에서도 아까워서 관상용으로 올려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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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포니2 픽업 - 포니2 픽업이 구슬픈 모습으로 구석에 서 있었다. 다른 상태 좋은 포니(1975)는 산업기술 유물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가 되기도 했지만, 이 차는 상태가 좋지 않아 고철 이상의 가치는 없는 모양이다. 어설픈 국방색 도색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헤드램프가 더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윤지수 기자 

사진 최진호 

취재협조 굿바이카폐차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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