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생활 33주년 창간기념 특집- G80 스포츠 3,333km 국토 대장정[3부]

M CARLIFE 0 6,313

​본 기사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동차생활 33주년 창간기념 특집 

​CARLIFE 33

우리는 단 하나의 고민으로 머리를 맞댔다. “거창하지 않은 창간기념 특집을 만들어보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30년 묵은 올드카와 시내버스를 포함한 5대의 차를 시승하면서 도합 5,000km이상을 주행했다. 결국 이렇게 스무 페이지 분량의 대형 특집 기사를 만들어버렸다. 기자 다섯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33주년을 기념하다보니 스케일이 절로 커져버렸다. 누구는 33번 버스에 올랐고, 누군가는 33번 국도를 달렸으며, 어떤 이는 3,333km 시승에 도전했다. 숫자 ‘33’을 이름에 새긴 역사 속 자동차를 되짚어본 이도, <자동차생활>이 창간한 1984년에 등장한 올드카를 시승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단 하나의 다짐으로 책을 만든다.

“대한민국 최초의 자동차 전문매체로서 부끄럽지 않은 기사를 쓰자.”가끔은 실패한다. 때로는 좌절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또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게 쌓아온 시간이 33년이다.
* 글 <자동차생활> 편집부 사진 최진호,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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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G80 SPORT
G80 스포츠 3,333km 국토 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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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단순한가. 33주년 특집이라며 배기량 3.3L짜리 G80 스포츠로 3,333km를 달렸다. 333km는 시시했고, 3만3,333km는 너무 과했으니까. 3,333km를 달리는 건 결코 만만치 않았다. 4일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먹고 잘 때만 빼고 계속 달려야 했다. 그렇게 한반도를 두 바퀴 돌며 3,333.3km가 계기판에 찍히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차를 팔아본 사람은 알 거다. 다른 사람 손에 이끌려 사라지는 정든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게 얼마나 쓸쓸한지. G80 스포츠를 반납할 때 그런 기분이 들었다. 3,333km 긴 여정을 함께하며 마치 내 차처럼 끈끈하게 정이 들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밉고 까칠했으면 이런 감정이 싹틀 리 없었을 터. G80 스포츠는 국토 대장정 완주의 1등 공신이다. 이 차가 아니었다면, 이 기획은 333km 시승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달갑지 않은 시작         
사실 33주년 기획 주인공으로 G80 스포츠가 낙점된 건 어부지리 행운의 결과다. 당초 점찍었던 스팅어 시승차가 일정이 맞지 않았고, 그랜저는 시승차 자체가 없었기 때문. 33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3.3L 배기량을 고르다보니 딱히 스케줄이 없었던 이 차가 캐스팅됐을 뿐이다.


검은색 G80 스포츠를 마주하자 지난해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당시 탔던 G80 스포츠는 코너에서 둔한 모습이 ‘스포츠’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다소 부족했다. 겉모습은 여전히 강렬하고 실내는 화려했지만 내공이 부족하면 아무리 외모가 뛰어나도 속빈 강정으로 보이기 마련. 별 기대 없이 3,333km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첫 행선지는 경기도 안성. 서울을 탈출하며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국토일주에 대한 설레는 마음과 미끄러지듯 매끄러운 승차감이 기분을 한껏 들뜨게 했다. 2톤에 달하는 차체와 낭창낭창한 서스펜션, 3m가 넘는 길쭉한 휠베이스가 어우러진 대형 세단 특유의 하모니는 머릿속 한켠에 자리한 3,333km 주행에 대한 조급함마저 잊게 한다. 다른 차가 없어 떠밀려 받긴 했지만, 국토 대장정을 함께 할 파트너를 제법 잘 고른 것 같다.

그랜드 투어러의 가치 
안성에 도착해 기자가 즐겨 찾는 고갯길을 찾았다. 과연 G80 스포츠는 과거의 오명을 씻을 수 있을까?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가속 페달에 힘을 줬다. 역시 부족함 없이 호쾌하다. 트윈터보 엔진이 1,300rpm부터 52.0kg·m의 최대토크를 뿜어내 2톤의 거구를 가뿐하게 이끈다. 거대한 차체 덕에 급가속시 불안감도 크지 않은 수준. 명민한 8단 변속기의 직결감도 나무랄 데 없다. 특히 높은 rpm에서 기어를 바꿔 물 때 약간의 변속 충격을 일부러 남겨 질주본능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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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 고갯길. G80 스포츠는 비록 무겁지만 균형은 탄탄하게 잡혔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이전에도 느꼈던 장점. 문제는 코너다. 본격적으로 고갯길의 첫 번째 코너에 진입했다. 진입 전 브레이크로 속도를 줄이자, 후륜구동 세단답게 무게가 정직하게 앞으로 이동한다. 이대로 코너 중간까지 브레이크를 유지한 채 진입하면 네 바퀴에 균일하게 무게가 실린다. 균형은 제법 탄탄한 수준. 다만 발목을 잡는 건 역시 무게다. 앞 245mm, 뒤 275mm 폭을 가진 콘티넨탈 타이어도 2톤의 관성을 버텨내는 건 힘든가보다. 코너 진입 한계속도는 결코 높지 않다. 단, 이건 이 차의 성격으로 이해해야 할 문제다. G80 스포츠는 장거리를 여유롭게 달리는 그랜드 투어러(GT) 성격이 짙기 때문. 뒤에 ‘스포츠’가 붙었다고 해서 스포츠카 같은 날렵한 코너링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만약 이 차가 날쌨다면, 이토록 편안하긴 힘들었을 거다.


두 번째 행선지는 충남 서천. 고속도로 대신 구불구불한 국도를 통과했다. 한적한 시골길을 적당히 시원하게 달릴 때 비로소 이 차의 진가가 드러난다. 엔진은 낮은 rpm에서부터 풍부한 토크를 뿜어 조용한 가운데 여유를 품고, 살짝 눌리면서 팽팽해지는 댐퍼는 코너의 쏠림을 효과적으로 억제한다. 힘센 대형 세단만이 누릴 수 있는 풍요로운 주행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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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 바닷가. 4륜구동 시스템 H트랙 덕분에 잠깐의 모래사장 주행도 가능했다


안성과 서천에서 너무 늑장을 부렸던 탓일까. 벌써 해가 지기 시작했다. 전남 해남에서 일몰을 볼 계획이었는데, 광주에 도달하기도 전에 이미 해는 졌다. 이러다간 광주도 못 갈 지경. 급한 마음에 속도를 높여 3.3L 터보 엔진을 쥐어짰다. 속도계는 금세 시속 200km을 넘어 242km까지 꾸준히 올라가더니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 힘이 남아 있는데도 달리지 못하는 걸 보니 속도제한에 걸린 모양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힘보다 최고속도에서의 안정감이다. 주행모드가 컴포트인데도 불안하지 않다. 앞쪽은 요철을 넘을 때 대형 세단답게 어느 정도 꿀렁이는데, 뒤쪽은 매우 탄탄하게 버틴다. 보통 차가 위아래로 세 번 정도 왕복할 만한 요철에서 G80 스포츠의 뒤쪽 댐퍼는 단 한 번 눌렸다 펴진 후 자세를 추슬렀다. 덕분에 시속 240km가 넘는 빠른 속도에서 체감속도는 시속 150km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꾸면 앞쪽 댐퍼마저 탄탄하게 굳으면서 안정감은 배가된다. 다만 개인적으론 242km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컴포트 모드가 더 세련된 느낌이다. 그게 더 GT답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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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도심의 한 거리. 검은색 대형 세단과 한적한 도시가 제법 잘 어울렸다

부러움을 사는 편안함 
첫날은 망했다. 3,333km의 3분의 1에도 한참 못 미치는 468km밖에 달리지 못했다. 소모한 기름은 60L, 연비는 리터당 7.8km 수준이다. 서울을 제외하고 막히는 구간은 없었지만 고속 안정감이 좋다 보니 계속 달리게 돼 연비가 다소 낮게 나왔다. 그래서 둘째 날은 첫날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새벽부터 해남 땅끝으로 향했다.


겨우 네 시간 남짓 잔 후 해 뜨는 걸 보며 차를 타고 있자니 온몸이 뻐근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G80 스포츠의 폭신한 시트와 부드러운 승차감이다. 외부 소음도 꼼꼼히 틀어막아 고요함만 감돌 뿐. 스팅어와 그랜저 대타로 이 차를 받게 된 건 어쩌면 신의 한 수였을지도 모르겠다.


새벽안개가 채 가시기 전, 해남 땅끝에서 ‘인증샷’만 급하게 찍고 통영으로 방향을 틀었다. 통영에서 33번 국도 시승팀과 조우하기로 했기 때문. 33번 국도 팀은 서울에서 푸조 3008 GT를 타고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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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부지런히 달려 해남 땅끝에 도착했다

통영에서 만난 우리는 각기 가져온 차를 질리도록 탄 만큼 촬영 동안에는 서로 차를 바꿔 타기로 했다. G80에서 3008 GT로 옮겨 앉으니 갑자기 경차 탄 듯 좁다. 서스펜션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가속 페달은 아무리 짓이겨도 G80 스포츠 페달 절반 밟은 것보다 느리다. 예전에 탔던 3008 GT라인은 꽤 괜찮았는데……. 사실 이건 3008 GT가 잘못된 게 아니다. 그저 G80 스포츠의 편안함에 젖어버린 상대적인 느낌일 뿐이다.


촬영을 마치고 헤어지는 길. 33번 국도 시승 팀이 G80 스포츠와 차를 바꾸고 싶다며 징징댄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괜히 마음 약해질까봐 얼른 운전석에 앉아 호미곶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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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가 갖춰야 할 것들
누적 주행거리 약 1,000km를 넘어서고 기자는 졸음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이틀간의 피로가 눈꺼풀을 짓누른다. 쏟아지는 졸음에 보험으로 주행조향 보조장치와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켰다. 차선이탈을 잡아주고 앞차와의 간격도 유지하니 혹시 졸더라도 잠깐 동안의 안전은 보장되는 셈. 하지만 이것도 쏟아지는 졸음 앞에선 쓸모없다. 믿는 마음에 긴장이 풀려 더 졸리기만 하다. 운전대를 똑바로 잡으라는 G80의 경고를 두어 번 들은 후 결국 졸음쉼터로 방향을 틀었다.


한낮의 졸음쉼터엔 그늘 하나 없었다. 시간은 오후 세시, 여전히 더울 때다. 이런 상황에서 에어컨을 끄고 잘 수도 없는 노릇. 어쩔 수 없이 시동을 켠 채 잠을 청했다. 다행히 6기통 엔진은 머리받침에 진동 하나 전하지 않았다. 웬만한 가솔린 차도 에어컨을 켜면 조금씩 진동이 올라오기 마련인데, G80 스포츠는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덕분에 30분 가량을 푹 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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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상맞긴 해도 G80 스포츠의 실내는 제법 잠을 잘 만하다


낮잠을 자고 나니 한층 가뿐해져 호미곶에 금세 도착했다. 황색 바다 서해, 녹색 바다 남해를 거쳐 청색 바다 동해까지 모두 감상하는 셈. 호미곶 주변은 도로가 한적해 여유롭게 드라이브하기 좋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파노라마 선루프와 모든 창문을 열어 바닷바람을 맞이하니 이제야 여행 온 분위기가 좀 난다. 검은색 G80 스포츠에 앉아 성공한 젊은 사업가라도 된 것 마냥 의기양양하게 돌아다녔다. 아마도 그냥 G80이었다면 아버지 차 끌고 온 것처럼 어색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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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포항 호미곶. 서해와 남해를 거쳐 동해까지 모두 돌았다


해는 떨어졌건만 멈출 수는 없었다. 시간은 한정돼 있고 목표했던 주행거리는 아직도 까마득히 남았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누적 주행거리 1,400km가 될 즈음 강릉에 도착했다. 시간은 대략 오후 열한시 즈음. 어차피 짧게 잘 계획이기 때문에 차박을 하기로 했다. 한적한 외각에 자리 잡고 누우니 파노라마 선루프를 통해 별들이 반짝인다. 좀 처량해 보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운치는 있었다. G80 스포츠 오너가 궁상맞게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지는 않겠지만 편안한 시트 덕분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호시탐탐 기자의 피를 노리는 거친 바다 모기만 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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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 부근에서 해는 졌지만, 3,333km를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달려야 했다​

한반도 한 바퀴
오전 7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일어났다. 해는 이미 바다에서 떨어진 지 오래. 새들이 지저귀는 낭만적인 아침이지만 차에서 부스스하게 일어나는 모양새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씻을 곳도 없어서 이 몰골 그대로 고성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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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 검문소. 군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를 돌려야 했다


평일 오전 부스스한 모양새로 한적한 동해안을 달리니 여유로운 한량이 따로 없다. 혼자 경치를 즐기고 있자니 살짝 외롭기도 하고. 하지만 이내 3,333km의 압박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여유 부릴 새 없이 속도를 높였다.


관광할 틈이 없다. 통일전망대 검문소에서 차를 돌려 서울까지 쉴 틈 없이 달렸다. 그저께 시동을 걸었던 출발지에 도착하니 누적 주행거리는 1,725km. 한숨이 푹 나온다. 이제 겨우 반 왔다. 3,333km가 이렇게 머나먼 길이었던가. 지금부터는 작정하고 주행거리 늘리기에 나서야 하는 만큼 고속도로만 달리는 길을 택하고 곧바로 운전대를 잡았다.

3,333.3km
그저 달리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졸음은 졸음 쉼터에서 해결했고, 에너지음료 덕도 톡톡히 봤다. 카페인으로 졸음을 쫓으니 정신은 깨어 있는데, 몸에 감각이 무뎌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던 건 G80 스포츠의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HDA) 덕이 컸다. GPS 정보를 반영해 과속 단속 구간에서 알아서 속도를 줄이는 등 제법 자율주행차 흉내를 내니 긴 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았지만 부담은 덜하다. 그동안 많은 첨단 주행 장치들을 접했는데, 이번처럼 유용하게 쓴 적이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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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HDA)이 켜진 HUD 모습. 푸른색으로 표시되는 게 특징이다


잠깐의 휴식과 주행을 번갈아가며 달리고 또 달렸다. 한반도를 두 바퀴 돌아 강원도 춘천을 다시 지날 때 즈음 드디어 3,333.3km가 채워졌다. 다시는 하지 않을 터무니없는 국토 대장정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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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주행거리 3,333.3km를 달성했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누적 주행거리 3,333.3km, 주유량 약 400L, 누적 연비 리터당 8.2km, 주행 시간 56시간. 제네시스 G80 스포츠와 함께 만든 숫자들이다. 짧은 기간 극한의 장거리 주행을 통해 G80 스포츠는 그랜드 투어러로 손색없는 면모를 보여줬다. 시종일관 매끄럽게 미끄러지면서 이따금씩 속 시원하게 질주했다. 3,333.3km의 장거리를 즐겁게 달릴 수 있었던 이유다. 그렇게 기자의 드림카 목록이 한 줄 늘었다. 국산차 최초다.

 

  윤지수 기자 사진  윤지수 기자,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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