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웬 푸조야?” -시승기
2018-03-06  |   8,718 읽음

“갑자기 웬 푸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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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2일, 생애 첫 ‘새차’를 뽑았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영 뜨뜻미지근하다. 축하한다는 말보다 왜 푸조를 샀냐는 질문을 더 많이 받았다. SUV 라인업의 인기에도 여전히 푸조가 대중에게 낯선 브랜드라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대답은 똑같았다. “이거밖에 살 게 없었어!” 물론, 나도 첫 새차가 208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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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리프트 모델의 테일램프는 이전보다 훨씬 고급스러워졌다. I love it!

 

자동차 구입을 알아보기 시작한 건 작년 12월 즈음이다. 새로 들어간 회사가 인천에 있어 왕복 70km 정도 통근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기존에 타던 BMW 540i(E39)는 안락하고 힘이 넘치지만 평균 연비가 7km/L도 되지 않아 출퇴근 용도로 쓰긴 어려웠다. 젊은 직장인이 에쿠스보다 배기량이 큰 대형 세단을 타고 다니는 게 눈치 보이기도 했고……. 대중교통 통근도 생각해 봤지만 편도 2시간 가까이 걸려 일찌감치 포기했다. 

자연스레 통근용 차를 구입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몇 가지 조건이 붙었다. 연비 좋은 경차·하이브리드·디젤 중 하나여야 하고 최소 5년 이상 운용할 계획이라 감가상각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행거리도 많으니 내구성 좋고 보증기간이 길수록 좋았다. 어차피 540i가 있어 클 필요는 없으니 가능하면 예쁘고 개성 있는 차가 갖고 싶었다. 아, 가장 중요한 예산은 2,000만 원대 중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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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경고등이 들어왔을 때 가득 주유시 유류비는 5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

 

출퇴근 머신, Pick me up!

이 조건에 맞춰 몇 대의 차를 살펴봤다. 경차는 고속도로 통행료와 주차비 할인 등 유지비는 가장 낮지만 성능이 아쉬웠다. 고속주행이 많으면 출력을 쥐어짜느라 연비도 좋지 않을 테니 예선에서 가장 먼저 탈락했다. 요즘 핫한 소형 SUV 중에서는 현대 코나와 푸조 2008을 살펴봤는데, 디자인과 상품성은 뛰어나지만 차고가 높아 휘청거리는 느낌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너무 잘 팔려서 유행에 편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것도 패스.

결국 최종후보는 현대 아이오닉 하이브리드와 푸조 208로 좁혀졌다. 둘 다 마음에 드는 사양을 선택하면 예산에 맞춰 구입할 수 있고, 연비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차들이다. 게다가 아이오닉 하이브리드는 저공해차 혜택도 받을 수 있으니 거의 마음이 기울었다.

허나 누가 말했던가, 자동차는 감성소비재라고. 수천만원짜리 물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성적 판단보다 감성적 꽂힘이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같은 날, 전시장을 찾아 아이오닉과 208을 각각 시승해봤다. 아이오닉은 편안하고 잘 나가고, 정제된 운전 감각과 비율도 좋았다. 208은 아이오닉과 비교하면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운전 재미는 훨씬 뛰어났다. 날렵하고 경쾌한 거동, 쫀득한 하체, 수동 같은 손맛의 변속기까지. 결정적으로 글라스 루프에 마음을 빼앗겼다. “아, 이건 사야겠다.”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쓰고 나왔다. 새해 벽두에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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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BlueHDi 엔진은출력을 다소 희생한대신 탁월한 연비를 얻었다

 

 


208을 산 다섯 가지 이유

자, 그래서 덜컥 208 GT 라인이 우리집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 주행 감각과 외모가 잔망스러워 ‘잔망이’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큰 차와 가솔린 엔진을 찬양하던 내가 소형 디젤차, 그것도 푸조를 샀다니 쉬 납득이 안 된단다. 서운하기도 하지만 낯선 문물을 마주한 이들에게 푸조의 매력을 알려주는 것 역시 오너의 소양 아니겠나. 다른 차에서는 느낄 수 없는 208의 매력 포인트 다섯 가지를 꼽아봤다.

첫째, 압도적인 연비. 새 차 샀다고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주행거리는 3,500km를 넘어섰다. 지금까지의 누적 연비는 20km/L. 서울 기온이 영하 17˚C까지 떨어졌던 혹한에 기록한 연비다. 날이 좀 풀렸을 땐 출근길 평균 24km/L를 기록했고, 아무리 추워도 18km/L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았다. 서울-부산을 왕복할 때의 평균연비는 22.1km/L. 기름을 가득 채우고 출발해 부산을 찍고, 귀성길 경기도 여주에 이르러서야 주유경고등이 들어왔다. 연비와는 거리가 있는 운전에도 이런 수치가 나왔으니 기름값 걱정은 접어둬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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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부산 편도 연비는 무려 24.3km/L. 고속 주행에도 쉽게 연비가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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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디스플레이는 2018년형부터 한글화가 이뤄졌다

 

둘째는 근사한 디자인이다. 요즘 푸조 디자인은 물이 올랐다. 쭉 째진 눈매와 프랑스 감성이 차고 넘치던 외관은 차분하고 고급스럽게 바뀌었다. GT 라인에만 적용된 내·외관 레드 포인트도 매력적이다. 조막만 한 D-컷 스티어링 휠이 적용된 아이콕핏 인테리어는 운전재미를 더해준다. 무엇보다 글라스 루프! 작은 차체임에도 개방감을 극대화해 답답한 느낌을 덜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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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신차를 처음 만난 날! 빵빵한 뒤태가 어찌나 사랑스러운 지!

 

셋째, 운전재미. 이 차의 1.6L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이 99마력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대토크는 25.9kg·m나 돼 언제나 경쾌하게 치고 나간다. 많은 이들이 이질감을 호소하는 MCP 변속기는 작동 원리만 이해하면 수동의 직결감과 자동의 편리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랠리로 다듬어진 하체 세팅은 또 어떻나! 일상 주행에서는 부들부들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면도날처럼 코너를 할퀸다. 평소에는 엉뚱하지만 사냥할 땐 맹수가 되는 고양이 같다고나 할까.

넷째, 의외로 괜찮은 A/S. 주변 사람들이 208을 산다고 했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게 바로 애프터서비스였다. 하지만 실제 구매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오너들은 푸조를 잔고장 없고 서비스도 괜찮은 브랜드로 평가했다. 몇 년씩 타면서도 서비스로 골머리를 앓은 적 없다는 게 공통된 증언이다. 푸조·시트로엥을 재구매한 고객 비율도 70%나 된다. 실구매자들의 추천만큼 믿을 만한 건 없다. 

 

마지막으로 대체하기 힘든 개성을 지녔다. 208은 주변에서 보기 힘든 차다. 지난해 전국에서 140대가 팔린 데 그쳤다. 한불모터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적게 팔린 만큼 길 위에서의 존재감은 단연 독보적이다. 오렌지색 재고가 없어 회색 차를 샀지만, 덕분에 레드 포인트가 돋보여 어딜 가나 눈에 띈다. 차가 예쁘다며 무슨 차냐고 묻는 이도 늘었다. 천편일률적인 우리나라 도로 환경에서 나만의 특별한 차를 탄다는 기쁨을 줄 수 있는 모델은 많지 않다.

콩깍지가 씌었다고 해도 좋다. 208과 함께 한 첫 달은 모든 면에서 대만족이었으니까. 구매 직전까지의 불안감은 이제 씻은 듯 사라졌다. 생활 패턴에도 꼭 맞아 유류비는 반의반으로 줄었고 매일 아침 운전재미를 즐길 수 있다. 앞으로 208과 함께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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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이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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