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모하비 유럽횡단 여행기 제4탄 (최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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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모하비 유럽횡단 여행기 제4탄 (최종회)
동유럽 발칸반도에서 발트해를 따라


발트해 남동해안의 세 나라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를 누비며 열강에 침략당한 약소국의 서글픈 역사를 공감했다.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이었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코소보, 몬테니그로 등 발칸반도의 많은 나라를 쉴 새 없이 달렸다. 코소보에서 내전의 시대를 상기하고, 루마니아에서 몰락한 사회주의 체제를 되짚었으며,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선 제1차 세계대전의 배경과 그 뒷이야기를 떠올렸다. 연재는 마무리되지만 여행은 계속된다. 모하비의 용감한 바퀴는 서유럽을 가로질러 저 멀리 아프리카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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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구 시가지는 붉은 지붕과 밝은 파스텔 색조로 마감을 한 중세 건물로 빼곡했지만 전혀 화려하지 않았고, 강하지 않은 콘트라스트로 인해 오히려 소박하고 정겨운 느낌을 줬다. 언덕에 자리한 알렉산더 네프스키 대성당은 거대한 반구형 지붕이 시선을 사로잡는 러시아 정교회 대성당으로 1900년에 완공되었다.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중앙 광장인 라에코야 플라츠에 건축된 탈린 시청은 북유럽에 남아 있는 가장 높은 고딕 양식 건축물이다. 1404년에 세워진 이곳을 중심으로 15세기 이후 지어진 파스텔 톤의 건축물이 구 시가지를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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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평야지대로 이루어진 구 시가지에는 톰페아라는 작은 언덕이 있다. 이 언덕은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발트 3국의 독립을 요구한 시민 독립운동의 시발점이자 소비에트연맹 해체의 서곡이 울린 역사적 장소다. 1989년 8월 23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그리고 리투아니아의 국민 100만 명이 600km 떨어진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있는 게디미나스 타워까지 서로의 손을 잡아 인간 사슬을 만들었다. 이때까지 발트 3국은 소비에트연방 아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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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 외곽에 있는 카드리오르그 궁전을 찾았다. 러시아의 차르인 표토르 대제가 에스토니아를 정복한 후 그의 아내 예카테리나 1세에게 사랑의 정표로 지어 선물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인데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많은 외세의 침략과 전쟁을 겪은 나라다. 에스토니아의 일부 지방은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고 독일과 스웨덴도 이 나라를 점령하고 통치했다. 1721년부터는 표토르 대제의 침략에 의해 러시아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918년 10월 혁명으로 러시아 왕정이 붕괴되며 한때 독립을 쟁취했으나 1940년 스탈린에 의해 다시 소련으로 흡수되었다가 1991년 8월에야 온전한 독립을 이룬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리적으로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민간 교류도 활발하지 않지만 그 역사를 알고 나니 왠지 에스토니아가 가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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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의 침략 견뎌낸 에스토니아 나르바 
에스토니아 동쪽 끝에 있는 국경도시 나르바는 러시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 두 나라는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기 전까지는 같은 나라였다. 나르바는 에스토니아 제3의 도시다. 근세 유럽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와 이를 저지하려는 유럽 지배 세력의 치열한 각축이 일어난 역사적인 곳이다. 그저 국경 도시로서 통과만 하고 지나치기엔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도시 구석구석을 둘러보기로 했다. 나르바에는 요새가 있는데 보기 드물게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국경 너머 러시아의 이반고로드 요새 사이로는 나르바 강이 흐르고 그 위에 놓인 다리의 중앙이 에스토니아와 러시아의 국경이다.


나르바는 1581년부터 1704년까지 스웨덴령이었다. 스웨덴은 1583년에서 1585년 사이에 러시아의 서진 팽창정책을 막기 위해 요새를 축조했으며 러시아는 스웨덴의 러시아 동진을 막기 위해 이반고로드 성을 만들었다. 나르다 강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두 요새는 중세의 서유럽에서 얼마나 치열한 영토전쟁이 벌어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세계 전쟁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는 나르바 전투. 1차는 스웨덴의 승리였고 2차는 표토르 대제의 러시아가 승리했다. 열강들의 전쟁터였던 이곳에서 에스토니아의 역사를 배운다.


다시 자동차에 올라타고 ‘로맨틱 타운’이라고 불리는 빌잔디에 들렀다. 아름다운 빌잔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인구 2만 명의 작은 도시다. 1283년도에 이미 도시가 형성되어 종교와 교통의 중심지로 발달해온 빌잔디의 시가지는 중세 모습 그대로 간직한 채 현재도 사람이 거주하고 있으며 13세기 중반부터 1932년까지 사용되었다는 상점은 사적으로 보존되고 있었다. 중심 광장에는 중세에 지어진 타운 홀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길을 따라 달리다보니 부지불식간에 라트비아 국경을 넘었다. 긴가민가해서 차를 돌려 에스토니아로 들어갔다가 다시 라트비아로 나왔다. 자동차로 백 번을 들락날락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은 쉥겐 협약에 가입한 EU 국가의 국경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라트비아는 발트 3국의 가운데에 위치한 나라이다. 1991년까지 소비에트연방에 속해 있다가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독립한 신생국이다. 발트 3국 중에선 경제지표가 다소 열세이며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은 나라다. 자동차로 달리며 느낀 바로는 도로포장 상태도 좋지 않았고 비포장 구간도 꽤 많았다.


에스토니아 국경에 근접한 세시스를 찾았다. 세시스의 벤덴 성은 1209년도에 축조된 성으로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보존 상태가 상당히 좋았다. 중세에는 제법 번성한 도시였으나 1577년 이반 4세에 의해 러시아에 점령당했다. 이 먼 곳에서 또 다시 이반 4세를 만나게 되니 그의 세력이 얼마나 멀리까지 미쳤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여기까지 멀기도 하거니와 교통도 불편했을 텐데 참 멀리도 원정을 왔다. 세시스 성당 앞의 수도사는 ‘낮은 곳으로 임하라’라는 성경의 말씀에 충실한 듯 한껏 자세를 낮추고 걸어가고 있었다.


시굴다를 찾았다. 가우야 강을 중심으로 국립공원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공원 내에 많은 문화유적과 놀이시설, 체육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라트비아의 대표적인 멀티플렉스 공원으로 꼽힌다. 이곳의 투라이다 박물관 유적지는 시굴다의 대표 관광명소로서 1214년경 중세 시대의 성과 교회를 완벽하게 복원해 놓았다. 종교 통치자였던 대주교가 거주하였으며 종교와 군사적 목적을 함께 가졌던 성으로, 전망대에 오르면 가자 강 주변으로 펼쳐진 울창한 국립공원 지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세계 자동차 여행을 통해 수없이 많은 문화유적지를 보았지만 이곳에선 적잖이 실망했다. 싸구려 붉은 벽돌과 시멘트를 사용해 복원된 트라이다 성은 한눈에 보기에도 과거를 현재로 되살리는 데에 실패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복원할 바에야 차라리 원형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더 나았겠다 싶을 정도다. 대부분의 유적은 철저하고 완벽한 고증을 통해 현대의 기술로 복원된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 유적을 복원하기 위한 건축가, 역사학자, 민속학자, 고미술가 등 여러 분야 관련자들의 노고와 열정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EU 국가 대다수가 고대 유적의 복원에 탁월한 경험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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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굴다에는 재미있는 공원이 있었다. 바로 지팡이 공원인데, 시의 상징이 지팡이라고 한다. 시굴다는 문화유적의 보고이다. 1207년 요새로 지어졌다가 나중에 수도원으로 사용된 크리물다 중세 성은 일부만 복원되고 나머지는 원형 그대로 보전되고 있는데, 중앙 광장은 콘서트 홀로 사용된다. 가자 강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이곳을 점령했던 러시아의 이반 4세가 앉았다는 ‘황제의 의자’에 앉아 당시 이반 4세의 기분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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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의 진주, 리가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로 들어갔다. 발트 3국이 한 나라로 독립을 했다면 그 수도는 리가였을 것이다. ‘발트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리가의 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중세기 민족적 연대가 강했던 유럽 여러 도시들의 상인 조합인 한자동맹 시절 리가는 중요한 무역항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상업 및 경제적 발전을 이뤘다. 구 시가지의 상징인 베드로 성당은 리가 상인들의 기부금으로 건설됐다. 그만큼 리가 내에서 많은 부의 창출이 이뤄졌고 국제 무역도 성행했다.

또 세계 건축사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던 아르누보 건축물은 이곳의 자랑이다. 바로크니 로코코니 하는 기존의 패턴과 양식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와 종교, 인종을 초월한 진보된 형태의 새로운 건축양식이다. 리가의 구 시가지는 에스토니아의 탈린보다 중후하고 화려했는데 석재와 파스텔 톤의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에스토니아 수도인 탈린의 구 시가지가 한산했던 것과 달리 리가는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카지노와 펍이 많아 유흥 문화가 많이 발달한 도시이다. 심수봉이 부른 ‘백만 송이 장미’도 리가 출신의 레이몬츠 파올스가 작곡한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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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는 오랜 기간 외세의 침략과 지배 속에 살아온 나라이다.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지 겨우 20여 년이 지났을 뿐. 외세의 지배와 간섭이 없어진 만큼 과거의 영광과 번영이 다시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체메리 국립공원은 수도 리가에서 46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자연과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휴식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무엇보다 자연생태계의 보존을 위해 1997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손상되지 않은 늪지와 그 아래에 형성되어 있는 유황성분의 미네랄워터, 조류의 서식, 울창한 낙엽송의 산림 등이 이곳이 추구하는 가장 의미 있는 자연보존의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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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잘못 헛디디면 땅 속으로 푹 꺼져 버리는 늪지대 위에 놓인 보드워크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으며 광활한 늪지대와 그 안의 작은 호수들, 그리고 그 위에 싹을 틔우고 자란 소나무…….

수천 수 만 년을 이어온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이 절로 인다.

체메리 국립공원의 면적은 구리시의 12배나 되는 381.65㎢로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습지이다. 늪으로 이루어진 평원 안에 셀 수 없이 많은 호수를 품고 있는 이 습지생태 공원은 자연 생태계의 보고다. 발을 잘못 헛디디면 땅 속으로 푹 꺼져 버리는 늪지대 위에 놓인 보드워크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으며 광활한 늪지대와 그 안의 작은 호수들, 그리고 그 위에 싹을 틔우고 자란 소나무……. 수천 수 만 년을 이어온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이 절로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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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달레 왕궁은 바우스카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이런 시골구석에 커다란 궁전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겨울궁전을 설계한 이탈리아 건축가 바르톨로메오에 의해 1736년부터 4년간에 걸쳐 건축되었다. 궁전 뒤편으로는 로즈 가든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정원이 데칼코마니같이 좌우 대칭형으로 만들어져 형형색색의 장미들이 식재되어 있고, 드넓은 정원은 질서 정연한 관목에 의해 구획되어 있었다. 룬달레 궁전을 ‘발트해의 궁전’이라고 칭하기도 하고 ‘발트해의 베르사유’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도 이 정원 때문이다. 궁전 안에는 많은 회화와 조각, 공예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룬달레 왕궁의 많은 작품 중에서 회화의 경우는 대다수가 실제 작품이 아니고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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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스카 성은 한창 복원 공사 중이었다. 작업대 위에서 남녀 두 명이 벽돌을 붙이고 있었는데 철저한 고증을 거쳐 전문가의 자문과 감독 아래 복원이 되고 있는 것인지 심히 우려스러웠다. 우리나라는 발굴될 당시의 원형 보존에 역점을 두고 있는 반면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의 많은 나라는 발굴 후 원상 복원에 치중하는 것이 특징인데, 어느 것이 좋은지는 결국 후세들이 판단할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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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의 국경을 넘어 발트 3국의 마지막 방문 국가인 리투아니아에 들어왔다. 국경 인근의 샤울라이에는 십자가 언덕으로 유명한 도만타이 언덕이 자리하고 있다. 약 10만 개의 십자가가 작은 언덕에 빼곡히 세워져 있는 이곳에는 많은 순례자와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기록에 의하면 소련의 지배를 받을 당시 종교 탄압에 저항하기 위해서, 또는 전쟁에 나간 가족의 무사귀환을 위해 십자가를 세운 것이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식 홈페이지에는 1831년에 폭동이 일어나 반란에 참여한 한 사람이 죽자 그를 추모하기 위해십자가를 세운 것이 그 시초라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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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니안 스핏, 모래톱과 삼림이 만든 장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커네바 고고유적지를 찾았다. 빌뉴스에서 북서쪽으로 35km 떨어진 이곳은 수만 년 이상 된 인류의 거주 흔적이 네리스 강 유역을 따라 펼쳐진다. 14세기까지 리투아니아의 수도였던 유서 깊은 도시이자 대표적인 관광지인 이곳의 트라카이 성은 물 위의 성이다. 붉은 성벽을 잔잔한 호수 위에 드리우고 고고한 자태를 보기 위해 연중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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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의 수도는 빌뉴스다. 발트 3국의 수도에 있는 구 시가지는 모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빌뉴스 대학은 발트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1579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세워졌으며 구 시가지의 최고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16세기에 만들어진 게이츠 오브 던(Gates of Dawn)은 성 마리아의 성화를 보기 위해 순례자들이 먼 거리를 걸어와서 찾는다는 대표적인 가톨릭 성지다. 베드로 바오로교회는 성당 내·외부에 2,000개의 성상이 빼곡히 차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성화나 장식이 아닌, 조각상이 성당의 벽체와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1668년부터 1674년까지 바로크양식으로 성당을 건축하였으며 다시 30년에 걸쳐 인테리어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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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 3국은 비슷한 과거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에서 탈퇴한 신생 국가로, 이후 EU와 NATO에 가입하였으며 왕년의 지배자였던 러시아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탓에 러시아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리투아니아의 니다를 거쳐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로 들어간다. 서쪽 끝 도시인 클라이페다에서 페리를 타고 바로 앞에 보이는 네링가의 스밀티네로 넘어갔다. 90㎢의 면적에, 인구 2,900명의 작은 마을에 크루즈에서 내린 유럽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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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모래톱은 리투아니아와 러시아에 걸쳐 펼쳐지고 있는데 바람과 해류에 의해

 만들어진 모래언덕과 사막화를 막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모래톱과 산림이 어우러져 상생하고 있다.

 

자전거, 모터사이클, 보트, 요트, 낚시, 버섯 따기, 그리고 수영을 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는 이곳은 ‘레크리에이션의 오아시스’라고 불릴 만큼 액티비티가 발달돼 있다. 폭이 가장 좁은 곳은 1km 내외로 뜀박질하면 6분 만에 동쪽 호안에서 서쪽의 발트 해에 도달할 수 있는 실지렁이 형상의 사구로 이루어진 육지이다. EU 국가들의 자유로운 통행으로 인해 유럽의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고. 이곳의 볼거리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쿠로니안 스핏이라 불리는 모래톱으로, 장장 98km에 걸쳐 모래언덕을 이루고 있다.

5,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모래톱은 리투아니아와 러시아에 걸쳐 펼쳐지고 있는데 바람과 해류에 의해 만들어진 모래언덕과 사막화를 막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모래톱과 산림이 어우러져 상생하고 있다. 이 길쭉한 사구의 반은 리투아니아이고 아래의 반은 러시아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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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러시아 국경을 다시 넘었다. 이번 세계 자동차 여행에서 7번째로 통과하는 러시아 국경이다. 중앙아시아와 몽골, 유럽에 입성하기 위해선 러시아의 국경을 빈번하게 통과해야 한다. ​리투아니아는 이 지역이 휴양지로 조성되어 있지만 러시아는 국립공원과 국경지역이라는 이유로 길을 제외한 곳은 전부 철조망으로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다. 일부 지역만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었는데 그중의 한 곳이 리투아니아와 연결된 모래톱이다. ​땡볕에 힘들게 모래 산을 올라가서 사구를 구경했다.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본토에서 500km나 뚝 떨어져 있는데 왜 러시아 영토일까? 발트해를 끼고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에 의해 삥 둘러싸인 칼리닌그라드는 원래 독일의 점령지였지만 1945년 독일의 제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소련으로 편입되었다. 당시 소련은 독일인들을 추방하고 러시아인을 이주시켰다. 1991년 구소련인 소비에트연방의 해체 선언에 따라 북쪽의 네링가는 리투아니아로 독립되었고, 남쪽의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칼리닌그라드는 유럽과 맞닿아 있어 수분 내로 유럽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많은 군사 자산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유럽이 불편해 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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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 슬로베니아에 들어서다
발칸반도 국가들의 근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옛 유고슬라비아를 떠올려야 한다. 민족과 종교가 서로 다른 국가들의 연방제였던 유고슬라비아에는 강력한 대통령 티토가 있었다. 유고슬라비아는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공산국가의 대부인 소련의 통제와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생존의 길을 모색한 비동맹 세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나라다. 그러나 1980년 티토가 사망한 이후 지역과 민족 간의 갈등이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연방의 결속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코소보, 그리고 몬테니그로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이었고 이곳을 이끄는 국가는 세르비아였다. 유고슬라비아는 1991년부터 몇 나라씩 분리 해체되었는데, 제일 먼저 독립한 나라는 독자 생존이 가능했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다.


슬로베니아에서 블레드 호수, 포스트니아 동굴, 그리고 수도 류블랴나를 둘러보았다. “하늘에 있는 낙원을 지상에 옮긴다면 그곳이 바로 블레드 호수일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호수다. 빙하가 녹아 흘러 들어와 이루어진 호수다보니 물빛이 에메랄드빛보다 진한 청록색이다.

블레드 섬에 들어가기 위해선 뱃사공이 직접 노를 젓는 ‘플래트나’라는 이름의 나룻배를 타야 한다. 이 나룻배는 정해진 숫자만큼 조상 대대로 가업이 승계된다. 블레드 섬에 내려 성모승천 교회로 올라가는 99개의 계단은 ‘신부를 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올라가면 평생 행복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결혼한 신랑들이 신부를 안고 오르느라 진땀을 빼는 곳이다. 성모승천 교회 안에는 종탑의 종을 치는 줄이 성당 안으로 내려와 있는데 세 번 만에 종을 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줄이 길고 종이 커서 삼 세 번 만에 종을 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나룻배를 타고 호수를 나오다가 80세도 더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호수 가운데에서 수영을 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 물가에 ‘수영금지’라는 팻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상반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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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토니아 동굴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살아 있는 동굴이다. 지금도 석회석에 의해 석순과 석주가 자라고 있는 카르스트 지형의 동굴로 전체 20km 중에서 5km만 개방해 자그마한 궤도열차를 타고 동굴을 구경하도록 한다. 이 동굴은 100만 년 동안 만들어졌다고 한다. 석순이 1mm 자라는 데 10년이 걸린다고 하니, 1m짜리 종유석만 해도 1만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석회석이 흘러내린 물웅덩이에는 이곳에만 있다는 도롱뇽 ‘올름’이 서식하고 있었다.


포스토니아 동굴을 나오면 프레드야마 성까지 가는 무료 셔틀버스가 관광객들을 기다린다. 이 성은 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절벽에 붙여 지은 성이다. 성당, 지하 감옥, 창고, 연회장, 무기고를 비롯해 장기간의 생활을 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각종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으며, 그 안으로는 동굴로 연결되는 알찬 구조다. 포스토니아 동굴을 떠나 돌아가는 길에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를 보았다. 30년도 넘은 차가 이곳에 있어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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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류블랴냐로 향한다. 류블랴나의 여행 중심은 트리플 브리지다. 인근에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 프란치스코 성당이 있는데, 이곳에서 연인에게 프러포즈를 하면 영원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극중 배경이 바로 류블랴나다. 배우 고현정이 트리플 다리 앞에 지젤을 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고, 조인성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서서 지켜보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크로아티아에서 발견한 아드리아해의 진주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의 반엘라치 광장. 도시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자그레브 대성당의 서로 다른 높이의 대칭형 첨탑이 눈을 사로잡는다. 구시가지 안의 골목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니 지붕을 모자이크로 꾸민 독특한 형식의 성 마르코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크로아티아의 가로등은 가스를 연료로 하고 있는데, 어둠이 내리는 거리를 따라 관리인이 걸어가며 가로등의 불을 점화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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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트비체는 크로아티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석회암의 침식으로 이루어진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이 16개의 크고 작은 호수와 90개의 자연폭포를 이루고 있다. 폴리트비체를 떠나 아드리아 해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자다르, 시비니크,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 등 고대 도시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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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는 기원전 33년 이후부터 5세기경까지 약 700년 이상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이곳의 고대 도시 유적은 로마 양식이 주류를 이룬다. 자다르 요새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완전히 파괴된 것을 복구해 놓았고, 스플리트 요새는 로마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그의 여생을 보내기 위하여 305년에 건설했다. 그리고 ‘아드리아해의 진주’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두브로브니크는 고대 요새들의 완성판으로, 바다에 면한 땅 위에 튼튼한 성벽을 쌓아 중세 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유럽인들이 최고의 휴양지로 꼽는 이곳은 1991년 유고 내전으로 세르비아가 주축이 된 유고 연방군에 의해 구 시가지가 파괴되었으나 내전 종료 후 유네스코의 재정지원으로 옛 모습을 되찾았다. 13세기에 축조된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면서 밖으로는 아드리아 해를 바라보고 안으로는 성 안의 골목을 따라 이어진 오래된 유적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풍경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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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곳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바깥세상과 괴리되어 있었다. 유고슬라비아 연맹의 약화와 분열, 해체 과정을 거치며 발칸 반도에서 내전이 장기간 발생했기 때문이다. 세르비아인과 타 민족과의 무력 충돌은 수십만 명의 희생자를 낳았으며 많은 유적과 종교 시설이 파괴됐다. 전쟁에 희생된 수많은 젊은이들의 사진이 자연의 아름다움 뒤에 감추어져버린 시대의 비극과 아픔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TV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해진 크로아티아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이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는 긴 이름을 지닌 나라로 들어간다.보스니아는 참 복잡한 나라다. 4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적은 인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뒤섞여 있다. 인구의 48%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보스니아계이고, 37%가 세르비아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계로 구성되어 있다. 또 14%의 크로아티아계는 가톨릭 신자다.

1991년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계가 주도한 국민투표에 의해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선포하였는데, EU와 UN은 보스니아의 독립을 인정하였지만 이에 반대하는 세르비아계는 인근의 세르비아로부터 군사지원을 받아 1992년 5월 보스니아의 수도인 사라예보를 폭격함으로써 3년 8개월간의 보스니아 내전이 일어났다. 당시 세르비아 대통령 밀로셰비치는 ‘발칸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가진 악명 높은 자로 보스니아계를 대상으로 대량 인종청소를 자행했다. 훗날 전범으로 국제 형사 재판소에 기소되어 전쟁범죄와 학살죄 등으로 재판을 받던 중 2006년 감옥에서 사망했다.

1992년 유엔평화유지군이 파견되었지만 내전은 쉽게 종식되지 않았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미국과 EU는 보스니아계 편을 든 반면 러시아는 세르비아 편을 들었다. 당시 유엔평화유지군이 탔던 장갑차는 대한민국에서 수출한 것으로, 지금도 이곳 거리에서 어렵잖게 볼 수 있다. 보스니아 내전의 결과는 참혹했다. 세르비아계의 보스니아계를 향한 인종청소에 의해 25만 명 이상이 희생되고 23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강간과 방화가 도처에서 일어나 도시는 파괴되고 불에 그슬렸다.

 

보스니아의 모스타르에 있는 스타리모스트 다리는 전쟁의 참상을 겪고 다시 태어난 다리이다. 1993년 보스니아 내전 때 인근의 이슬람 모스크 9개와 함께 파괴되었다가 2004년, 강 속에서 건져 올린 석재 파편 1,088개로 복원된 이 다리에는 ‘1993년을 잊지 말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아름다움에 감탄하기에 앞서 숙연해지는 마음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모스타르는 나치의 홀로코스트 이후 최악의 인종청소가 자행된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다. 다리를 중심으로 좌측에선 성당의 종소리가 들리고 우측의 이슬람 사원에서는 코란을 낭송하는 스피커 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전세계에서 보기 힘든 도시이다. 도시 도처에는 내전 당시 희생된 사람들이 묻혀 있으며 특히 보스나아계의 씨를 말리기 위해 꽃과 같은 20대의 젊은 청년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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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타르에서 전쟁과 참상을 보았고 메주고리예에서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들었다.

민족 간의 분쟁, 다른 종교와의 전쟁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종교와 민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간에 대한 폭력과 테러, 살상과 전쟁이 끝났으면......


모스타르에서 가까운 곳에 성모 발현지인 메주고리예 성지가 있다. 1981년 여섯 명의 아동이 메주고리예의 언덕 위에서 성모님을 보았다고 주장하면서 주목을 받게 된 후 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모스타르에서 전쟁과 참상을 보았고 메주고리예에서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들었다. 민족 간의 분쟁, 다른 종교와의 전쟁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종교와 민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간에 대한 폭력과 테러, 살상과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며 몬테니그로로 향했다.

발칸의 화약고, 코소보
검은 땅이라는 뜻을 가진 몬테니그로는 경기도보다 조금 큰 1만3,000㎢의 면적에 65만 명의 인구를 가진 아주 작은 나라다. 이 나라 역시 1992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 당시 세르비아와 함께 신 유고연방을 구성한 이후 2006년에 분리 독립한 신생 국가다. ​유럽인들은 사람 많고 복잡한 두브로브니크보다 이곳을 선호한다.


코토르 만으로 깊숙이 들어와 자리한 코토르는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코토르 만의 길이가 무려 107km나 돼 그 길을 돌아 빠져나가는 데에도 2시간 이상 소요된다. 구 시가지는 바로 항구로 연결되는데 유럽 본토에서 들어온 많은 요트들과 대형 크루즈로 북적인다. 한 척당 3,000명이나 탑승한 관광객들이 내리니 크루즈 한 척에 구 시가지가 들썩인다. 이 모습을 보면서 쇼핑 위주의 저가 관광과 중국에 편중된(우리나라 해외 관광객의 47%가 중국인이다) 우리의 관광여건을 개선해 ‘바다 위의 특급호텔’이라는 크루즈를 불러들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부드바를 경유하여 알바니아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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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사태는 세르비아의 알바니아 반군과 코소보 주민들에 대한 인종청소 작전으로 이어졌다. 이때 1만5,000명의 학살이 자행되었고 30만 명의 알바니아인들이 인근의 보스니아와 마케도니아로 피신했다.​

1912년 독립된 알바니아는 1992년까지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한 까닭에 우리와는 직접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다. 1992년 민주화 이후에야 여행금지 국가에서 제외됐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아니었지만 세르비아와 코소보에 살고 있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학살과 난민 발생으로 인해 세르비아와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어 여행위험 국가로 분류되기도 했다. 리암 니슨이 주연한 영화 ‘테이큰’에서 알바니아 출신 범죄조직이 등장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 유럽 최빈국이자 이슬람을 믿는 알바니아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수도 티라나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이슬람 종교가 대세임에도 이슬람 전통의상인 히잡을 착용한 여성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고 카페에서는 자유롭게 음주가 가능했다. 시내 곳곳에 나붙은 선동성 포스터나 구호가 다소 눈에 띈 것을 빼고는 유럽의 여느 중소도시와 다를 바 없었다. 밤은 화려했고 번화가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여 즐거운 식사를 하면서 담소하는 모습 역시 보통의 유럽 도시와 다름없었다.

 

알바니아에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걱정을 했지만 여행 중 만난 알바니아인들은 다들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쿠루여에서는 친절하게 가이드 역할을 해준 사람도 만났다. 이탈리아와 가까운 곳이어서 그런지 이탈리아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았다. 티라나와 쿠루여에서 2박을 하고 코소보로 출발했다.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자치주로 있다가 2008년 2월에 독립한 신생 국가이다. 인구의 약 82%가 알바니아계로 이루어져 세르비아와 충돌이 끊이지 않았던 나라다. 1998년 코소보 독립을 요구하는 알바니아 반군들이 세르비아 경찰을 공격하며 시작된 코소보 사태는 세르비아의 알바니아 반군과 코소보 주민들에 대한 인종청소 작전으로 이어졌다. 이때 1만5,000명의 학살이 자행되었고 30만 명의 알바니아인들이 인근의 보스니아와 마케도니아로 피신했다. 지금도 일부 학교에서는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가 각자 다른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등교도 다른 문으로 한다.

종교는 사랑과 평화, 상생을 가르치는데 인류사의 전쟁은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민족들 사이의 다툼이 많았다. 2008년 독립 후에는 미국, 유럽 및 한국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지만 일부 국가는 여전히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구글맵에는 아직도 코소보와 세르비아의 국경을 실선이 아닌 점선으로 표시하고 있다. 수도 프리슈티나는 여느 유럽의 도시와 다를 게 없었다. 깔끔하게 정돈되고 활기찬 모습에서 코소보 사태를 겪은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관광산업의 인프라가 활성화되지 않아 유명 관광지가 별로 없는 가운데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파격적인 디자인의 도서관이 눈길을 끈다.

마더 테레사 성당을 지나 마더 테레사 동상을 찾았다. 그리고 뉴본 기념물도 둘러봤다. 시리우스 호텔의 추천으로 미슈라 폭포 및 협곡을 보러 가는 길은 좁은 도로와 확장된 도로가 혼재되어 있었다. 교통체증이 심했지만 높고 푸른 하늘과 들판, 그리고 붉은색 지붕, 단아한 건물들은 스위스의 어느 시골쯤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빈국이라 그런지 안내판도 잘 보이지 않고 길 상태도 좋지 못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덜컹거리며 달려야 하는 비포장 길이지만 눈앞에 펼쳐진 폭포와 계곡의 풍광은 기대 이상이었다.


호텔이 추천한 또 다른 장소는 게다임 동굴이다. 종유석과 석순이 자라고 있는 석회암 동굴인데 코소보의 몇 개 되지 않는 관광지임에도 안내판이나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잘 갖춰지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알렉산더 대왕의 나라, 마케도니아
국경을 넘어 마케도니아로 들어왔다. 마케도니아는 1913년 세르비아와 그리스로 분할된 이후 1991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수도인 스코페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이 우뚝 서 있는데 그는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영웅이다. 지금에야 국가의 세가 많이 약해져 땅과 인구가 아주 작은 국가에 불과하지만 오래전에는 세력이 제법 컸던 민족이다. 2016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성인의 칭호를 받은 테레사 수녀도 스코페 출신이다. 코소보나 알바니아는 테레사 수녀가 알바니아계이기 때문에 자기 나라 출신이라 하고 있고, 인도는 그녀가 수녀 생활을 인도에서 했고 자기네 나라로 귀화하였기 때문에 인도 국적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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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 국가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 오흐리드는 바다인지 호수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호수의 면적이 450㎢이고 깊이는 290m에 이른다. 호수 건너 멀리 보이는 땅은 알바니아다. 오흐리드 호수의 3분의 2는 마케도니아에 속하고 나머지는 알바니아에 속한다. 오흐리드는 유럽 대륙에서 최초로 인류가 정착하여 거주했으며 한때 365개의 성당이 있었을 만큼 커다란 고대 도시였다. 이곳을 소개하는 책자의 표지를 장식한 성 야고보 성당에 올랐다.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작고 소박한 성당이었다. 하지만 성당 앞쪽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오흐리드 호수의 풍광은 세계 어느 성당보다도 성 야고보 성당을 뇌리에 강렬하게 기억시켰다.


불가리아에는 유명한 릴라 수도원이 있다. 속세를 등진 은둔자인 성 요한이 10세기경에 설립했다는 동방정교회 소속의 릴라 수도원은 수도사들의 수양과 교육, 그리고 신앙에 정진하기 위한 신자들의 교육기관으로 자신을 따르던 신자와 순례자들의 힘을 모아 세운 곳이다. ‘불가리아인들 마음의 안식처’인 릴라 수도원은 붉은색 지붕에 하얀 외벽과 중간에 더해진 검정 스트립, 그리고 외부 발코니의 아치형 회랑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눈길을 끈다. 단순한 색상의 조합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수도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수도원 내 외부에 가득 찬 프레스코화는 1,200여 개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규모의 프레스코화는 어느 곳에서도 보기가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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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소피아로 이동했다. 1900년 초에 지어진, 소피아를 대표하는 네브스키 대성당을 보노라니 아무런 특색 없이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을 지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살린 건축물을 축조하여 후대에 남겨주는 데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인다.


불가리아의 음식은 유럽의 어느 음식보다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편이다. 토마토와 오이 등 갖은  야채를 넣은 불가리아 전통 샐러드인 샵스카, 전통주 리키아, 질그릇에 끓여낸 찌개 귀베체, 양념고기구이인 카바르마, 그리고 요구르트에 마늘과 오이, 올리브유 등을 넣은 수프인 불가리아 여름 보양식 타라토르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밤에 들렀던 소피아 센터를 다시 한 번 자동차로 둘러보고 고속화도로를 달려 플로브디프에 도착했다. 불가리아 제2의 도시로서, 그간 많은 민족의 침락과 통치를 받다가 130여 년 전 불가리아에 편입되었다. 그 때문인지 플로브디프에는 다양한 민족의 문화가 녹아 있었고 건축양식도 소피아의 것과는 아주 달랐다. 구 시가지를 걷노라면 사람 사는 집을 빼면 모든 집이 박물관이자 교회다. 특히 고대 극장에서는 지금도 오페라 공연이나 영화 상영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백 년 전 조상들이 만든 이 고대 극장의 객석에 앉은 관람객들은 그들의 조상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세월의 간극을 좁히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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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몰락한 사회주의 정권을 되짚다
불가리아에서 루마니아로 넘어왔다. 얼마 전까지 루마니아는 우리에겐 너무 먼 당신이었던 나라다. 북한의 우방이었기 때문이다. 1990년을 전후로 하여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경제 실용주의로 급선회하면서 많은 사회주의 국가가 변화를 겪었다. 소련이 해체되었고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동유럽의 민주화 운동으로 공산 정권이 붕괴되었다. 붕괴나 변화를 겪지 않은 단 하나의 나라가 북한이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김일성을 존경하다 못해 의형제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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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부터 집권해 22년을 넘버원으로 살았던 그는 북한식 공산주의 체제를 부러워했으며, 이를 루마니아에 접목시켜 영구집권의 뜻을 키웠다. 그는 1989년 12월 21일 친정부 관제 군중대회 연설 도중 ‘자유’와 ‘차우셰스쿠 퇴진’을 외치는 10만 군중을 향해 자동소총과 탱크로 짓밟으며 유혈진압을 단행했다. 민중의 분노는 폭발했고, 도망치던 차우셰스쿠는 그들에게 붙잡혀 부인과 함께 공개 총살당했다. 당시 이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는데, 이 사실을 접한 김일성도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그는 구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몰락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하면서 빗장을 걸어 잠그고 북한식 사회주의인 ‘주체사상’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때 나온 구호가 붉은 광목천에 검은색 글씨로 적은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산다’였다. 차우셰스쿠 사후 27년이 지난 현재 북한은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에 이어 그의 손자인 김정은에게까지 정권이 이어지고 있다. 


맛 좋기로 유명한 ‘까르꾸베체’라는 음식점을 찾아갔다. 사람이 너무 많아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다 들어갔는데 음식 이름을 몰라 그림만 보고 시켰는데도 과연 소문대로 맛이 좋았다. 북으로 달려 시나이아에 있는 펠리체 성에 멈췄다. 안데르센 동화책의 그림에서나 본 듯한 상상 속의 성을 현실에서 만나다니! 아름답기로는 이곳을 따라갈 성이 없을 것 같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는 부인의 성도 있는데, 캐롤 왕이 부인을 미워해서 별도의 성을 지어 나가 살게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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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옮겨 브란 성으로 갔다. 드라큘라 성으로 유명한 곳이다. 브란 성의 중앙에는 우물이 있는데 드라큘라가 이곳에서 피 묻은 이빨과 얼굴을 닦지 않았을까? 드라큘라를 내세운 허무맹랑한 스토리로 허탈한 느낌을 주었지만 나름 웃고 즐길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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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시비우에 도착했다. 구 시가지에는 거짓말쟁이 다리가 있다. 이 다리 위에서 거짓말을 하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전설을 가진 곳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이곳으로 와서 물어봐야 한다고.


루마니아의 마지막 도시인 티미소아라는 세르비아의 국경에 인접한 도시다. 발걸음 딛는 곳마다 고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고 정교회와 오페라 하우스는 밤새 경관 조명을 통해 도시를 밝고 붉게 물들였다. 역사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가 만들고 가꾸는 것이다. 뼈를 세우고 살을 붙여야 살아 있는 역사가 생성되는 것이다. 작년에 한국을 찾은 해외 관광객은 1,850만 명 정도 된다. 1인당 100만 원만 소비하고 갔다고 해도 관광수입이 18조에 이른다. 이제는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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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의 방아쇠, 사라예보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로 향한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주류였던 세르비아가 유고연방의 해체를 지켜보는 심정은 어떠했을까? 한 개의 연방이 7개의 나라로 쪼개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억장이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까? 푸른 도나우 강이 한눈에 보이는 칼레메그단 요새를 찾았다. 슬로베니아 북부에서 발원하여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를 거쳐 세르비아에 이른 사바 강은 이곳에서 흑해로 가는 다뉴브 강에 자기 몸을 내어주고 소멸한다. 특별하게 성곽이나 테두리로 구분되지 않은 구 도심은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삶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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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비아의 구 국방부 청사를 찾았다. 1999년 3월 24일 코소보 독립을 위한 평화 협정안 서명을 세르비아의 당시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거부하자 나토(NATO) 군은 베오그라드를 공습하였다. 티토 이후 유고연방의 해체를 겪으며 가장 상실감이 컸던 나라가 이곳 세르비아다. 같이 살던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딸과 사위가 어느 날 모두 분가하겠다고 나가 버리는데 마음 편한 부모가 있을까? 인종학살과 인종청소, 이슬람계의 대량 난민을 일으킨 주범으로 세계인의 지탄을 받은 세르비아는 국방 청사와 농림부 청사를 폭격 당시의 모습으로 보존하고 있었다. 세르비아인들은 매년 나토군의 공습일에 이곳에서 촛불시위로 그날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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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의 대척점에 있었던 나라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로 향했다. 넓고 푸른 들판에 붉은 기와를 얹은 전통 가옥들의 모습이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지, 어느 곳을 보아도 한 장의 그림엽서가 따로 없다. 산을 넘고 들을 달리며 서정적인 농촌의 풍경에 흠뻑 취했다. 이곳을 다시 찾고 싶은 곳 리스트에 추가하며, ‘발칸의 스위스’란 이름을 붙였다.


사라예보는 우리에게 두 가지 이유로 친숙한 곳이다. 하나는 1973년에 당시 유고슬라비아였던 이곳에서 열린 세계탁구대회에서 19세의 이에리사 선수가 대한민국 수립 후 최초로 구기 종목 우승의 쾌거를 이끈 것이다. 단체전 1위를 전혀 예상치 않았던 까닭에 미처 태극기를 준비하지 못해 국기 게양도 이루어지니 않았다고. 불굴의 정신력으로 우승의 영예를 조국에 안긴 자랑스러운 선수들을 생각해본다. 


이곳의 이름이 낯설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된 곳이기 때문이다.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 퍼디난드와 부인 소피가 세르비아인에 의해 다리 위에서 암살되었다. 이에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동맹을 맺어 세르비아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였고 러시아와 프랑스는 세르비아를 지원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다. 뒤따라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 심지어 중국과 일본까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나뉘어 싸움을 하면서 단순한 국지전이 아닌, 세계대전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이후 독일의 패배로 1918년 종전에 이른 이 전쟁은 전세계 근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이자 세계 역사의 큰 틀이 변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약 1,000만 명이 사망했고, 유럽은 산업경제의 파괴로 심각한 경기 침체에 빠져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전쟁에는 참여했지만 피해가 거의 없었던 미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후 러시아는 레닌의 혁명을 거쳐 소비에트 연방을 이루었으며, 패망한 독일은 히틀러의 등장으로 군비를 증강하고 경제를 재건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준비했다. 이 모든 것의 단초가 제1차 세계대전이었고 그 시작점인 사라예보는 세계 역사를 뒤바꾼 중요한 도시다.


밤 늦은 사라예보의 다운타운은 화려한 패션과 심한 노출의상을 입은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시내 곳곳에선 시끄러운 록 음악에 취한 젊은이들의 흥에 겨운 스탠딩 댄스가 길을 가득 채웠다. 발칸반도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한 놀랄 만한 풍경이다. 이슬람교도들이 다수인 보스니아에서 젊은이들의 음주와 가무를 보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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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항을 떠나 중앙아시아를 가로지른 우리는 북유럽을 지나 이곳까지 5개월을 달려왔다. 하지만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멈추지 않기로 했다. 더 멀리 달려 더 많은 것을 보기로 했다. 발칸 반도의 여행을 마친 우리는 이제 유럽의 중심 서유럽으로 들어간다. 유럽 여행을 마친 뒤엔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을 달릴 계획이다.      

 

글, 사진 김홍식 http://blog.naver.com/itravel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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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동차 여행가 김홍식
주식회사 태영에서 상무이사로 재직하다 2014년 명예퇴직한 뒤 전세계를 누비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과 중국을 자동차로 횡단한 것을 시작으로 모터사이클을 타고 일본을 종주했다. 네팔 안나푸르나, 칼라타파르, 일본 후지산도 등정했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기아 모하비를 타고 유럽을 달리고 있다.

 

제1탄 시베리아를 달려 유럽 속으로

제2탄 중앙 아시아의 초원을 지나 파미르까지

제3탄 국산차로 달린 스칸디나비아 반도, 그리고 아이슬란드

제4탄 동유럽 발칸반도에서 발트해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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