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 VS BMW 5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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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EDES-BENZ E-CLASS vs BMW 5-SERIES
왕좌의 게임


전쟁이 시작됐다. 5시리즈의 장기 집권이 막을 내리고 E클래스가 왕권을 찬탈했다. 빼앗긴 자는 빼앗은 자를 용서하지 못한다. 경량차체와 잘 벼린 ADAS 기술로 무장한 새 5시리즈가 왕좌를 노려본다. 누가 승자가 되어도 이상할 것 없는 싸움. 최고와 최고가 하나의 자리를 놓고 맞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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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이었다. 지난해 메르세데스 벤츠가 BMW의 연간 글로벌 판매량을 추월했다. 국내에선 수입차 브랜드 중 처음으로 연간 판매량 5만 대를 돌파했다. 2016년 7월 이후 줄곧 수입차 시장 정상에 군림하며, 세 차례(10월, 1월, 3월)나 월 6,000대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수훈갑은 역시 E클래스다. E클래스는 올해 1분기에만 1만 대 이상 팔리며 브랜드 전체 판매량의 과반수를 차지했다.


BMW코리아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지난 3월과 4월, 연이어 판매량 6,000대를 넘겼다. 같은 기간 1,000대 이상씩 팔린 5시리즈의 공이 컸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5시리즈는 지난해 1만7,263대 팔리며 수입차 판매량 2위에 랭크됐다. 판매량은 2015년보다 7.5% 늘었지만 단일모델 최초로 2만 대 넘게 팔린 E클래스를 앞에 둔 터라 기뻐할 겨를조차 없었다.


23개 수입차 브랜드가 올해 1분기에 국내에서 판매한 승용차 대수는 5만4,966대. 그중 E클래스와 5시리즈의 1분기 누적 판매량은 1만2,888대다. 수입차 구매자 넷 중 하나가 E클래스와 5시리즈를 선택한 셈이다.

혁신과 진화 사이
E클래스는 대대적인 혁신을 거친 형과 아우의 뒤를 따랐다. 통일성이 강조된 패밀리룩을 입고 풍만한 양감과 풍부한 곡선으로 보디 라인을 다듬었다. 특유의 네눈박이(Four-eyes) 헤드램프는 네 가닥 주간주행등으로 대신했다. 멀티빔 LED 헤드램프는 좌우 각각 84개의 LED를 3열로 배치해 상향등/하향등을 가리지 않고 빛의 방향과 밝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한다. 에어패널 어드밴스드 셔터 시스템을 달아 공기저항계수(Cd)는 0.23까지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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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비 구성이나 레이아웃은 미래지향적이되, 소재와 디테일엔 뼈 속까지 클래식을 담았다 2 성공한 삶을 상징함에 있어서 삼각별을 대신할 수 있는 심벌은 그리 많지 않다 3 고풍스러우면서도 모던한 휠 디자인이 이 차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실내는 기함의 것을 물려받았다. 곡선이 너울지는 대시보드에 와이드 스크린 콕핏 디스플레이를 때려 박고 그 아래 4개의 원형 송풍구를 줄 세워 화려함과 안정감, 클래식과 하이테크를 양립했다. 스티치를 두른 촉촉한 가죽과 은 세공품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금속파츠는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스티어링 휠 좌우 스포크엔 터치 컨트롤이라 부르는 작은 터치패드도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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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열 시트의 안락성과 승차감에선 E클래스가 우위를 점한다 2 3박스 형태를 분명히 한 탓에 차체는 짧아 보이지만,

여유로운 헤드룸은 마냥 뿌듯하다 3 실내 곳곳의 금속 패널이 은 세공품처럼 우아하다


무엇보다 흡족한 건 운전석에 앉았을 때의 시야다. 익스클루시브 트림을 선택하면 보닛 끝에 쫑긋 솟은 삼각별이 “당신 참 잘 살았어”하고 속삭여준다. 예전보다 콧대가 낮아져 엠블럼 전체가 눈에 들어오진 않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변함없다.


5시리즈는 혁신보다 진화를 택했다. E클래스와 마찬가지로 윗급과 아랫급 모델의 새로운 디자인을 집대성해 패밀리룩을 공고히 했다. 헤드램프는 더 이상 앞트임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키드니 그릴에 바짝 달라붙었다. 하이테크한 형상으로 바뀐 헤드램프 안에는 LED 기술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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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던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실내. 에지를 살린 대시보드 위에 하이테크적인 요소들이 반짝인다 2 각을 살린 키드니 그릴엔

액티브 그릴 셔터가 적용된다. 번호판 아래의 레이더 센서는 ADAS을 위한 것 3 M 스포츠 패키지가 기본 적용된다


옆모습엔 선조들의 DNA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휠베이스와 오버행의 비율은 물론 앞뒤창 각도와 루프 라인, 호프마이스터킥(Hofmeister Kink) 역시 판박이다. 스틸/알루미늄 골격에 루프 라인과 필러를 따라 카본 복합소재를 사용한 섀시 덕에 이전 모델보다 100kg 이상 가벼우며, 액티브 그릴 셔터와 에어커튼 적용으로 공기저항계수(Cd)를 0.22까지 끌어내렸다.


인테리어는 7시리즈에 한껏 다가섰다. 육각형 센터페시아와 그 위에 얹은 와이드 디스플레이, 스티어링 휠 디자인은 기함을 통해 눈에 익힌 그대로다. 나무 질감을 생생하게 살린 우드트림과 수제 소파를 연상시키는 격자무늬 가죽시트가 눈길과 손길을 잡아끈다. 시승차에는 없었지만, 5시리즈 처음으로 B&W 사운드 시스템 옵션이 마련되어 E클래스의 부메스터 오디오에 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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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뒷좌석 거주성이 개선됐다. 센터콘솔 뒤편 조작계도 고급스러워졌다 2 제스처 컨트롤은 자율주행시대를 위한 포석.

인식 속도와 범위가 개선됐다 3 전자식 기어노브와 주변부 구성도 7시리즈를 빼닮았다


BMW는 i드라이브를 통해 자동차와 IT기술을 통합하는 데 앞장섰다. 한때는 회전식 노브 하나로 조작방식을 일원화했지만, 이제는 터치 디스플레이와 제스처 컨트롤, 음성명령 기능 등 수많은 조작방식을 마련했다. 제스처 컨트롤은 동작 인식 범위가 넓어졌으며, 인식 속도와 정확도도 진보했다. 스티어링 휠 위에 손을 올릴 필요가 없는, 나아가 운전석에 앉을 필요조차 없는, 완전자율주행 시대가 도래하면 이러한 기능의 진가가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융합
결투를 성사시켰으나 체급을 맞추진 못했다. 일정상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섭외할 수 있는 시승차가 E400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출시된 신형 5시리즈는 520d와 530d, 530i 세 가지뿐. E400에 대적할  540i 는 아직 한국 땅을 밟기 전이다. 파워트레인 비교는 무의미해졌지만 두 차가 보여준 주행감 변화는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5시리즈의 서스펜션은 몰라보게 나긋나긋해졌다. 놀라운 건 에어 서스펜션을 적용하지 않고 금속 스프링만으로 승차감을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서스펜션 암을 알루미늄 소재로 만드는 등 타이어와 함께 상하운동을 하는 스프링 하중량의 경량화에 집중한 끝에 안락한 승차감과 역동적인 주행감을 쌍끌이했다.


록투록 2.8회전의 스티어링 휠이 주는 감각은 무척이나 직관적이다. 어떤 코너를 어떤 속도로 돌아도 안정적인 자세로 공략한다. 차체 강성 상승과 경량화 덕에 거동은 시종일관 경쾌하고 가뿐하다. x드라이브의 실력은 고속코너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스티어링을 아무리 거칠게 휘저어도 명쾌한 라인을 그려내고 꼼꼼하게 트랙션을 거머쥔다.


E클래스의 서스펜션은 앞뒤 모두 멀티링크. 에어 보디 컨트롤이라는 이름의 에어 서스펜션이다. 앞 차축에 두 개, 뒤 차축용에 세 개씩 크기가 각기 다른 에어 챔버를 적용했다. 벤츠는 이를 통해 금속 스프링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다채로운 세팅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한다.


록투록 2.2회전의 스티어링 휠은 무척 예민하다. 새로운 MRA 플랫폼을 쓰는 C클래스 및 S클래스와 마찬가지로 옛 벤츠의 보수적인 감각을 말끔하게 지워냈다. 댐핑 스트로크가 짧고 노면의 정보를 정직하게 전달한다. 반응이 빠른 스티어링과 균형잡힌 서스펜션 덕분에 움직임은 아주 매끄럽다. 4매틱은 트랙션을 꼼꼼히 잡아내며 안정감에 기여한다. 


두 차의 주행감은 마치 하나의 이상형을 향해 수렴하는 것 같았다. E클래스는 이전보다 직관적이고 경쾌해졌고, 5시리즈는 이전보다 신중하고 안락해졌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사회주의 요소를 수용하고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제도를 받아들이듯, 판이하게 다르던 양측의 이데올로기가 서로 융합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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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벤츠는 신형 E클래스를 ‘가장 지능적인 비즈니스 세단’이라고 정의했다. 그 자신감만큼이나 반자율주행 기술 디스트로닉 플러스의 작동감은 무척 안정적이다. 이따금씩 스티어링 휠에 손을 대기만 하면 긴 시간 자동차에게 운전을 맡겨도 문제없을 정도다.


5시리즈의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플러스 시스템은 앞차와의 간격 조절 또한 2대 앞의 선행 차량 움직임까지 감지해 미리 제동하기 때문에 가·감속이 한결 자연스럽다. 차선 중앙을 유지하도록 보조해주는 스티어링 & 레인 컨트롤 어시스트(LCA)의 차선추종 실력도 발군이다.

두 개의 탑(Top)
메르세데스 벤츠가 왕좌에 오르게 한 숨은 조력자는 다름 아닌 BMW다. 2011년 출시한 6세대 5시리즈는 돌풍을 일으키며 국내 수입차 시장을 평정했다. 하지만 ‘강남 쏘나타’로서 장기 집권하면 할수록 프리미엄 승용차의 중대 가치인 희소성은 훼손되어갔다. 하나의 고급 상품이 많이 팔려 너무 흔해지면 차별화를 원하는 소비자는 경쟁상품으로 눈을 돌리기 마련.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속물효과(Snob Effect)다.


경쟁 브랜드 이탈 고객을 고스란히 그러모을 만큼 벤츠의 반격 준비는 완벽했다. 2000년대 초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벤츠는 일대 혁신으로 디자인과 성능, 종합적인 상품성을 높였다. 소형 모델을 대거 투입하고 AMG 라인업을 강화하면서 고루한 이미지도 단기간에 벗어던졌다.


BMW코리아는 새로운 5시리즈를 통해 국내 수입차 시장의 왕권 탈환을 노린다. 반자율주행 시스템과 M 스포츠 패키지, 제스처 컨트롤을 5시리즈 전 모델에 기본 적용하는 초강수를 뒀다.


독일 프리미엄 3사(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는 경쟁을 통해 발전해왔다.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고 서로를 벤치마크하며 기술경쟁을 거듭했다. 아우디의 콰트로 시스템이 x드라이브와 4매틱의 발전을 자극했고, BMW i드라이브는 벤츠와 아우디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개발을 부추겼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첨단운전보조 시스템(ADAS)을 한 발 앞서 적용·발전시키자, 다른 두 브랜드가 뒤질세라 대응하고 있다.


재료와 레시피는 비슷하지만 색과 향, 풍미는 분명 다르다. 동그라미 안에 세 꼭지 별을 그려 넣은 차는 네 바퀴 위에 전통과 품격, 혁신을 쌓아올렸다. 원 안에 파란 프로펠러를 담은 다른 한 대는 같은 네 바퀴 위에 다이내믹과 비전, 즐거움을 실었다. 가치와 완성도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 선택과 평가는 결국 취향에 달렸다.


완벽한 동생을 둔 5시리즈와 잘난 형을 둔 E클래스가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수입차 세그먼트에서 맞붙었다. 최신기술로 무장하고 트렌드를 선도하는 이들의 패권다툼은 브랜드의 자존심과 기업의 미래를 건 전쟁. 파퀴아오와 메이웨더, 장비와 여포의 싸움이 이보다 흥미진진할까. 누가 승자가 되어도 이상할 것 없다. 흑과 백 양 진영에서 퀸을 움직였다.

김성래 기자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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