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자의 뉘르부르크링 원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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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노라 보았노라 달렸노라
네 남자의 뉘르부르크링 원정기


드라이버에게 죽기 전에 떠나야 할 여행지가 있다면 실컷 달릴 수 있는 서킷 하나쯤 떠올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여기 BMW Z3를 타는 남자 넷이 자동차의 성지,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찾아 떠난 얘기를 들어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독일과 스위스를 넘나들며 고군분투한 아재들의 여행은 첫날 빌린 렌터카부터 뜻대로 되는 게 없었지만 그들의 얘기 속에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재미가 속속들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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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르부르크링 사총사

BMW Z3 동호회의 동갑내기 47세 남자 넷이 뭉쳤다. 모두 차를 사랑하고 그 중에서도 컨버터블과 수동 기어 차에는 더 열광하는 마니아들이다. 꼼꼼한 여행기를 쓴 이진후는 각종 ‘군기어’에 관심이 많은 파일럿으로 보유한 차 4대 중 3대가 수동인 자동차 덕후. 김용재는 아버​지 차 포니1의 감각과 현대 스쿠프 수동으로정지선에 선 택시를 이기는 재미를 추억하는 남자다. 무역업에 종사 중인 서요한은 타쿠미의 토요타 86이부럽지 않은 포니2로 운전을 배운 것이 자랑스러운 남자. 첫 차 대우 다마스를 포함해 그간 보유했던 차가모두 수동이었으니 그 사실은 믿어도 좋다. 그리고 정현종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답게 20년 전 멋진 남자들의 차라 불릴 만한 현대 액센트 유로 수동으로 드라이버의 인생을 시작했다. 한겨울에 서울에서 전주까지뚜껑을 열고 달린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남다른 감성의 소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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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어느 밤, 잊지 못 할 여행을 결심하다
“죽기 전에 뉘르부르크링 한 번 가봐야 하지 않겠어?”
지난해 겨울의 어느 날 커피숍. BMW Z3 클럽 멤버 중 누군가가 이 질문을 던졌다. 동호회 모임이 으레 그렇듯이 내 차 자랑에 여념이 없었던 그날, 뉘르부르크링이라는 한마디에 순간 조용해졌다. 다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너도 나도 참가하겠다고 말했다. 그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던졌던 그 말이 우리에게 일생일대, 인생 전환기라 할 만 한 대사건이 될 줄이야.


6개월 후, 우리는 정말 떠나기로 했다. 최종 멤버는 이진후, 김용재, 서요한, 정현종 네 명이다. 먼저 운전 실력부터 체크했다. 우리의 공통점은 모두 수동기어 운전은 할 줄 알지만 평소에는 자동기어 차를 몰고 있다는 것. 하지만 적어도 뉘르부르크링을 향한 길에서만은 렌터카라도 수동기어 차를 몰고 싶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열정적이었다. 그 전까지 여행에 관한 자체 프레젠테이션만 한 열 번은 했을까. 수동기어의 운전기술에 대한 서로의 이론을 교환하고 실제 BMW Z3 수동기어 차를 몰아보는 자체 검증까지 거쳤다. 업 시프트, 다운 시프트, 레브 매칭 등 기본적인 기술과 감각을 다시 체크하며 그날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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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지붕’이 뭐길래
드디어 2016년 5월 28일, 비행기를 타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유럽을 잇는 큰 공항답게 무척 복잡해서 잠시라도 한눈을 팔았다간 다 큰 어른이라도 국제 미아가 될 것만 같았다. 떨림을 안고 입국 심사대에서 섰다. 심사원이 영어로 여행목적을 묻기에 대뜸 “뉘르부르크링!” 하고 말했다. 역시 독일 사람이다. 그는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이튿날 프랑크푸르트 중앙역(Franqkfurt (Main) Hbf)에 있는 렌터카 업체를 찾아갔다.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5개월 전 미리 예약했는데 한 대는 BMW Z3 38i 수동, 다른 한 대는 메르세데스 벤츠 E350 카브리올레 수동이었다. 예약할 때만 해도 모델은 신청한 그대로 확정이더니 막상 차를 받으러 갔을 땐 우리가 타기로 한 모델이 한 대도 없었다. 유럽에서 렌트를 하다보면 흔한 일이라 태연하게 받아들이려 했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한겨울에도 ‘지붕’을 열고 달리는 사람들 아닌가. ‘골수’ 로드스터 드라이버들에게 수동도 아니고 톱도 열리지 않는 차를 주면서 동급이니 그냥 쓰라니. 렌터카 직원의 말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실랑이 끝에 BMW 420d 컨버터블과 메르세데스 벤츠 E200 카브리올레를 렌트했다. 모두 컨버터블이긴 했지만 한 대는 디젤 모델이었다. 가솔린을 몰고 싶었던 실망감을 잠시 미루고 일단 톱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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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볼 것 없는 시속 240km의 자유
첫 번째 목적지인 슈투트가르트(Stuttgart)를 향해 가속 페달을 밟았다. 시속 200~240km를 넘나들며 아우토반에서 고속주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도로 포장 상태가 좋다보니 고속주행시의 안정감이 무척 좋았다. 흔히 독일의 아우토반은 속도 무제한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가보니 긴 직선 구간에서는 무제한이지만 커브가 심한 구간이나 차가 붐비는 지역은 때로 속도제한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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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무제한 구간을 달리는 동안만은 과속 단속 카메라에 찍힐 걱정 따윈 머리 위로 집어던져도 좋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차가 렌터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정말 겁 없이 달렸다. 특히 바덴바덴(Baden-Baden)을 지나 들어선 루트 500(Route 500 Schwarzwald Hochstrasse)은 무척 아름답고 재미있는 와인딩 코스로 이뤄져 있었다. 그 길에서 과속단속 중인 경찰을 처음 보았다. 양방향 모두 단속 중이기에 마주 오는 차를 향해 하이빔을 깜빡여 단속을 알려 주었더니, 맞은 편 운전자가 우리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지나갔다. 맞은편에서 오던 어떤 차는 우리가 가는 방향에도 또 다른 단속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듯 우리 일행을 향해 하이빔을 날리기도 했다. 우리도 그쪽 운전자를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 드라이버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은 운전면허 따기가 아주 어렵고 교통질서 준수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대한 만큼 현지 사람들이 모두 교통법규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지는 않았다. 아우토반에서 추월차로인 1차선을 막고 느긋이 가는 차도 더러 있었고 차선 변경시 방향 지시등도 안 켜고 급히 들어오는 차도 심심찮게 마주쳤다.


슈투트가르트는 자동차 마니아에겐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 포르쉐의 박물관이 다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세 곳을 모두 들렀다. 포르쉐 박물관에선 918 스파이더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BMW 박물관은 Z3가 있어 참 반가웠다. 박물관에 내가 타는 차가 전시되어 있는 모습이라니. 왠지 모를 뿌듯함에 기분이 들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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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투트가르트의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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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박물관에서 만난 918 스파이더. 보는 것만으로 입이 귀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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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지나(Gina) 컨셉트를 실물로 볼 줄이야!

 


결국 수동 자동차로 갈아타다
즐거운 박물관 투어를 마친 다음날 아침 댓바람부터 인근 렌터카를 찾아갔다. 여기까지 타고 온 BMW 420d도 어느덧 몸에 익어 편하긴 했지만 가솔린의 운전 재미가 그리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각설하고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은 SLC 수동을 빌렸다. 이 차의 주행 거리는 6,000km 남짓. 거의 새 차나 다름없었고, 주행감 역시 아주 만족스러웠다. 늘 느끼지만 수동이 주는 직결감은 정말 좋다. 마음대로 기어를 바꾸며 힐 앤 토를 연발할 때의 기분은 운전자를 무아지경에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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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영화 ‘백설공주’의 배경이자 디즈니랜드 성의 모티브가 됐다는 노이슈바인슈타인(Neuschwanstein) 성을 거쳐 다음 목적지인 보덴 호수, 린다우(Lindau) 섬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린다우에서 관광을 마치고 31일, 이번 여행 중 드라이빙 코스의 절정이라 부를 만 한 스위스의 클라우센 패스(Klausen Pass), 푸르카 패스(Furka Pass), 그림젤 패스(Grimsel Pass)를 향해 달렸다. 차로 국경을 넘어보는 것은 처음이었고 긴장되는 마음에 여권을 만지작거리며 국경 초소를 지났다. 하지만 독일에서 스위스 국경을 통과하는 절차는 의외로 간단했다. 그냥 얼굴만 보고 ‘패스’다. 말 그대로 얼굴도장만 찍고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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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국경을 넘는 것이 처음이라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됐다

 


이윽고 해발 1,952m 클라우센 패스 정상까지 차로 올라보니 마치 우리가 하늘과 마주 보고 있는 듯 높고도 높았다. 그러다 무심히 도로를 바라봤는데 우리가 올라 온 도로에서 뿌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알아보니 도로 아래 열선을 깔아서 길이 어는 것을 예방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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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알고보니 결빙 예방을 위해 도로 아래 열선을 깔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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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센 패스 정상은 마치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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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센 패스 정상에서 익숙한 차를 만났다. Z3 클럽 맴버로서 인증샷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곧이어 다음 코스인 푸르카 패스로 이동했는데 거의 다 올랐을 때쯤 당황스럽게도 그림젤 패스 쪽으로 넘어 가는 길이 막혔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냥 운전해서는 넘어 갈 수가 없다는 것.


다시 산을 타고 내려와 오베르발트(Oberwald) 기차역을 통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재밌다. 운전자가 타고 있는 차를 기차에 실은 채로 목적지까지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거대한 무빙워크 같았다고 할까? 하여간 처음 해보는 방식이라 모두 긴장하며 차로 기차에 올라탔다. 위험할까 하는 걱정은 기우였지만 차의 톱을 닫지 않은 건 실수였다. 터널을 통과하는 내내 시끄러워 귀를 막고 있어야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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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젤 패스 쪽으로 넘어가는 길이 막혀 운전자가 타고 있는 차를 기차에 실은 채로 이동한다


달콤살벌한 와인딩 코스를 향하여
‘차가 미끄러지면 인생 끝난다!’. 도착 후 그림젤 패스로 바로 달렸다. 해발 2,164m라는 엄청난 높이를 향해 뻗은 도로는 말 그대로 갈지(之)자여서, 힐 클라임 코스와 다운 힐 코스의 ‘끝판왕’을 보는 듯했다. 조심조심 달리면서도 또 한 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올라가는 길은 막고 내려오는 길은 열어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진입금지 표시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안 올라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 우리는 일단 “고”(Go)를 외쳤다. 대충 막아놓은 바리게이트를 피해 올라가면서 중간 중간에 작업 중인 인부들을 보기도 했지만 아무도 막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반갑게 손까지 흔들어주었다.
어렵사리 정상에 도착했는데, 막상 차에 내려서는 구름이 눈앞에 걸려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하긴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어딘가. 다시 내려가면서 마주 보이는 푸르카 패스 쪽 길을 보니 아찔했다. 온 몸에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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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우리는 아침밥만 먹고 곧장 마테호른(Matterhorn)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맞은 편 산으로 향했다. 체르마트(Zermatt) 마을까지만 올라가도 마테호른은 보이고 고산병 증상도 없을 거라고 들었지만 막상 조금 더 올라가니 어지러웠다. 카페인을 먹으면 좋아진다는 말을 듣고 초콜릿을 먹었더니 금세 나아졌다.


우리는 지금 ‘호수 속’(Inter Lake)이라는 뜻을 지닌 인터라켄(Interlaken)으로 달리고 있다.  호수와 호수 사이에 있는 도시, 인터라켄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고개를 넘어 인터라켄이 보이기 시작할 땐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아름다운 호숫가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도 잠시, 빠듯한 일정을 못내 아쉬워하며 숙소로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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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차가 말입니다
며칠간 아름다운 풍경 속에 취해 있었지만 차 얘기를 안 할 순 없다. SLC200을 타다보니 나름 이 차의 장단점이 느껴졌다. 처음엔 이 차가 터보 엔진인 것을 눈치 채지 못했을 정도로 토크 곡선이 완만했다. 하지만 차를 세우고 보닛을 열어보니 조그마한 터빈이 보이는 게  아닌가! 터보 엔진 하면 생각하게 되는 ‘펀치’보다는 엔진의 빠른 반응과 부드러운 토크 밴드에 집중한 듯 보였다. 너무나 마음에 든 세팅이지만 단점도 있었다. 플라이휠이 무거워서 그런지 아니면 터보라서 그런지 업 시프트시 클러치를 밟았을 때 rpm이 천천히 떨어졌다. rpm이 빨리 떨어져야 변속이 빨라 좋은데 늦게 떨어지다보니 클러치가 맞물릴 때 차가 자꾸 튀어나가는 듯한 현상이 일어났다. 물론 천천히 변속하는 사람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우리처럼 스포티한 주행을 원하는 입장에선 일반적인 수동 미션보다 반응이 느린 듯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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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C200은 터보 엔진이 달린 것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토크 곡선이 완만하

 


하드톱을 열고 닫는 시간은 꽤 걸렸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끈하게 움직였다. 서스펜션 세팅도 아주 부드러웠고 코너에서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 점도 좋았다. 루프 무게의 영향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일상에서 몰기에는 아주 좋은 세팅 같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80km 정도까지는 차가 적당히 밀어주는 느낌이었으나 그 이후는 더디게 느껴졌다. 브레이킹도 급하거나 예민하지 않아서 오히려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클러치도 그랬다. 무릎에 전혀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워서 더 마음에 들었다. 만약 한국에 이 차가 수입된다면 수동 드라이버에게 큰 선물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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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지옥으로 향하는 길, 우린 모두 어린 아이처럼 들떴다


녹색지옥을 영접하기 위한 목욕재계를 마치고
이튿날 아침 우리는 휴양 도시로 유명한 로이커바드(Leukerbad)의 야외 온천으로 향하면서 마치 깊은 산속에나 있을 법한 묘한 길을 넘어갔다. 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곳도 많고 바위를 깎아 길을 낸 곳도 있어서 이른 아침부터 스릴 만점이었다. 게다가 깊은 산속 사이에 자리한 온천에서 몸을 담그고 구름이 걸린 산들을 보고 있노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그동안 쌓인 피곤을 날려 버리며 달콤한 시간을 보내면서 ‘녹색지옥’을 영접하기 위한 목욕재계를 마쳤다. 들뜬 기분으로 잠을 청한 후 다음날 ‘레이스의 성지’ 뉘르부르크링으로 달렸다. 뉘르부르크링의 숙소는 출발 전 예약했던 옵션보다 더 크고 좋은 곳을 배정받았다. 예감이 좋았다. 체크인을 한 후 우리는 곧장 뉘르부르크링 서킷으로 향했다. 가는 길 삼삼오오 다른 운전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같이 구경도 했다. 우리도 내일 이곳을 달리겠지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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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도시로 유명한 로이커바드의 야외 온천에 들렀다

 


다음날,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가 선택한 차는 토요타 FT86 수동에 롤케이지를 장착한 200마력짜리였다. 여섯 랩을 타기로 하고 트랙에 차를 올렸다. 익히 알고 갔지만 뉘르부르크링의 트랙은 고저차가 심하고 블라인드 코너가 많아서 각별히 주의해야 했다. 첫 랩을 시작하는 순간 차가 너무 안 나간다 싶었다. 5,000rpm 이상은 돌려야 차가 좀 힘이 나는 듯했다. 직선 구간도 힘들었지만 코너는 나름 괜찮게 돌아나갔다. 첫 랩을 돌고 나니 조금씩 차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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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트랙에서 탄 차는 수동 변속기에 롤케이지를 장착한 200마력짜리 토요타 FT86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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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랩은 시원하게 밟아 봤지만 트랙 곳곳에서 다른 차들의 사고가 발생해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참고로 뉘르부르크링 트랙은 운영진들이 주행 흐름을 자주 체크한다. 날씨가 안 좋거나 사고가 많아지면 바로 클로즈(Close) 표지를 띄우고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게 했다가 다시 열곤 했다. 그동안 차들은 트랙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물론 그 시간도 허투루 보내는 사람이 없다.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끼리 이런저런 차 이야기를 하며 카 마니아만의 우정을 나눈다. 뉘르에는 자동차 박람회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차들이 와 있었다. 그리고 이 일대에선 신형 포르쉐보다 구형을 훨씬 많이 만나게 된다는 것도 뜻밖이었다.


실컷 달리고서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바로 앞 레스토랑 데빌스(Devil’s). 앉아 있으면 지나가는 차들이 다 보이는 명당이었다. 이차 저차 구경하면서 또 다시 다른 운전자들과 수다도 떨고 같이 사진도 찍어댔다. 이런 독일의 자동차 문화가 너무 부러웠다. 주말이라 평일보다 많은 차들이 모여 꽤 시끄러웠는데도 제재하는 경찰 한 명 나타나지 않았다. 다들 보이지 않는 룰에 따라 자유롭고 안전하게 하루를 즐겼다. 우리나라에도 주말마다 이렇게 마니아끼리 자유롭게 달리고 교류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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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킷 앞 레스토랑 데빌스에 앉아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하면서 다른 운전자들과 수다를 떨었다

 

멈출 수 없는 드라이빙 투어의 꿈
차를 반납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쌩쌩 달리던 아우토반이 너무나도 그리워질 것 같다. 긁힌 곳 하나 없어 차량 반납도 순조롭게 끝났다.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생각해보니 지난 며칠간이 꿈만 같았다. 내 평생 가장 재미있었던 여행이었다. 어느 일정 하나 틀어진 것 없이 계획대로 잘 마무리됐고 함께 한 멤버들도 어른답게(!) 잘 행동해 주었다. 돌아와서 결산해보니 예상보다 그리 많은 돈을 쓴 것도 아니었다. 비행기 값을 포함해 1인당 지출은 약 300만원 정도. 어떻게 보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충분히 쓸 만한 가치가 있었다. 왜 진작 이런 여행을 떠나지 않았나 하는 후회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 여행의 값어치는 돈으로는 따질 수 없을 것이다. 좋은 친구와 좋은 차가 있다면 어디에서든 값진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돌아오는 길, 우리는 다시 약속했다. 내년은 일본 관동지역을 돌고 그 후년엔 호주를 돌자고. 가까운 일본은 각자 차를 배에 싣고 가 돌아볼 생각이다. 여러 나라의 수많은 드라이빙 코스를 공략하는 새로운 꿈에 들뜬 채 우리는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글, 사진 이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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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차붕불루
글 잼있게 잘 봤습니다.
1 제스
유럽 오픈에어링의 진수를 보는 것 같아 너무 좋습니다. 용기있는 열정이 부럽습니다.
1 말캉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간접으로 느껴봅니다.
1 대견필승
이 남자들 인생의멋을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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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비추는 볼보의 북극성POLESTAR1퍼포먼스와 EV 시대에 대한 준비작업으로 별도 브랜드 폴스타를 신설한 볼보. 그 첫 작품이 될 고성능 PHEV 쿠페 폴스타1이 공개되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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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자동차생활 400호 특집- <자동차생활>과 함께 한 다섯 대의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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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생활 400호 특집<자동차생활>과 함께 한 다섯 대의 자동차<자동차생활>에 처음 입사했던 21년 전의 화끈하고 열정 넘치는 초년병 기자 시절, 나의 옆…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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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자동차생활 400호 특집 - 자동차생활 시승기 1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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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생활 400호 특집 자동차생활 시승기 10선​​​월간 자동차생활이 통권 400호를 맞았다. 1984년 9월 창간 이후 400개월 동안 400호의 책을 출간한 것이다. 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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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2017 SEMA SHOW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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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SEMA SHOW신기루 같은 도시를 물들인 튜닝카의 불빛1963년 고작 10개 회사가 모여 창설했던 SEMA(Seppd Equipment Manufacturing As…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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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2017 SEMA SHOW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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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SEMA SHOW 신기루 같은 도시를 물들인 튜닝카의 불빛1963년 고작 10개 회사가 모여 창설했던 SEMA(Seppd Equipment Manufacturing As…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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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몰락한 가문의 미래 전략, 미쓰비시 e-에볼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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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가문의 미래 전략MITSUBISHI e-EVOLUTION 어려운 시기에 창업 100주년을 맞은 미쓰비시. SUV와 EV라는 특기를 한데 모은 컨셉트카 e-에볼루션으로 회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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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제45회 도쿄모터쇼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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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회 도쿄모터쇼 2017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찾다닛산과 고베제강 문제를 비롯해 일정 단축, 태풍 등 안팎의 갖가지 악재가 겹쳤던 올해의 도쿄모터쇼. 하지만 센추리와 도쿄 택시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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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2017년 12월 신차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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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신차소개뉴모델​​​2018 GENESIS G80 ( 10월 16일 )제네시스 브랜드의 대들보, G80 2018이 출시됐다. 기존 모델을 바탕으로 상품성을 소폭… 더보기

타이어 리페어 킷 파헤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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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리페어 킷 파헤치기타이어 리페어 킷은 다양한 장점이 있다. 스페어타이어, 템퍼러리 타이어보다 부피가 작은 까닭에 트렁크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무게가 가벼워 차체 경량화에 따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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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피터슨 자동차 박물관 특별전- '아트 오브 부가티' & '부르스 마이어 패밀리의 페라리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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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슨 자동차 박물관 특별전Art of BUGATTI & 70th Anniversary of FERRARI 피터슨 자동차 박물관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자동차 박물관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