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문-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G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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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ERATI QUATTROPORTE GTS
네 개의 문


페라리 V8을 품은 콰트로포르테 GTS는 4개의 문 안에 100년 마세라티의 오늘을 담았다.

지극히 마세라티답게, 온전히 그 자체로서, 달리고 돌고 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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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이탈리아 토리노, 마세라티 최초의 4도어 모델 티포 AM 107이 데뷔했다. 가슴팍에 4,136cc 경주용 V8 엔진을 때려 넣어 260마력을 뱉어냈으며 최고시속은 230km까지 치솟았다. 등장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세단에 등극한 이 차에게 붙여진 콰트로포르테라는 이름은 혀끝에 감도는 기름진 감촉과는 상관없이, 단지 문(Porte)이 네(Quattro) 개 달렸다는 뜻이다.


반백년을 이어온 이름, 네 개의 문 앞에 서서 열쇠를 만지작댄다. 이 열쇠로 문을 열면 곧 530마리의 경주마가 깨어날 터. 손 안에서 반짝이는 삼지창을 바라보며 가만히 숨을 고른다. 103년 마세라티 역사상 가장 빠른 세단을 맞이하고 있다는 자각으로서.

포세이돈을 집어삼킨 청상아리
발 앞에 납작 엎드린 거대한 세단을 응시한다. 샤크 노즈 스타일의 앞모습은 그 자체로 조형작품이다. 알피에리 컨셉트가 겹쳐지는 새 라디에어터 그릴의 형상은 몰아치는 파도를 닮았다. 거대한 입 안에 카람빗처럼 날을 세운 10개의 이빨이 선연히 빛나고 정중앙엔 포세이돈의 심벌 트라이던트가 자리했다. 한 걸음 물러서서 한껏 치켜올려진 헤드램프와 눈을 맞추면 피 냄새 맡은 상어와 같은 잔혹 무도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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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낮고 유연하게 다듬어진 옆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상어, 청상아리의 방추형 몸매를 빼닮았다. 앞 펜더에서 시작된 캐릭터 라인은 처음엔 미약하게 벨트 라인을 따라 달리다가 일순 과격하게 치솟으며 리어 펜더를 넘는다. 앞 펜더 옆에 자리한 세 줄기 아가미가 포식자의 공격성을 강조하고, 강렬한 실루엣은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 앞뒤 바퀴 안엔 각각 4피스톤, 2피스톤의 핏빛 브레이크 캘리퍼가 달렸다.


마세라티는 스포츠카를 만들던 가닥으로 콰트로포르테의 육중한 체구를 감췄다. 그리 커 보이지 않는 20인치 휠만이 이 차의 거대함을 살짝 귀띔한다. 선과 면의 마법이 주는 착시효과에 아랑곳 않고 줄자를 들이대면 놀라운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5.2m를 훌쩍 넘는 길이, 3.2m에 육박하는 휠베이스, 2.1m의 넓은 어깨는 웬만한 리무진 앞에서도 꿀리지 않는 수치. 실제로 높이를 제외한 모든 크기 제원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 L을 능가한다.


두툼한 네 개의 프레임리스 도어, 그 중 하나를 열고 실내에 들어선다. 포식자의 속내는 의외로 곱고 유려하다. 한 급 아래 프리미엄 브랜드와 비교해도 세련미와 정교함은 떨어지지만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의 깊이는 쉽게 비교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 있다. 마치 마세라티의, 나아가 FCA 그룹의 플래그십 세단이라는 정체성을 못박아두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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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안 프레스티지 세단의 실내는 실상 한 급 아래 프리미엄 브랜드와 비교해도 세련미와 정교함이 떨어지지만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의 깊이는 쉽게 비교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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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하고 입체적인 4개의 프레임리스 도어가 달렸다

 

새롭게 도입된 몇몇 기능들은 일견 투박해 보이는 이 육식동물이 생각보다 영리하다고 설득한다. 애플 카플레이, 안드로이드 오토를 탑재해 스마트폰과 친해진 8.4인치 터치스크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로터리 방식 컨트롤이 대표적이다. 거대한 차체를 주차 면에 예쁘게 넣도록 도와주는 어라운드뷰 카메라와, 오염된 공기와 유독성 가스가 실내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지능형 공기질 센서도 사려 깊은 기능이다. 새로운 어드밴스드 드라이버 어시스턴스 시스템 패키지는 정차 및 출발을 지원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이탈경고, 전방추돌경고 등을 포함한다.


마세라티의 인테리어와 편의장비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있다. 마세라티가 반년이면 뒤집어지는 하이테크 기술이나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브랜드였다면 아마 더 많은 이들이 마세라티를 칭송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얼리 어댑터에 가까워질수록 브랜드 가치는 시간 앞에 쉽게 스러질 게 뻔하고, 그만큼 명품의 세계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이 차는 상품과 작품의 경계에 있으니 좀 더 너그럽게 바라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다가, FCA의 대중차와 공유되는 부품들이 눈에 들어와 조소 짓고 말았다.

관능과 기품을 담은 마세라티 노트
스티어링 휠 왼편으로 검지를 가져가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누른다. 거대한 포식자가 눈을 뜨는 사이 생각보다 큰 소란이 일지는 않는다. 마세라티의 최신 V8은 기대보다 고요하되 짙고 깊었다. 세심하게 다듬어진 바리톤은 굳이 성량을 뽐내려 하지 않았다. 단지 작은 숨결 한 줄기까지 관능과 기품을 담을 뿐. 일백 하고도 세 바퀴의 나이테가 그려져 있는 그 성대의 울림은 온 동네를 쩌렁쩌렁 울리게 하던 예전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울림통이 몇 걸음 뒤로 물러난 듯 볼륨은 줄었지만 짙고 풍부한 기름기만은 여전하다.

 

페라리 심장을 가진 세단이 포효하며 달린다. 주류에서 물러나 고성능 모델로만 남았지만 콰트로포르테의 백미는 역시 V8. 이제는 GTS 배지를 가져야만 허락되는 사치다. 두 개의 병렬식 트윈스크롤 터빈이 각각 한쪽 뱅크 4개의 실린더에 공기를 밀어 넣으며 V8 엔진을 부스트하자 크랭크샤프트의 회전수는 순식간에 분당 6,800회를 넘어서고, 도로 위에 530마력이 흩뿌려진다. 66.3kg·m의 최대토크는 오버부스트시 72.4까지 치솟는다. 310km의 최고시속은 V12 엔진을 얹은 MC12에 이어 브랜드 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기록. 역대 마세라티 세단 중 가장 짧은 시간(4.7초)에 제로백 가속을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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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m, 2톤이 넘는 덩치를 디자인으로만 지워낸 건 아니었다. 코너와 코너를 거칠게 휘몰아쳐도 좀처럼 차체가 부담스럽지 않다. 노면에 대한 유연한 하체의 반응과 여유만만한 거동 덕분에 500마력이 넘는 출력이 실감나지 않을 지경이다. 다만 안락함보다는 스포츠성에 집중한 주행감각만은 선명한데, 공격적인 감각은 이 세그먼트의 경쟁차에선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다. 스티어링 휠이 노면과 운전자 사이에서 매신저를 자처하고, 주행 내내 대화는 끊어질 줄 모른다. 사력을 다해 달려도 좀처럼 위태로운 기분이 들지 않는다.

 

ZF의 8단 자동변속기는 어느 타이밍에 변속해도 지체 없이 반응한다. 노말이나 스포트 주행모드에서 M버튼을 누르면 두 모드를 수동으로 컨트롤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연료소비와 배기가스, 소음을 억제하는 I.C.E.(Increased Control & Efficiency) 모드는 가속 페달의 리스폰스를 누그러뜨리고, 토크가 완만하게 나오도록 각 기어단수의 시프트 업 포인트를 조정한다. 이에 따라 터보차저의 오버부스트 기능을 소거해 배기의 퍼드덕거림을 5,000rpm까지 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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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심장을 품은 세단이 포효하며 달린다. 거칠게 휘몰아쳐도 큰 차체가 부담스럽지 않다

 

100년 마세라티의 오늘
마세라티의 뿌리는 레이싱에 있다. 레이서이자 엔지니어였던 알피에리 마세라티는 마세라티의 첫 차 티포 26을 직접 몰고 레이싱에 나가 우승했다. 23개 챔피언십과 32개 F1 그랑프리에서 마세라티가 우승한 횟수만 500여 회. 1950년대엔 후안 마뉴엘 판지오가 250F를 타고 F1 그랑프리에서 24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한때 서킷에서 페라리와 자웅을 겨루던 마세라티는 이제 찬란했던 옛 역사를 밑천삼아 프레스티지 브랜드로 군림하고 있다. 세단과 SUV에조차 스포츠 감성을 가득 채우면서도 정작 퓨어 스포츠카는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그저 가문(FCA)으로부터 주어진 본분에 순응할 뿐. 그렇게 세상이 바뀌었고 그렇게 마세라티도 변했다.


콰트로포르테를 타고 달리며, 마세라티가 지나온 숱한 관문들을 떠올렸다. 1957년 레이싱계 은퇴, 1963년 마세라티 최초의 세단 출시, 2013년 듀오셀렉트 변속기 포기, 2016년 최초의 SUV 출시……. 세상보다 반 보 느리게 움직였지만, 마세라티는 쉼 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변치 않은 건 단 하나, 언제나 특별하며 결코 주류에 편승하지 않으면서 항상 과감하게 다르기를 원하는, 특유의 브랜드 정체성이다. 54년 전 등장한 마세라티의 아종, 콰트로포르테는 어느새 짙고 깊게 영글어 있었다. 네 개의 문 안에 100년 마세라티의 오늘을 담은 채. 지극히 마세라티다우면서도 온전히 그 자체일 수 있도록. ​

김성래 기자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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