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12 페라리의 생존신고
2017-02-22  |   24,245 읽음



V12 페라리의 생존신고
FERRARI 812 SUPERFAST


F12 베를리네타를 대체하는 페라리의 새로운 기함 812 수퍼패스트가 등장했다. 배기량을 키워 800마력으로 진화한 V12 자연흡기 엔진은 다운사이징 물결 속에서 더욱 두드러진 존재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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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카, 퓨어 스포츠 이미지가 강한 페라리이지만 호화 그랜드 투어러 역시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1950년대 태어난 아메리카 시리즈.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럽 고급차 메이커들에게 희망의 땅이 된 미국을 겨냥한 GT 페라리였다. 아메리카, 수퍼아메리카, 캘리포니아, 수퍼패스트 등 이름은 제각각이었지만 V12 엔진에 FR 레이아웃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풍요로운 대지를 떠올리게 하는 대형 차체와 대배기량 멀티실린더 엔진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동급 모델들은 당시와 다른 의미에서 호사스런 존재가 되었다. 배출가스 규제와 다운사이징의 열풍이 페라리마저도 집어삼켜 488, 캘리포니아 T, GTC4루쏘 등 소배기량 터보 엔진으로 심장을 교체 중이기 때문이다.
 
양산 페라리 역대 최강의 V12 엔진
자연흡기 대배기량 엔진이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 되었다고 해도 페라리는 페라리다. 한때 V12가 아니면 페라리가 아니라는 말이 있었을 만큼 V12 페라리의 상징성은 각별하다. 터보 페라리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는 요즘, V12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떨치기 힘들지만, 이런 우려와 기대에 화답이라도 하듯 제네바모터쇼에서 새로운 V12 기함이 모습을 드러낸다.

 

페라리는 F12 베를리네타의 후속 모델에 812 수퍼패스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8은 최고출력 800마력, 12는 V12 엔진을 뜻한다. 한편 수퍼패스트라는 명칭으로는 무려 50년 만의 부활이다. 수퍼패스트라면 1964년 등장했던 500 수퍼패스트가 유명하다. 하지만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410 수퍼아메리카의 변형 모델인 수퍼패스트 피닌파리나(1956)나 400 수퍼아메리카의 스페셜 버전인 수퍼패스트Ⅱ(1960)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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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패스트는 50년 전 페라리 아메리카 혈통에서 태어났다. 사진은 1962년형 400 수퍼아메리카 LWB 쿠페 아에로디나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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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F12 베를리네타(사진)에서 디자인을 다듬고 출력을 800마력으로 높였다


 

엔초 페라리에 처음 쓰인 후 599 GTB와 FF, F12 베를리네타에 쓰여 온 65° V12 F140 엔진은 더욱 강력해졌다. 배기량을 6,262cc에서 6,496cc로 키우는 한편 직분사 시스템을 개량해 분사압을 200바에서 350바로 높였다. 여기에 F1에서 가져온 가변 공명 인테이크 기술을 더해 최고출력 800마력을 확보했다. 양산형 페라리로는 역대 최강일 뿐 아니라 자연흡기 엔진으로 L당 출력이 123마력이나 된다. 73.3kg·m의 최대토크는 7,000rpm에서 내지만 그 80%를 3,500rpm부터 발휘한다. 변속기는 편의성과 성능을 모두 보장하는 듀얼 클러치식 7단 자동. 0→시속 100km 가속성능은 F12TdF와 같은 2.9초이고 최고시속 340km 이상이 가능하다. L당 6.7km의 연비에 CO₂ 배출량은 km당 340g. F12 베를리네타보다 km당 10g이 줄었다.


연비와 환경성능 개선에는 전동식 파워스티어링(스포츠 EPS)이 한몫 거들었다. 이미 일반화된 기술이지만 페라리로서는 처음이다. 효율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SSC(Side Slip Control), 네바퀴 조향 등과 어울려 운동특성에도 개입한다. 운전자 조작과 차의 요잉을 실시간 감시해 엔진과 E-디퍼렌셜로 재빠른 코너링을 돕는 SSC는 최신형인 버전 5.0. 뒷바퀴 각도를 제어하는 버추얼 숏휠베이스 시스템은 타이트한 코너링에서 재빠른 움직임을, 장거리 크루징에서는 안정감을 제공한다.
F12TdF에 얹었던 것을 개량한 것이다. 여기에 미쉐린의 최신 HP 타이어인 파일럿 스포트 4S를 짝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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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성을 개선한 인테리어


페라리 센트로 스틸레에서 다듬은 디자인은 F12 베를리네타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많은 부분이 다르다. 부메랑처럼 살짝 꺾은 헤드램프는 풀 LED로 구성했고 몸매에 근육질을 더하고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데뷔 무대가 되는 제네바모터쇼에서는 페라리 창업 70주년을 기념해 로소 세탄타(Rosso Settanta)라는 특별색상으로 선보일 예정.


우선 공력 디자인에 많은 변화가 보인다. 범퍼 양쪽 끝단에 에어 아웃렛, 범퍼와 리어 펜더 위에 새롭게 인테이크가 추가되고 노즈 바닥의 가변식 플랩 등 액티브 에어로다이내믹 기술도 적극 활용했다. 고전적인 트윈 서클 브레이크 램프를 시작으로 차체 뒷부분의 형태도 전반적으로 새로 다듬었다. 엉덩이 끝단의 일체식 윙을 키운 덕분에 덕테일이 더욱 과격해졌고, F1 스타일의 보조 브레이크등을 제거하면서 언더윙과 디퓨저의 형태도 새로 다듬었다. 노즈에서 차체 측면으로 공기 흐름을 유도하는 F12 베를리네타의 에어로 브리지 디자인에도 변화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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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 엔진 속에서 빛나는 존재감
차체 크기는 길이 4,657mm, 너비 1,971mm, 높이 1,276mm. 전작보다 조금 커졌지만 카본 사용량을 늘려 무게는 1,525kg을 유지했다. 극단적인 롱노즈 숏데크 레이아웃은 데이토나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걸작 365 GTB4(1969)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V12 엔진을 프론트 미드십에 얹고 운전자는 뒷바퀴 바로 앞에 걸터앉은 모양새. 공간활용성이나 효율보다는 멀티 실린더 엔진과 무게배분 등에 중점을 둔 디자인이다. 이 차의 무게배분은 47:53이다.


인테리어는 사용편의성과 거주성 개선에 주력했다. 스티어링 휠은 전화 연결 버튼을 더하는 한편 와이퍼 스위치 디자인을 개선했고 공조스위치는 별도 디스플레이를 달았다. 다만 전반적인 형태와 디자인은 F12를 답습했다.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양산차들이 즐비한 오늘날 과연 시속 340km 정도를 수퍼패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12기통 자연흡기 페라리이기에 붙일 수 있는, 역사와 전통의 이름임에는 틀림없다. 최근 실린더 개수가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V12 엔진을 고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터보 엔진이 제아무리 뛰어난 기술로 강력한 성능과 효율을 자랑한다고 해도 V12의 상징성을 대신할 순 없다. 812 수퍼패스트가 특별해 보이는, 단순하지만 분명한 이유다.

이수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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