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즐기는 자동차 마니아의 모임, 카즈앤커피
2018-01-16  |   26,010 읽음


여유를 즐기는 자동차 마니아의 모임
CARS & COFFEE

땅덩어리가 넓은 만큼 미국에선 다양한 자동차 이벤트가 열린다. 이중 캘리포니아에서 시작한 카즈앤커피는 미국을 넘어 유럽과 한국까지 비슷한 형태의 이벤트로 퍼져나갔다.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간(주로 6시나 7시)에 모여 커피 한 잔 마시고 9시가 되기 전 해산하는 카즈앤커피는 휴일에 잠깐 짬을 내 자동차를 즐기는 소탈한 이벤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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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땅 캘리포니아의 자동차 문화는 매우 다양하다. 아시아, 남미, 유럽 등 전 세계에서 모인 인종들이 살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다양한 문화가 혼합되어 있으며 미국 내 소득이 가장 높고 빈부격차가 가장 큰 지역으로 불리기도 한다.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을 대표하는 V8 엔진을 품은 핫로드부터 다양한 종류의 픽업, 그리고 여러 국가의 자동차까지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캘리포니아다. 여기에 일 년 내내 온화한 날씨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건조한 기후까지 합하면 중남부 캘리포니아는 그야말로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는 최적의 장소다. 캘리포니아 자동차 문화를 대표하는 카즈앤커피는 그들의 문화적 배경과 환경적 특성이 잘 녹아든 이벤트다.


주로 서부 중심의 미국 취재를 준비하면서 처음에는 혼란에 빠졌다. 자동차 이벤트도 많고 매주 열리는 소규모 모임부터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자동차 박물관, 그리고 서킷까지 당초 계획했던 일정은 미국 서부를 둘러보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주어진 시간은 단 열흘. 이 안에 모든 곳을 둘러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동선과 이벤트 일정, 박물관의 개관 시기에 따라 추려진 곳이 대략 15곳 정도. 이중 가장 기대했던 일정이 바로 카즈앤커피였다.

카즈앤커피의 유례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카즈앤커피의 기원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자동차를 좋아했던 고교 동창생 네 명이 아침에 헌팅턴 비치의 도넛 가게 앞에 모여 커피와 도넛을 먹으며 자동차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유래로 알려진다.

1986년 즈음 시작되었다는 모임은 이후 매주 토요일 정례화되면서 규모가 점점 커졌다. 초기에는 주로 미국산 핫로드가 중심이었으나 입소문을 타면서 드래그 레이서와 핫로드 업계의 유명인사들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모여 9시 전에 일찍이 해산하는 이유는 주변 상권에 방해되지 않기 위함인데 이는 전세계에서 열리는 카즈앤커피의 전통처럼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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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그대로 카즈앤커피


미국차 중심의 분위기에서 탈피하고 싶어 했던 멤버들은 이후 코로나 델마의 크리스탈 코브 쇼핑센터에서 또 다른 카즈앤커피 모임을 만드는데, 이때는 유럽산 스포츠카와 수퍼카가 주축이 됐다. 카즈앤커피라는 이름은 이때부터 쓰인 것으로 알려진다. 약자인 CC는 카즈앤커피의 이니셜이기도 했지만 코로나 델마(Crona del mar)에 있는 크리스탈 코브(Crystal cove)의 이니셜이기도 하다. 이 모임 역시 규모가 커져 크리스탈 코브의 주차장에 모두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거대해진 규모와 주변 고급주택가의 민원, 교통체증이 더해지면서 크리스탈 코브는 7시 이전에는 주차장을 개방하지 않는 방침을 정한다. 결국 오렌지 카운티의 부동산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던 어바인 컴퍼니는 인근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2006년 크리스탈 코브에서 열리는 카즈앤커피를 금지해 버린다.


다른 장소를 물색하던 차에 포드 자동차 서부지역 홍보 책임자 존 클리나드가 당시 포드의 PAG 본부 주차장을 제공하면서 모임의 명맥이 이어졌다. 이후 PAG가 해체되면서 본부 건물을 매각한 뒤에는 같은 단지 내의 마쓰다가 그 바통을 이어 받았다. 그러나 이 모임 역시 참가대수가 1,000대를 넘어가면서 공간이 부족해짐에 따라 공식적으로는 2014년 12월 마지막 주 이벤트를 최후로 막을 내렸다.


이제 카즈앤커피는 캘리포니아 외에도 자동차 마니아들이 모이는 아침 이벤트의 대명사가 됐다. 다양한 주최자가 모임을 열고, 또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모임을 만들면서 각 지역 별 다채로운 아침 이벤트로 자리 잡은 것이다. 카즈앤커피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벤트가 캘리포니아만 해도 수백 개에 이르고 유럽과 한국까지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이벤트가 열릴 정도. 고교 동창생 네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소규모 모임이 아침에 모이는 자동차 이벤트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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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자동차 마니아들의 집회에 참석하다!
미국 취재를 준비하면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카즈앤커피였다. 현지 코디네이터의 도움으로 취재 기간 동안 관람할 수 있는 카즈앤커피를 조사해 보니 5월 20일 하루에만 수십 개나 되었다. 이 중 어바인을 중심으로 한 시간 거리(대략 60km 이내) 안에서 열리는 카즈앤커피는 9개. 각 이벤트들의 테마나 주제도 다양하다. 대체로 산타아나 혹은 애너하임 같은 비교적 내륙 쪽에서 열리는 이벤트는 핫로드와 로우라이더 중심이고 롱비치, 산타모니카 같은 해안 쪽에서는 유럽차 중심의 이벤트가 열렸다.

이중 필자는 펠리칸 파츠가 주관하는 카즈앤커피에 가기로 결정했는데, 이 모임은 3개월에 한 번 열리는 올드 포르쉐 오너스 클럽의 모임과 함께 진행되는 이벤트였다. 올드 포르쉐 오너스 클럽이 중심이긴 하지만 그 외 다양한 자동차들도 참가해 총 참가 대수는 약 350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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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포르쉐 오너스 클럽이 주축이지만 참가 차종은 메이커를 가리지 않는다


펠리컨 파츠의 카즈앤커피는 오전 7시에 어바인에서 약 48마일 떨어진 롤링 힐즈 페닌슐란 쇼핑센터 주차장에서 열렸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행사장에 가까워질수록 참가차들이 눈의 띄기 시작한다. 427 코브라를 비롯해 털털거리는 소리가 매력적인 올드 비틀, 공랭 엔진 특유의 사운드를 자랑하는 올드 포르쉐와 이름 모를 빈티지카들은 모두 같은 고슬 향하고 있었다. 바로 페닌슐란 쇼핑센터의 위층 주차장. 입구에서 참가자만 들어갈 수 있는 확인 절차를 거친다. 관람객은 별도의 주차장에 주차한 후 입장할 수 있다. 물론 주차비와 입장료 모두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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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볼보라 불리던 시절 볼보의 엔진룸,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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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에 오는 길에만 3대를 본 코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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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GT40도 두 대나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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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가 달렸기 때문에 참가할 수 있었던 장갑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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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뿐 아니라 반려동물까지 다양한 가족 단위 참가자들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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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급 같아도 나름 의미가 있는 차라면 상태는 문제 되지 않는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350여 대의 자동차가 줄지어 서있는 장관이 펼쳐졌다. 올드 포르쉐 오너스 클럽이 중심인 만큼 전체 참가자의 약 60%가 포르쉐다. 930부터 914, 964, 996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다양한 포르쉐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슈투트가르트의 포르쉐 박물관보다도 볼거리가 많고 모델도 다양했다.


물론 포르쉐뿐이 아니다. 일본에서조차 보기 힘든 스바루 SVX나 초기 코롤라를 비롯해 데 토마소 판테라 등 세계적으로 희귀한 자동차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이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자동차는 1960년대 등장한 포드 에스코트 1세대 랠리 버전 RS1600이었다. 에스코트는 유럽 포드에서 개발 및 생산을 담당한 베스트셀러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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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롤라 초대 모델은 본국 일본에서도 흔치 않은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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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데 토마소 판테라는 오너가 직접 운전해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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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보기 어려운 포드 에스코트 RS1600

무엇보다 에스코트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랠리다. RS1600을 시작으로 RS1800, RS2000으로 이어지는 유럽 포드의 고성능 버전은 지금도 많은 컬렉터들이 눈독 들이는 모델이다. 에스코트 RS1600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이 날 참가한 차가 바로 미국에 공식 수입된 첫 차였기 때문이다. 연식에 따라 수입허가를 받을 수 있는 캘리포니아의 법규 때문에 그동안 RS 시리즈는 미국에서 보기 힘든 희귀 차종이었다. 드디어 수입 제한이 풀림에 따라 처음 공식적으로 미국 땅을 밟게 된 RS1600인 셈이다.


미국인에게 사랑받는 독일 메이커로는 BMW를 꼽을 수 있는데 생각 외로 BMW는 미국 진출이 빨랐던 터라 유럽보다 더 많은 클래식 BMW가 캘리포니아에 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은 2002로, 이번 행사에서도 다양한 버전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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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차에 인기는 여기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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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움 가득한 클래식 벤츠는 존재감이 뚜렷했다


무엇보다 카즈앤커피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오너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자동차마다 얽힌 오너와의 특별한 추억이나 사연 등을 자연스레 들을 수 있었는데, 오랜 기간 유지 보수한 차들이 대부분이라 오너들의 지식수준 역시 수준급. 차 옆에 있는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대답이 튀어나온다. 특정 차종에 대해서는 인터넷에서 얻을 수 없는 정보들도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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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1세대 페어레이디Z(S30)에 GT-R의 심장 RB26 엔진을 이식한 차의 오너다. 나이가 지긋한 이 할아버지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Z를 나름의 방식으로 꾸몄다고 한다. 원래 있던 직렬 6기통 엔진도 좋아했지만 RB 엔진의 강력한 성능을 동경해 이 차를 만들었다고. 겉모습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그대로 묻어 있지만 구동계와 파워트레인은 요즘에 맞게 개조됐다. 오래되고 털털거리는 겉모습 아래에 빼어난 고성능을 감추고 있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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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가장 독특했던 차는 초기 페어레이디Z에 GTR RB26 엔진을 얹은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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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오너의 50만 마일(80만 4,672km) 주행 기념 파티도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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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리 사양인 이 차는 표면의 흙먼지까지 재현했다


물론 신형 NSX나 람보르기니 우라칸 같은 최신 모델들도 카즈앤커피에 참가한다. 그러나 관심도에 있어서는 오래된 차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다. 성능은 뛰어나지만 오랜 시간의 흐름에서 느껴지는 낭만이 없다는 이유다. 그렇지만 이런 차들을 배척하거나 등한시하지는 않는다. 단지 가치가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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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가 조금 넘은 시각부터 차가 빠지기 시작한다. 예정된 시간은 9시까지였지만 400대 가까운 차들이 한 번에 빠져나가려면 만만치 않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페닌슐라 쇼핑센터 2층 주차장을 가득 메웠던 차들은 저마다 시동을 걸고 움직일 준비를 한다. 어떤 이는 예배당으로, 어떤 이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또 어떤 이는 함께 온 동료들과 드라이브를 가기 위해 준비한다. 출구에는 다른 자동차 이벤트와 마찬가지로 안전 운전, 조용히 퇴장을 부탁하는 문구가 붙어있다. 그렇게 눈 호강하면서 보낸 신기루 같았던 2시간여의 집회는 마무리되었다.


생각보다 카즈앤커피는 동적인 이미지였지만 막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정적인 이미지가 가득했다. 지정된 자리에 주차하면 끝날 때까지 움직이거나 시동을 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혹자는 차를 세워두고 수다 떨고 커피 마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하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오랜 세월을 이어온 자동차 마니아들의 문화 중 하나다.

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 사진 류장헌 현지 코디네이터 Joha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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