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현지시승] 페라리 GTC4루쏘 T

M CARLIFE 1 85,835


FERRARI GTC4LUSSO T
신곡(神曲)


페라리 GT를 타고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누볐다. V8의 박력과 4WS의 달콤함은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았다. 450L의 적재공간과 4개의 시트, 안락한 크루징 능력은 페라리라는 비현실적인 꿈을 무척이나 현실적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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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앙~빵~!”
위협적인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가슴이 철렁해 주변을 둘러봤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대형 트럭이 내는 소리였다. 놀란 토끼눈으로 트럭 운전석을 올려다봤다. 마침 그쪽도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활짝 웃으면서, 엄지를 번쩍 들어 올린 채.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의 자부심을 타고 달리다보면 종종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차를 세워 두고 경치를 감상하는 동안,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묻는 가족도 있었다. 차 앞에 아이를 세우고 사진을 찍던 아빠의 표정을 기억한다. 아이는 그저 예쁜 차 앞에 서 있을 뿐이지만, 아빠는 아이의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를 꿈꾸게 해주고 싶었을 게다.

 

나미브 사막 상공을 자유낙하하던 35초의 전율, 잠비아 리빙스턴에서 쓰다듬던 사자 등짝의 감촉, 아내의 임신 소식에 눈가를 적시던 물기의 온도……. 새삼 서른다섯 짧은 생애 최고의 순간을 되짚어보게 된다. 이렇게 또 한번, 삶의 절정을 맞이하고 있다는 자각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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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우상을 타고 달리면
시승은 아침부터 시작됐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리잡은 중세 요새가 출발지였다. 토스카나 주 시에나 현에 위치한 몬테리조니는 시에나와 피렌체의 전쟁이 빈번하던 시절 전략적 요충지였다. 단테의 서사시 ‘신곡’(神曲, Divina Commedia)에 언급되어 더욱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성벽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을 가만히 둘러봤다. 치열한 전투와 소소한 환희의 기억이 거대한 울타리 안에 질박하게 담겨 있었다.


성 안 7개의 광장 중 하나에 7대의 페라리라 도열해 있었다. 800년 세월을 품은 유적에서 최신 페라리를 마주친 관광객들은 걸그룹을 본 군인처럼 흥분했다. 눈부신 우상 가운데 하나에 올라탔다. 야생마를 달래듯 조심스럽게 높고 좁다란 성문을 빠져나왔다. 그 옛날 말을 탄 기사들이 숱하게 지났을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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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을 나서자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푸르른 밀밭과 아이보리 빛 전통가옥, 흐트러짐 없이 곧게 자란 사이프러스 나무……. 신의 영역에 들어선 단테의 기분이 이와 같았을까? ‘신곡’에서 단테가 저승을 여행한 나이도 서른다섯.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GTC4루쏘 T는 크다(길이×너비×높이 4,922×1,980×1,383mm). F12 베를리네타보다 300mm 이상 길고, 40mm 가까이 넓으며, 110mm 더 높은, 페라리로선 거대한 차체를 지녔다. 길이는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와 거의 같다. 폭은 그보다 훨씬 더(130mm) 넓고 높이는 한참(약 80mm) 낮다.


놀라운 건 휠베이스 역시 E클래스보다 50mm 더 길다는 것. 물론 E클래스보다 넉넉한 실내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프론트 미드십 레이아웃 특성상 캐빈룸을 엔진에게 양보해야 했지만 그래도 페라리로선 엄청난 실내를 챙긴 셈. 성인 둘을 뒤에 태울 수 있고 트렁크엔 서너 개의 여행 가방을 실을 수 있다. 적재공간은 450L. 서스펜션과 연료통을 수납하느라 안쪽에 층이 졌지만 2열 시트 폴딩이 가능하고 스키스루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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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의 때를 벗기는 의식
볼테라 지역의 와인딩 로드는 처음엔 지옥처럼 위태로웠다. 코너에 들어설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숨을 멈추고 배에 힘을 줬다. 코너에 들어서고 벗어나는 감각이 지금까지 경험한 어떤 차 같지도 않아서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결코 천천히 달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중엔 그곳이 이승에서의 죄를 씻기 위해 머무르는 연옥(煉獄) 같았다. 코너와 코너를 돌아 코너와 코너를 공략하고 다시 코너에서 코너까지 달렸다. 그것은 마치 지금껏 익숙해진 감각의 찌든 때를 벗기는 의식 같았다. 온갖 물리법칙에 대한 연구 끝에 탄생한 차는 그게 다 뭐냐는 듯 무시하며 달렸다. 페라리에 적응하는 것은 시공간과 물리법칙을 재정립하는 과정. 그 순진무구한 감각에 온전히 의지할 수 있게 될 때쯤 커다란 차체가 바람결에 서서히 깎여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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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에 차를 대고 한참 바라봤다. GTC4루쏘 T엔 페라리 최초의 사륜구동 모델 FF의 피가 흐른다. 412, 456, 612의 뒤를 잇는 4인승 페라리 FF는 612와 마찬가지로 네 개의 시트를 실내에, V12 엔진을 앞가슴에 품었다. 이름은 ‘Ferrari Four’의 약자. 4개의 시트와 사륜구동 시스템을 지녔다는 의미다.

 

페라리에 적응하는 것은 시공간과 물리법칙을 재정립하는 과정.

그 순진무구한 감각에 온전히 의지할 수 있게 될 때쯤 커다란 차체가 바람결에 서서히 깎여나갔다. 

 

FF는 지난해 후속모델에게 자리를 내줬다. 이름은 ‘그란투리스모 쿠페’(Gran Turismo Coupe)와 ‘4인승’과 ‘럭셔리’(Lusso)를 더한 좀 더 괴기스러운 조합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보디 스타일링과 4WS(4 Wheel Steering System) 추가가 새 이름을 정당화하는 근거였다. GTC4루쏘 T는 여기서 사륜구동과 V12를 빼고, 후륜구동과 V8을 담은 모델이다. V12 자연흡기와 V8 트윈터보는 GTC4루쏘라는 완전히 똑같은 껍데기를 뒤집어쓴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20인치 단조 휠과 비스포크 테일파이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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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를 물질세계로 옮겨와 빚으면 이런 모습일까? 사납게 치켜 올린 눈꼬리, 이쪽 볼에서 저쪽 볼까지 한껏 찢어진 입, 터질 듯 팽팽한 허벅지, 군살 없이 다부진 엉덩이, 코를 길게 빼고 루프를 한껏 잡아당긴 긴장감 넘치는 보디 라인. 왜건이니 실용성이니 하는 말은 떠오르지도 않는다. 전체로서 차와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 부분이 하나같이 뜨겁고 또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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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넓은 실내는 온통 가죽으로 뒤덮여 있다. 필러부터 무릎 아래, 선바이저와 도어트림 하단까지 온통 보드랍고 쫀쫀한 가죽이다. 실내 구성도 V12 루쏘와 다를 게 없다. 직관적인 10.25인치 터치스크린, 파트너와 주행정보를 공유하는 8인치 조수석 디스플레이 역시 그대로 들어간다. 계기판 중앙의 커다란 타코미터는 운전자의 시야 정면에 자리잡고 눈싸움을 건다. 어디 한번 팽팽 돌려보라며 도발한다. 앞으로 빨려드는 것 같은 대시보드, 제트기 엔진을 닮은 송풍구, 그 둘을 연결하는 그로테스크한 형상의 카본 파이버 트림……. 뼛속까지 숨결까지 속도감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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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어링 휠은 그 자체로 강력했다. 손을 얹는 것만으로 세상을 쥐고 흔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동, 변속, 헤드램프 조절, 방향지시, 와이퍼, 마네티노(드라이브 모드 셀렉터) 조절부가 빼곡히 스티어링 휠에 올라앉았으니, 전지전능에 대한 망상이 어느 정도는 현실화된 셈이다. 스티어링 휠에 달린 새빨간 스타트 버튼을 누른다. 공이가 뇌관을 때린 것처럼 3.9L 트윈터보 V8이 격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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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Twin with V8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마네티노를 컴포트에 놓고 고속 크루징 실력을 살핀다. 발끝에 힘을 싣지 않으면 시속 170km로 달리면서도 유유자적할 수 있다. 바이패스 밸브를 열고 숨을 죽인 배기 덕에 보닛 아래의 소곤거림과 타이어-노면 사이의 투닥거림만이 선명해진다.


그대로 가속 페달을 찌르거나 스포츠 모드로 전환하면 그때까지 자제하고 있던 다혈질 V8이 길길이 날뛴다. 킥다운 한 번에 기어를 세 단쯤 내려 물고 붉은 엔진을 핏빛으로 달군다. 배기음은 벌통이라도 건드린 듯 귓가에서 왕왕댄다. 자연스레 가속 페달에 힘이 실린다. 사운드는 오금이 저릴 만큼 사나워진다. 피에 굶주린 뱀파이어처럼 속도를 집어삼킨다. 정신없이 달리다보면 시속 250km도 순식간. 0→시속 100km 가속까지 3.5초, 0→시속 200km 가속은 10.8초, 죽자 사자 달리면 시속 320km까지 다다른다는 게 거짓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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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노를 한 단계 더 돌릴 때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와 ESC OFF 모드 사이에는 절망적일 정도로 중간단계가 없으니까. 가속 페달을 바닥 깊이 묻고 달린다. 스티어링 휠 상단에 rpm 게이지가 차오른다. V8 심장과 날숨의 소리도 고조된다. 스티어링 휠 위의 게이지가 모두 점등되고 ‘지금이야!’라는 듯 깜빡인다. 오른손을 접어 딸깍 패들시프트를 당기자, 아아아아아아악~ 뻥! 프라이팬 위의 팝콘처럼 진동하던 세상이 한순간에 폭발해 버린다. 성난 야생마는 변속 충격과 동시에 공간을 집어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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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 위의 팝콘처럼 진동하던 세상이 한순간에 폭발해 버린다.

성난 야생마는 변속 충격과 동시에 공간을 집어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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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있었던 테크니컬·마케팅 브리핑에서 페라리 프로덕트 매니저 마르코 베이가 말했다. “V12를 싣고 네바퀴를 굴리는 GTC4루쏘와 V8 터보를 얹고 뒷바퀴만 구동하는 GTC4루쏘 T는 완전히 다른 레시피입니다. GTC4루쏘 T는 결코 GTC4루쏘 라인업의 엔트리모델이 아닙니다.” 잔뜩 힘주어 말하는 그에게 호주에서 온 기자가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생긴 걸 좀 보세요. 정말 다른 차라고요?” 마르코는 딱 잘라 답했다. “완전히 별개 모델이에요. 루쏘 T는 페라리 라인업의 여섯 번째 모델입니다.”


GTC4루쏘 T는 제로백이나 최고시속에서 V12 모델보다 뒤처지지만 낮은 토크에서 중간 토크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더 짧다. 터보차저 덕분이다. 힘을 뒷바퀴에만 싣는다는 점도 차이점. 두 가지 차이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게 된다. ‘루쏘 T가 더 역동적이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작지만 마법 같은 변화가 좀 더 있다. 실린더 몇 개를 걷어내고 프론트 액슬에서 구동장치를 뺀 덕분에 무게가 55kg 줄었다. 앞차축의 구동장치를 버린 루쏘 T는 엔진을 조금 더 뒤로 밀어넣을 수 있게 됐다. 덕분에 보다 완벽한 프론트 미드십 구조가 완성된다. 앞뒤 무게배분은 47:53에서 46:54로 바뀌었다. 그 결과 민첩성, 고속 안정성, 리스폰스가 향상된다. V12, V8 루쏘 형제는 똑같은 91L 연료통을 가졌지만 주행가능거리는 동생 쪽이 30% 더 길다. 심장이 작고 중량이 가벼우며, 프론트 액슬을 구동하지 않아 갈증을 덜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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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 가능한 터보랙은 없다. 가변형 부스트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어떤 회전수 영역에서도 즉각적인 스로틀 리스폰스를 이끌어내서다. GTC4루쏘 T의 V8 터보는 488과 캘리포니아 T에 들어가는 그것.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피스톤과 커넥팅 로드에 고저항 동합금을 사용했으며, 보어를 키우고 더 높은 부하를 견딜 수 있도록 피스톤 디자인도 수정했다. 트윈쿨러 오일젯을 달고 링 그루브 표면을 더욱 매끄럽게 코팅했다. 새로 디자인된  I 형상 인터쿨러와 공기흐름을 개선해주는 새 흡기 시스템도 적용했다. 압력 손실을 줄이기 위해 배기 시스템 지름을 70mm로 늘리고 레이아웃도 다시 짰다. 8개의 배기파이프 매니폴드를 동일한 길이로 조정한 덕에 리스폰스와 사운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듯이
몬티에리 와인딩 로드를 달리는 내내 웃었다. 가속-감속-터닝-가속-감속-터닝-가속……. 웃음이 절로 났다. 악녀가 내 것이 되었다는 만족감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길들여진 야생마는 기수(騎手)의 리드를 철썩 같이 따라왔다. 장갑차처럼 크게 느껴지던 차체도 이젠 몸에 착 감긴다. 하늘이 이렇게 파란 걸 아까는 왜 몰랐을까. 굽이진 길 사이로 드넓은 초원과 드라마틱한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마을, 이탈리아 전통 가옥들, 무너진 옛 성터……. 바람이 참 좋았다. 삶의 절정이 이쯤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속 페달을 더 시원하게 밟았다. 맹수의 포효에 토스카나의 산야가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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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이토록 적극적인 노즈를 보지 못했다. 코너 냄새만 맡으면 예리하게 안쪽을 찌른다. 차체는 헤비급이지만 민첩성은 플라이급. 리스폰스와 그립은 거의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 같다. 타이어는 울고 싶겠지만 섀시가 허용하는 경악스러운 수준의 그립은 계속해서 차를 좌로 우로 몰아붙여보라고 부추긴다. 결과는 언제나 군더더기 없이 명확하다.


4WS는 고속에서 뒷바퀴를 앞바퀴와 같은 방향으로 튼다. 코너 진입시 안정성을 보장하고 코너를 벗어날 때 막대한 트랙션을 거머쥔다. 낮은 속도에선 뒷바퀴를 앞바퀴와 반대로 튼다. 3m에 육박하는 휠베이스가 바싹 쪼그라든다. 덕분에 토스카나 구도심을 요리조리 휘젓고, 시골길의 숱한 헤어핀을 타이트하게 공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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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단 F1 DCT는 순수하고 감각적이다. 오토모드에서 최대한 빠르게 올려 물고 최대한 느리게 내려 문다. 매뉴얼 모드에선 칼럼에 장착된 거대한 패들시프트를 매개로 운전자의 생각과 거의 동시에 작동한다. 높은 회전에서의 다운 시프트를 거부하는 법도 없다.


과감한 주행 뒤엔 프론트 398×38mm, 리어 360×32mm의 든든한 세라믹 브레이크가 있다. 어느 정도 달궈지기만 하면 실력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파워풀하고 조절하기 쉬우며 1,865kg의 차체무게를 가뿐히 쥐락펴락한다. 시속 100km→0 감속은 33m 만에, 시속 200km→0 감속은 137m 만에 끝난다.

 

이러한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V12 루쏘 대비 연료효율이 32% 개선됐다. CO₂ 배출량은 25% 줄었다. 거칠게 다루면 연료게이지가 눈에 띄게 줄지만, 안정된 크루징 상황에선 페라리에 네 사람이 타고서 1L당 7km를 달리는 것도 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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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에서 가장 먼 자리에
페라리 계보에서 FR 레이아웃의 GT를 찾으면, 365GTB/4 데이토나와 550 마라넬로가 나온다. 슈팅브레이크가 있었나 뒤져보면, 250GT SWB 브레드밴(Breadvan)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GTC4루쏘 T는 이들 중 어느 것과도 닮지 않았다. 다시 말해 페라리 역사상 가장 독특한 모델 중 하나다. 브랜드의 오랜 관습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4인승 슈팅브레이크로서 지금껏 어떤 페라리보다 폭넓은 포용성과 실용성을 지닌다.


물론 민첩성은 488 GTB만 못하고 안락성은 V12 GTC4루쏘 보다 떨어진다. 하지만 488의 짜릿함과 GTC4루쏘의 우아함이 이 한 대의 차 위에 포개진다. V12 모델보다 아주 살짝 느리지만, 차가 주는 박력과 달콤한 핸들링 밸런스는 그것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같은 양의 연료로 훨씬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다. 가격은 수입 준중형차 한 대 값 정도 더 싸다. 같은 값이면 훨씬 화려한 옵션으로 치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시트가 넷 달린 페라리를 혼자 타고 270km, 한적한 토스카나를 누볐다. 페라리의 새로운 GT는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차례로 맛보게 했다. 악마처럼 빠르게 달렸고, 속죄를 씻듯 순수한 감각을 익히게 했으며, 세상을 다 거머쥔 듯 만족스런 크루징도 선사했다. 호텔에 돌아온 뒤에도 녹초가 되지 않았다.


갑자기 눈가가 촉촉해졌다. 지난밤 브리핑이 떠올라서다. GTC4루쏘 T는 30~45세의 젊은 고객을 타깃으로 한다. 데일리카로 탈 페라리를 원하며, 주로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 종종 승객을 태우며 주말엔 짐을 싣고 근교 여행도 떠나는 이. 비포장 길보다는 주로 하이-미디엄 그립 컨디션에서 주행하는 운전자. 딱 그런 자로서, 차를 경험한 바로써 탐났다. 눈물이 났다. 타깃고객으로서 한 치 오차가 없다는 게 슬퍼서. 단 한 가지, 주머니 사정만은 맞아 떨어지지 못한다는 게 분해서.


아내가 보고 싶었다. 여름에 태어날 아들을 이 차 앞에 세우고 사진 찍어주고 싶었다. 아내와 아이를 태우고, 여행 가방을 싣고, 가평으로든 태안으로든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또 한 번, 삶의 절정을 맞이하고 싶었다. 페라리라는 비현실적인 꿈이 무척이나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밤이었다.

 

김성래 기자 사진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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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원장혁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시승기가 아니라 한편의 시를 읽은 느낌입니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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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L 터보 중형차, 그 존재의 이유팬층이 두터운 두 대의 중형차가 만났다. 두 차의 팬들은 상대 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까닭에 늘 싸움판을 벌인다. 이들의 대결이 주목받는 이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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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늑대가 나타났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익스피리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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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익스피리언스늑대가 나타났다!언제부터 SUV가 이렇게 순했나. 산과 들을 누비던 터프한 녀석들은 다 어디 가고, 이제 도로 위엔 센 척하는 순한 SUV가 판친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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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BMW 430i 컨버터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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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430i CONVERTIBLEEVEN NUMBER7월말 공식 출시를 앞둔 부분변경 4시리즈 컨버터블을 한 발 앞서 맛봤다. BMW, 그리고 컨버터블이 응당 지녀야 할 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