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SSC-1 vs 프로토 PS-II 강렬하고 매혹적인 두 대의 ‘토종’ 스포츠카
2001-11-19  |   36,573 읽음
자동차를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일순간 강한 흡인력으로 다가오는 자동차의 매력에 흠뻑 취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대개 꿈의 자동차 한둘은 가슴속에 품고 있으리라. 날렵한 자태에 민첩한 움직임의 멋진 스포츠카는 그 꿈의 일부일 것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우리 것’에 대한 집착이 좀 유별나다는 데에는 대체로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분야를 살펴보아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양산 자동차 메이커를 가진 여느 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수입자동차 시장점유율은 크게 낮다. 애국심의 발로이든, 정부의 경제정책 산물이든, 이로 인하여 소비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이 어느 정도 제한되던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비싼 값’이라는 장벽에도 가로막혀 있었지만 말이다.

매혹적인 스포츠카를 꿈꾸면서도 이러저러한 연유로 이를 현실화하지 못했던 자동차 팬들은 머잖아 ‘우리의 스포츠카’를 만나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얼마 전 발표된 프로토자동차의 PS-II가 그 주인공이다. 더불어 양산을 목전에 두고 소비자와의 첫 만남을 ‘일장춘몽’으로 접어야했던, 같은 개념의 삼성 SSC-1도 함께 만나보았다. ‘고성능 2인승 스포츠카’의 이미지는 우리의 피를 데울 만큼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더군다나 두 모델 다 ‘토종’이 아닌가?

1930년대부터 시도된 미드십 엔진

고성능 2인승 스포츠카가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국내 시장에서는 그 입지가 더욱 좁다. 또한 이미 확고한 명성을 얻고 있는 자동차들의 아성은 쉽게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 메이커들이 부가가치가 높고 회사 이미지에도 크게 도움되는 고성능 스포츠카 시장에 선뜻 진입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패가 두려운 것이다. 작은 회사의 입장은 이와 약간 다르지만 본질은 비슷하다. 고성능 자동차를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끌어 모으기는 어렵지만 망하기는 쉽기 때문이다. 이런 자동차는 대개의 공정을 수작업에 의존하므로 값이 만만찮은 경우가 많은 데다 일정 규모 이상의 생산과 판매가 유지되어야 손익을 맞출 수 있으므로 생산 결정이 쉽지 않다. 메이커에게 있어 자동차시장은 냉철하면서도 치열한 전쟁터인 것이다.

수 년 전 의욕적으로 출발했던 삼성자동차는 당시까지 어느 자동차 메이커도 선뜻 손대지 못했던 고성능 2인승 스포츠카 개발에 뛰어들어 프로토타입까지 제작하는 결실을 얻었지만 회사의 비운으로 양산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명 카로체리아를 꿈꾸는 한 소규모 자동차 디자인·생산 전문회사 프로토자동차가 토종 스포츠카 개발에 발벗고 나섰다. 우연의 일치인지 두 회사의 스포츠카는 개발 시기만 차이날 뿐 여러모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두 차를 한번에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다.
삼성 SSC-1, 프로토 PS-Ⅱ 모두 엔진을 운전석과 뒤 차축 사이에 배치하는 미드 엔진(mid-engine) 스포츠 쿠페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드 엔진 또는 미드십(midship) 레이아웃은 대개 엔진이 차의 정중앙에 위치하기보다는 거주공간과 뒤 차축 사이에 자리잡고 있어 약간 뒤로 치우친 형태이지만, FF와 FR의 중간적 형태여서 이렇게 부른다.

1920년대, 당시 시대를 앞서가던 자동차 엔지니어들은 길다란 프로펠러 샤프트를 사용해야 하는 앞 엔진 뒷바퀴굴림(FR) 방식 자동차의 비효율성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고 이의 대안을 모색했다. 이들 선구적 엔지니어 중 한 그룹은 엔진과 변속기를 결합해 차의 앞쪽에 배치하고 앞바퀴를 굴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간의 활용 측면에서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 라이트15, 2CV, 후에 나온 미니 등이 이들의 유산이다.

다른 하나의 그룹은 엔진과 변속기를 자동차의 뒷부분에 배치해 뒷바퀴를 굴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폴크스바겐 비틀, 포르쉐 911 등 많은 리어 엔진 차들이 그 예다.
1930년대 아우토 우니온이 리어 엔진 경주차로 쏠쏠한 재미를 보았지만 2차대전 후 10여 년이 지날 때까지 주류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이후 0.5X 엔진을 뒤에 얹은 피아트 500을 베이스로 만든 쿠퍼 회사의 경주차들이 그랑프리를 석권하면서 리어 엔진 방식이 비로소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 차의 엔진은 뒷바퀴를 지나지 않은 위치에 얹혀 있었으므로, 그때부터 ‘미드 엔진’의 개념은 시작되었고 볼 수 있다.

SM525의 부품 이용한 SSC-1

PS-Ⅱ나 SSC-1은 왜 미드십 방식을 택했을까? 답은 스포츠카의 엔진배치로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리어십을 지켜오던 포르쉐가 야심 있게 내놓은 카레라 GT도 미드십 방식을 택했다. 미드십의 장점을 먼저 살펴보자. 첫째, 디자인하기가 쉽다. 앞에 엔진이 실리지 않으므로 앞모양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

둘째, 앞뒤 50: 50의 무게 배분에 쉽게 근접시킬 수 있다. 코너링 때 유리함은 물론이고 가속 때 접지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 앞바퀴에 얹히는 하중을 줄일 수 있어 폭 넓은 타이어를 쓸 경우에도 파워 스티어링의 필요성이 거의 없어진다는 것 등이 장점이다. 셋째, 대부분의 무게가 휠베이스내에 배치되므로 차가 움직일 때 관성의 영향이 적어진다(같은 크기의 추를 각기 다른 길이의 줄에 매달아 빙빙 돌리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이는 자동차의 주행특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단점 또한 있다. 주어진 차 길이에 비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협소하다. 하지만 이 점은 좌석 두 개로도 충분한 스포츠카에 있어 큰 문제는 아닌 듯하다. 다음으로는 엔진 정비하기가 까다롭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앞, 뒤가 멀어 엔진으로의 접근성이 떨어지므로 정비사들이 가장 꺼리는 타입의 차라고 하겠다.
1997년, 삼성자동차가 SSC-1 컨셉트카를 발표했을 때 드디어 우리나라도 미드십 스포츠카의 생산이 멀지 않았다고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삼성자동차는 빅딜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SSC-1 양산에 대한 기대 또한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이번에 만나본 SSC-1은 97년 당시 제작된 프로토타입으로 삼성교통박물관의 소장품 중의 하나다. 양산되었더라면 어떤 소재로 차체를 제작했을지 모르지만, 이 차의 차체는 프로토타입 제작에 흔히 쓰이는 FRP 소재다. 프레임의 형식 또한 확정짓지 않았던 듯 완전한 모양을 갖추지 않은 상태다.

가로 배치된 엔진은 SM525에 쓰이는 닛산의 V6 2.5X VQ다. 이 부분은 엔진을 세로로 배치한 PS-Ⅱ와 다른 점이다. 이러한 엔진 배치는 장단점을 따져 내린 결정이라기보다는 앞바퀴굴림 방식에 쓰던 변속기를 사용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미 세계적으로 성능이 검증된 이 엔진은 최고출력 190마력을 낸다. 하지만 양산으로 이어졌더라면 배기량이나 출력을 높였을지도 모를 일이다(VQ 엔진은 3.0X급도 있다). 서스펜션은 앞뒤 모두 더블 위시본 방식이고 댐퍼와 스프링은 코니와 아이바흐를 조합했다.

주행 시험차도 아니고 프로토타입에 불과한 차의 운동성능을 시험해 본다는 것이 왠지 멋쩍지만 어쨌든 시승을 해보았다. 좌석은 스포츠카답게 위치가 매우 낮고 둘 다 아이보리색 가죽을 씌운 전동조절식 버켓 시트다. 사이드실이 높고 좌석은 상대적으로 낮아 드나들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하지만 차체 강성의 확보와 스타일링을 위해서는 사이드실이 두터워질 수밖에 없다. 이점은 PS-Ⅱ도 마찬가지다.

실내의 많은 부품은 삼성차 또는 닛산의 것을 가져다 썼다. 이런 부품들은 양산 때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키를 돌려 시동을 걸자 엔진이 카랑카랑한 고음을 낸다. 가슴을 뛰게 하는 육중한 저음이 아니어서 실망스러웠지만 완성차가 아님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이래저래 왔다갔다하며 타보았지만 전율을 안겨주기엔 많이 부족했다.

이 차는 부화를 기다리다 세상 빛도 보지 못한 채 화석이 되어버린 안쓰러운 프로토타입이었다. 게다가 박물관의 소장품이 아니던가. 세차게 몰아붙이기가 미안했다. 브레이크는 브렘보제로 앞, 뒤 모두 V 디스크. 성능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민감하다. 양산했다면 틀림없이 조정되었을 부분이다.


완성도 높은 프로토 PS-Ⅱ

PS-Ⅱ는 최고의 카로체리아를 지향하는 프로토자동차가 내놓은 야심의 결정체이다. 수 백장의 시안 중에서 고르고 고른 멋진 스타일링이지만 양산 단계에서는 바뀔 부분도 있으리라는 관계자의 귀뜸이 있었다.

가볍고 강성이 강한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을 썼고 FRP 보디를 입고 있다. 스페이스 프레임은 구조상 사이드실이 비교적 두터워지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벤츠 300SL 쿠페는 스페이스 프레임을 썼기에 고육지책으로 걸윙 도어를 달았지만, 이는 충분한 차체 강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국내 자동차회사의 V6 3.0X 엔진을 손질해 얹어 최고출력 250마력을 내고, 엔진을 세로로 배치해 6단 수동변속기와 조합했다. 변속기는 이스타나의 것을 가져다 6단으로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서스펜션은 앞뒤 모두 더블 위시본 타입이고 브레이크는 앞뒤 모두 V디스크를 썼다. 캘리퍼는 국내 제품이라고 한다. PS-Ⅱ 역시 개발중인 차이므로 엔진, 변속기, 내장 및 전장 부품, 서스펜션, 브레이크 등 어느 것 하나 확정된 제품이라고는 볼 수 없다. SSC-1과 마찬가지로 PS-Ⅱ를 거칠게 몰아볼 수는 없었다. 차를 가져온 관계자는 아직 세팅 중인 부분이 많으므로 시승을 하기보다는 동승을 권했다. 어깨 너머로 살펴보고 엉덩이로 느껴본 PS-Ⅱ 역시 미완의 대기였다. 하지만 변속감, 엔진음, 인테리어 등에서 PS-Ⅱ의 완성도가 앞서 있다. SSC-1이 과거완료형이라면 PS-Ⅱ는 현재진행형이니 그럴 만도 하다.

두 차의 스타일링은 언뜻 비슷해보인다. 낮은 쐐기형의 앞모습, 지붕에서 뒤 펜더 상단으로 이어지는 연결부 라인 등은 전형적인 미드십 쿠페의 그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하나하나 살펴보면 세월의 흐름에 따른 디자인의 변화도 읽힌다. PS-Ⅱ의 스타일링은 직선적인 느낌이지만 SSC-1에서는 좀더 많은 곡선과 풍부한 볼륨감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SSC-1에 17인치, PS-Ⅱ는 18인치 휠을 썼다(두 차 모두 뒤 타이어가 앞 타이어보다 넓다). SSC-1은 다소 통통한 몸매를 지녀 오히려 매력적인 여인네 같고, PS-Ⅱ는 운동과 다이어트로 잘 가꾼 몸매의 고혹적인 여성 같다.

이들 모두 양산차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자동차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차들이다. PS-Ⅱ는 분명한 양산계획을 가지고 있고, 현실화된다면 상업적 성공 여부를 떠나 국내 최초의 양산 미드십 스포츠 쿠페라는 영예를 안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차가 ‘최초’라는 수식어를 얻는 데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완성도 높은 자동차로 태어나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를 진정으로 기원한다. 시장은 좋은 제품을 절대 외면하지 않는다. PS-Ⅱ가 성공한다면, 국내 자동차문화의 척박한 토양 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프로토자동차는 세계 속의 명카로체리아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시승차 협조: 삼성 교통박물관 ☎ (031)320-9924,
프로토자동차 ☎ (031)339-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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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SSC-1 VS 프로토 PS-2삼성 SSC-1은 SM525V에 쓰인 V6 2.5X 엔진과 변속기, 서스펜션을 이용해 만든 미드십 스포츠카다
SSC-1 의 헤드라이트크림색 가죽과 우드 그레인으로 장식한 실내
차체는 다른 스포츠카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하이 데크 스타일의 뒷모습
스포티한 센터 페시아
미드십 엔진의 냉각을 돕는 공기 흡입구 
전체적으로 곡선을 많이 써 풍부한 볼륨감을 느낄 수 있다 
SSC-1은 앞뒤 바퀴 모두 V디스크와 17인치 휠을 달았다
PS-Ⅱ는 아직 미완성 차지만 박력 있는 엔진음이 스포츠카답다 
PS-2의 헤드라이트두 차 모두 양산 모델은 아니지만, 한국 자동차사에 한 획을 그은 선구자들이다 
날카롭게 디자인된 헤드램프가 눈길을 끄는 PS-Ⅱ의 앞모습 
완성도 높은 실내 
어떤 엔진을 쓸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양산을 앞두고 있는 PS-Ⅱ. 한국의 첫 양산 미드십 스포츠 쿠페로 태어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