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끝에 태어난 게임 체인저- 쉐보레 볼트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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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VROLET BOLT EV
기다림 끝에 태어난 게임 체인저


소문만 무성하던 쉐보레의 최신형 전기차 볼트 EV가 국내 시판에 들어간다. 전기차의 숙원인 주행거리를 단번에 383km까지 늘렸으며, 보조금을 합치면 2,00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도 갖추었다. 하지만 높은 상품성과 달리 이 차의 앞길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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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마일(약 322km)을 넘게 달리는 3만달러(약 3,400만원)짜리 차를 만들 겁니다.”


2013년 LG화학의 개발자가 한 이야기는 당시로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200마일은 보통의 운전자가 쉼 없이 달릴 수 있는 최대의 거리다. 하지만 당시 시판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100km를 조금 넘는 수준. 이걸 세 배로 늘리는 작업은 그냥 배터리를 두세 개 더 싣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두세 배로 늘어난 배터리의 부피와 무게가 용량 증가를 말짱 헛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테스트를 하면서 소형 전기차는 공차중량을 1,600kg 수준으로 억제해야 하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걸 넘기면 배터리를 짊어지고 다니느라 전기를 써야 하는 악순환이 시작되어 버리거든요. 단가를 낮춰야 하니 일반적인 스틸 모노코크 구조가 되어야 하는데, 이런 소형차는 무게가 1,200kg 정도 나갑니다. 단순 계산으로도 배터리 무게를 400kg 정도로 억제해야 된다는 거죠. 모터의 성능을 계산했을 때 연비는 1kWh에 5km 정도, 320km를 달리려면 60kWh급 배터리가 있어야 합니다. 60kWh와 400kg. 이것을 9,000달러 미만으로 만들 수 있어야만 가능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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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이 공급하는 60kWh급 배터리를 사용한다. LG화학은 배터리 외에 모터와 BMS 같은 많은 부품도 공급한다


배터리 회사로서는 험난한 도전이었겠지만 자동차를 오랫동안 만들어온 회사 입장에서 전기차 만들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GM이 한 것은 원하는 배터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2011년 LG화학과 계약한 이후에도, 2014년 차가 완성되었을 때도, GM이 한 것은 배터리가 원하는 만큼 싸게, 충분한 양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확인된 후에야 지금의 볼트 EV를 내놓은 것이다.


주행거리 383km, 가격 4,770만원(보조금 적용 전). 이 두 가지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 차와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나올 모든 전기차는 최소 이 값에 200마일은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전기차에 대한 인식과 생활양식, 패러다임까지 바꾸는 게임 체인저. 볼트 EV는 그 정도의 임팩트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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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커넥터는 한국 표준인 콤보1으로, BMW나 현대차와 같은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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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닛 아래의 모습. 주황색 고전압 케이블을 빼면 일반적인 엔진룸의 느낌이 난다. 심지어 12V 배터리도 있다

완성도는 보통의 쉐보레 소형차
볼트 EV는 크로스오버를 표방하는 차다. 채 4.2m가 되지 않는 길이에 비해 휠베이스는 2.6m나 된다. 바퀴를 차체 끝까지 밀어붙인 뒤 모터로 앞바퀴를 굴리는 레이아웃 덕분이다. GM의 서브콤팩트용 플랫폼인 감마를 사용하는 대신 전기차용 플랫폼을 새로 만들어 썼다. 때문에 뒷좌석은 딱 봐도 소형 전기차치고는 넓어 보이지만 타고 내릴 때는 머리를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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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시보드의 모습. 최신 쉐보레 디자인이지만 질감은 그냥 쉐보레 소형차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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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어링 휠은 뒤쪽에 회생제동 패드가 있는 것까지 볼트(Volt)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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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속기는 스틱형으로 후진을 넣을 때만 좀 신경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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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좌석은 일상적인 대중차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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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휠베이스 덕에 차급에 비해 넉넉한 뒷좌석. 다만 루프 라인이 낮아 타고 내릴 때 머리를 조심해야 한다

배터리 때문에 시트포지션이 제법 높고 등받이도 바짝 서 있다 보니 머리를 찧는 경우가 제법 있다. 단, 차에 오른 뒤에는 비좁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앞좌석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스티어링 휠은 신형 쉐보레에서 쓰는 공통된 물건이다. 쓰자니 성가시고 안 쓰자니 아쉬운 회생제동 패들도 그대로 붙어 있다. LG전자에서 납품한 10.2인치의 대형 화면이 시원스럽긴 하지만 그 외의 환경은 보통의 쉐보레 소형차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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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치 LCD 한 장에 모든 정보를 표시하는 계기판. 충전 경고는 좌우에서 별도로 점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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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능을 터치스크린 속에 넣었지만 자주 쓰는 공조 컨트롤과 오디오만큼은 별도의 물리버튼으로 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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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이니만큼 각종 정보 표시는 필수. 배터리 외에도 전장 시스템을 모두 LG에서 납품했다. 센터콘솔의 10.2인치 LCD는 배터리
잔량에서부터 사용내역, 에너지 설정과 함께 일반적인 인포테인먼트를 표시한다. 내비게이션은 빠져 있으나 애플 카플레이는 지원한다​


배터리를 가득 채운 시승차의 계기판에는 잔여 주행가능 거리가 318km로 표시되어 있다. 시승 행사장에서 운영되면서 쌓인 거친 주행 패턴이 반영된 탓이겠지만, 그래도 전기차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던 숫자다. 시동 버튼을 눌러서 차를 ‘켠’ 뒤 길로 나섰다. 나직한 모터 회전음과 함께 미끄러지듯 달리는 감각은 틀림없는 전기차다. 스틸 모노코크 차체의 전기차에서만 전해지는 클래스 이상의 중량감과 중후한 승차감까지도 그대로다. 고장력 장판을 많이 썼지만 그럼에도 볼트 EV는 결코 가볍지 않다. 440kg이나 되는 배터리를 짊어진 차의 공차중량은 1,620kg. 적지 않은 무게임에도 불구하고 페달을 밟으면 바로 튀어나가는 차의 달리기는 매섭기 짝이 없다. 204마력/36.7kg·m나 되는 모터 출력은 0→시속 100km 가속을 6.9초 만에 끝내버리고, 이후에도 쉼 없이 차를 몰아붙여 단숨에 최고시속 146km에 도달해버린다. 바닥에 깔린 무게중심 덕분에 코너링도 준수하며, 유순하지만 또렷한 언더스티어 성향의 트랙션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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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 7kWh 충전기 이용시 완충에 약 9시간 30분, 50kWh 급속충전기 사용시 제한시간인 40분 안에
절반 가량 충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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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바닥을 걷어내면 여분의 공간이 드러난다. 바닥의 케이블은 케이블이 없는 충전기에 연결해 쓰는 모드3 케이블 

 

 

하지만 볼트(Volt) 때부터 지적된 타이어는 여전히 문제다. 미쉐린제 에너지 세이버는 오직 연비에만 치중한 에코 타이어로 접지력이 형편없는 수준. 조금만 코너링 페이스를 올려도 비명을 지르면서 미끄러지며, 단순한 가속에도 노면이 안 좋으면 스키드음을 남발한다. 이런 성능의 차라면 무조건 에코 타이어를 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아울러서 세이프티 팩은 말 그대로 보조장비 수준이다. 차선유지장치는 차선의 중심을 잡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좌우 차선을 마치 핀볼처럼 퉁퉁 튀며 옮겨 다니는 수준이며,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의 차간거리 유지 기능을 믿고 넉 놓고 있다가는 종종 아찔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지금 비싼 값을 주고 선택하기보다는 좀 더 업그레이드된 다음 제품이 나왔을 때 선택하는 게 현명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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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는 215/50 R17의 평범한 사이즈. 볼트(Volt)에도 쓰이는 미쉐린 에너지 세이버는 그립이 형편없다


짧은 시승회 동안 급가속과 최고속도를 남발하며 달린 거리는 48.8km. 사용된 에너지는 11.6kWh로 전체의 약 1/6을 사용한 셈이다. 이런 페이스로 달려도 족히 300km는 달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타사의 전기차는 이미 배터리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을 법한 상황. 조용히 도심주행만 한다면 383km를 찍는 것도 전혀 무리가 없을 듯하다. 볼트 EV라면 일주일에 한 번 주유하듯 충전하거나, 전국 곳곳을 누비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이미 꽤 많은 충전기가 전국에 보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차량 구매시 포스코의 민간 충전망 차지비(ChargEV)와 환경부 급속 충전망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80만원 상당의 멤버십도 함께 지원된다(할부 구매시). 이는 급속충전기를 111회 이용할 수 있는 양으로 주행거리가 4만2,000km에 이른다.

탄탄대로? 그렇지만은 않다
최고 수준의 배터리와 좋은 성능, 그리고 긴 주행거리. 볼트 EV의 면모로만 보면 당장 한국 전기차 시장에 커다란 반향을 몰고 올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그럴까? 차는 잘 나왔지만 아쉽게도 주변의 상황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첫째로는 생산 문제다. 볼트를 생산하는 디트로이트 오라이언 공장은 연간 생산량이 3만 대 정도다. GM은 이것을 빨리 늘릴 생각이 없다. 지금의 볼트 EV는 파는 족족 손해가 나는 차다. 그럼에도 만드는 이유는 전기차를 팔아야 엔진차의 세금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 EV에 뛰어든 이유 자체가 판매량의 일정 부분이 전기차가 아니면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주 정부의 정책 때문이었다. 세계 시장의 전기차 수요를 모아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것도 필요했다.


둘째로는 국내 수급 문제다. 올해 한국에 배정된 볼트 EV는 고작 600여 대로, 그중 200여 대가 이미 렌터카 업체에 할당된 터라 순수 판매 수량은 380대밖에 안 된다. 예약은 이미 3월 말에 끝났고, 올해는 더 이상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미 계약한 사람은 추첨 순서대로 차를 받게 되지만 행여 순번이 늦어질 경우 지역 보조금이 먼저 소진되어 버릴 수도 있다. 내년엔 물량이 늘어날 수도 있겠으나 지원금이 적어지면 그만큼 실부담가격이 올라가게 된다. 어떻게 해도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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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내년에는 경쟁차가 줄줄이 나온다. 2018년 초에는 64kWh의 배터리를 장착한 현대의 소형 SUV가 발매된다. 테슬라의 준중형급 세단 모델3도 그때쯤이면 국내에 시판될 것이다. 둘 다 비슷한 주행거리에 미국 현지 기준으로 3만5,000달러대의 가격이며, 볼트 EV보다 더 클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친숙한 SUV와 세단이다.


최초가 최고에 머무르는 시간은 짧다. 지금은 빛을 발하는 볼트 EV의 혁신도 1년 뒤면 일상이 되어버릴 수 있다. 지금 쉐보레가 할 일은 물량을 확보하고 ‘게임 체인저’의 이미지를 공고히 쌓는 것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 일반적인 상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변성용 객원기자 사진 최재혁, 한국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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