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 르반떼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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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ERATI LEVANTE S
질풍의 아리아


르반떼가 달린다. 산들바람처럼 도심을 누비다 질풍이 되어 고개를 넘는다.

르반떼가 불어온다. 바람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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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투란도트 아리아 ‘Nessun Dorma’(아무도 잠들지 마라). 관성을 잡아끄는 질주의 기세가 어찌나 강력한지 땀 맺힌 등짝과 시트 사이엔 숨 쉴 틈조차 없다. 주행모드는 스포츠. 변속로직이 바뀌어 회전수가 치솟는단 말이고, 서스펜션이 잔뜩 조여졌다는 이야기이며, 스티어링 매개변수가 달라졌다는 뜻이자, 배기 바이패스 시스템이 뉴매틱 밸브를 열어젖혔다는 의미다. 회전계 바늘이 5,000rpm을 넘어 레드존을 찌를 듯 맹렬해질 때, V6 엔진의 날숨은 최단거리를 달려 네 가닥 성대를 사납게 울린다. 엔진이 뿜는 힘이 속도와 소리로 치환돼 악명 높은 시그니처 사운드를 대기 중에 펼쳐낸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칼날처럼 서늘한 금속 패들시프트를 오른손 중지로 튕겼다. 끊어질 듯 팽팽하던 선율은 한 단계 누그러졌다가 이내 탄성적으로 치솟는다. 오른발에 힘을 풀지 않는 한, 끝없이 새로운 클라이맥스로 질주할 태세다. 이탈리안 테너의 우렁찬 성대가 3단 고음이든 4단 고음이든 너끈히 소화해낼 수 있다는 걸 믿게 될 때쯤, 차체 하부와 노면의 간격은 187mm까지 좁혀졌다.
묵직한 유압식 스티어링 휠을 좌로 우로 휘저어도 불안감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다. 이 차의 앞뒤 무게배분은 50:50, 무게중심은 세상의 어떤 SUV보다 낮다. 인텔리전트 AWD Q4 시스템은 앞뒤 50:50에서 0:100까지 0.15초 간격으로 구동력 배분율을 달리 한다. 430마력의 힘이 모두 뒷바퀴에 실리는 순간, 폭 295mm의 뒤 타이어는 지면을 쥐어뜯듯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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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187mm, 최고 247mm까지 5단 계로 지상고가 조절되는 에어서스펜션이 들어간다 


 

산들바람 같다가도 일순 질풍이 되어 몰아치는 지중해 바람, 르반떼라는 이름 뒤에 ZF 8단 자동변속기가 있다. 드라이브 모드 선택에 따라 분절 없이 매끄러운 가속과 재빠르고 역동적인 기어 시프팅을 모두 소화해내는 숨은 공신이다. I.C.E.(Increased Control & Efficiency), 스포츠, 오프로드 세 가지 모드는 각각의 색채가 강해 이 한 대의 차로 세 가지 엔진, 세 가지 트랜스미션, 세 가지 서스펜션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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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모드를 I.C.E.에 놓고 달리면 풍요롭고 여유로운 주행감이 마치 GT카의 그것같다 


 

바람의 이름을 가진 SUV가 바람을 베며 달린다. 그 감각이 어찌나 예리한지 SUV의 숙명과도 같은 풍절음도 거의 일지 않는다. 르반떼의 공기저항계수(Cd)는 0.31. 지구상의 모든 SUV 가운데 가장 낮다. 라디에이터 그릴 안쪽에 자리한 에어셔터는 평소엔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닫혀 있다가 냉각이 필요할 때만 열린다. 덕분에 이 거대한 SUV는 뼈대를 공유하는 기블리뿐만 아니라 포르쉐 911, 메르세데스 벤츠 SLC 등의 스포츠카와 동등한 공력성능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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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블럼 상단에는 서라운드 뷰를 위한 카메라가, 엠블럼 안에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위한 센서가 담겨 있다.

릴 안쪽에 자리한 에어셔터는 평소엔 닫혀 있다가 냉각이 필요할 때만 열린다 

 

 

빅뱅 이래 가장 관능적인 SUV
첫 만남이 떠올랐다. 지난해 부산모터쇼는 유구한 브랜드 역사 최초의 SUV 공개로 들썩였다. 벤틀리 벤테이가, 재규어 F-페이스, 마세라티 르반떼는 럭셔리 SUV 전국시대를 예고했다. 해운대 앞바다에 몰아친 지중해 바람은 폭풍성장 중인 SUV 시장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칼자국처럼 선연한 두 눈은 사납기 그지없었고, 거대한 입은 포악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성난 파도와 같이 안으로 굽은 라디에이터 그릴 한가운데엔 포세이돈의 트라이던트가 번뜩이고 있는데, 흉흉한 인상 탓에 파괴의 신 시바의 트리슈라로 보일 지경이었다. 양쪽 앞 펜더에 자리한 세 발짜리 에어벤트, C필러에 각인된 세타 로고, 역삼각형 테일램프는 이 낮선 차가 틀림없이 마세라티일 것이라는 다짐이다. SUV치고는 이상하리만치 기다란 노즈, 바람조차 미끄러질 것 같은 쿠페형 루프 라인, 윈도 프레임이 없는 네 개의 도어, 당기면 튕겨나갈 듯 한껏 부풀어 있는 리어 펜더는 이 SUV의 아이덴티티가 스포츠 쿠페에 맞닿아 있다는 암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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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기면 튕겨나갈 듯 한껏 부풀어 있는 리어 펜더는 이 SUV의 아이덴티티가 스포츠 쿠페에 맞닿아 있음을 암시한다


 

르반떼의 정점에 선 르반떼 S, 그 가슴팍엔 인상만큼이나 살벌한 심장이 달린다. 이탈리아 마라넬로 페라리 공장에서 만들어진 V6 3.0L 가솔린 트윈 터보 엔진(F160)은 페라리 488 GTB, 캘리포니아 T에 들어가는 V8 엔진(F154)에서 두 개의 실린더를 덜어낸 유닛이다. 따라서 연소실 디자인, 유압식 롤러 핑거 팔로워와 4개의 캠 작동장치를 통한 밸브 컨트롤, 직분사 기술, 병렬식 트윈 터보차저 등이 페라리 엔진 그대로다. 기블리와 콰트로포르테에 실려 최고출력 410마력을 내뿜던 강력한 심장은 르반떼 S에 와선 더욱 대담하게 430마력의 힘을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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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마라넬로 공장에서 제작한 430마력 V6 엔진

 


주행모드를 I.C.E.에 놓았다. 배기 시스템의 바이패스 밸브가 닫히자, 성난 숨소리가 다소 진정되었다. 노랫소리를 걷어내고 나면 시야가 좋은 GT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풍요롭고 안정된 주행감만 남는다. 조용해진 차 안을 16채널 1,280W B&W 사운드로 채운다면 금상첨화.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노래가 승객을 매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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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 시스템에 달린 바이패스 밸브가 주행모드에 따라 배기음을 달리한다


여유롭게 달리다보니 비로소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온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아낌없이 쓰인 최고급 가죽은 스티어링 휠에서 운전자의 피부를 만나 농밀한 스킨십을 나눈다. 선택할 수 있는 실내 가죽 컬러는 총 28가지. 제냐팩이 적용된 시승차는 도어 패널과 시트 등받이 중앙, 루프 라이닝에 이탈리아 수트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실크 원단이 들어갔다. 필러와 헤드라이너를 덮은 고급 스웨이드는 그 소재감으로 융숭한 대접을 하고, 원목 우드트림은 인테리어에 화룡점정을 한다. 포악한 성질을 대변하는 커다란 합금 시프트패들은 광택이나 감촉이 무척 고급스럽다. 하지만 칼럼에 고정되어 있어 조향 중 조작하기 어렵다는 게 단점. 이 패들이 방향지시 레버 사용을 방해한다는 점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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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가죽과 원목 우드트림이 어우러진 고급스런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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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시프트패들은 소재감이 일품이다. 칼럼 고정식이라 스티어

링 중에 사용하기 어렵고 방향지시 레버조작에 방해가 된다는 점이 아쉽다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8.4인치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와 새로운 로터리 컨트롤은 이 차가 마세라티 100년 역사의 최신작이라는 표식이다. 럭셔리 패키지가 적용된 시승차는 드라이버 어시스턴스 팩 플러스가 기본 적용되어 전방충돌경고, 차선이탈경고,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사각지대 알림, 서라운드 뷰 등 최신 고급차가 응당 품어야 할 안전기능을 살뜰히 챙겼다. 한글화가 이루어진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디스플레이도 만족스럽다. 다만 스포츠 서스펜션을 ‘스포츠 현탄액’이라고 표기하는 자동번역기 수준의 어휘 선택은 눈에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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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시보드 상단에는 럭셔리카의 상징과도 같은 아날로그 시계가 달렸다 2 주행모드 버튼, 차고조절 레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위한 로터리 컨트롤이 기어노브를 둘러싸고 있다 3 쿠페의 상징 프레임리스 도어가 적용됐다. B&W 오디오

시스템(옵션), 에르메네질도제냐 실크(옵션)와 우드트림, 최고급 가죽이 어우러진 도어 패널은 호화롭기 그지없다

4 콘솔박스 내에 냉·온장이 가능한 두 개의 컵홀더가 숨겨져 있다

 

 

날렵한 몸매에 속기 쉽지만 르반떼는 의외로 덩치가 크다. 차체의 길이×너비×높이가 5,003×1,968×1,679mm, 휠베이스 3,004mm로 크기로 치면 BMW X6와 난형난제다. 3m가 넘는 휠베이스, 돌출부가 높지 않은 센터 터널, 깊이 파인 2열 천장 덕에 뒷자리 공간은 넉넉하다. 580L 기본 적재공간도 나쁘지 않은 수준. 다만 쿠페형 루프 라인으로 인해 키가 큰 짐은 싣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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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렁크용량은 580L. 분할 폴딩과 스키스루를 지원한다 2 해치도어 개폐 버튼이 트렁크 입구에 달려 있어 키가 작은 여성 운전자도쉽게 조작할 수 있다 3 최고급 가죽과 에르메네질도 제냐 실크가 어우러진 시트. 헤드레스트에 수놓인 삼지창 엠블럼이 왕관으로 보이는 건 왜일까 4 리클라이닝이 가능한 2열 시트. 센터 터널이 낮고 천장이 깊이 파여 공간이 넉넉하다

5 충전용 USB 단자. 뒷자리 승객도 스마트폰을충전할 수 있다

 

 

모험가를 위한 마세라티
같은 말을 계속 되뇄다. ‘마세라티를 타고 험로를 달리고 있다. 마세라티를 타고 험로를 달리고 있다. 마세라티를 타고…….’ 믿을 수 없었지만 진짜다. 마세라티가 자갈과 흙, 모래를 헤치며 달리고 있었다. 주행모드는 오프로드. 187mm까지 주저앉았던 지상고는 247mm까지 껑충해졌다. 네 바퀴가 제각기 둔덕과 웅덩이를 극복하는 중에도 차체는 굳건했다. 문득 깨달았다. 뼈대를 나눈 기블리보다 20% 높은 차체강성은 험로주행을 위한 대비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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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가 이 어려운 걸 해냅니다. 자그마치 100년 만에


 

인텔리전트 AWD Q4 시스템은 광범위한 매개변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한다. 일상 주행 상황에서는 뒷바퀴에 더 많은 구동력을 전달해 역동성을 높이다가 뒷바퀴가 그립을 잃을 경우엔 앞바퀴에 구동력을 싣는다. 뒤쪽에는 기계식 셀프 로킹 디퍼렌셜을 표준으로 장비했다. 오프로드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똑똑한 네바퀴굴림 시스템과 힐 디센트 컨트롤이 노면 적응력을 한껏 높인다. 앞 더블 위시본, 뒤 멀티 링크 서스펜션 레이아웃에 에어 스프링과 전자 제어식 스카이훅 쇼크 업소버를 더한 하체가 온로드에서나 오프로드에서나 페이스를 잃지 않고 달릴 수 있게 한다.


마세라티가 SUV를 처음 선보인 건 2003년이다. 14년 전 등장한 마세라티 쿠방(Kubang)은 V8 엔진을 얹은 쿠페형 SUV 컵셉트였다. 7년간 잠들어 있던 쿠방 컨셉트는 2011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새 디자인을 입고 부활했다. 생존신고를 올린 마세라티의 SUV는 지난해에 와서야 비로소 기블리/콰트로포르테 플랫폼을 사용한 양산 모델로 공개됐다. 자바 섬의 바람(Kubang)이 14년의 유랑 끝에 지중해의 바람(Levante)으로 불어온 셈이다.


MASERATI of SUV. 르반떼의 탄생을 알린 말이다. 먼지 쌓인 ‘성문종합영어’를 펼쳐 봐도 깨닫지 못했던 이 말의 의미를 르반떼는 온몸으로 이해시켜줬다.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등장했던 수많은 마세라티의 열정과 성능, 고급스러움이 이 거대한 SUV에 그득히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뚱뚱한 마세라티의 등장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건 르반떼로 인해 더 많은 마세라티가 더 오래 세상에 머물 수 있게 될 거란 사실.


주행모드를 다시 스포츠에 놓았다.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V6 엔진의 날숨이 최단거리를 달려 네 가닥 성대를 사납게 울린다. 악명 높은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울려 퍼진다. 마세라티의 지난 100년과 다음 100년이 바람결에 살포시 겹쳐진다.

 

*글 김성래 기자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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