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밴 못지않은 대형 SUV - 혼다 파일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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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HONDA PILOT
미니밴 못지않은 대형 SUV


휘발유 값이 북미만큼 싸지 않은 한국에서도 대배기량 가솔린 SUV는 생각보다 잘 팔리고 있다. 이 시장에서의 절대강자는 포드 익스플로러. 파일럿은 아직 적수가 되진 못하고 있지만 1년 사이 판매가 10배나 늘었다. 저유가와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은 가격을 바탕으로 V6 3.5L급 가솔린 SUV 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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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에 따르면, 사커맘(Soccer Mom)은 미니밴으로 아이를 축구연습장에 데리고 가고, 아이가 축구연습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를 말한다. 미국에서 축구를 즐기려면 차를 타고 연습장을 찾아다녀야 하고 부대경비도 많이 드는 편이다. 특히 어릴 때 축구를 접하려면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어야 하고, 아이의 뒷바라지에 헌신적인 엄마도 필요하다. 그래서 사커맘이란 용어는 도시 교외에 사는 중산층 미국 여성으로, 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방과 후 체육활동이나 다른 활동에 많은 시간을 투여하는 열성엄마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전통적으로 사커맘들이 선호하는 차는 미니밴이었다. 자신의 자녀는 물론 때론 이웃집 아이들 몇몇을 함께 태우고 집과 축구장을 오가는 패밀리카로 미니밴만 한 차가 또 있을까? 그런데 요즘은 미국에서 미니밴의 인기가 한풀 꺾였다. 투박하고 획일적인 미니밴의 스타일에 식상한 사커맘들이 이젠 3열 시트가 있는 7인승 중대형 SUV를 찾고 있는 것. 실제로 북미에서 미니밴은 기껏해야 7인승이기에 제대로 된 3열을 갖춘 SUV라면 미니밴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부는 SUV 열풍과 SUV 자체의 매력적인 진화도 이런 바람에 부채질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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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열에 각각 3명이 탈 수 있는 넉넉한 실내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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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3명이 앉을 수 있는 3열시트. 성인 2명이 타도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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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터치로 2열 시트가 앞으로 밀려나며 3열로 드나들 수 있는 입구가 마련된다 

 

값싼 HR-V보다 인기 더 많아
파일럿은 혼다 배지를 달고 있지만 사실 미국에서 기획하고 앨라배마 주 링컨 공장에서 생산하는 사실상의 미국차다. 당연히 일본에서는 판매되지 않으며, 파일럿이 가장 많이 팔리는 북미에서는 뒷부분을 픽업트럭으로 개조한 SUT 릿지라인(Ridgeline)과 조금 작은 형제차 어큐라 MDX도 있다. 1세대 파일럿은 2002년 3열 7인승 중형 SUV로 태어났지만 2008년 체급을 올리면서 덩치를 키웠고 2015년에는 투박했던 직선 스타일을 버리고 지금의 날렵한 3세대로 진화했다. 애초 7인승 중형 SUV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풀사이즈 SUV에 버금갈 만큼 커져 언뜻 봤을 때의 느낌이 북미의 인기 SUV 포드 익스플로러와 비슷하다(실제로 이들은 북미에서 경쟁 관계에 있다). 다만 박스형 디자인을 버리고 앞뒤로 날렵한 스타일링을 입혀 예전보단 덜 부담스러운 모습이다.


파일럿은 북미에서 매년 10만 대 이상 판매되는 인기 모델이기도 하다. 2000년 말에는 몇 년간 시장의 터줏대감인 익스플로러보다 많이 판매되기도 했다(지금은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래도 데뷔 후 미국에서만 170만 대 이상 판매된 저력 있는 모델임은 분명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에서도 대형 가솔린 SUV 시장의 절대강자는 익스플로러라는 것. 지난해 익스플로러의 판매량은 4,739대로 어지간한 수입 브랜드의 전체 판매량에 버금간다. 반면 같은 기간 판매된 파일럿의 수는 801대. 익스플로러에 크게 못 미치지만 2015년 80대에 비해서는 10배나 성장했다. 더군다나 파일럿은 혼다 코리아가 지난해 야심차게 내놓은 1.8L급 3,000만원대 초반의 소형 SUV HR-V보다 더 잘 팔리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휘발유 값이 북미만큼 싸지 않은 한국에서도 대배기량 가솔린 SUV가 생각보다 많이 팔리고 있는 상황. 그 이면에는 진입 장벽이 낮은 차값과 한동안 유지됐던 저유가 분위기도 한몫했겠지만 어쨌든 국내 시장에서도 6기통 3.5L급 대형 가솔린 SUV가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고 있다.

안팎으로 드러나는 대륙의 풍요로움
혹자는 각이 지고 투박한 구형 파일럿이 더 개성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을 어지간히 좋아하는 기자의 눈으로 봐도 신형의 디자인은 그야말로 개과천선이다. 길이가 5m에 이를 만큼 덩치가 크지만 언뜻 봤을 때 그리 부담스럽지 않아 보이는 건 순전히 디자인의 힘. 그러나 옆에서 보면 대형 SUV다운 존재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휠베이스 2,820mm로도 뒤 오버행을 가릴 수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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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에 비해 샤프해진 디테일로 덩치 큰 SUV에 대한 시각적인 부담감을 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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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아우디를 연상시키는 리어램프. 빨간색 깜빡이로 다시 한번 미국 태생임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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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50 R20 사이즈의 컨티넨탈 크로스컨택트 타이어


 

실내 역시 국산 SUV로 한껏 높아진 눈높이로 봐도 구형의 허접스러움 따위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대형 SUV다운 시원스런 시야와 넉넉한 공간감이 실내 곳곳을 휘감아 돈다. 북미 태생답게 큼지막한 도어 포켓이나 무지막지하게 큰 센터콘솔, 넉넉한 컵홀더 수 등 수납공간은 차고 넘친다. 소재의 질감이나 품질도 대중 브랜드의 차로는 딱히 흠잡을 데가 없다. 특히 2017년형은 안드로이드 OS 기반의 디스플레이 오디오에 애플 카플레이 기능을 더해 스마트 기기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였다. 다만 모니터 주변의 터치식 버튼들은 사용 편의성이 다소 떨어진다. 어쨌든 차의 판매량과 명성에 비해 실내는 뭔가 부족해보였던 혼다차도 이젠 옛일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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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있는 국산차의 눈높이로 보더라도 결코 모자람이 없는 실내. 품질감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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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콘솔은 가방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만큼 크지만 OD 오프와 L이전부인 6단 자동변속기는 안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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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수는 물론 자잘한 물건들도 넉넉하게 수납할 수 있는 도어트림

 

 

뒷좌석공간도 대형 SUV답게 넉넉하다. 2열 시트는 슬라이딩과 등받이 각도조절을 지원하고 풍향과 풍속, 온도를 따로 조절할 수 있는 뒷좌석 전용 공조장치도 갖췄다. 그 뒤의 접이식 3열 시트는 특이하게 3명이 앉을 수 있는 형태. 2열 시트를 조금만 앞으로 밀면 어른 2명은 충분히 앉을 만하고, 체구가 조금 작은 아이들이라면 3명까지도 불편함 없이 앉을 듯하다. 이론적으로는 7인승 미니밴보다도 많은 사람이 탈 수 있는 8인승(1열 2명, 2열 3명, 3열 3명) 배열이다. 미니밴의 용도를 대체하려면 당연히 3열 시트로 드나들기가 쉬워야 하는데, 2열 시트 옆쪽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원터치로 등받이 각도가 앞으로 꺾이면서 시트 바닥이 앞으로 밀려나 3열로 드나들 수 있는 입구가 마련된다. 이 과정을 전동으로 처리하지 않았지만 결코 번거롭거나 불편하지 않다. 3열 등받이를 세운 상태에서도 80L 크기의 대형 아이스박스를 실을 수 있어 ‘미니밴을 대신하고도 남을 차’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3열 시트를 접으면 2,376L의 커다란 짐공간이 펼쳐지고, 2열 시트까지 접으면 어른 2명이 잠을 자기에도 충분한 공간이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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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열 시트를 세운 상태에서도 적재량이 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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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이 타고도 엄청난 짐을 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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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까지 접으면 성인 2명이 함께 잘 수 있을 만한 공간이 나온다

V6 자연흡기로도 충분한 몸놀림
파일럿은 혼다가 미국에서 범용으로 쓰고 있는 V6 3.5L 가솔린 I-VTEC 엔진을 얹었다. 혼다 특유의 SOHC 4밸브 유닛에 직분사 개량을 통해 최고출력 284마력/6,000rpm, 최대토크 36.2kg·m/4,700rpm의 준수한 성능을 낸다. 비공식 자료에 의하면 0→시속 100km 가속 7.3초, 최고시속은 211km로 체구를 뛰어넘는 성능이다. 이 정도 스펙이면 V8이나 별도의 과급기가 필요치 않은 수준으로, 실제 운전할 때도 성능에 대한 아쉬움은 전혀 들지 않는다. 풀 액셀 상태에서 다소 거친 엔진음을 토해내는 게 의외지만 평상시 영역에서는 시종일관 부드럽고 여유로운 달리기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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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가 북미에서 즐겨 쓰는 범용 6기통 엔진.출력이 전혀 부족하지 않다

 


다만 수동 변속을 지원하지 않는 건 무척 아쉽다. 미국에서 만든 차 아니랄까봐 6단 AT에 달린 건 오버 드라이브(OD) 온오프 스위치와 L 기어 레인지가 전부다. 혼다 코리아는 2017년형을 수입하면서도 지난 2015년 10월 3세대 데뷔 때 빠졌던 9단 AT를 선택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6단 AT 외에도 옵션으로 9단 AT를 고를 수 있다. 6단 AT로 받은 지금의 연비(복합 8.9, 도심 7.8, 고속 10.7)가 의외로 괜찮아서 이를 포기하기 싫었던 걸까? 실제 미국에서도 9단 AT의 연비가 6단 AT보다 확연히 좋은 건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몰아보면 6단 AT로도 그다지 부족함을 느낄 수 없다.

 

앞 맥퍼슨 스트럿, 뒤 멀티 링크 서스펜션과 앞뒤 245/50 R20 사이즈의 타이어가 만들어내는 승차감과 핸들링은 동급 평균 이상이다. 운전할 때만큼은 5m의 체구가 전혀 의식되지 않으며, 덩치에 비해 회전반경도 크지 않아 도심에서도 큰 부담이 없다. 눈길/진흙길/모랫길을 선택할 수 있는 지능형 지형관리 시스템을 갖춘 점도 동급 모델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매력이다. 230여km를 달린 후 측정한 평균 연비는 7km/L 정도. 비슷한 배기량의 국산 가솔린 세단과 별반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이쯤 되면 용자는 데일리카로 쓸 생각도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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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만원대 중반의 비교적 저렴한(?) 값의 북미 태생이라고 별다른 장비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3세대 파일럿은 스몰 오버랩을 포함한 북미 충돌 테스트에서 꽤 좋은 점수를 받았다. 여기에 더해 자동감응식 정속주행장치(ACC), 차선유지보조 시스템(LKAS), 추돌경감제동 시스템(CMBS), 차선이탈경감 시스템(RDM) 등 사고 위험을 줄여주는 적극적인 안전장비를 잔뜩 얹었다. 눈으로 보이는 안전장비는 오른쪽 깜빡이를 켰을 때 우측 뒤쪽 영상을 중앙 모니터에 띄우는 정도인데, 사이드미러에 눈이 먼저 가기 때문에 활용도는 크지 않다. 그보다는 큼지막한 크기에 비해 사각지대가 의외로 좀 있는 왼쪽 사이드미러의 개선이 더 절실해 보인다. 물론 애프터마켓에서 광각 미러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긴 하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이지만 우리나라는 배기량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국산차 메이커들이 북미를 주요 타깃으로 삼다보니 평균 배기량이 크고, 또 고급차일수록 배기량이 커야 한다는 인식도 밑바탕에 깔려 있다. 따라서 V6 3.5L 엔진에 9km/L에 가까운 평균연비(비록 제원상이지만)를 내는 대형 SUV가 설 자리는 충분하다. 공간이 넉넉해 한국판 사커맘이 타기에도 어울릴 듯하지만 한국에서는 축구장 대신 기껏해야 스포츠 센터나 학원을 부지런히 오가는 게 현실. 센터의 좁은 지하주차장과 붐비는 학원 주변에서는 분명 큰 덩치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주말에 탈 여유로운 SUV를 찾는다면 파일럿의 매력은 한국에서도 유효하다. 어쩌면 데일리카로 사용해도 V6 3.3/3.8L 엔진의 준대형차와 유지비 차이가 크지 않을 듯. 그러나 역시 파일럿은 주중보다는 주말, 도심보다는 아웃도어에서 더 큰 진가를 발휘할 듯하다.


박지훈 편집장 사진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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