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헤리티지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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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과거를 추억하는 곳 
닛산 헤리티지 컬렉션
  


일본에서 가장 먼저 자동차를 만든 브랜드로서 한때 일본을 대표하던 닛산의 명성은 1990년대 경영 참패 이후 대부분 희석되고 말았다. 하지만 닛산의 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엔지니어링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시대를 앞서갔던 기술력과 엔지니어의 열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요코하마의 닛산 헤리티지 컬렉션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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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말한다. 닛산의 역사는 카를로스 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과연 그럴까? 적어도 전투적인 기술 개발에 있어서는 카를로스 곤 이전이 훨씬 더 화려했다고 생각한다. 끝없이 도전하는 열정과 투지가 가득한 닛산, 자동차 마니아들이 생각하는 닛산의 황금기는 카를로스 곤 이전에 있다. 누군가는 ‘지금이 중요하지 케케묵은 과거가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하겠지만 모든 분야에서 역사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11년 카이신샤(快進社)부터 현재까지 닛산은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늘 엔지니어링 중심 경영을 해왔고, 그들이 가진 열정과 투지는 ‘기술의 닛산’이라는 별명을 만들었다. 카를로스 곤이 지배하는 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의미다. 만약 닛산에게 이러한 철학과 열정이 없었다면 아마 닛산은 그저 그런 회사로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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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안 시설이라 방문절차가 까다롭다

 

굴곡 많은 역사를 만나다
닛산의 역사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닛산 헤리티지 컬렉션의 취재 준비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전시공간이 공장 내 개라지에 있다 보니 출입 조건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한국 닛산을 통해 취재 신청을 하고 서류를 보내고 기다리기를 보름. 어렵사리 취재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과정이 까다롭긴 했지만 글로벌 미디어 담당자와 가이드(대부분 은퇴자)가 대동해 좀 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닛산 헤리티지 컬렉션은 닛산의 주력 공장이 있는 요코하마의 미나미린칸역 부근에 위치한다. 자마 공장이라 불리는 이곳은 한때 효율성과 생산성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곳이다. 지금은 전기차 개발 생산 공장으로 전환되었지만 예전에는 닛산의 주력모델을 만들던 곳이다. 요코하마에는 자마 공장 외에도 니스모 쇼룸과 닛산 엔진 뮤지엄 등 닛산과 관련된 여러 유명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자마 공장의 입구에서 신원 확인 후 출입증을 받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공장 내 시설이다 보니 허가를 받은 미디어와 VIP, 닛산 관계자를 제외한 일반인의 관람은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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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륜차 모형에 한글 설명이 이채롭다


닛산의 기원은 19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최초의 국산 자동차인 다토(DAT CAR)를 1914년에 내놓았고, 1918년에는 셀프 스타터가 장착된 DAT41을 생산했다. 이후 회사명이 되는 닷선(DATSON)은 카이신샤의 설립자인 하시모토의 후원자 덴 겐지로(田健治郎) 남작과 통신 기술자이자 하시모토의 친구인 아오야마 로쿠로우(青山禄郎), 중장비 업체 고마츠의 창업자인 타케우치 메이타로(竹内明太郎)의 머리글자를 조합(DAT)한 것이다.


1926년에는 지츠요 자동차 제조 유한 공사와 합병해 다토 자동차 제조 유한공사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닷선(DATSUN) 이름을 사용한 시기는 1930년으로, 이전에는 DATSON으로 사용했었지만 뒷부분의 SON이 손해를 뜻하는 ‘損’으로 들릴 수 있다는 의견이 있어 DATSUN으로 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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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선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30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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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의 전신인 닷선의 모델들도 충실하게 갖추어져 있다


닛산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때는 1934년이다. 1933년 토바타 주물 회사에 합병된 후 탄생한 닛산은 2차 세계대전 때까지 덩치를 불렸으나 전쟁 후 점령군에 의해 그룹이 해체 되면서 닛산자동차로 독립하게 된다. 전쟁 후까지 닛산의 역사는 상당히 복잡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1966년 일본 내 자동차공업합리화정책에 따라 토요타와 닛산, 마쓰다를 제외한 나머지 중소규모 자동차 메이커들이 인수 합병되는 과정에서 닛산이 프린스 모터스를 인수하면서 ‘기술의 닛산’ 신화가 시작된다.

기술과 혁신, 끝없는 도전
닛산 헤리티지 컬렉션의 입구는 생각보다 단출하지만 강력한 임팩트가 있다. 입구 바로 옆에는 1980년대 일본 아이돌 콘도 마사히코가 탔던 마치 경주차가 전시되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가요계 아이돌로 출발해 현재는 자신의 레이싱 팀을 운영 중인 콘도 마사히코가 레이스와 처음 인연을 맺은 차가 바로 닛산 마치. 마치는 이제 그의 별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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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 마사히코의 마치 경주차


닛산 역사에 대한 간단한 홍보 영상을 보고 닛산 헤리티지 컬렉션에 입장했다. 닛산 헤리티지 컬렉션은 닛산이 생산한 대부분의 차들을 보관하는 거대한 창고이다. 약 350대의 차를 1940년부터 연대별로 보관 중이며, 20여 명의 직원이 상주하며 전시차들의 컨디션을 체크한다. 화려한 조명이나 디스플레이 소품 따위는 없다. 눈길을 끄는 것이라고는 차 옆에 있는 설명판뿐이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단출하지만 전시차 한 대 한 대에 닛산의 도전과 기술이 진하게 배어 있다. 이 중 실제로 움직이는 차는 90% 정도이며 경주차만 따로 모아 놓은 곳에 있는 30여 대는 언제든 주행이 가능한 컨디션으로 유지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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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닛산차들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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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버드를 비롯한 60년대의 닛산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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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에 어린이 놀이시설을 위해 개발했던 닷선 베이비(빨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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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에서 시작해 닛산의 대표작이 된 스카이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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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기통 엔진을 얹었던 스카이라인 GT


가장 앞쪽에는 닷선 시절의 차들이 자리를 잡았다. 다분히 유럽의 영향을 받은 당시 차들은 생각보다 크기가 작다. 도로 환경과 국민성의 영향을 받은 결과다. 비슷한 시기 유럽이나 미국의 차들은 5m를 넘었다.


1940년대부터는 닷선과 닛산 외에도 특별한 차들이 눈에 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자동차는 프린스 모터스의 전신인 타치카와 비행기 제작소가 1947년 선보인 전기차 타마. 당시 일본 내 물자 부족을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에서 나온 타마는 배터리 교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차체 아래 배터리를 수납하고 한 번에 약 65km를 주행할 수 있는 타마는 여러 버전을 선보였으나 생명력이 길지는 않았다. 타치카와는 이후 프린스 모터스로 회사명을 바꾸고 1966년 닛산자동차에 합병되었다. 타마는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에 선보인 모델이다. 그러나 동력계 구조는 지금의 전기차와 큰 차이가 없다. 프린스가 닛산에 합병되기 전에 나온 이 차가 여기에 있는 것이 굉장히 의아했는데, 관계자는 “닛산은 자신들이 인수한 회사의 역사도 함께 보존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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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닷선은 영국 오스틴의 기술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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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라인 하드톱과 세드릭 등 고급차들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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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포츠카의 아이콘 중 하나인 페어레이디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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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쿨러 터보 엔진을 얹은 4세대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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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대 실비아는 이니셜D를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전쟁 후 일본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시기였던 1950년대에 닛산은 주로 화물차와 다양한 크기의 트럭을 만들었다. 경제성이 높은 디젤 엔진도 등장했고 다양한 변화보다는 회사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 닛산 역시 한국전쟁 특수를 누린 회사 중의 하나. 당시는 1950년대는 꺼지지 않을 것 같던 일본의 거품 경제가 시작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1966년 닛산은 프린스 모터스를 인수하며 일본 최대의 자동차 회사로 성장한다. 항공기 기술자들이 주축이 된 프린스 모터스는 일본의 자동차공업합리화정책에 따라 폐업과 인수합병의 기로에 서 있었다. 당시 프린스는 스카이라인과 글로리아 등 개성 있는 차들을 선보였지만 토요타나 닛산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결국 프린스는 닛산에 인수합병되지만 닛산은 이들의 기술력에 주목했고 고용 승계와 기술 개발을 보장하는 조건을 내세웠다. 항공기 기술자들이 개발한 기술을 그대로 자동차에 접목하면서 닛산은 거품경제와 함께 풍요롭던 시절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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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미 넘치는 초창기 블루버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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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카 시장을 이끌다
닛산은 1960년대 모터스포츠 무대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프린스에서 경주차 R380 개발에 참여했던 엔지니어들은 스카이라인을 좀 더 스포티하게 다듬었으며, 이들은 모터스포츠를 통해 기술력을 검증하곤 했다. 닛산을 상징하는 스포츠카인 GT-R 역시 프린스 시절의 스카이라인 GT에 뿌리를 두고 있다. 스카이라인과 함께 닛산의 간판 역할을 했던 블루버드와 실비아도 이 시기에 나왔으며 Z카로 불리는 페어레이디Z는 1969년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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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말 등장했던 5세대 스카이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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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32 스카이라인 GT-R은 설명이 필요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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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그룹C 경주차인 R85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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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R과 공동개발했던 GT1 클래스 머신 R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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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이 인상적인 글로리아와 스카이라인 경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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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프린스에서 개발되었던 경주차 R380


스포츠카뿐 아니라 럭셔리 세단 시장에서도 닛산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토요타가 크라운으로 일본 내 세단 시장을 평정하려 하자 닛산은 글로리아와 세드릭 등으로 맞섰다. 이때 닛산은 기술력과 함께 디자인을 내세웠는데 1965년에 발표된 세드릭은 카로체리나 피닌파리나에서 디자인을 담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스타일의 큰 차체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는 일본 소비자들을 매료시키며 큰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불자 스포츠카 시장에 된서리가 내렸다. 켄메리로 알려진 2세대 스카이라인 GT-R은 고작 197대만 생산된 후 단종되었고 로터리 엔진 탑재를 계획했던 2세대 실비아(S10)는 프로젝트 자체가 없어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오일쇼크 이후 거품 경제가 극에 달했던 1980년대 닛산은 그야말로 ‘잘 나가는’ 자동차 회사였다. 꾸준한 기술 개발과 엔지니어들의 자부심, 차를 좀 아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깊은 신뢰감은 닛산을 이끄는 근원이었다. 아울러 하이카스(HiCAS)와 아테사(ATTESA), 터보를 조합한 첨단 고성능 스포츠카로 기술력을 과시했다. 펄사와 써니, 블루버드, 실비아, 스카이라인 같은 차들은 닛산을 대표하는 모델로 자리를 잡았다.


1989년에는 20세기가 낳은 명기라 불리는 RB 엔진을 탑재한 스카이라인 GT-R(R32)이 부활했다. 스카이라인 GT-R은 각종 모터스포츠를 휩쓸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스포츠카가 되었고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활약했다.


1990년대는 닛산이 모터스포츠와 스포츠카 분야에서 전성기를 보낸 시기이다. 랠리를 비롯해 투어링카, 일본 내 포뮬러와 르망, 내구레이스에 이르기까지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절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토요타 수프라, 혼다 NSX, 닛산 스카이라인 GT-R의 대결이 늘 초유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계속될 줄 알았던 화려한 시기는 일본의 거품 경제가 끝나면서 함께 사라졌다. 방만한 경영, 전문 경영인의 부재, 모터스포츠의 과도한 투자,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르노의 품에 안기게 된 것.
닛산 헤리티지 컬렉션에 보관 중인 차들은 저마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안고 있다. 닛산이 자체적으로 보관해오던 차부터 일본 내 기증, 담당부서 직원들이 전세계를 돌며 구입한 차들로 역사의 퍼즐을 맞췄다. 부품 수급과 리스토어, 유지 보수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이들의 열정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이야 닛산이 비교적 돈이 되는 안정적인 차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들을 지탱하고 있는 주춧돌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열정과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아닐까?

 

글, 사진 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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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어레이디의 역사도 닷선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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