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제 맥가이버 칼, 푸조 5008
2018-01-08  |   35,920 읽음

PEUGEOT 5008
프랑스제 맥가이버 칼


이 차는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 없다. ‘그랜드 C4 피카소의 공간을 품은 길쭉한 3008’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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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 ‘내가 잘했던 것’만 모아서 만든다. 아마 5008은 이렇게 만들어진 게 아닐까? 3008의 스타일, 그랜드 C4 피카소의 공간, 그리고 효율 좋은 디젤 엔진까지. 5008엔 PSA의 자랑이 한데 모였다. 덕분에 이 차는 마치 ‘맥가이버 칼’처럼 다재다능하다. 가족과 함께 여행 갈 때에도, 그리고 오붓하게 단둘이 데이트할 때에도 만족스럽다. 다만 맥가이버 칼이 대개 그렇듯, 전용 칼보다 조금씩 어설픈 건 어쩔 수 없다.

허리가 길면 몸매가 나쁘다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다. 시승차의 키를 받아들고 문 열림 버튼을 눌렀는데, 3008의 문이 열리는 게 아닌가. 옆에 주차된 큰 차에 옆면이 가려진 모습은 영락없는 3008이었다. 그래도 차를 빼내어 보면 사뭇 달라 보이긴 한다. 허리가 길어지고 트렁크 유리창이 수직에 가깝게 세워져 큰 차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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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8과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는 앞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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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유리창이 세워지면서 뒤쪽의 날렵한 느낌이 줄었다


눈에 띄는 특징은 주로 휠베이스가 길어졌다는 것이다. 보통 SUV를 늘린 모델은 티볼리 에어처럼 뒤쪽 오버행만을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5008은 리어 오버행은 거의 그대로 두고 휠베이스만 165mm나 늘렸다. 차체 길이가 190mm 늘어났음에도 불안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비율까지 조화롭다고는 못하겠다. 3008의 날렵한 스타일이 눈에 익은 탓도 있겠지만 5008은 허리가 너무 길어 마치 닥스훈트 강아지 보는 것 마냥 우스꽝스럽다. 3008의 미래적인 스타일은 여전히 빛났지만 말이다.


앞모습처럼 대시보드는 3008의 것을 그대로 옮겨왔다. 3008의 가장 큰 매력을 그대로 누릴 수 있는 셈. 컨셉트카 느낌 물씬 풍기는 실내는 다시 봐도 도전적이다. 운전대 사이로 계기판을 봐야 한다는 편견, 직물 장식을 쓰면 저렴해 보인다는 편견, 스티어링휠은 동그래야 한다는 편견을 모조리 깨버렸다. 신선한 스타일은 쓰기에도 좋다. 멀리 떨어진 계기판은 도로에서의 시선 이동거리가 짧은 건 물론 초점의 변화도 적고, 사선으로 배치된 버튼과 도톰한 변속레버도 몸에 맞춘 듯 편하다. 가족용 차로 쓰기엔 과분할 정도로 멋진 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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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8의 혁신적인 대시보드는 5008에서도 빛난다


뒷좌석부턴 MPV 혈통이 드러난다. 6:4로 나뉘었던 시트는 1:1:1로 나뉘는 세 개의 시트로 바뀌었고, 슬라이딩 기능과 등받이 각도 조절 기능까지 더해졌다. 시트를 조작하는 방법과 배치는 시트로엥 그랜드 C4 피카소(이하 피카소)와 판박이다. 덕분에 피카소가 그랬듯 손쉽게 공간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다만 안락함은 오히려 3008 쪽이 앞선다. 3008과 비슷한 너비의 실내에 시트만 세 개로 나눈 탓에 둘이 앉기엔 다소 불편하다. 표준 체격의 기자가 한쪽 의자에 앉았을 때 너무 바깥쪽으로 치우쳐, 좌우로 조금만 흔들려도 천장 끝에 머리가 닿았다. 이런 단점은 피카소도 마찬가지지만, 피카소는 시원스레 뚫린 천장과 더불어 유리창 높이까지 낮아 훨씬 쾌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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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열에 총 5개로 분리된 시트가 들어가 자유자재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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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열까지 접었을 때 최대 2,150리터의 동급 최대 공간이 확보된다.

1열 조수석도 접을 수 있어, 최대 3.2m 길이의 짐을 수납할 수 있다

 


아마도 쓸 일 거의 없을 3열 시트는 간이의자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애초에 길이 4,640mm의 준중형급 SUV에 편안한 3열 좌석을 바라는 건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시트는 아주 가끔 쓸모 있지만 평소엔 트렁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아니던가. 실제 MPV 오너들도 2열 뒤쪽 시트는 제거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사실을 눈여겨 본 푸조는 레버 하나만 당겨 3열 시트를 손쉽게 제거할 수 있는 기능을 더했다. 평소엔 떼어놓고 차를 널찍하게 쓰다가 가끔 필요할 때만 붙여 쓸 수 있는 셈. 게다가 밖에서도 펼칠 수 있게 만들어져 캠핑용 의자로도 그만이다. 여러모로 간이의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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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열 시트는 손쉽게 떼어낼 수 있고, 밖에서 펼쳐서 사용할 수 있다

푸조는 푸조다
시동을 걸면 디젤 엔진이 묵직하게 깨어난다. 디젤 엔진 만들기에 물이 오른 푸조답게 진동과 소음은 매우 말끔하게 억제됐다. 그러면서도 디젤의 장점은 오롯이 살렸다. 서서히 가속페달을 밟아보면 1,750rpm부터 나오는 30.61kg·m의 강력한 저속 토크로 가뿐하게 차를 밀어낸다. 큰 차체에 작은 1.6L 엔진을 얹어 지레 걱정이 앞섰는데 실용 구간에선 불만이 없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가속페달을 더 밟는 순간 ‘아! 이 차는 저속에서부터 이미 힘을 다 쓰고 있었구나’ 할 거다. 오른발에 아무리 힘을 줘 봐야 속도계 바늘은 여전히 느긋하다. 디젤 엔진의 토크로 시속 140km까지는 꾸준히 속도를 붙이지만 그 이후부턴 120마력 출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더뎌진다. 패밀리카로 쓰기에는 적당한 수준이지만 조금이라도 속도를 즐긴다면 180마력짜리 2.0L GT 모델을 노려보는 게 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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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출력 120마력을 내는 4기통 1.6L 디젤 엔진

 

3008의 완성도 높은 섀시는 5008에서도 그대로다. 기다란 차체에도 소형차처럼 날쌘 핸들링은 여전했다. 특히 스티어링 록 투 록이 거의 두 바퀴일 정도로 예민하게 조율돼, 길어진 휠베이스를 느낄 새 없이 민첩하다. 유럽풍의 군더더기 없는 서스펜션과 푸조 특유의 핸들링이 어우러진 주행 만족감은 출력을 웃돈다. 출력 갈증을 섀시 성능으로 만회하는 모양새다.


고속주행 성능도 마찬가지다. 3008이 그랬듯 부드럽게 잔 진동을 거르면서 큰 충격엔 팽팽하게 맞서 자세를 추스른다. 휠베이스가 길어진 만큼 3008보다도 더욱 나아졌을 터. 이 정도 안정감이라면 시속 200km까지도 무난할 것 같지만, 출력이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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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특유의 민첩한 주행성능이 돋보인다

SUV의 멋과 MPV의 공간
약 180km 거리를 달리는 동안 연비는 리터당 15.5km를 기록했다. 공인연비는 12.7km/L. 분명 평소보다 더 빠르게 달렸는데도 공인연비보다 무려 2.8km나 더 나왔다. 역시 연비 좋은 디젤 엔진다운 모습이다. 차체가 커진 만큼 효율이 떨어질 거라 속단하기 쉽겠지만 5008은 3008보다 겨우 50kg(1.6L 모델 기준) 더 무거울 뿐이다. 때문에 공인연비 차이는 리터당 0.4km에 불과하며 체감효율 차이는 이보다 더 적게 느껴졌다.


5008은 ‘그랜드 C4 피카소의 공간을 품은 길쭉한 3008’이다. SUV의 멋과 MPV의 공간을 모두 품었다. 하지만 두 개의 음식을 섞는다고 더 맛있어지지만은 않듯이 이 차를 무조건 더 좋은 차로 정의할 순 없다. 그저 5008은 다재다능하고, 3008과 피카소는 전문 분야에 집중했을 뿐. 서로 장단점이 혼재한다. 기자의 개인적인 취향은 이것저것 섞은 것보단 날렵한 3008과 쾌적한 피카소에 더 가깝다. 5008은 글쎄, 다 좋은데 특색이 조금 흐려진 것 같달까.

윤지수 기자 사진 최진호,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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